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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신국이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갈 때, 죽음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양, 병원.
“생각 없다.”
“드시고 기력을 되찾으셔야 합니다.”
“됐으니까.”
남사고는 밥상을 물렸다. 상에 올라온 것이 죽과 간장이라서 물린 것이 아니었다.
‘자고 싶다.’
기력이 점점 떨어지는 남사고는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니, 식욕을 완전히 잃었기에 기력이 계속 떨어진다고 봐야 할까?
잘 먹지 못하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약해지고 있었다.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남사고의 주변을 맴돌았다. 남사고의 지인들은 이를 두고 안타까워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남사고는 자신의 생명이 곧 꺼질 것임을 직감했다.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더 많아졌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책은?’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말들을 모두 남겼나? 남사고는 생각을 더듬어 보았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어지러이 떠다니면서 확실하게 남겼는지 아닌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써놓은 것들을 직접 확인하려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생기를 잃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남사고에게 방문객이 찾아왔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찮아.”
이지함이었다. 의조의 책임자이며 현재 신국 의료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이지함도 남사고를 어떻게 할 순 없었다.
늙으면 죽는다.
나이 때문에 생기는 일을 고칠 방법이 이지함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목 마르시진 않고요? 물이라도 한 잔 하시죠.”
물이란 말에 남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식욕이 없어도 물마저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지함이 유리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무색투명한 물은 시원해보였다.
“음.”
허나 맛은 단순한 물맛이 아니었다.
“뭘 넣었나?”
“소금과 설탕을 조금 넣었지요.”
“괜한 짓을.”
그렇게 달지도 짜지도 않았다. 아주 조금만 넣은 물이라서 맛만 나는 정도. 하지만 혀가 자극을 받자 남사고의 정신이 조금 깨어났다.
“그래도 건강하게 지내는 게 기분 좋지 않습니까?”
“알았네.”
아주 잠깐 회복했던 기력은 금방 사라졌다. 물 한 모금으로 할 수 있는 한계였다.
‘정정하시던 분이.’
남사고는 돌아다니길 좋아했다. 그래서 신유성이 혹독한 임무인 탐험을 시켜도 군말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매번 만날 때마다 새로운 땅과 사람들에 대해 얘기할 때 눈을 빛내던 남사고였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였다. 몸이 약해지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계속 곁에 머물고 싶었으나 이지함도 바쁜 사람이었다. 신국의 의료가 이지함의 두 어깨에 달려 있었다.
할 일이라면 깔려 죽을 정도로 많은 남자였다.
“잠깐.”
“네?”
이지함이 병실을 나서려는 순간 어찌 된 일인지 남사고가 손을 들어 불렀다.
“하실 말이라도?”
“내 죽거든 내 몸을 해부해보게나.”
“해부요?”
이지함은 눈을 크게 떴다. 해부는 유교를 따르는 이들 사이에서는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몸을 훼손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풍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유성이 세상의 의술을 끌어 모으기 시작하면서 해부에 대한 지식도 함께 들어왔다. 이것은 신국의 의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의조에서는 이를 두고 격론이 오갈 정도였다.
해부에 대해 긍정적인 이들과 부정적인 이들로 나뉠 정도.
긍정적인 이들은 대부분 한반도가 아닌 타 영지 소속의 의원 출신들이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남사고가 몸을 내놓는 것은 그래서 의외였다. 남사고 또한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학을 따르던 선비였다.
“세상이 변하고 있어. 폐하께서 바꾸고 계시지 않나? 나도 뭔가 하고 싶은데 더 할 것이 없네. 그러니 마지막으로 몸이라도 내놔야지.”
“하지만.......”
남사고가 괜찮아도 가족들이 어찌 생각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집에도 얘기를 해놓을 테니까.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이네. 조금 째본다고 뭐가 그렇게 달라지겠나? 벌레밥이 되기 전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에 보탬이 되면 좋지.”
긴 얘기를 하다보니 숨이 찬지 중간에 멈추기를 여러번이었다. 그러나 이지함은 끈기를 가지고 남사고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갑자기 이리 약해진 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알아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난 좀 잘 테니까.”
말을 길게 해서 피곤했는지 남사고는 금방 잠들었다.
병실을 나서는 이지함은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며칠 뒤, 남사고는 꿈을 꾸었다.
“부인, 뭘 그리 아쉬워하고 그러나? 나중에 다 만날 거라니까 그러네.”
“그래도요.”
“내 먼저 가서 터 잡아 놓을 테니까. 천천히 놀다 오시구랴.”
등을 돌린 남사고는 훌쩍 날아올라 배에 올라탔다.
“가자!”
“예이!”
선원들이 대답하며 바쁘게 움직이자 돛이 펼쳐졌다. 순간 강풍이 불자 남사고가 탄 배는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하하하! 내가 하늘을 다 날아보는구나!”
두둥실 떠가는 구름 사이를 항해하는 배를 타고 좀 나아가자 망망대해가 나왔다. 때로는 새들과 함께 나란히 날기도 했다.
기분 좋게 하늘을 날선 남사고는 하나의 땅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래가 아닌 허공에 떠 있는 땅이었다.
“여기는 또 어딘가?”
신기함을 느끼며 남사고는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땅에 발을 디뎠다. 온갖 동물과 식물들이 모두 모여 있어 기이한 모습을 연출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모인 곳 같은 곳.
밤이 되자 무수히 많은 하늘의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또 갑시다.”
“어디를?”
“어디긴! 하늘 밖의 하늘도 구경해야 될 것 아니오!”
“하하하하! 갈 수 있는 건가? 그거 좋지!”
하늘을 나는 땅은 하늘로 치솟았다. 순간 별들이 쏟아지는 느낌에 남사고는 황홀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의식은 검은 우주로 빨려 들어갔다.
숨을 거둔 남사고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맴돌았다.
“해부를 시작한다.”
남사고가 죽자 그의 시신은 일단 이지함이 거둬갔다. 그리고 의조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두 모였다.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남사고가 갑자기 몸이 약해진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의원들은 일단 남사고의 외형을 살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지 철저히 살폈다. 한쪽에서는 화공이 그림을 그렸고 다른 쪽에서는 의원들이 하는 말을 정신없이 받아 적는 이들이 있었다. 해부를 진행하는 의원들이 직접 기록하긴 어려우니 다른 사람이 받아 적어야만 했다.
겉을 모두 살핀 뒤에는 해부에 들어갔다.
가슴을 가르고 뼈를 벌렸다. 그리고 몸 안의 기관들을 세심하게 살피며 해부를 시작했다. 심장을 적출하고 간을 빼내고 내장까지 살폈다.
“여기요! 여길 좀 보시죠!”
내장을 살피던 의원 하나가 외쳤다. 사람들이 모이자 의원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뽑아냈다. 내장에서 뽑아낸 것은 기다란 기생충이었다.
“윽.”
누군가 신음했다.
“이것이 원인이 아닐까요?”
“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내장 속에는 기다란 기생충들이 꽤 많았다.
“일단 조심하도록. 그리고 그것들을 연구하도록 한다.”
의원들은 조심스럽게 기생충들을 병에 담았다. 기생충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눈빛은 매우 살벌했다.
남사고가 사망했을 무렵, 신유성은 탑에 올랐다. 한 밤중이라 탑 아래에 보이는 광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주변을 지키는 병사들만이 뻣뻣하게 서서 주변을 살필 뿐.
‘별이 참 멋지구나.’
의자에 앉아 하늘을 감상했다. 높은 곳이라 암살 위험이 없어 친위대가 곁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밖이 보이는 난간에 앉아 조용히 밤하늘을 감상하며 술잔을 들었다.
“크으!”
술을 마시고 집어먹은 안주는 말린 망고였다. 쫀뜩함과 달달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살짝 알딸딸해지며 기분이 풀렸다.
아무리 신유성이라 하더라도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것이 피곤하지 않을 순 없었다.
‘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황은 좋았다. 신국의 군대는 계속해서 전진 중이었다. 악바르의 군대는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으나 악바르는 이를 막을 여유가 전혀 없었다.
신유성은 반란을 일으킨 지역들에 조건을 제시했다. 신국의 영주가 되라고. 그러면 해치지 않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넙죽 받아들였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자치권까지 준다고 하니 크게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었다.
‘지금쯤 아그라 앞일까?’
시간 상 그래야 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페구와 아그라는 상당히 멀었으니까. 신유성이 받는 소식은 모두 이미 일어난 지 꽤 된 것들 뿐이었다.
‘전화기라도 있으면 좀 좋아?’
그랬다면 전황을 바로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 전기가 필요해.’
후장식 소총을 위해 무연화약을 개발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직도 강했으나 전기 역시 절실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전기의 사용은 또 다른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
문명의 혁명이었다.
‘전기라.’
신유성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미래의 기억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세심하게 살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아침이 찾아오자 신유성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신유성에게 사람이 찾아왔다. 페르시아의 사신이었다.
“교역을 좀 더 늘리고 싶습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뒤, 페르시아는 신국에 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국의 상품들에 반했다.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식칼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돈 좀 있는 부잣집 주방에는 어김없이 하나씩 있는 것이 바로 신국 식칼이었다.
또한 신국의 직물 공장에서 나온 직물들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비단은 여전히 인기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른 직물들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인간의 손으로 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교하고 꼼꼼한 직물들은 페르시아에선 구할 수조차 없었다. 같은 재료를 써도 신국에서 만든 것과 질적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수요는 폭발했다. 그래서 사신이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교역을 늘려달라는 요구였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우리도 써야지.”
신유성은 딱히 수출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수요라면 신국 내부에도 넘쳐났다. 자원도 넘쳤다. 외부에서 굳이 사들일 필요는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무역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무역이야말로 상대 국가를 무너뜨리는 공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렇게 가져가는 거야. 의존하라!’
의존하게 되면 약점을 잡히는 것과 같다.
무역을 중단하는 것만으로 페르시아의 지배층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저 아쉬워하며 다가갈 필요는 없었다.
‘아쉬운 건 저 놈들이지.’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 하십시오.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럼 그쪽의 책들을 얻고 싶은데. 모든 책을 전부 필사해서 줄 수 있나?”
“네?”
“내가 책을 좋아해서 그러네. 그 덕분에 자네랑 이렇게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페르시아와 관계를 맺은 뒤, 페르시아 사람 하나 고용해 신유성은 꾸준히 말을 배웠다. 신유성의 말 배우는 속도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이러한 일을 자주 접한 신유성의 신하들은 더 놀랄 힘도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게 뭐 어렵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부탁을 들어줘야지. 교역을 지금의 3배로 늘리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사신이 물러간 뒤, 신유성은 신하를 불러 한 가지를 당부했다.
“교역을 3배로 늘리기로 했다. 다들 알겠지만 저쪽의 의약품은 무조건 내가 지정한 상인만이 거래하도록 한다. 딴 놈이 함부로 약재를 수입하는 게 걸리면 모반이라고 생각하겠다.”
다들 침을 꼴깍 삼켰다. 대부분 이해를 잘 못했으나 이는 꼭 지켜져야만 하는 일이었다.
‘개나 소나 마약에 손대게 할 순 없어.’
페르시아의 교역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페르시아에서는 마약에 쓰이는 것들을 약초라면서 팔았기 때문이었다. 교역한 물품들을 살피던 신유성은 우연히 마약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엄금했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지.’
미국에서 생활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신유성은 마약에 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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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