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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89화 (18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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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무굴제국군의 보급로 기습은 실패로 끝났다. 싱할라족과 구르카족 전사들이 날뛰니 매복을 할 틈이 없었다.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나중에는 돌아갔던 보급대의 보고로 추가 병력이 뒤를 쫓기 시작했다. 결국 기습 나온 무굴제국군은 돌아가야 했고 보급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악바르가 지휘하는 무굴제국군과 대치한 신국군의 화약고는 다시 꽉 채워졌다.

상황이 이쯤 되니 악바르는 초조해졌다.

‘빌어먹을! 어떻게 해야!’

미칠 것 같았다. 절망의 늪으로 한걸음씩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무굴제국군의 화약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화약을 만들 기술은 있어도 재료를 구할 여유가 없기에 생산은 중단된 상태였다.

‘믿을 건 오스만 제국뿐인가?’

무굴제국군은 대포 사용을 중지하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오스만 제국의 도움이 오길 기다리면서.......

오스만 제국에서는 도움을 보내기 위해 해군을 움직였다. 육로는 페르시아가 막고 있기 때문에 지나갈 수 없었다. 다른 쪽은 신국의 영역이었으니 당연히 갈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해로뿐.

홍해에서 출발한 오스만 제국의 선박들은 아라비아해를 거쳐 신드로 나아가고 있었다. 쉴레이만 1세가 죽었지만 신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후계자인 셀림 2세도 공감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쉴레이만 1세의 유지를 받든 수상이 공감한 것이지만.

셀림 2세는 군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약했다. 때문에 수상이 이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했으며 셀림 2세는 수상의 의견을 따르는 수준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세심한 성격의 셀림 2세가 전쟁 문제에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그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쉴레이만 1세의 죽음으로 오스만 제국은 엄청나게 바빠졌다. 셀림 2세가 새로운 권력자가 되었으니 이에 맞추어 권력 지형에 변화가 생긴 것.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무굴제국에 대한 지원은 잊지 않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선박들은 화약과 각종 보급품을 잔뜩 싣고 있었다. 이것이 도착한다면 악바르는 다시금 시간 적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다로 나선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되고 말았다.

“오스만 제국 선박 발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적의 수는?”

“20척입니다!”

“중과부적이군.”

이순신을 비롯한 순시조는 달랑 2척이었다. 그 중 한 척은 엄청나게 빠른 연락선이었다. 대신 전투 능력은 거의 없는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하긴 우린 저들의 발목을 잡는다. 연락선을 바로 보내!”

“알겠습니다!”

이순신의 결정은 자살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1척으로 20척을 향해 싸움을 거는 것이었다. 20척이 아무리 완전 무장한 군선이 아니라고 해도 위험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이순신을 따르는 함선의 해병들은 이견을 달지 않았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한 배에 타면 그렇게 된다.

해적이라면 선상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으나 해군은 그럴 수 없었다. 만약 해군이 선상 반란을 일으키면 전원 모반죄로 참수되고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노비가 된다.

선원 전원이 뜻을 모아 함장을 죽이고 사고가 났었다고 증언한다면 심증만 남게 되지 물증이 없으니 처벌을 피할 순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실수해 사실을 알리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부하들은 이순신의 능력을 믿었다.

“이것들아 정신 바짝 차려라!”

갑판장의 외침에 해병들의 움직임은 더욱 부지런해졌다.

“저건 뭐야?”

멀리서 배 두 척이 다가오는 것을 본 오스만 제국 선단은 긴장했다.

“신국의 배입니다!”

“신국? 다른 놈들은?”

“지금 한 척이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순시 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지나간다!”

전투를 할 시간 따윈 없었다. 2척 중 한 척이 돌아갔다면 아군을 부르기 위해 움직였다는 소리. 선단은 배를 나중에 잃는 한이 있더라도 선적한 화물을 무굴제국에 건네야만 했다.

전투를 하게 되면 1척 따윈 당연히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로 인해 항속을 잃게 된다. 더구나 해전은 좁은 공간에서 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넓은 바다를 두고 빙글빙글 돌기 때문에 잘못하면 시간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최선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냥 지나치는 편이 더 나았다.

“갤리온입니다!”

배의 종류를 확인하자 신음을 선단 책임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우린 무장상선인데.’

그것도 갤리선이었다.

“바람은? 바람은 어떤가?”

바람은 상당히 강했다. 최악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갤리선이 속도에서 불리할 수 있었다. 바람이 많은 상황에서 순풍을 받으면 갤리온의 속도는 무시할 수 없다. 노를 젓는 갤리선이라고 해도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

“1척 뒤에 남기고 간다!”

지휘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희생을 강요했다. 1척이 뒤에 남으면 쉬운 먹이를 잡기 위해 뒤에 남게 될 거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놈들이 1척을 따로 빼냅니다!”

멀리 1척이 따로 떨어져 나오는 움직임이 파악되었다. 명백히 1척 줄 테니까 먹고 떨어지라는 의미로 보였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1:1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였다.

“1척이 빠졌으면 적의 전력이 1척만큼 약해진 거다. 나머지를 따라 간다. 계획은 그대로다.”

19척을 향한 돌진은 계속되었다.

오스만 제국 선단은 이러한 움직임에 짜증을 냈다.

“전투 준비!”

신국의 함선이 가까이 오니 결국 전투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스쳐지나가더라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니까.

긴장된 시간이 이어졌다. 성능 좋은 갤리온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오스만 제국 갤리선들은 노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사용해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해선 힘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포격 준비!”

오스만 제국 선단이 향하는 방향을 12시라고 친다면 이순신의 배는 약 2시 방향에서 비스듬히 다가오고 있었다.

‘놈은 분명 충돌은 피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선수를 틀며 비껴갈 때 선단에서 포를 한방씩 먹인다면 침몰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선단 지휘관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이순신은 충돌을 피하긴 했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선회하라!”

한참 스쳐지나가기도 전에 이순신의 갤리온은 정지하더니 선회를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 선단의 앞을 가로지르게 되었다.

“쏴!”

선두에 선 배를 향해 정확히 포격을 날렸다. 맨 앞에서 달리던 배는 포격에 잠시 주춤했지만 한 방에 침몰하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이순신의 배는 11시 방향으로 빠져나가며 오스만 제국 선단과 거리를 벌렸다.

이후 오스만 제국 선단은 이순신의 갤리온을 스쳐 지나가며 포격을 날렸지만 도망치는 갤리온을 맞추지는 못했다.

“전속 전진!”

이번에는 오스만 제국의 꽁무니에 붙어서 따라가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 선단은 부지런히 도망치기 위해 노를 사용했다.

그러나 바람을 탄 갤리온을 뿌리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이순신의 갤리온은 선단 후미의 배를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며 포격을 먹여주었다. 그리고는 선회하며 속도가 떨어지면 다시 방향을 바꿔 비스듬히 후미를 스쳐지나가며 포격했다.

지그재그로 후미만 철저히 노리며 따라가는 것이었다.

배의 속도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절대 쓸 수 없는 전술이었다.

‘역시 계산을 잘 해야 해.’

해상전은 과학이었다.

이순신은 철저히 포술을 비롯해 해상 전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이와 같은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오스만 제국 선단의 속도에서 배의 성능을 대충 유추해낸 뒤 지휘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순신의 계산 능력이 지휘에 빛을 발휘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 선단은 차례로 후미의 배를 떨어트렸지만 이순신은 미끼를 물지 않고 집요하게 굴었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자 어둠 속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허나 아침이 와도 오스만 제국 선단은 이순신을 뿌리칠 순 없었다.

‘이미 어디로 가는지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목적지를 아는 이상 길목에 가서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오스만 제국 선단의 속도와 방향을 알고 있으니 이를 계산해 예상되는 지점에 가서 기다린 것이었다.

결국 오스만 제국 선단은 이순신의 갤리온을 떨쳐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전투를 걸었다. 얼른 처리하고 가려는 것.

그러나, 오스만 제국 선단이 전투 대형으로 들어가자 이순신은 철저히 외곽으로만 돌며 가끔 대포를 날릴 뿐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결국 며칠 동안 이순신을 근처에 두고 이리저리 몸부림치던 오스만 제국 선단은 후지바야시 켄이 이끄는 함대와 마주쳤다. 그리고 전부 침몰 당하고 말았다.

오스만 제국 선단을 묶어두고 시간을 번 것으로 인해 이순신은 해군의 주목을 받는 기대주로 떠올랐다.

지원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악바르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했다.

‘설마 바다를 봉쇄한 것인가?’

그것 왜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이제 쓸 수 있는 방법은?’

미칠 것 같았다. 오스만 제국의 도움을 기다리며 화약을 아껴서 썼다. 그러나 4개월이 지나며 화약은 거의 바닥 났다.

지루한 포격전으로 이어지면서 화약 소모량만 늘어났던 것이었다.

확실한 순간이 아닌 이상 공격하기도 애매했다. 이미 돌격했다가 뜨거운 맛을 봤기 때문이었다.

‘남은 화약으로 뚫어야하는 건가?’

악바르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항복한다면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으나 악바르는 항복을 택하지 않았다. 아그라의 참사를 일으킬 정도로 잔혹한 명령을 내렸었는데 이제 와서 살겠다고 항복할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알라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

악바르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모두 나서주어 고맙다. 너희들의 희생은 잊지 않겠다.”

악바르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몇몇 이들을 뽑았다. 이들은 화약을 지고 돌격하기로 했다. 신국군의 진영에 도달하면 막아설 방패벽을 만나면 주저하지 않고 화약에 불을 붙일 생각이었다.

자살 공격대였다.

비장한 얼굴로 악바르의 배웅을 받은 이들은 병사들 사이에 몸을 숨기고 화약통을 들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나를 믿어라! 저들의 화약은 이제 거의 다 떨어졌다!”

거짓말.

하지만 병사들은 그 말을 굳게 믿었다.

만약 악바르가 불리한 상황을 그대로 떠들었다면 그 순간 악바르는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과 직면할 수도 있었으니까.

완전히 불리한 상황에 처한 군대가 자중지란을 일으키지 말란 법은 없었다. 더구나 군대를 통솔할 국가의 수장이 별 다른 힘이 없는 상황이라면?

따를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배신을 하거나 떠나기 마련이었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돌이킬 수 없다면.......’

악바르는 자신이 행한 수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정복을 위해 죽인 사람들의 수는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신의 뜻에 따르겠다.’

신의 뜻이 자신이 쓰러질 때라고 말한다면 그리 이뤄질 것이고 아니라면 승리를 얻으리라 생각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악바르는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가자. 우리의 것을 되찾자.”

무굴제국군의 마지막 돌격이 시작되었다. 20만이 넘는 병력이 일시에 돌격하기 시작했다. 신국의 저항은 거셌다.

신기전이 계속 하늘을 날고 대포가 쏘아졌으며 척탄병들의 폭탄이 날았다. 시간이 흐르며 무굴제국군의 피해는 커졌다. 그러나 무굴제국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았다.

“으아아아악!”

“뚫린 곳을 막아!”

방패벽이 뚫렸다. 화약을 가진 자가 벽 앞에서 그대로 터트린 것이었다. 방패가 깨지며 방패를 든 병사는 죽었다. 폭발에 휩쓸려 죽거나 다친 병사들이 늘어났다.

방패벽이 허물어지자 무굴제국군은 이를 악물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악전고투가 시작되었다.

“대포는 버린다! 화약만 챙겨!”

포병들은 재빨리 화약만 챙겨 뒤로 물러났다. 아울러 적이 대포 근처에 가자 미처 회수하지 못한 화약에 불을 붙여 아예 터트렸다.

이후 척탄병들은 폭탄을 모두 소모할 때까지 던져댔다.

하지만 20만이 넘던 병력이 순식간에 사라지진 않았다.

“죽어!”

신국의 피해도 늘어났다.

그러나 전투는 결국 신국의 승리로 기울기 시작했다. 보급이 더 뛰어났던 신국군은 계속해서 작은 규모로 방패벽을 만들며 무굴제국군은 지치게 했다.

‘여기까진가?’

악바르는 패배를 직감하자 부하들을 물리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결국 악바르는 사망했고 무굴제국군은 패배했다.

길고긴 원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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