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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87화 (18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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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신드.

신국은 마침내 결전의 땅에 도착했다.

“모두 서둘러!”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마라!”

“나무! 나무 더 가져와!”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요새를 짓는 것이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장소에 자리 잡고 공병들을 이용해 빠르게 공사에 들어갔다.

“적의 수는 최소 25만으로 추정됩니다.”

정찰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적의 경계가 극심했기 때문. 하지만 숫자가 많다는 이야기에 신페이의 눈이 번뜩였다.

“저기에 25만이라고?”

“그렇습니다.”

순간 신페이의 뇌리에 한 가지 작전이 떠올랐다.

‘굳이 서두를 필요 없겠어.’

“요새를 짓고 보급에 신경 쓰도록 하라!”

‘일단 요새 완공이 먼저다.’

하고 싶은 작전이 있었으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악바르는 짜증이 났다.

“공격하지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꼼짝도 않고 있습니다. 대신 요새를 짓고 있었습니다.”

“요새라.......”

‘이것들이 설마?’

신페이가 떠올린 작전은 악바르의 뇌리에서 스쳐지나갔다. 상대의 수는 간단했다.

고사 작전.

28만이나 되는 병력을 먹여 살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언제까지고 계속 포위하고 있으면 생산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긴 무굴제국이 불리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28만이나 되는 대군이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된다. 먹일 입이 많은 만큼 식량 소모가 빨라지기 때문이었다.

결국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군이 있어도 패배하게 된다. 시간을 끄는 것도 훌륭한 전쟁 수단인 셈.

‘이대로는 불리하다.’

악바르 또한 이런 문제가 일어날 것을 알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신국은 계속 밀고 들어오는 상황. 병력을 분산시킨 상황에서는 이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병력을 한 곳에 모아 반란 조짐이 있는 지역에서 적과 싸울 수도 없었다.

아그라는 통치를 위한 곳이었을 뿐이었다. 적과 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선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아그라에 가만히 앉아 백성들이 순순히 무굴제국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길 기대하긴 어려웠다.

잘못하면 내통하는 배신자 때문에 망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미친 짓을 하면서 물러난 것이었다.

‘그들이 도와주어야 할 텐데.’

마지막 희망은 오스만 제국이었다. 미리 사신을 보내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들어줄 거야.’

원래부터 신국을 견제해주길 바랐던 오스만 제국이었다. 악바르는 오스만 제국이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도움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뭔가 해야 해.’

결국 고민 끝에 배급을 살짝 줄였다. 그리고 일단 한 번 적진을 찔러보기로 했다.

어둠이 깊어지는 시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악바르 진영에서 나왔다. 시크교의 전사들은 중대한 임무를 맡았다.

요새 건설이 되기 전에 적을 기습해 피해를 입힐 것. 특히 되도록 식량을 노리라는 주문이었다.

시크교 전사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한 밤중에 이동해 요새 근처에 몸을 숨겼다. 신국의 병사들이 다가오지 않는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몸을 숨긴 상태로 적진을 관찰했다.

식량이 있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파악해야 피해를 입힐 수 있으니까. 아울러 경계의 허실을 파악할 필요도 있었다.

‘상당히 빠른 공사 속도.’

신국의 공병들이 움직이며 공사하는 모습은 매우 능숙해보였다.

‘이 정도 속도면 한 달 정도면 끝나겠군.’

무시무시한 공병들의 공사 속도에 시크교 전사들은 긴장했다.

“오늘 밤,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신국의 경계를 피해 다시 모인 시크교 전사들은 전의를 다졌다. 희생이 따르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저지해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시크교 전사들은 어둠속에서 움직였다. 은밀한 움직임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신국의 병사들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부턴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방비인 것도 아니었다. 공사장 근처에 말뚝을 박고 기다란 끈에 종을 달아놓은 것이었다.

지나가다 건드리면 종소리가 울리게 되어 있었다.

‘허점이 없는 건 아니지.’

시크교 전사들은 먼 곳에 있는 종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이 종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돌을 맞추자 흔들리며 종소리가 났다. 그러자 긴장한 경계병들이 이를 살피기 위해 움직였다.

“뭐야?”

“몰라. 작은 짐승 아닐까?”

“그렇지? 이상 없으면 돌아가자.”

횃불로 비춘 주변에 아무 것도 없으니 결국 가볍게 생각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경계병들이 움직인 사이 시크교 전사들은 대담하게 줄을 넘어섰다. 그리고 안으로 향했다.

‘조금만 더 가면!’

식량이 있는 곳이 나온다. 허나, 목적은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쥐새끼들이 숨어 들어왔군.”

시크교 전사들은 어느새 포위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신국의 경계는 허술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종은 눈속임에 가까웠다. 아사신의 등장으로 인해 암살자에 대한 경계가 심해진 신국 원정군은 밤만 되면 특수부대 대원들이 경계를 섰다.

이들은 요인은 물론 주요 물자를 지키는 일에 전념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크교 전사들이 몰래 숨어 들어온 것을 잡아낸 것이었다.

시크교 전사들은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움직였다. 품에서 폭약을 꺼내 불을 붙이려 했다. 허나, 뭔가 하려는 순간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와 고슴도치가 되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경계 늦추지 마라.”

특수부대는 다시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가 경계에 들어갔다. 시크교 전사들의 시체는 다른 병사들이 치웠다.

몇 번이고 야간 기습을 해도 실패하자 악바르는 초조해졌다.

‘이대로 완성하게 놔두면 안 된다.’

다음 수순은 뻔했다. 요새가 완성되면 신국은 막대한 보급 물자를 바탕으로 장기간 포위에 들어갈 터.

요새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큰 피해를 입히기 어려웠다.

결국 악바르는 결전에 나서기로 했다.

방어시설을 많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쓸모가 없어졌다. 신국이 덤벼들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악바르는 명령을 내렸다.

“나가서 싸운다.”

“폐하!”

“가만히 앉아서 적의 술수에 놀아날 순 없다. 적의 수가 적으니 일단 숫자로 밀어붙인다.”

다음 날, 악바르는 군대 앞에 섰다.

“우리는 강대한 적을 맞이했다!”

군대 앞에 섰다고 하지만 악바르의 목소리가 전군에 도달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었다. 장군들과 중요 지휘관들만 앞에 서서 연설을 들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회다! 단 한 번의 전투로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

악바르의 흥분이 장군들에게 전해졌다. 지금은 형편없이 밀리고 아그라에서는 미친 짓을 했다고 하지만 악바르는 분명 유능한 제왕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도 북부를 빠른 시간 안에 점령할 순 없었다.

“한 번의 전투! 이 번 한 번만 신국에 패배를 안겨준다면 우린 빼앗긴 모든 것들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이대로 적의 발바닥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싶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싸우자! 나 또한 그대들과 생사를 함께 할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

장군과 지휘관들이 함성을 내지르자 뒤쪽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도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함성이 전염되듯 전군을 휩쓸자 병사들은 거대한 존재의 일부가 된 일체감을 맛보았다.

무굴제국군은 보금자리에서 벗어나 진군을 시작했다.

“적이 나왔습니다!”

“역시 바보는 아니군.”

신페이는 미소 지었다. 요새를 완성해 적을 포위하고 괴롭히다 굶어죽게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긴 했다. 그것이 아군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굴제국군이 기어 나온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장시간 포위하는 것도 좋지만 적에게 패배를 안겨주며 시간을 아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의 수는?”

“약 28만!”

신국보다는 훨씬 많은 상황이었다.

“긴 전투가 되겠군. 요새 건설을 중단하고 미완성 요새를 중심으로 적을 맞이하도록 한다.”

명령이 떨어졌다. 요새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버릴 필요도 없었다. 적의 수가 더 많으니 미완성의 요새를 이용해 수적 열세를 만회하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신페이는 병력을 준비 시키며 요새 중앙에 만들어진 탑에 올랐다.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든 탑으로 주변을 살피며 명령을 내리기 편하게 만든 시설물이었다.

신페이는 탑에 올라 단 한 마디만 던졌다.

“폐하께 승리를!”

목소리를 들은 탑 주변의 병사들은 이를 듣고 외쳤다.

“폐하께 승리를!”

전염병처럼 번지는 구호는 요새 전역을 뒤흔들었다. 한 차례 외침이 쓸고 지나가자 병사들은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전투의 승리였다.

진격을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대군이 진지를 나서 도열한 뒤 줄을 맞춰 전진하는 일이었다. 어느 한쪽만 너무 빠르게 움직이면 돌출된 부분만 먼저 얻어맞을 수 있으니까.

수적 우세를 이용하기 위해 넓게 퍼져 적을 압박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굴제국군은 적이 미완성의 요새를 중심으로 웅크리자 희망을 품었다.

‘적은 겁먹었다!’

하지만 상황을 보고 받은 악바르는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긴 전투가 되겠어.’

지키는 쪽은 무굴제국군인데 거꾸로 쳐들어온 적을 공성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모두 식량 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적이 겁먹었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진실을 알면서도 악바르는 허세를 부렸다. 그래야만 했다. 군주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아래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갈 수가 없다.

못 이길 것 같은 상황에서도 병사들에게는 이길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군주고 지휘관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열악한 상황에서는 사기가 떨어져 싸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전쟁이란 언제나 유리한 상황에서만 싸울 순 없는 법.

그렇기에 거짓말이든 신앙이든 무엇인가 이용해 정신 무장을 철저히 해야만 했다.

무굴제국군과 신국군. 양쪽 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기를 올리며 곧 시작될 대전에 준비했다.

그러는 사이, 양군의 간격은 점차 좁혀졌다.

“쏴!”

선제공격을 날린 것은 신국군이었다. 미완성의 요새라고 하지만 대포를 이미 설치했다. 대포들이 화염을 내뿜으며 포탄을 날려댔다. 포탄은 사정없이 무굴제국군 진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굴제국군이 멈추거나 하지 않았다.

“돌격!”

적의 원거리 공격이 닿는 곳이니 그대로 돌격했다. 거리를 빨리 좁히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포병이 서서히 전진했다. 요새의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정거리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때 신기전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달려!”

화살비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했다. 등을 돌리려는 자를 베어버린 무굴제국의 독전관은 독하게 외쳤다.

두려움에 도망치려던 병사들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어디를 가도 죽는다면 적을 향해 돌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든 병사들은 요새의 벽을 때렸다. 그리고는 기어오르려 했다. 요새의 벽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어른이 등을 밟고 선다면 올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허나, 올라서는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그리고 벽을 넘은 뒤 비명을 지른 이들이 많았다.

요새는 이중벽이었다. 그리고 벽 사이에는 나무를 날카롭게 깎아 박아놓은 함정이 빼곡했다.

이를 본 무굴제국군은 결국 미완성인 공간을 찾아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중벽이 있는 곳은 비었다. 그리고 이곳을 향해 전진했던 무굴제국 포병이 포격을 날려댔다.

나무로 된 성벽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죽여!”

이중벽이 완성되지 않은 곳에는 방패벽이 존재했다. 그리고 기다란 창을 가진 병사들이 방패틈으로 다가오는 적을 마구 찔러댔다.

무굴제국군의 피해가 속출했다. 그러는 사이 무굴제국 포병은 요새의 성벽을 대부분 파괴했다.

“퇴각!”

요새의 벽을 무너뜨리자 악바르는 일단 퇴각 명령을 내렸다.

전투가 끝나고 피해를 집계하자 악바르는 신음을 흘렸다. 딱 하루 싸웠는데 1만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았다. 요새의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다. 이제는 무너진 부분을 쉽게 건너갈 방법만 마련하면 될 뿐. 그렇게 되면 신국군의 방어도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자루에 흙을 담으라.”

악바르는 명령을 내리고는 이를 갈았다.

‘내일 두고 보자.’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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