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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88화 (18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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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대량의 흙자루를 만드는 무굴제국군의 움직임은 신국의 정찰병에게 포착되었다.

“흙자루?”

“그렇습니다.”

‘함정으로 파놓은 곳을 넘으려고 하는군.’

1만이나 죽였다고 하지만 무굴제국군의 숫자는 아직도 신국군을 뛰어넘는 수준. 난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숫자에서 밀리게 된다.

‘좋은 생각이야.’

신페이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우린 같은 방식으로 다시 벽을 만든다.”

좋은 건 배워야 했다. 그게 적이라 하더라도.

신페이의 명령으로 식량을 담았던 대량의 자루에 흙이 채워졌다. 그리고 무너진 요새의 벽이 있던 자리에 돌과 함께 흙자루가 쌓였다.

땅을 파낸 흙을 자루에 채워 쌓아올리니 금방 벽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무굴제국군에도 알려졌지만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도 벽을 만들고 포병을 전진시킨다.”

악바르의 명령에 흙자루를 든 병사들이 달려가 흙자루를 던졌다. 신국군의 요새를 포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까지 가서 벽을 쌓는 것이었다.

포탄이 날아왔지만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자루만 던져놓고 오면 다시 돌아와도 되기 때문이었다.

자루를 계속 던지자 결국 흙자루로 만든 벽이 생겼다. 벽에 포탄이 떨어졌지만 포탄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포탄은 그대로 자루를 뚫고 흙에 파묻혔으니까.

형편없는 벽이었지만 포탄을 막아주는 효과는 확실했다.

이후 무굴제국군의 포병들이 여유롭게 전진했다. 형편없는 벽 사이로 만든 공간에 대포를 세우고 포격전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지루한 소모전이 이어졌다. 벽이 무너지면 다시 흙자루를 던져 쌓고 계속 포격을 날려서 무너뜨리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무굴제국군은 포격만 날리지 않았다. 신국이 요새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계속 방해했다.

포위한 상태로 싸우게 되니 신국군도 필요한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때문에 공사는 힘들어 흙만 퍼서 나를 뿐이었다.

“화약을 아껴라.”

포격전이 시작된 이후 신페이는 한 가지 걱정이 늘었다. 화약 소모량이 늘어난 것에 비해 적의 피해가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신국군의 피해도 미미했다. 무굴제국군도 상당한 양의 화약을 소모했다.

“얼마나 줄일까요?”

“조금씩 줄이다가 아예 없는 척해라.”

“네?”

“없는 척 하라고. 우리가 화약을 다 쓴 거라고 착각한다면 한 번 더 덤빌 거다. 그 때 한 방 먹여야지.”

전투에서 속임수를 쓰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포격이 한창 진행되던 도중 신국의 포격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멎자 무굴제국군은 의아해졌다.

“무슨 일이지?”

“적의 포격이 멈췄습니다.”

“뭐?”

“아마도 화약이 다 떨어진 모양입니다.”

원정을 나온 군대니 화약이 다 떨어질 순 있었다. 무엇보다 전투가 시작되고 상당한 양의 화약을 사용했으니 다 떨어졌을 가능성은 있었다.

허나, 악바르는 신중한 남자였다.

“일부 병력만 보내본다. 가까이 다가가도 공격이 없다면 공격을 하고 아니면 돌아온다.”

함정일 가능성이 있으니 전군을 공격에 밀어 넣는 짓은 할 수 없었다. 악바르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것은 대포가 아닌 신기전이었다. 포탄은 날아와도 사실 보병에 큰 피해를 입히기 힘들었다. 하지만 신기전이 한 번 날아오면 수천 명이 쓰러졌다.

많은 화차에서 쏴대는 신기전으로 일정 공간에 화살비가 내리며 병력을 쓰러트렸다. 때문에 밀집된 상태로 돌격하는 상황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병력이 많다고 해도 무의미하게 낭비할 순 없었다.

무굴제국군은 일부만이 빠르게 달려왔다. 일부라고 해도 2만에 달하는 병력이었다.

화살이 날아오긴 했지만 포격은 없었다. 신기전도 쏘지 않았다.

2만의 무굴제국군은 결국 흙벽에 도달했다. 그리고 흙벽 위에 선 방패병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됐다! 전군 돌격!”

먼저 돌격한 선봉이 그대로 잘 싸우는 모습을 확인한 악바르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명령을 내렸다.

‘화약이 다 떨어졌을 때 밀어버려야 해!’

하지만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과 함께 뒤집어졌다.

“하하하! 걸렸구나! 모두 쏴라!”

탑에 올라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피던 신페이는 신이 났다. 걸려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걸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무굴제국군 상당수가 신국 진영에 가까이 접근하자 신기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태양빛을 가릴 기세로 날아오른 수많은 화살의 모습은 아군에게는 기대감을, 적군에게는 공포를 안겨주는 풍경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속았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포격도 시작됐다.

“척탄병 앞으로!”

척탄도 시작되었다. 폭탄이 던져지자 흙으로 쌓은 벽, 아니 이제는 작은 언덕을 기어오르던 무굴제국군은 그대로 휩쓸렸다.

반면, 무굴제국군의 대포는 침묵했다. 아군이 있는 곳에 포를 쏠 수는 없으니까.

“젠장!”

악바르는 이를 갈았다. 병력 피해가 늘어나고 있었다.

“후퇴!”

아주 잠깐 고민했으나 결국 후퇴를 명했다. 적의 방어가 굳건해 금방 뚫릴 것 같지 않아서였다. 이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병력 수만 믿고 밀어붙였다가는 결국 척탄병에 의해 계속 피해만 입게 될 뿐이었으니까.

무굴제국군은 약 2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남기고 후퇴해야만 했다.

“적의 보급을 끊는다.”

이제는 더욱 확실히 해야 할 시간. 악바르는 신국의 보급대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신국의 보급 물자를 차지해 적에게 피해를 주는 한 편 아군의 보급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악바르는 5만에 달하는 병력을 뒤로 뺐다. 모두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가장 뛰어난 병력으로 확실하게 보급 물자를 강탈하기 위해서였다.

은밀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은 금방 신국군에 포착되지는 않았다.

“이봐. 이거 어때?”

“오오. 맛있습니다.”

“그치?”

싱할라족 전사와 히말라야 전사들이 담소를 나누며 마차를 몰았다. 길은 원정군이 지나가며 만든 길이었다. 포장도로는 아니지만 마차를 몰기에는 충분했다.

말린 과일을 받아먹던 히말라야 전사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 얼마나 편한 일인가?’

전쟁을 하는 와중이었으나 지금까지 보급대는 전투를 치른 적은 거의 없었다. 아주 가끔 신국에 반항심을 품은 녀석들이 덤비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끝을 맞이했다.

“적군입니다.”

산책 겸 정찰을 나갔던 히말라야 전사 하나가 불쑥 나타나 말했다.

“도적?”

“아니, 적군입니다. 수는 5만 정도.”

“어쩌지?”

적군의 수가 상당했다. 보급대의 숫자는 3천에 불과했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명백한 열세였다.

“후퇴하실 겁니까?”

“해야 하지 않을까?”

보급대의 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보급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해져야 했다.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원정군 전체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한 번 정도는 막힐 수 있다지만 계속해서 막히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일단 돌아가서 지원군을.......’

보급대 대장의 생각은 단순했다. 적이 있다면 적을 해치우면 된다. 대장은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자 상당수 보급대 병사들이 뒤에 남겠다고 자청했다.

“뒤에 남아서 적의 추격을 막도록 하죠.”

“그럼 부탁한다.”

총 2천명의 병력이 뒤에 남게 되었다. 보급대 대장은 보급품을 실은 마차들과 함께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대장이 떠난 것을 보자 싱할라족 전사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드디어 싸울 때가 됐네.”

“그러게 빚을 갚을 순간이 왔다.”

“살생은 나쁜 짓이지만 저 놈들은 더 나빠.”

싱할라족 전사들 뒤에는 히말라야 전사들이 뒤따랐다.

“우리도 있습니다.”

“같이 가죠.”

히말라야의 각 부족에서 온 전사들은 천천히 걸었다. 전투를 하기도 전에 체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더구나 보급대가 돌아간 시점에서 지킬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냥의 시작이다. 내기할까?”

히말라야 전사들은 모두 불교 신자는 아니었다. 구르카족은 힌두교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 신자들과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싱할라족도 신국을 돕기 위해 온 처지라 힌두교도를 만났다고 칼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지며 경쟁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럴까?”

패가 갈라졌다. 싱할라족을 비롯한 불교를 믿는 이들과 구르카족으로. 보급대에는 구르카족이 상당수 배치되어있었기 때문에 양측의 숫자는 비슷했다.

“그럼 누가 더 많이 해치우는지 해보자.”

이후 두 패가 갈라졌다.

악바르가 보낸 정예병들은 상당수가 라지푸트족이었다. 전투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며 악바르의 정복에 큰 공을 세운 부족이기도 했다. 이들의 전투력은 일반 병사들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적을 잡을 수 없습니다.”

“함정을 파.”

매복을 하고 있는데 기습을 당하고 있었다. 매복이 발각된 것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오히려 전투를 걸어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적군을 잡을 수 없었다.

몰래 다가와 한두 명씩 목을 따고 도망갔다. 잡으려고 쫓아가면 병사들이 돌아오질 못했다.

거꾸로 적이 유인 작전을 펼친다고 생각한 무굴제국군은 함정을 파기로 했다.

“함정이네.”

“저런 거에 당하면 부끄럽지.”

구르카족 전사들은 숨어서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공을 세우면 얼마지?”

“저 놈들 다 잡으면 용병으로 활동하는 것보다 더 벌 걸? 중요도에 따라 폐하께서 돈을 더 주기도 하신데.”

“오오. 그럼 다 잡아야겠다.”

“그치. 양보할 수 없지.”

히말라야는 굉장히 척박한 땅이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가난했다. 나오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 지리적 이점으로 교역을 하며 한 몫 잡는 것도 지배계층의 이야기.

밑바닥 인생은 가난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게 된다.

가난으로 인해 독해진 이들은 신국의 지배를 반겼다. 용병이 되면 가족을 풍족하게 먹여 살릴 수 있었으니까. 용병 일이란 것도 상행 호위를 하다가 덤비는 도적들을 목을 따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적어도 구르카 용병들에겐 쉬웠다.

“영주는 힘들어도 농사 지을 땅을 살 수 있을 거야.”

“산 밑에 땅을 살 수도 있을 걸?”

“그거 좋네!”

거주 이전의 자유. 돈만 있으면 살고 싶은데 가서 살면 된다. 구르카족 전사들은 크게 돈을 벌어 살기 좋은 땅으로 이주할 꿈에 사로잡혔다.

“다 잡는다.”

구르카족 용병들은 악귀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한편, 싱할라족 전사들은 조금 설렁설렁 싸우고 있었다. 신국을 돕기 위해서 왔기 때문이었다. 동기가 부족하다보니 전투 의욕이 살짝 떨어졌다. 그런데 숲 여기저기서 괴성과 비명이 들려왔다.

“놈들이 한바탕 하나봅니다.”

“이거 이러다 지겠는데?”

싱할라족 전사들의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질 수 없다. 지면 안 된다.”

“이겨야죠.”

싱할라족 전사들의 표정이 살벌해졌다. 이후 적을 만나는 순간 도륙을 해버렸다.

신국의 강철로 만들어진 검은 무굴제국군의 검을 깨버리기도 했다.

“으아아아아!”

라지푸트족은 이를 악물고 대항했다. 하지만 체력과 신체적인 능력은 싱할라족이 좀 더 뛰어났다. 독기가 엄청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악했다.

절대 포위되는 일이 없었다. 확실하게 치고 빠지며 뒤쫓아 오면 쫓아온 이들부터 죽이고 다시 도망쳤다.

무굴제국군이 펼친 함정 따윈 소용없었다.

싸움이라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두 부족의 전사들은 숲에서 인간을 사냥했다.

결국 무굴제국군 정예병들은 상당수 병력을 잃고 후퇴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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