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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83화 (18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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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신국은 연전연승을 이뤄나갔다. 계속된 승리에 도취된 병사들의 사기는 높았고 신국에 맞서 싸워야하는 무굴제국군의 사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파고들었다.

배신과 반란이 넘쳐나며 무굴제국군은 무너져갔다. 처음부터 하나의 세력이라고 하긴 어려웠던 탓이었다. 이슬람과 힌두교라는 이질적인 종교의 차이는 강력한 지배력이 없이는 공존하기 어려웠다.

종교가 다르면 생각이 다르고 사소한 시비도 종교인들의 전쟁으로 번질 수 있었다. 신국의 승리로 악바르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점령당했던 힌두교인들의 반란이 이어졌다. 그리고 신국에 복속했다.

배신을 하게 되면 신국과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힌두교인들에게 몰락하는 무굴제국을 위해 충성할 의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신국은 빠르게 진격했다.

“드디어 아그라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이에야스의 부대였다. 기나긴 진격 끝에 겨우 도달한 것이었다.

“바로 공격합니까?”

“아니, 기다린다.”

부대의 사기는 높았으나 상황은 마냥 좋다고만 할 순 없었다. 긴 진격 끝에 많이 지쳐있던 탓이었다.

‘병사의 체력은 곧 전투력.’

지치면 실수할 가능성이 늘어나기 마련. 정예병이라고 해도 지치면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 접근하지 말고. 적의 포격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포대 확인은 하지 않았으나 이에야스는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다.

아그라의 분위기는 의외로 평온했다. 이에야스의 부대가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사람들은 불안에 떨지 않았다.

악바르를 비롯해 중요한 사람들은 이미 떠난 상태, 남은 것은 신국의 발목을 잡을 희생양들뿐이었다.

아그라에 남은 이들은 전부 약에 취해 있었다. 악바르가 대량의 약을 강제로 하게 만든 것. 주기적으로 약을 쓴 이들은 결국 길들여졌고 하나의 명령을 받게 되었다.

“신국의 군대가 공격해오면 싸워라.”

마약을 통한 집단 세뇌였다. 더구나 사용된 양도 엄청났다. 10만에 달하는 일반인들이 마약에 취해 있었다. 이들이 사용할 마약을 구하느라 악바르는 상당한 재화를 소모해야만 했었다. 허나, 보물도 죽고 난 다음에는 쓸모없는 것.

악바르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10만에 달하는 광전사들이 아그라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에야스는 묵묵히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습도가 올라가고 몸이 축축해지니 다들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약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흠.”

공격 준비가 끝나고 공격을 시작하려는 날 새벽부터 비가 오니 뭔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이에야스는 결국 공격을 취소하고 대기했다.

비는 열흘간 계속 내렸다.

“젠장. 얼른 싸우고 도시에서 자고 싶은데.”

“참아라. 비 오는 날 폭탄도 못 쓰는데. 그냥 싸우다 죽어.”

“나도 알지. 에이.”

대포와 척탄병의 활약은 매우 중요했다. 이 둘이 있어야 밀집 지역을 큰 피해 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적도 화승총 가지고 있는데 그냥 싸우면 다 똑같은 조건이잖아.”

“숫자가 얼마나 되는 줄 알고?”

“에이. 술도 못 마시고.”

“국물이나 마셔.”

병사들은 비로 인해 추워지는 몸을 뜨겁게 하기 위해 뜨거운 국물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고춧가루가 들어가 상당히 매운 맛이었다.

“이건 몸이 뜨거워지는 건 좋은데 혀가 아프단 말이야.”

“어쩌겠냐. 술은 안 된다는데.”

“에이. 잠도 못 자고.”

병사들의 투덜거림은 멈추질 않았다. 열흘이나 공격대기 상태로 비를 맞으면서 기다리다보니 답답했던 것이었다.

이에야스도 몹시 답답했다. 그때, 후방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제가 늦었군요.”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 자들은 바로 신페이와 나가오 가케토라였다. 이 둘은 중간에 따로 만나 그때부터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군이 뭉쳐서 움직이니 대항하는 적은 없었다.

덕분에 느리긴 했지만 손쉽게 아그라까지 진격해온 것.

“아깝군요.”

이에야스는 신페이를 맞이하며 웃었다.

‘비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점령하는 건데.’

이에야스를 비롯한 이에야스의 가신들은 다들 아쉬워했다. 함께 공략하면 그만큼 공적은 줄어드니까.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하, 아까워도 좋은 것은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저쪽은 어떻습니까?”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밥 짓는 연기는 가끔 난다. 하지만 기이할 정도로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아그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무기도 들지 않은 이들뿐이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아, 가끔 미친놈들이 돌아다니긴 했죠. 뭐라고 알 수 없는 소릴 떠들어가면서.”

괴성을 지르며 아그라 주변을 뛰어다니다 힘이 빠지면 쓰러졌다. 그러다 깨어나면 어슬렁거리다 아그라 안으로 돌아갔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살펴보셨습니까?”

“그러진 못했습니다. 적의 술수일 수도 있으니까요.”

“흐음.”

신페이는 아그라의 상태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으로 정찰병을 보낼 수도 없었다.

‘빈틈은 없군.’

몰래 들여보내려고 해도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밤에도 사람들이 어슬렁거릴 정도였다. 무기를 들지 않은 이들이라고 해도 발각되면 시끄러워진다. 잘못하면 정찰병들만 죽을 수 있었으니 무리해서 안을 살펴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비가 멈추면 적당히 공격해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삼일이 더 지난 뒤에야 비는 멈췄다.

“오늘은 맑겠군.”

“그렇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아침이 온다면 분명 맑은 날이 될 거라 모두 예상했다. 아주 가끔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이 순식간에 날아와 비를 뿌릴 수도 있었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식사를 한 병사들은 쉬면서 볼일을 보고 무기를 점검했다.

“드디어 건물 안에서 자겠구나.”

“좋냐?”

“넌 안 좋냐?”

“좋지.”

패배는 생각하지도 않는 병사들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승리해왔기에 앞으로도 계속 승리하리라 믿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를 전쟁이었지만 애써 현실을 외면했다.

“전투 준비!”

시간이 되자 조장들이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준비시켰다. 만반의 준비가 끝난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시작하라!”

신페이를 필두로 이에야스와 가케토라의 군대가 아그라를 향해 다가갔다.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간 것은 포병이었다.

“쏴!”

명령과 함께 대포가 불을 뿜었다. 무시무시한 불꽃 속에 토해진 포탄은 그대로 날아가 아그라에 떨어졌다. 건물 하나에 틀어박히며 벽에 금이 갔다.

“계속 쏴!”

포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차례 포격을 하지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이상한데?”

아그라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보병들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정찰병!”

결국 정찰병이 앞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그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쇠붙이나 돌을 든 사람들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후퇴!”

신국 보병은 질서정연하게 뒤로 움직였다. 동시에 포병이 포격을 다시 시작했고 신기전이 쏘아졌다.

수많은 이들이 쓰러졌다. 쓰러진 이들은 뒤에서 달려드는 이들에게 짓밟혔다.

“이게 무슨?”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신페이는 방패벽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에야스와 가케토라도 같은 판단을 내리고는 벽을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난 무리가 방패를 계속 두들겼다. 사람들이 계속 밀다보니 방패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군중과 방패벽 사이에 낀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압사했다. 그러다 뒤에서 계속 미는 힘에 의해 무게가 고스란히 벽에 전달되었다.

“못 버팁니다!”

“일보 후퇴! 척탄병!”

위기였다. 벽이 무너진다면 난전이었다.

척탄병들은 있는 힘껏 폭탄을 던졌다. 적의 후방에서 폭탄이 터지자 많은 이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압박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건 마치.......’

전황을 살피던 신페이의 뇌리에 한 가지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바로 아사신이었다.

‘설마?’

신페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화약을 쓴다! 다 퍼부어! 놈들에게 밀리고 어찌 폐하를 뵙겠나! 놈들은 폐하를 암습한 놈들과 한 패다!”

신페이의 외침은 중간 지휘관을 통해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밀리던 병사들이 이를 악물고 전투에 임했다.

그런다고 전황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노 덕분에 힘이 조금 더 났다. 아주 작은 차이. 그 차이가 압도적인 승리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투척!”

척탄병들은 있는 대로 폭탄을 던졌다. 포병들은 신기전을 재빨리 장전에 쏴댔다. 그러면서 뒤로 조금씩 후퇴했다. 그러면 보병들이 조금씩 후퇴하면 압박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아닌가?’

아그라에서 뛰쳐나온 이들은 미련할 정도로 달려들기만 했다. 이성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많은 이들이 죽고 쓰러지자 군중의 압박도 계속 줄어들었다.

학살이 시작되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이에야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뭔가 사악한 방법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병사도 아닌 자들이 이렇게 싸우다니.”

“알아봅시다.”

한 차례 공격을 했던 아그라 내부에는 남아있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상태.

“모두 뭔가에 취해 있습니다.”

마약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정도였다.

기이한 일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승리는 승리. 뒷정리가 시작되었다. 병사들은 구덩이를 크게 파고 시체를 던져 넣었다.

마약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이들은 한 곳에 가두었다. 그리고 약탈이 시작되었으나 털만한 것들은 책과 종이 정도였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악바르가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신국의 병사들은 그래도 책과 종이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열심히 챙겼다. 책과 종이도 꽤 비싸게 쳐주는 전리품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신페이는 이에야스와 가케토라와 만나 의견을 나눴다.

“마치 버리고 간 것 같군요.”

“항복했으면 됐을 텐데.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철저히 조사해보죠.”

훗날 마약을 이용한 집단 세뇌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자 약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약재상들은 특별한 자격을 갖추지 않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자격이 없는 자가 약재를 취급할 경우에는 반란죄로 다스렸다.

악바르는 아그라가 함락 당했다는 소식에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그렇게 돈을 썼는데.’

함락은 기정사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피해를 입히느냐는 것.

마약을 대량으로 구입해 사람들을 강제로 중독자로 만들었다. 이후 마약을 이용해 세뇌했다.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다. 10만이나 되는 이들을 집단으로 중독자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악바르는 기어코 이를 해냈다. 자신에게 반항하는 이들을 모두 세뇌 시켜서 아그라에 남겨놓은 것이었다. 아사신들이 쓰던 방법을 이용했다면 좀 더 제대로 된 군대가 만들어졌겠지만 짧은 시간에 하려니 방법이 거칠기 짝이 없어 부작용이 심했다.

‘또 다시 할 순 없다.’

다시 한 번 군대에 같은 방법을 써서 제대로 해볼까 싶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시간이 있어도 장기간 대규모의 군대에게 마약을 지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놈들과 계속 싸울 순 없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원래라면 페르시아와 손을 잡고 힘을 모아 상대했을 터. 하지만 악바르가 오스만 제국과 손을 잡으며 페르시아와의 관계는 소원해졋다.

더구나 이제는 페르시아와 신국이 손을 잡고 교역을 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으로 그냥 가봐야.’

잠시 오스만 제국에 가서 후일을 도모할까 생각했으나 군대를 모두 놔두고 움직이지 않는 이상 어림없었다.

‘끝인가?’

악바르는 절망에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허리에서 우드득 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글도 못 쓰고 계속 누워있었습니다.

이제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프네요.

여러분, 의자에서 일어날 때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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