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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93화 (19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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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아바마마!”

아이들이 달려와 신유성의 다리에 매달렸다. 8살인 아이들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작지도 않았다. 안 본 사이에 부쩍 자린 아이들을 보니 세월이 느껴졌다.

“잘 지냈느냐?”

“네!”

모두 입을 모아 대답하는데 딱 한 명만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신혁이었다.

‘저 녀석이?’

황실의 장남. 황태자가 되어야 할 신혁은 매우 반항적인 눈빛을 하고 신유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가 불만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신혁에게만 신경 쓰기에는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이 많았다.

총 21명의 자식들을 둔 상황이라 한 번 안겨보겠다고 다가오는 녀석들로 정신없었다.

“아바마마!”

신유성은 자식들을 차례로 안아주며 생각했다.

‘농구팀을 만들면 4팀으로 나눠도 되고 야구는 2팀도 가능하네.’

모든 아이들은 신유성에게 더 안기지 못해 아쉬워했다. 귀여운 것을 넘어 정신없는 상황이었으나 곧 적응했다.

“밥 먹자.”

우선 같이 밥을 먹는 것으로 질서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식사는 바비큐였다. 황궁 뜰에 그릴을 가져다 놓고 고기를 구웠다. 바로 고기를 구워 잘라서 먹자 아이들은 신유성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고기를 먹어댔다.

‘황제라서 다행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기억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21명의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했다.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이상 엄두내기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 애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지.’

신유성에게 피임 따윈 없었다. 아내들도 피임 따윈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나라도 더 낳아야 할 판에 무슨 피임이란 말인가?

‘한 50명까지도 가능하겠어.’

힘 좀 쓴다면 50명은 거뜬했다. 좀 더 힘쓴다면 1천 명까지 자식을 늘리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후궁을 많이 들여야 하지만.

‘자식들로 부대 하나 만들 수 있겠네.’

엉뚱한 생각을 하던 신유성은 문득 걱정이 생겼다.

‘근데 자식이 많으면 물려줘야 할 것도 많을 텐데. 이 놈들이 재산 가지고 안 싸운단 보장이 없는데.’

아이일 땐 별 생각없다. 하지만 크면?

슬슬 자신의 몫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권력이 개입된다면 무지막지한 골육상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방원이 정종을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한 것도 그렇고 세조가 단종을 밀어낸 것도 그렇다.

권력을 탐하게 되면 혈육도 죽인다.

‘이 녀석들.’

이제는 꼬마인 아이들이 커서 서로 죽고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절대 과한 걱정이 아니었다.

한반도에 박혀있던 조선에서도 골육상쟁은 일어났다. 그러나 신국은 조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제국이었다.

지금까지 먹은 땅만 해도 엄청났지만 신국은 더 커질 예정이었다. 영주들이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전국의 지하자원이 황제인 신유성의 것이기 때문에 광산에서 들어오는 이익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혼인을 통해 재산에 접근하려는 이들이 안 생긴다는 법은 없었다.

아무리 인성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말 몇 마디로 그렇게 쉽게 다스려진다면 세상에 범죄가 일어날 리가 없다.

참고 참아도 마지막까지 참을 수 없어 결국 손을 뻗게 되는 것이 욕심이다.

황제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면 자연히 권력과 밀접한 생활을 하게 되니 갑자기 권력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라고 말한다고 쉽게 납득이 될 리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 놈 보게?’

걱정 속에 한숨을 내쉬던 신유성의 눈에 장남인 신혁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신혁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불만이 있나보군.’

식사가 끝나자 신유성은 신혁만 따로 불러 정자로 불렀다.

“뭔가 할 말이 있느냐?”

“없습니다.”

퉁명한 목소리. 신혁도 신유성이 황제인 것을 알기에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식사를 하면서 뚱한 눈으로 신유성과 거리를 두니 주녹정이 슬쩍 다가와 타박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어찌 해야 하더라.’

미래의 기억 속에서도 애아버지인 적은 없었다. 육아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성장 과정만 생각해보자면 잘못하면 혼나고 잘하면 칭찬 받은 정도만 기억날 뿐.

“공놀이나 하자.”

글러브를 들고 공터에서 천천히 공을 던져주었다. 신혁은 능숙하게 공을 받아냈다.

‘기회!’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자 있는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목표는 신유성의 얼굴!

허나, 애가 던진 공 따위에 얼굴을 그대로 대줄 신유성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직도 매일 같이 검술 수련을 하는 신유성은 전성기라고도 해도 좋을 정도의 검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힘이 좋구나. 그래, 계속 그렇게 던져라.”

가볍게 받아낸 신유성은 살짝 공을 던져주었다. 신혁은 속으로 혀를 차며 공을 받았다. 그리고는 다시 있는 힘껏 던졌다.

허나, 아무리 힘껏 던져도 신유성은 가볍게 글러브를 움직여 받아낼 뿐이었다.

결국 신혁은 지쳐서 공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이게 아닌가? 보통 캐치볼하면 사이가 좋아지지 않나?’

황제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육아에는 소질이 없는 신유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도 마실까?”

마실 것 얘기를 꺼낸 순간 주변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것을 보며 신혁은 혀를 찼다.

‘어라?’

뭔가 불만은 있지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충 눈치로 보아 신혁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조금씩 윤곽이 잡혔다.

‘설마 벌써 권력에 눈을 뜬 것인가?’

신유성으로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님을 깨달았다.

‘어떻게 자랐는지 확인해봐야겠어.’

확인을 위해 바로 주녹정을 찾았다.

신유성이 없는 동안 신혁은 만인의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주녹정 뿐만 아니라 신유성의 다른 아내들도 신혁을 챙길 정도였다. 다른 동생들은 항상 신혁 앞에서 고개를 숙일 정도.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자랐다.

뭔가 부셔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주녹정뿐이었다. 그리고 주녹정도 매를 드는 법은 없었다.

무서운 것이 없으니 겁 없이 자랐다. 세상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조금만 기분 나쁘면 욕을 하고 화를 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신혁이 자라왔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버르장머리가 없던 거네.’

너무 귀한 대접을 받으며 크다보니 자신이 최고인줄 알았던 것이었다. 그러다 신유성이 나타나 관심에서 멀어지자 질투하기 시작했다.

이를 알아본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놔두면 재앙이 된다.’

어렵게 세계를 통일하면 뭐하나? 자식이 못나서 말아먹으면 3대가 가기도 전에 분열에 직면하게 될 뿐이었다.

‘요 놈의 자식이 누구 덕분에 편하게 지내는지도 모르고?’

모르면 가르쳐줘야 한다.

신유성은 매를 들기로 했다.

다음 날, 황궁의 친위대는 몹시 바빠졌다. 신유성이 자식들을 데리고 궁을 나가 한양을 둘러보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황실의 나들이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한양 사람들은 몹시 바빠졌다.

“건물 앞을 청소하시오! 안 하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물리겠소!”

한양에 있는 사람들의 신원 조사도 시작되었다. 타지 사람들은 잠시 한양 밖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불만이 있어도 입 밖에 내는 사람은 없었다.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는 한양에 발도 못 붙이게 되니까.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신유성은 가족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시장이었다. 백화점이 있었으나 이날만큼은 이용하지 않았다.

시장에는 손님이 없었다. 당연했다. 신유성이 이용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에 장사하는 상인들 빼고는 모두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여긴 뭔가요?”

“시장이다.”

“백화점에 안 가요?”

“오늘은 백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나온 거다. 천천히 둘러봐라.”

즐거움을 위한 나들이가 아니었다. 교육 목적의 나들이였다.

딸은 인상을 찡그렸다.

“냄새나요.”

“더러워.”

“물건들이 엉망이에요.”

최상의 환경에서 최고품만을 사용해왔던 아이들에게 시장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

신유성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자식들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고는 눈치를 살폈다.

“가자.”

설명은 없었다. 신유성은 계속 자식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다음에 들린 곳은 한양 외곽에 위치한 동네였다. 빈민촌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집들에 비해 상당히 허름한 집이 잔뜩 있는 동네였다.

“여긴?”

“타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한양의 집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 노동자들은 살기가 어려웠다. 이들이 사는 곳은 한양의 부호 기준에서는 지저분하다고 다른 이들이 꺼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동네를 없애버리자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순 노동자들이 없으면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서부터 건설 현장 인부까지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필요했다. 하인들이 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인에게는 하인의 일이 있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적당한 가격에 해주는 인력이 있기에 한양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사는 곳을 마냥 지저분하다고 없애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여긴 어디에요?”

“한양이 잘 돌아가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전처럼 투덜거리지 않았다. 투덜거렸다가 또 호통을 듣게 될 테니까.

“여기가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느냐?”

“네.”

“하지만 여긴 양호한 거다. 이 정도면 괜찮게 사는 거지.”

그렇다. 지저분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양 기준이었다. 다른 곳에 가면 평범한 집들이었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이보다 못한 곳에 사는 사람이 많다.”

신유성은 더 설명하지 않고 허름한 골목을 돌다가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아이들은 배가 고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먹어라.”

그리고 나온 것은 평범한 평민들이 먹는 식사였다. 구운 생선에 잡곡밥 한 그릇 그리고 짠무. 잡곡밥에는 쌀보다 다른 것들이 더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이거 먹어요?”

“그래. 그게 백성들이 먹는 밥이다.”

신유성은 자리에 앉아 거침없이 밥을 입에 퍼넣었다. 그리고는 구운 생선을 발라 입에 넣었다.

우물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자 아이들은 하나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이 별로였지만 허기 때문에 그럭저럭 먹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후 신유성은 황궁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 마디 던졌다.

“오늘 너희들이 본 것을 잊지 마라. 만약 내가 황제가 되지 못했다면 그곳이 너희들이 살았어야 할 곳이었다. 아니지. 너희들 중 몇 명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다.”

충격적인 말을 한 신유성은 홀로 침소에 들었다.

신유성의 아내들은 아이들을 잡고 얘기를 하느라 함께 들어가지 못했다.

다음 날, 홀로 일어난 신유성은 검술 수련에 들어갔다. 언제 어디서든 싸울 수 있도록 항상 실력을 갈고 닦았다. 몸 상태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수련을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움직이니 주녹정이 나타났다.

“애들은?”

“충격을 좀 받기는 했지만 괜찮습니다.”

“그러라고 한 거야.”

진짜 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신적인 매였다. 황제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라는 뜻을 담은.

본 것이 없었다면 말로만 해서는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보여주고 상상을 하게 하니 다들 조금씩 현실을 깨우치고 있었다.

‘이 놈의 황실이 문제야.’

신유성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시대의 황실은 아이 교육에 있어서는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 황족이 아닌 이상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떠받들어주니 능력이 없어도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딱 좋다.

신혁의 경우가 그랬다.

신유성이 없을 때는 관심의 중심에 있다가 신유성이 나타나자 관심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그것을 질투했다.

아이가 흔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지만 바로 잡을 수 있을 때 바로 잡지 않으면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성격이 굳게 된다고 신유성은 생각했다.

“짓궂으세요.”

주녹정은 신유성을 탓하지 않았다. 신혁이 장남이고 소중하긴 했지만 주녹정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신유성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커봐야 세상을 모를 뿐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다 클 때까지 황궁 밖을 볼 경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모르는 상황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황제가 될 수도 있었다.

신유성이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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