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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악바르 사망 3개월 전, 페구, 신유성의 방.
“전열함! 전열함! 전열함!”
무굴제국과 원정군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나 신유성의 정신은 온통 한 가지 물건에 쏠렸다.
‘드디어 나왔구나!’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 확인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연락선을 타고 날아온 소식은 무료해하던 신유성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이제 바다는 짐의 것이니라!”
방 밖의 친위대는 신유성의 말에 공감했다. 그리고 체통도 잃고 마구 날뛰는 신유성의 행동에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신유성의 기행은 친위대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여자를 안지 못할 때 특히 심해졌기 때문에 여자를 은근히 권하는 일은 많았다. 허나, 신유성이 여자를 더 이상 품지 않으니 그저 주변에 배치만 해놓고 손대길 기다리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신유성의 근처에는 미녀가 바글거렸다.
‘이름은 뭐로 할까?’
문 밖의 친위대가 무슨 생각을 품든 아랑곳하지 않고 신유성은 자신의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신유성함? 아니야. 이건 별로야. 황제함? 이것도 별로. 조선함은 안 돼. 차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그러면? 으으으음.’
여러 가지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뭔가 상징적인 이름이 좋은데. 신국함? 신대륙함? 아!’
이름을 떠올리다 생각은 아메리카에 닿았다. 그리고 최근 공을 세우고 죽은 남자가 떠올렸다.
“남사고함!”
딱 좋았다. 충신의 이름을 배에 붙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신유성은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전열함의 이름은 남사고함으로 하겠다! 그렇게 전하라!”
그리고는 서둘러 뭄바이에 배치할 것을 명했다.
신국과 무굴제국과의 마지막 전투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신유성은 열심히 보급에 열을 올렸다. 보급에 있어서 부정이 저질러지지 않도록 감시했다.
강한 적을 만나면 전투에 패배할 순 있다. 하지만 경계에 실패하거나 보급에 문제가 생겨 패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신유성은 보급에 매우 신경 썼다. 그렇기에 보급대에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진 싱할라족과 구르카족을 비롯한 히말라야 전사들을 배치하기도 했다.
‘이제 곧 끝나겠지. 얼른 끝나라.’
전황을 계속 보고 받는 신유성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허나, 무굴제국은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일전은 길게 이어졌다.
불안하지는 않았다.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신유성은 다음 대책을 이미 세워두었다.
“용병들의 모집은 어떻지?”
“4만 정도 모였습니다.”
“일단 아그라로 보내도록. 군대가 없으면 딴 생각하는 놈들이 생기는 법이니까.”
아유타야와 따웅우 그리고 안남과 말라카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용병을 모집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용병을 아그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점령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병력의 공백이 생기면 딴 생각하는 이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신국이 마지막 전투에 전력을 쏟았다는 인상을 준다면 독립하겠다며 반란을 일으킬 놈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바보 같은 일이지만 때론 권력이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
탐욕에 물들면 정신 못 차리는 것이다. 자기 편할 대로 상황을 해석하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러니 신유성은 미연에 문제를 방지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용병을 대거 모집했다.
타 지역의 용병들을 무장만 시켜놓으면 군대랑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이니까. 치안 유지에는 적격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동남아시아에도 총영주를 둬야겠는데.’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에야스? 아니야. 이 녀석은 총영주 거부할 거야.’
이에야스가 원하는 것은 항상 신유성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영주가 되어도 영지에 가보지도 않으니 총영주직을 안겨준다고 좋아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나가오 가케토라. 이 인간은 안 돼.’
비사문천의 환생이라고 말하는 가케토라였다. 더구나 신유성을 바라보는 눈빛은 뭔가 수상했다.
‘영지나 주면 돼. 그 이상은 안 돼.’
다케다 신겐은 공을 세운 적도 없으니 당연히 열외. 노부나가는 북방 원정군 총사령관이었다.
‘막무습 이 사람은 힘들 것 같고.’
충성심도 그렇고 능력도 보통이었다.
‘능력이 별로면 충성심이라도 좋아야해.’
이리 저리 생각하던 신유성은 결국 자신의 노비였던 차돌을 떠올렸다.
‘그래, 그 녀석이라면 잘 하겠지. 이번에 공도 좀 세웠고. 죽어도 나랑 죽을 녀석이니까.’
동남아시아 지역의 총영주를 결정한 다음에는 인도 지역의 총영주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여긴 중요해.’
굉장히 넓고 인구도 많은 지역이었다. 무엇보다 페르시아와 접해 있고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빠르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적임자는.......’
딱 한 명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백의종군 시켰더니 결국은 북방 원정군에서 카자흐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킨 이황이었다.
‘그래, 이황이면 되겠지.’
차돌과는 달리 완전히 신뢰하긴 어려운 인물이긴 했다. 하지만 이지번이 약속한 것도 있으니 믿어주는 편이 더 나았다.
‘배신하면 뭐.’
죽이면 된다. 신유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명령을 내렸다.
신페이가 같은 지역 총사령관으로 있는 이상 이황의 배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신국과 무굴제국군 전투가 끝나기 한 달 전.
뉴기니섬 개척을 위해 움직인 영주들은 결국 원주민 전사들을 몰살 시키고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사로잡았다.
개척군은 전부 죽일 수 있었으나 여자와 아이들만큼은 내버려두었다.
뉴기니섬을 비롯해 주변의 원주민이 있는 섬들은 하나둘 신국의 영토가 되었다. 개척자들은 신이 나서 여기저기 가서 자기 땅이라며 선언하기 바빴다.
이들의 선언을 신유성이 인정하면 그것으로 그들의 땅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이가 와서 빼앗으려 하면 그것은 신국에 대한 도전이니 전쟁을 통해 소유권을 놓고 싸울 뿐이었다.
허나, 뉴기니섬 근처에는 신국에 도전할 만한 세력은 하나도 없었다.
개척은 뉴기니섬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호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땅이 워낙 광대하기 때문에 몇몇 개척자들로는 어림도 없었다.
욕심 많은 이들은 호주 전체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도 했으나 신유성은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게 전부 네놈 땅이면 그에 맞는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금을 내기 전에는 땅의 판매는 불허한다.”
부당한 처사라고 입을 놀린 자는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아오지에 있는 탄광으로 보내졌다.
죄목은 황제를 능멸하려 했다는 것.
신유성이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신하들이 열을 내며 처리해버렸다. 이후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자들은 나오지 않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
일을 처리하며 신유성은 햄버거를 씹고 망고 주스를 마셨다.
한편, 신유성이 한양에 보낸 물건이 이지번에게 도착했다.
“사용설명서?”
그것은 바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간이 모터였다.
“이게 뭘까요?”
“폐하께서 보내신 것이니 일단 이대로 해봐야지.”
이지번은 아들 이산해를 비롯해 공조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용설명서에 나온 대로 물건을 설치했다. 그리고 소금물에 판을 넣는 순간이었다.
소금물에서 뭔가 반응이 일어났다. 그리고 모터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
“이게 무슨? 바람이 부나?”
실내였다. 바람 따위가 불 리가 없었다.
이윽고 현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대체 이것이 뭐란 말입니까?”
공조의 사람들은 경악했다. 증기기관을 연구했기 때문에 증기의 힘을 이용해 기계 장치를 움직이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신유성이 보낸 물건은 차원이 달랐다.
“증기? 증기가 없는데 어떻게?”
“이건가? 저건가? 뭔가?”
이해를 하고 싶은데 정보가 없으니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사용설명서를 반복해서 읽는 사람도 있었다.
“으으으으! 폐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없으니 결국 물건을 받은 이지번을 닦달했다.
“‘전기’를 이용하는 물건이라고만 했습니다.”
“전기? 뇌전의 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똑똑한 우리보고 알아내라 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음과 양의 조화라고 했는데 이것도 뭔지 영.......”
설명을 들은 공조의 사람들은 더 알 수 없었다. 이후 잠을 못 자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산해는 조용히 집으로 왔다. 집에 가니 아내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부인, 잠깐 일이 있으니 오늘 밤은 먼저 주무시오.”
심각한 표정을 한 이산해를 보며 이산해의 부인은 조용히 물러났다.
‘대체 폐하께서는 뭘 만들어내신 건가?’
경악하고 말았다.
전기라는 단어에서 뇌전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비구름도 없는데 뇌전의 힘을 이용한다고 하니 뭔가 이상하기도 했다.
‘폐하께서 거짓을 말해주셨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정말 전기라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산해는 신유성을 믿었다.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만 해도 대단한 것들이 참 많았다.
‘이건 꼭 알아내고 만다.’
이후 이산해는 아예 관직을 내려놓고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지번이 더욱 바빠졌다.
무굴제국과 신국이 싸우는 동안, 유럽의 정세도 심각하게 요동쳤다.
“뭐야?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쉴레이만 1세의 사망 소식이 드디어 퍼졌다.
셀림 2세가 등극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들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뤄지자 결국 외부로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드디어 죽었구나!”
펠리페 2세는 신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언제 어떻게 죽었다고 했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시기는 시게트바르성 전투 때로 보입니다.”
“그때? 설마 그때 죽은 거였나!”
뒤늦게 알아차린 펠리페 2세는 안타까워했다. 만약 그때 바로 알아차렸더라면! 그때 치고 들어갔다면 오스만 제국을 크게 뒤흔드는데 성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펠리페 2세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놈들을 친다!”
이것은 기회였다. 쉴레이만 1세가 죽고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상황을 노릴 생각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안정되겠지.’
권력을 단단히 할 시간을 주면 결국 또 다시 대치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펠리페 2세는 판단했다.
펠리페 2세는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량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일단 해상에서 밀어내야겠지.’
지중해에서 밀어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프레베자 해전에서 패배한 이후 꽤 어려운 시간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되갚아 줄 때였다.
신성 동맹을 다시 한 번 결성해 해전을 벌일 생각에 펠리페 2세는 잔뜩 흥분했다.
신이 난 펠리페 2세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연신 떠들었다.
“이제 드디어 오만한 이교도 놈들에게 심판을 내려 줄 수 있게 되었다!”
“놈이 죽은 것은 신의 뜻이죠!”
“그렇지!”
향신료를 듬뿍 쳐서 익힌 고기를 뜯으며 와인을 마시는 펠리페 2세는 기분이 몹시 좋았다. 정말 신이 쉴레이만 1세에게 심판을 내린 것만 같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놈들은 약해지고 있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신이 나서 떠들던 펠리페 2세는 침소에 들면서 황후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예쁘군.”
이사벨 데 발로이스.
프랑스의 국왕 앙리 2세와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 사이에서 태어난 여인은 원래는 펠리페 2세의 아들인 돈 카를로스의 아내가 될 여인이었다. 하지만 피의 메리라 불리던 영국의 메리 1세가 사망한 뒤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청혼했으나 거부하자 결국 이사벨을 아내로 삼아버린 것이었다.
“고마워요.”
“자, 이리로.”
펠리페 2세가 팔을 벌리자 그 품에 가서 조용히 안기는 이사벨이었다.
“폐하도 오늘따라 멋져 보이세요.”
“그래?”
순종적이며 다정한 이사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펠리페 2세는 이사벨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언제나 다정하게 대했다.
“그럼 오늘은 우리 둘 다 멋진 거로군.”
“폐하가 더 멋져요.”
“하하하! 정말 사랑스러워!”
뜨거운 열풍이 불어 닥쳤다. 펠리페 2세는 이사벨을 통해 새로운 후계자를 얻기 위해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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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