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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81화 (18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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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치열한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신국은 방글라데시 지역을 지나 계속 진군했다. 무굴제국의 힘이 약해지자 반란이 일어났다. 뭄바이의 주변 지역은 끊임없이 약탈했다.

악바르는 아그라를 버리고 페르시아와 가까운 지역으로 이동했다. 모든 군대를 이끌고 움직여 후퇴한 것이었다.

무굴제국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맹수는 아직 숨이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서두를 것 없어.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페구에서 머무는 신유성은 느긋했다.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페구에 공장을 세우며 이제는 신유성의 신도가 된 페구의 백성들의 환호를 듣는 게 일이었다.

페구 중심에 세워진 높은 탑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광장이 보였다.

하루 한 번, 신유성은 탑에 올라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페구의 백성들은 매일 같이 질리지도 않고 외쳤다.

직물 공장과 종이 공장이 지어진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부두가 확장되며 들어오는 수많은 물품들은 페구의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일자리가 넘쳐났고 먹을 것이 흘러넘쳤다. 페구의 백성들은 집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길이 열렸다.

페구에 들리는 병사들을 재워주는 하숙만 해도 상당히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높이 지어진 이층집들은 대부분 하숙집으로 쓰였다. 벽돌 공장에서 매일 같이 벽돌을 생산하면 그것으로 이층집을 지어댔다.

조선소에서는 어선을 찍어냈다. 이 어선들은 페구를 비롯한 인근 해역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어업에 종사했다. 이렇게 잡아들인 해산물은 건조되어 군부대에 납품되었다.

또한 페구 인근의 나무를 잘라내고 생긴 땅에는 삼을 심었다. 엄청난 양의 삼은 의복을 만드는 삼베나 밧줄로 만들어졌다.

개발이 진행되며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오늘도 많이 모였군. 강제로 모이게 한 건 아니지?”

“모두 자발적으로 모이는 겁니다.”

“그래, 그럼 빵이나 좀 줘봐.”

달짝지근한 망고잼을 바른 빵을 먹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탑이 높기 때문에 계단도 상당히 많았다. 허나, 신유성에게는 가벼운 운동에 불과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빵을 먹고 우유를 마셨다.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식탐이 늘어나는 신유성이었다.

“신대륙의 일은 어찌 되었지?”

“별 다른 진전은 없는 모양입니다. 대신 종두법은 시행해 마마로 죽는 사람은 영지 내에서는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잘된 일이야.”

아메리카의 일을 보고 받은 뒤, 신유성은 방으로 돌아갔다. 이젠 쉴 시간이었다.

‘곧 집으로 갈 수 있겠군.’

전쟁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누웠다. 아주 작은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빛을 감상하다가 까무룩 잠이 든 신유성이었다.

아메리카에서는 계속해서 죽음의 행진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전염병이 계속 확산되는 중이었다. 이 때문에 움직이는 원주민 부족들이 대량으로 늘어났고 결국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염병 지역을 피해 움직인 부족들과 이미 터를 잡은 기존의 부족들이 싸우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병에 대한 소문이 돌아 자신의 영역을 떠난 부족들은 저주 받은 부족이라 여기며 무조건 공격하기도 했다.

“방어는 어떤가?”

“문제없습니다.”

박순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사고의 뒤를 이어 탐험을 해야 하는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신국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한 적들은 아니었다. 본국의 군대를 끌고 오면 얼마든지 학살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본국의 군대는 끌고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말을 상당수 가져왔다는 것. 오가는 보급선을 통해 꾸준히 말을 옮겨 기병대를 만들 정도의 숫자는 됐다. 이 말들은 여진족 출신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말을 타면서 지냈던 이들이 말을 타니 전력이 급상승했다. 틀링기트족과 아파치족도 말을 탄 여진족에게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약이 부족해.’

빛나는화살은 자리를 잡은 이후 영주가 되었다. 이후 아파치족은 빛나는화살의 이웃이 되었다. 아파치족 대족장이 신국에 복속한 것이었다. 뒤를 이은 것은 틀링기트족이었다.

영주가 늘어나자 약의 수요가 급증했다. 그리고 지금도 신국에 우호적인 부족들은 복속하겠다며 약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박순은 약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정을 설명하고 몇 번 거절했다. 그랬더니 싸움을 걸어왔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그저 변명으로 들렸을 뿐.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약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 자들을 죽여 확인해보면 될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결국 아메리카의 신국 영주들은 전쟁을 해야만 했다.

패배는 없었다. 다만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게 되니 박순은 안타까워 할 뿐이었다.

‘약만 더 있었어도.’

약만 더 있었어도 싸울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잘 해줘야 할 텐데.’

박순은 의조에서 파견된 박지화와 허준을 떠올렸다.

명의. 박지화와 허준은 그렇게 불렸었다. 하지만 아메리카에 넘어와서 두 사람은 신적인 존재로 격상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이것 좀 드셔보시죠!”

길을 지나갈 때면 많은 이들이 인사를 했다. 뭔가 더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는 길이 막히지 않도록 방해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치워주기도 했다.

예전이라면 죽었다고 생각했을 상처를 입은 전사를 살려내는가 하면 특정 전염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몸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 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해주었다.

주술사들은 의술에 홀딱 빠졌다. 주술사들이 두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대우하니 다른 이들도 자연스럽게 공경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약에 쓰긴 했었습니다.”

“그런가?”

주술사들은 조선어를 빨리 배웠다. 기를 쓰고 배운 덕분이었다.

“그럼 이건?”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메리카의 약초에 대한 지식이 없는 박지화는 허준에게 자료를 정리해달라 부탁했다. 박지화가 주로 치료에 전념한다면 허준은 새로운 정보를 정리하는 것에 더욱 치중했다.

아메리카에서 활동하는 이상 현지에서 약초를 구해 사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경제적이기 때문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상대가 피곤해하는 것이 보이자 허준은 일을 마쳤다. 이후 환자들을 살펴보았다.

“스승님 좀 쉬시죠?”

“괜찮다.”

박지화는 무리하고 있었다. 사람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오히려 박지화의 몸을 조금씩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어의한테 맡기고 쉬세요.”

“후우, 알았다.”

웃으며 재차 강권하니 박지화는 결국 물러났다. 이후 허준이 대신 진찰을 했다.

‘저러다 쓰러지시면 어쩌시려고.’

의원도 사람이다. 과로하면 쓰러진다.

허준은 박지화의 건강을 걱정하며 진찰을 시작했다.

한편, 한쪽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계속 되고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죽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 또 다시 남쪽에 다른 놈들이 나타났다. 매우 호전적인 놈들이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 보내주시죠.”

“그래, 갔다 와.”

빛나는화살은 최근 들어 영지 근처에 나타나는 이들과 싸우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상대의 병력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기병이 가서 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자꾸 호전적인 이들이 나타나니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었다.

‘절대 내주지 않는다.’

예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탐험대만 있을 때는 불리하면 후퇴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들을 비롯해 수많은 동족들이 정착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탐험대와 달리 빠르게 후퇴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싸워야만 했다. 지켜야만 했다.

‘얼른 지원군이 왔으면.’

군사적인 일까지 같이 하려니 빛나는화살의 영지는 그리 빨리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불만이었다.

“왔습니다.”

“뭐?”

갑자기 들려온 소식에 빛나는화살은 서둘러 항구로 향했다. 그리고 보았다. 거대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원균은 원정군에 다시 지원했다. 그리고 신대륙에 도착했다.

‘여기서 나의 영지를!’

꿈을 이루기 일보직전이란 느낌이었다.

오비강과 우랄산맥을 오가며 모스크바 차르국과 싸울 때는 정말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신대륙은 그렇게 강한 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땅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도 쉽게 밀어낼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때문에 신대륙 방면 원정군에 지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꽤 높은 직위를 받았다.

원균은 원정군을 마중 나온 빛나는화살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도 영주가 됐는데 나라고 못 될 것 없어.’

경쟁할 필요도 없었다. 아메리카는 넓었다.

원균에게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다.

더구나 원주민 전력은 그리 강하지 않으니 절호의 기회로 여겨질 뿐이었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국에 널렸다. 원균부터 신국에서 장사하는 많은 상인들이 수많은 상황 속에서 기회를 잡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이런 이들 중에는 알렉산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러네. 차르 따위에게 충성해봐야 뭐가 남나? 그 놈은 그저 우릴 죽이려고 안달이잖나?”

알렉산드로는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보야르와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하긴 의심이 너무 심하죠.”

차르인 이반 4세는 보야르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의심했다. 그리고 자신을 지킬 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해 보야르들을 전쟁터에 보냈다.

승리하면 좋고 패배해서 죽어도 좋은 것이었다. 보야르가 죽게 되면 그의 땅과 권력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으니까.

아나스타샤 왕비의 죽음 이후로 이반 4세는 더더욱 신하들을 불신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진행한다고 여겨서 더욱 전쟁에 매달렸다.

뿌리가 약하니 결국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보야르들을 견제하고 자신을 지켜나갔다.

이러한 처사에 속으로 불만을 품은 보야르는 많았다. 원래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반 4세가 갑자기 강력한 권력을 누리게 된 것도 불만이었는데 목숨마저 위협 당하니 곱게 볼 순 없었다.

“지금 당장 전향하라는 것은 아니야. 다만 때가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오라는 거지.”

“정말 괜찮겠습니까?”

알렉산드로와 대화하던 보야르는 약간 불안해했다.

“완벽하다는 말은 못해. 세상 일이 어찌 바뀔지 누가 아나?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신국의 영주가 되면 차르국의 보야르로 지내는 것보다 훨씬 좋을 거야.”

“으음.”

결국 보야르는 승낙하고 말았다. 말로만 한 약속이라 언제 깨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승낙할 정도로 마음이 흔들렸다는 사실이 알렉산드로에게 중요했다.

‘이것도 성과로 쳐준다니. 좋은 일이지.'

알렉산드로는 빨리 돌아가 노부나가와 장거정에게 보고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정은 기병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훈련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싸우러 나가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대규모 전투를 허락하지 않았다.

총 10만에 달하는 기병을 뽑아놓고 하는 일은 계속해서 요새를 새우는 것과 길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제일 바쁜 것은 공병들이었다.

“이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용병이나 할 걸 그랬습니다.”

훈련이 끝나자 한 병사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평소에 부하들을 잘 챙긴 이정에게 병사들은 마음을 열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용병이야 돈은 잘 벌지. 하지만 원정군에서 활약하다보면 언젠가 큰일을 할 기회가 올 거다. 그때를 놓치면 용병이 된 걸 후회하게 될 걸?”

“그냥 하는 말입니다. 사실 전투가 안 벌어지는 게 제일 좋죠. 죽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요즘 불안합니다.”

“뭐가?”

“매일 이렇게 맛있는 음식에 월급도 많이 주고. 이런 군대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러다 파산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입니다.”

“폐하는 이 정도 돈에 흔들릴 분이 아니시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병사가 불안한 이유는 바로 원정군 때문에 신유성이 파산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기준에서 보면 신유성은 어마어마한 돈을 원정군에 쓰고 있었다.

다른 병과를 다 빼고 오직 기병만 놓고 봐도 숫자가 10만이었다. 이들 전부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엄청난 양의 식사를 매일 만들어서 배급했다.

식사 또한 질이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신국이 거대하다고 하지만 병사의 입장에서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병사들 사이에선 신유성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북방 원정군을 챙기며 무굴제국과 전쟁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걱정해주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훈련이나 잘 해라. 그리고 정 그렇게 걱정되면 나중에 전투가 벌어지면 꼭 살아라. 폐하께서 네 사망 보상금 지급하지 않게.”

“그래야겠네요.”

병사의 대답에 이정은 웃으며 어깨를 툭 쳐주었다.

식사가 끝나고 이정은 조용히 서쪽을 바라보았다. 두 눈에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전의가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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