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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86화 (18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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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신국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총 20만에 달하는 대군의 위용에 주변의 모든 주민들이 숨을 죽였다.

살던 곳이 다른 이들이 많이 뒤섞여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들은 모두 조선어를 빠르게 습득하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은 조선어. 신국의 황제가 쓰는 말도 조선어. 그렇기에 서로 말을 여럿 배워 여러 지역 사람과 소통하는 것보다 조선어 하나만 배워 소통하는 것이 더 빨랐다.

무엇보다 함께 싸우는 전우라는 사실이 소통에 더욱 도움을 주었다.

함께 움직이고 일을 하고 설명을 하며 이해하고 그리고 같이 밥을 먹었다.

원정군으로 있는 동안 생사를 같이할 전우라는 사실이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한편, 악바르의 군대는 계속해서 방어를 굳혔다.

신드.

인더스강 하류에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남으로는 아라비아해와 접해 있다. 상업이 발전하였으며 악바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악바르는 고향인 신드로 후퇴했다. 충성스러운 군대를 신드에 주둔시킨 뒤 방어를 굳혔다.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방어 준비는 어떤가?”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적은?”

“진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군.”

신드의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악바르에게 대항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16만의 군대에 신드에서 추가로 징병한 5만의 병력을 합쳐 21만이었다.

“적의 수는?”

“약 20만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부족하군.”

악바르는 병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10만은 더 있어야 할 텐데.’

하지만 병력이란 것이 어디서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나 징병하고 무기만 쥐어준 뒤 병력이라 부른다면 신드의 모든 주민들을 병력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병력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오히려 사기를 떨어트리고 전투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병력을 더 구해야 한다.”

악바르는 라자스탄과 펀잡의 징병 상황에 대해 물었다.

“각각 4만과 3만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

계산에 의하면 총 28만. 30만에는 못 미치는 수치지만 악바르는 더 이상 병력을 끌어모으긴 어려웠다.

“보급 상황은?”

“모두 모인다면 1년 이상 버틸 순 없습니다.”

“놈들이 빨리 오길 기다려야겠군.”

군대는 소비하는 집단이다. 무기 외에도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줘야 한다. 하지만 악바르가 아그라를 버리며 정복했던 많은 지역의 지배력을 잃었다. 이 때문에 보급 상황이 나빠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군대를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배력이 점차 떨어지니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그러다보니 대군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결국 악바르는 병력을 더 모으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잘못해서 병력만 많이 늘렸다가 생산 인구가 줄어들면 오히려 더 빠르게 붕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벽을 더 쌓는다. 새로 징집한 병력의 훈련도 강화하라!”

결국 방어를 더 단단히 하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 악바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한 번만 이기면 돼! 한 번만!’

한 번만 이긴다면 신국을 물리치고 잃었던 지역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악바르였다.

신국의 군대는 계속 이동하는 동안 신유성은 결국 연구에 들어갔다.

‘전기. 전기. 전기.’

작은 연구실을 만들어 장인들에게 이것저것 만들게 했다. 신유성은 주의해서 여러 가지 부품들을 장인들에게 주문했다. 장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뭘 만드는지 조차 몰랐다.

황제의 연구라서 기밀이 필요하다고 하니 친위대가 알아서 보안에 신경 써주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전기에 대한 기록은 여기저기 있었다.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전기라는 현상에 주목한 학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연구 시설이 발전하지 못해 제대로 된 연구는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기록은 거의 쓸모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기억에 의지해 전기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고 했다.

‘이건가?’

신유성은 여러 개의 금속판을 두고 고민했다. 기억 속에서는 금속판에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을 어딘가에 꽂으면 간단하게 만든 모터가 회전하게 되어 있었다.

모터라고 해도 힘도 별로 없는 그저 움직임만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어설픈 것이었다. 구리선을 잔뜩 감아 만든 코일은 구리로 만든 고정대 위에 놓였다. 고정대 밑에는 자석이 놓여 있었고 고정대는 구리전선으로 연결되었다. 구리전선의 양 끝은 여러 가지 판에 연결되길 반복했다.

‘이게 맞을 텐데.’

원리를 간신히 기억해냈다. 언어에는 재능이 있었으나 과학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신유성이었다. 그래서 과학에 대한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미국에서 공부한 탓에 선택 과목에서도 과학보다는 다른 과목을 더 많이 선택했다. 필수가 아니면 듣지 않았으며 시험 때가 아니면 공부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관심이 없었으니 제대로 기억 못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신유성은 이 사실을 아쉬워했다.

‘그때 조금만 더 공부했어도.’

전기에 대한 지식만 빠삭했어도 고생은 좀 덜 할 수 있었다. 아니, 신유성이 페구까지 와서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전기를 이용하게 되면 전화기의 연구가 가능해진다. 전화기를 쓰면 먼 곳까지 단숨에 연락이 가능해진다. 즉, 신유성의 지배력이 더 증가하는 것. 굳이 페구까지 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상황을 보고 받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전생에서 공부를 할 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으니 제대로 배우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관심이 무척 많았다. 쓸모가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신유성의 뇌는 흐릿한 기억들을 샅샅이 뒤져 결국 전기에 관련된 것들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전기를 어떻게 만들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과일에 꽂는 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해보았지만 실패. 왜 실패했는지 모른다.

지식이 없으니 설명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시도를 거듭했다. 여기 저기 꽂으면서 반응을 살폈다. 그러다 결국 소금물을 이용한 실험에 도달했다.

‘이걸 이렇게 해서 음극, 여기는 양극.’

전선 한쪽에 구리판, 다른 한 쪽에 아연판을 꽂았다. 그리고 소금물이 담긴 컵에 넣었다.

“응?”

그러자 뭔가 반응이 왔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모터가 움직였다.

“오오! 오오오오오!”

드디어 모터가 움직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자신이 만들어낸 물건을 설명할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현상을 자세히 설명할 지식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 전기가 생성되었는지 설명하려니 꽉 막혔다. 신유성은 그냥 무턱대고 실험을 한 것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하나가 걸려든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뚝딱 이런 물건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던 신유성은 간단하게 답을 찾았다.

‘난 이상해도 돼. 난 하늘이 내린 천자잖아? 그냥 꿈에 봤다고 하자. 설명은 똑똑한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지위가 깡패였다.

신유성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선보였다. 이를 보자 신하들은 모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증기기관이 이미 공장에서 사용 되고 있기 때문에 기계에 대한 것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증기를 이용하지도 않는데 회전 운동을 하는 물건을 만들어냈다.

“폐하!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도 모른다. 꿈에서 본 것을 만들어본 것뿐이다.”

그제야 친위대를 비롯한 신하들은 신유성의 최근 행동을 이해했다. 무엇인가 연구한다면서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을 주문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모두 황제가 하는 일이기에 모두 침묵했다.

“여기 그러니까. 이것은 음양의 조화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습니까?”

“자세한 건 공조에서 연구해보도록 하라.”

하나의 숙제를 내준 셈이었다. 자석에 있는 음극과 양극과 전류의 흐름을 이용해 모터를 돌린 것이었다. 간단한 원리는 파악했으나 신유성은 일부러 더 설명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신비주의가 최고지.’

신유성의 작전은 먹혀들었다.

‘과연 하늘의 뜻을 이어받으신 분!’

‘아! 이 분이 정녕 신이시구나!’

‘황제폐하 만세!’

신하들의 가슴 속에는 신유성을 향한 무한한 믿음이 자라났다.

신유성이 만든 물건은 단단히 봉인되었다.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졌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친위대 일부가 배를 타고 한양으로 출발했다.

‘그나저나 저걸 언제 연구해서 전기를 이용하고 전화기를 개발하지?’

한숨이 나왔다.

‘내가 공대생이었다면 웃으면서 뚝딱 전화기를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기다려야만 했다. 신국의 지식인들이 연구하고 이를 발전시킬 때까지.

‘언제쯤 문명의 꽃이 활짝 피려나?’

지금도 충분히 시대를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기준에서 문명의 꽃이 활짝 핀 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존재할 때였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상태에서 도달하기 힘든 먼 훗날의 일을 상상할 뿐이었다.

‘게임하고 싶다.’

오랜만에 게임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신유성은 당구대 앞에 섰다.

“자, 나와 내기 당구를 칠 사람 나와라!”

호기롭게 외쳤다. 결과는 전승. 신유성과 내기 당구를 친 이들은 이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계속 이기니 재미없어진 신유성은 당구대에 드러누워 빵을 씹었다.

‘얼른 전쟁이나 끝났으면.’

이제는 정말 황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진, 조선소.

나진은 거대한 공업지대로 변했다. 한 때 신유성이 살았던 곳으로 역사가 숨 쉬는 곳이라는 평가도 있었으나 지금은 수많은 공장이 들어선 곳이었다.

“어이! 거기 조심해!”

“마지막 작업이다 이것들아! 힘내라!”

한 조선소는 다른 조선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엄청나게 큰 조선소였다. 그리고 만들어지는 배 또한 엄청났다.

“저게 정말 뜰까?”

“뜬다.”

미구엘은 확신을 가지고 답했다. 신유성과 계약 때문에 일본에서 조선 장인이 된 미구엘은 계속해서 신유성을 위해 배를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배가 조국인 포르투갈의 함대를 마구 무찌르고 있었으나 미구엘은 죄책감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신국을 위해 공을 세웠다며 좋아할 정도.

부인을 여럿 거느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해주는 신국은 미구엘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지금 신유성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배, 전열함을 최고로 만드는 영광을 거머쥐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양 옆에 대포가 너무 많던데. 저거 쏘면 넘어갈 것 같은데.”

미구엘의 옆에선 김종수가 쫑알거리며 우려를 표했다.

“안 넘어간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이번에 만든 대포는 화력이 더 늘어났는데.”

“그것도 다 감안해서 설계했다.”

“거짓말. 저거 만들기 시작한 이후에 새로 대포를 만들었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

“다 계산해 두었다.”

미구엘은 여유를 가지고 계산했음을 피력했다. 하지만 김종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배가 뒤집어지면 그건 재앙입니다. 저게 얼마짜린지 아시죠?”

한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가 닌자 출신의 카즈마가 조용히 질문했다.

순간 미구엘은 움찔 떨었다.

“비, 비싸지.”

“그냥 비싼 정도가 아닙니다. 아주, 굉장히 비쌉니다.”

여러 가지 실험을 거친 비용을 빼더라도 전열함 건조 비용은 엄청났다. 수많은 조선 장인들을 오랫동안 고용한 것도 있지만 전열함을 만드는 데 들어간 목재가 모두 최고급이었다. 그리고 크기 때문에 들어간 목재의 양도 엄청났다.

“그렇지. 나도 알아.”

미구엘의 자신감은 쪼그라들었다.

김종수와 카즈마는 조용히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결국 미구엘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답했다.

“알았다고! 대포는 전부 예전 것으로 교체한다!”

신형 대포를 탑재하던 일을 멈추자 일하던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아, 이래서 그냥 하지 말자고 했었는데.”

“에이! 어이 김씨! 후딱 움직여!”

“대포 바꾸랍신다!”

결국 구형 대포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어졌고 전열함 완성은 조금 더 뒤로 미뤄졌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제작하기 시작한 전열함은 결국 완성되었다. 아니 완성 직전이었다.

“이걸 물에 얼른 띄워야지요!”

“아직 마무리가 남았다.”

“마무리요?”

“그래.”

배의 이름을 새기는 작업이 남았다. 하지만 배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신유성의 배이기 때문에 배의 이름을 정하는 것도 신유성이 할 일.

“빨리 폐하께 연락하도록.”

전열함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쾌속선을 통해 페구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배로 전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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