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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신혁은 큰 충격을 먹었다.
‘아바마마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고통을 안겨주었다.
‘역관의 아들이셨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다들 신유성의 업적에 대해 떠들기만 했지 역관의 자식이었다는 소리는 신혁에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몰랐다.
‘난.......’
하나둘 신유성의 정보가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어려서 사서삼경을 익혔다는 사실이. 그리고 역관의 자식이었다는 정보와 함께 알게 된 신유성의 파란만장한 삶.
‘아바마마.’
신혁은 패배감을 느꼈다. 자신의 나이 때 신유성은 이미 왜관에서 장사를 했다. 검술도 익혔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돈을 벌며 영주가 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조선에 돌아와 왜국 토벌 허가를 받아 토벌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명나라 황제의 사위가 되었고 조선을 집어 삼키고 일본을 삼키고 명나라를 삼켰다. 이후에는 만주 벌판을 삼키고 계속 집어 삼켜서 지금의 신국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으으으으.’
신유성은 너무나 높은 곳에 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그저 작은 꼬마.
신혁은 드디어 깨달았다.
‘전부 내가 아바마마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런 거였어.’
자신이 잘나서 굽실거린 것이 아니었다.
신유성의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깨닫게 된 신혁은 눈물을 흘렸다.
‘제길!’
분했다. 한없이 높았던 자존심이 단숨에 꺾였으니까.
신혁은 기가 죽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신유성을 이길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이 신유성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더 잘난 구석을 찾기가 어려웠다.
키와 같은 거야 아직 어리니까 뒤로 미룬다고 해도 일단 지적 능력이 따라가질 못했다.
사서삼경을 전부 달달 외우고 있는 것은 둘째 치고 신유성이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상당했다.
왜어와 북경어는 물론 광동어와 여진어 몽골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까지 알고 있었다. 여기에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까지 추가해야 했다. 이외에도 이런 저런 말들을 알고 있었다.
신유성 덕분에 정복이 더 쉬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빠르게 소통이 가능해지자 점령지역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 확실해지니 점령 지역 주민들도 지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신유성의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의술에도 조예가 있었다. 우두법을 알려 마마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것 하나만 놓고 봐도 명의 소리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유성은 세상의 의술을 총망라해 새로이 의술을 정립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의술 다음에는 과학이 있었다.
증기기관과 최근 공조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전기라는 것을 신유성이 알려줬다는 것이다.
황궁의 숙수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미식가라는 칭호도 받았다. 신유성이 알려준 요리는 엄청나게 맛있었으니까.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제야 신혁은 왜 신유성을 신처럼 모시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해했다.
‘아바마마는 신이신가?’
신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럼 난 신의 아들인가?’
생각이 살짝 엉뚱한 곳으로 빠졌지만 다시 되돌아왔다.
‘최근 알려진 전기에 대한 것도 그렇고.’
신유성은 꿈속에서 본 것을 만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만든 수많은 것들이 신의 뜻?’
그렇다면 신유성의 업적이 이해가 됐다.
신이 아니라면 최소한 반신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아니면 사람의 몸을 빌어 태어난 신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마마마. 아바마마는 신이신가요?”
신혁은 주녹정을 찾았다.
“폐하는 그 누구보다 위대하신 분이다.”
“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폐하가 계신 덕분에 누리는 것.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네.”
“그러니 이기려고 하지 마렴.”
주녹정도 신유성의 말을 듣고 신혁의 상태를 깨달았다. 신혁이 신유성을 경쟁상대로 여긴다는 것을.
뛰어난 존재를 경쟁상대로 삼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존재를 경쟁상대로 삼게 되면 아예 포기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는 말은 주녹정의 마음을 움직였다.
“폐하를 보고 배우고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단다.”
신유성이 해준 말이었으나 주녹정이 대신 전해주었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하렴.”
“하고 싶은 일.......”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은 그냥 재미삼아 한 일 밖에는 없었다. 별 다른 의미가 없는 일들뿐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니 뭔가 의미 있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나도 뭔가 해야 할 텐데.’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진 신혁이었다.
신유성의 아이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모두 바깥 세상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황궁에서 보고 배우는 것을 넘어서 세상을 좀 더 보고자 했다.
또한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확인하고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 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면 가르친다. 외부로 나가는 것도 허락한다.”
날파리가 꼬일 수 있었다. 그러나 뭔가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기만 하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괜찮겠지.’
신유성은 친위대를 더욱 늘리게 했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호위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불순한 뜻을 품은 자들이 나타날까 두렵습니다.”
친위대 대장은 우려를 표명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황제가 된다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더 힘들다. 어렸을 때 실컷 돌아다녀야지.”
“하오나.”
“그만. 난 그대들의 능력을 믿는다. 실망시키지 마라.”
친위대 대장은 부르르 떨었다.
‘내 기필코 목숨을 걸고서라도!’
황제의 칭찬은 친위대 대장에게 힘이 나는 말이었다.
따뜻한 욕실.
수증기 속에 몸을 가린 여자들이 웃으며 신유성에게 달라붙었다. 찰떡같은 가슴에 둘러싸여 망고 주스를 마시는 신유성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극락이로구나.’
입을 벌리면 달콤한 입술을 맛볼 수 있었다.
손을 뻗으면 안겨드는 여자들.
쌓인 욕정은 이미 풀어냈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때때로 이렇게 즐기는 것은 활력소가 되어주니까.
“폐하, 아이들이 정녕 밖으로 다녀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황궁에서만 자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그러면 잠시 외가에 보내는 것은 괜찮을까요?”
외가. 현재 신유성의 아내들치고 든든한 외가가 없는 이는 없었다. 주녹정의 경우에도 외가에 있는 친척 중에 척계광이라는 엄청난 능력자가 있었다.
“그것도 좋겠지.”
외가 인물들과 가까워지면 외척들이 발호할 수도 있었으나 신유성은 걱정을 접었다. 발호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엮여있기 때문이었다.
친위대는 대부분 레이의 오라버니인 신페이의 영지인 북해도에서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신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큐슈와 그 외 수많은 영지를 가진 요시시게는 나츠와 연결되어 있었다.
신유성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척계광은 주녹정과 연결되어 있었고 체첵과 사르나이는 신국 기병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여진족과 연결되어 있었다.
별 다른 세력이 없을 것 같은 매화도 한양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매우 뛰어난 세력을 구축한 돌쇠의 딸이며 매화 또한 휘하에 여러 정보 세력을 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화진은 해양 유통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유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다행인 점은 누구도 황제 자리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 신유성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약해지면 다 소용없는 얘기지만.’
무엇보다 황실의 장남이 황후인 주녹정의 아들인 신혁이었다. 명분상으로는 다음 황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어차피 다 소용없어. 다음대 황제고 뭐고.’
신유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명분상 다음 대 황제? 그딴 것은 다 소용없었다.
‘내가 아무리 정략결혼을 많이 해도 결국 분열될 뿐이다.’
계산을 하면 할수록 명확해졌다. 신국의 미래는 신유성의 죽음을 기점으로 분열되게 되어있었다.
과거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분열된 제국처럼. 더구나 지금의 지배구조는 독립하기에는 엄청나게 편했다.
모두 흩어지지 않고 신유성을 따르는 것은 신유성을 따르는 편이 이득이기 때문일 뿐.
‘흩어지지 않도록 더 큰 떡밥을 던져야지.’
신유성은 바로 옆에 있는 나츠의 엉덩이 골에 손을 넣었다. 손끝을 스치는 부끄러운 구멍과 은밀한 구멍에 나츠는 헐떡였다.
“으응!”
손가락을 낚시 바늘처럼 구부리자 나츠의 몸이 펄떡이더니 신유성의 몸에 더욱 달라붙었다.
‘천하를 낚으려면 떡밥을 잘 써야지.’
나츠를 비롯해 체첵과 사르나이의 가슴을 빨던 신유성은 곧 쾌락의 항해를 시작했다.
7척의 아름다운 배는 신유성의 움직임에 따라 힘차게 쾌락의 바다로 나아갔다.
욕실의 물결은 쾌락을 따라 찰랑거렸다.
중대한 발표가 황궁에서 나왔다.
“아니 그러니까 그 분들이 외가에 들린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지!”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한양이 떠들썩해졌다. 신유성의 자식들이 외가에 가서 얼마간 지내게 될 거라는 소식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이에야스 또한 소식을 접하고 고민했다.
‘어느 분과 만나야 하나?’
가장 문화적으로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신페이와 요시시게였다. 같은 일본 지역의 영주였으니까. 하지만 이에야스는 신유성의 자식들 전부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 애하고도 가까워지면 더 좋고.’
이에야스에겐 소박한 야심이 있었다. 형님으로 여기는 신유성과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혈연이 생기는 것이었다.
‘일단 항주로 가자. 그래도 그 분이 장남이시니까.’
이에야스는 적통인 신혁과 그의 형제들과 먼저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아직 황자와 황녀들이 바로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호위를 책임질 신유성의 친위대 모집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식은 금방 일본에 전해졌다. 소식을 들은 조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보통 분이 아니시다.”
“다시 한 번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조식 또한 신유성의 사후에 신국이 분열될 것을 걱정했다. 그렇기에 총영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열중하며 조금이라도 일본 지역의 백성들이 신국의 일원임을 가슴에 새겼으면 했다.
정인홍은 이런 조식의 노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경쟁을 하게 된다면 파란이 일 텐데. 그건 어찌하시려는지.”
황자와 황녀들을 외가로 보낸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주들의 입장에서는 황실과 혈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즉, 파벌이 만들어지는 계기나 마찬가지였다.
조식의 눈에는 신유성이 슬슬 후계자 경쟁을 시키려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허나, 외척을 이용해 파벌을 만드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았다.
외척 때문에 고생했던 조선을 떠올리면 조식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사화 때문에 죽어나간 수많은 선비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이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다!”
조식은 상소를 올리기 위해 붓을 들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상소를 쓰기 시작했고 완성했지만 끝내 보내지는 못했다.
신유성이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
신유성은 각지의 총영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여러 지역의 영주들이 주체가 되는 의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조식이 먼저 받아볼 수 있었다. 이후 중원의 이이를 비롯해 여러 지역의 총영주들에게만 편지가 보내졌다.
신유성은 일부러 영주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직접 편지를 전하면 총영주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였다.
어쨌거나 편지를 받은 총영주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단 한 명, 이미 얘기를 들은 이이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주들에게 할 말이 있으니 북경으로 오라 전해라. 영주가 올 수 없다면 영주의 전권을 받은 대리인이라도 보내도록 하라.”
“그래도 안 오면요?”
“폐하의 어명이시지만 안 오면 어쩔 수 없는 일. 강요할 것 없다.”
총영주들은 영주 소집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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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