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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97화 (19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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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방제국

아그라, 총영주관.

이황은 인도 지역의 총영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총영주직까지 내린 것도 모자라 의회라니.’

신유성의 배포에 이황은 다시금 감탄했다. 조선의 신하이던 자신을 중용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의회란 것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의회란 것은 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영주들이 단합해 황제의 권력을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의회에서 황제를 탄핵하게 되면 결국 내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영주들은 자신들의 힘이 월등하다고 여겨지기 전에는 탄핵은 하지 않을 터.

가만히 내버려두면 권력을 노릴 늑대들을 키워주는 꼴이 된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도 신유성이나 할 수 있는 일.

‘후손들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이황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들여다봐도 무능한 군주가 권력을 잃고 쫓겨나는 일은 흔했다. 가장 최근에 본 무능한 군주로는 가정제가 떠오르는 이황이었다.

자신의 입맛대로 하기 위해 간신들을 중용해 마음대로 한 결과 명나라는 내부에서부터 썩었고 결국 망했다.

알탄 칸의 침공이나 왜구의 노략질로 명나라가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부가 썩어 들어갔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능한 자들이 비리를 저지르며 명군을 약하게 만든 결과 내부에서부터 무너진 것이었다. 비리로 인해 당연히 갖춰야 할 전투력을 상실한 명군이 제대로 싸우길 바란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

허울만 좋은 군대였지 내실은 텅 비었던 것이었다.

여기에 신유성이란 늑대가 황실과 이어지며 빈틈은 더욱 커졌고 결국 먹힌 것이었다.

‘훗날, 폐하와 같은 인재가 나타난다면 황실 또한 힘들어질 텐데.’

이황은 고민했다. 상소를 올려 위험을 알리느냐 아니면 그대로 묵인하고 세력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다.

“무슨 고민을 그리 하십니까?”

이황의 표정에 갈등이 어려있는 것을 본 기대승이 질문을 던졌다.

“상소를 올릴까 고민 중이다.”

이야기를 들은 기대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께서 정하신 일이니 복안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대승은 이황이 상소를 올리지 않았으면 싶었다. 고생한 것도 있고 하기 때문에 신유성의 핏줄이 계속 지배를 하는 것이 그리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백성을 생각한다면 혼란은 최대한 피해야했다.

“나라가 흔들리면 가만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가장 밑에 있는 백성들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별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기 쉽다. 곤란해질 것 같으면 아랫사람을 쥐어짜면 그만이니까.

이황은 이러한 점을 걱정하며 기대승을 질책했다.

“죄송합니다.”

다 알면서 은근히 모른 척 하려 했던 것을 간파 당하니 기대승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면 상소를 올리실 생각이십니까?”

“생각 중이다.”

신유성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항상 예상을 벗어났었지.’

처음 만남부터 신유성은 이황의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였다. 무엇보다 신유성의 행동은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것이 이황이 고민하는 이유였다. 자신의 눈에는 훤히 문제가 보였으나 신유성이 문제를 간단히 극복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명이니 일단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순 없습니다. 자칫하면 영주들의 탄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런 문제가 있었지.”

이황은 결국 소집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기대승을 비롯한 이들에게 넌지시 뜻을 전했다.

“만약 의원이 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내 곁에 억지로 남지 말고 개척에 뛰어드시게.”

휘하의 사람들에게는 재산을 나눠주었다. 개발을 하면서 얻게 된 재산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전부 영주로 만들 정도의 액수는 아니지만 힘을 합한다면 영주 두셋 정도는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리고 먼저 영주가 된 이들이 힘을 보탠다면 더 많은 영주를 만들 수도 있었다.

기대승을 비롯한 이들은 이황의 말을 받아들이고 하나둘 곁을 떠났다.

남은 것은 오직 허엽뿐이었다.

“안 가는 건가?”

“나중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허엽은 남아 이황의 일을 도왔다.

이황은 모두 떠나보낸 뒤 상소를 올렸다.

알렉산드로는 마음이 급해졌다.

‘의회라고? 의회? 그 섬나라 녀석들처럼?’

잉글랜드가 떠올랐다. 의회는 잉글랜드에서 실행되고 있었다. 신유성이 말하는 의회는 잉글랜드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은 기회다.’

단순한 영주가 아닌 중앙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활동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알렉산드로는 현재 지금은 전향을 한 영주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입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후 다른 동료들이 생긴다고 해도 입지가 좋지 않을 확률은 있었다.

그래도 서로 함께 뭉치며 자신이 구심점이 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의회에 입성한다면 신국은 우릴 무시하지 못한다.’

늦게 신국에 합류한 영주일수록 입지가 줄어드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의회에서는 모두 동등한 한 표. 전향자고 뭐고 상관없었다. 영지의 크기와 경제력도 상관없었다.

의원 한 명은 한 표를 가진다.

그렇기에 모스크바 차르국 출신 영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의회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모스크바를 지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미 세계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신국의 수도인 한양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로 여겨졌다.

‘모스크바는 한양에 비하면 시골이다.’

이것이 현재 알렉산드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였다.

한양을 방문했을 때 보고 느낀 것들은 모스크바를 능가했다. 더구나 한양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신국의 심장이었다.

황궁이 한양에 있는 한 신국의 중심이 될 도시였다.

‘의회까지 한양에 들어선다면!’

수많은 영주들이 모이게 될 터. 그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위를 얻는다면 신국에 무사히 안착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최근에 무굴제국을 무너뜨렸으니 그쪽 영주들과 협력한다면 승산이 있다! 그리고 얼른 영주를 더 늘려야 해!’

알렉산드로는 이를 악물었다.

신국은 거대했다. 거대한 만큼 영주도 많았다.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하며 새로운 영주가 나오는 중이었다.

총영주가 아직 세워지지 않은 지역도 있어 인근의 총영주가 넓은 지역을 관리해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행정에 시간차가 존재할 정도.

‘차르를 빨리 죽여야 해!’

이반 4세를 죽이고 모스크바를 비롯해 차르국을 빨리 손에 넣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개척이든 원정이든 보내 영주를 더 확보해야만 했다.

‘어쩌면 늦었을지도 몰라.’

알렉산드로는 노부나가를 찾아갔다.

“어쩌면 조금 일찍 차르국과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야르들을 더 기다리게 한다면 돌아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노부나가는 알렉산드로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허락했다.

‘급하기도 하겠지.’

알렉산드로가 일정을 앞당기는 것을 알면서도 노부나가는 묵인했다.

‘모스크바를 최대한 빨리 점령하고 서쪽을 완전히 손에 넣는다!’

노부나가의 머릿속에는 ‘정복’이란 단어로 가득했다.

원정군 사령관이기에 원정에 성공하면 일정 지역을 영지로 받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지역들을 휘하의 가신들에게 적당히 나눠주면 영주가 된다.

즉,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신유성의 돈으로 전쟁을 치르는 현재 상황이 오히려 이득이었다.

돈은 신유성이 쓰고 공은 자신이 취하고 휘하의 영주도 더 늘려 의회에서 의석을 더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신유성이 완전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노부나가가 승리하면 신국은 그만큼 더 커지니까. 넓어진 영토만큼 세금은 더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목표로 했던 세계정복이 더 가까워진다.

세계를 가질 수 있다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은 것이다.

쓴 돈이야 나중에 다시 채우면 되니까.

어쨌거나 노부나가는 알렉산드로가 어서 빨리 보야르들을 신국에 복속시키길 원했다. 빨리 전쟁을 시작하면 더 빨리 정복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정군 전체에 전투를 준비하라 일러라. 그리고 기병을 더 모집한다!”

기병이라면 넘쳐났다. 기병이 되고 싶어서 안달인 칸국의 후예들이 넘쳐났으니까.

‘이제 시작이다.’

신립은 죽을 맛이었다.

‘엄청 춥네.’

이리저리 흐르고 흘러 신립이 도달한 곳은 바로 우랄산맥이었다. 학교 졸업한 뒤에 여기 저기서 일했다. 그리고 원정군이 교체되면서 결국 최전방에 자리가 났다.

신립은 기병 무관으로 현재 근무 중이었다.

“이것들아. 놀지 말고 잘 살펴!”

“예!”

얼른 요새로 돌아가 따끈한 스프를 안주 삼아 럼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임무는 임무. 소홀히 한다는 것은 신국 장교로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신립의 부하들은 모두 신병이었다. 하지만 신병이 신립보다 말은 더 잘 탔다. 시베리아 지역에 살던 젊은 전사들이 원정군에 입대한 탓이었다.

이들은 계급은 낮았지만 말 탄 경력은 신립을 까마득히 추월했다.

더구나 시베리아는 이들이 살던 터전이었다.

신립이 전사들보다 뛰어난 것은 조선어를 더 잘한다는 것과 화기를 더 잘 다룬다는 것이었다. 신립의 경우에는 기병이 아니라 포병 무관도 할 수 있었으니까.

능숙한 전사들은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정찰이 끝나자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신립도 마음이 들떴다.

‘어서 가서 스프를! 술을!’

혈액순환을 도와줄 물질이 절실했다.

요새로 돌아온 신립은 얼른 보고를 하고는 방에 들렀다가 뒤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식당에서는 언제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항시 취사병이 대기하고 있었다.

“스프! 빨리!”

스프는 금방 나왔다. 국자로 떠서 내놓기만 하면 되니까.

그릇에 담긴 스프를 한 입 떠먹은 뒤에는 품에서 병을 몰래 꺼냈다. 병에 담긴 것은 술.

신립은 몰래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스프를 떠먹었다.

술과 스프과 뱃속에서 엉키며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자 살 것 같았다.

‘좋다!’

우랄 산맥은 정말 모든 것이 부족했다. 눈도 많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 삽질을 하는 일도 많았다. 먹을 것도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다.

보급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선한 야채는 늘 부족했다.

가끔 보급이 늦어지면 식사가 형편없어지기도 했다.

한양의 풍요로운 삶을 경험한 신립에게 우랄 산맥에 자리한 요새에서의 생활은 빈곤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적응이 힘들었다. 하지만 스프와 술을 함께 즐기는 맛을 알게 된 이후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빈곤 속의 풍요였다.

“대장. 대장은 개척 안 갑니까?”

“개척?”

스프와 술을 천천히 즐기는데 옆에 부하가 와서 앉았다.

“네, 요즘 그걸로 시끄럽던데요.”

“내가 개척을 가서 영주가 되는 것보다 여기서 공을 세워 영주가 되는 게 더 빠르겠지.”

“에이, 공은 무슨요.”

“아니면 우리끼리 산맥에서 영지나 하나 세울까? 산맥은 영주 없잖아?”

“하하. 그럼 좋겠지만 산맥은 폐하의 땅이잖아요. 폐하의 허락이 있어야죠.”

“그건 그러네.”

신유성이 나눠준 땅은 영주의 것이 되지만 나눠주지 않은 땅은 기본적으로 신유성의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우리가 공을 세우면 혹시 아나? 영주로 임명될지?”

“에이. 공은 무슨 공이요. 전쟁도 없는데.”

국경은 조용했다. 이젠 와서 시비 거는 이들도 없었다. 예전에는 신경 쓰이게 하는 자들이 많았다고 했는데 이젠 많이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국경에 얼씬 거리는 이들이 줄어들더니 이제는 적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모두 알렉산드로가 나서서 열심히 보야르들을 설득하고 있는 탓이었다. 설득 당한 보야르들은 국경에 군대를 배치한 척만 하고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이었다.

“그게 중요한 거야. 조만간 전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대해.”

“정말요?”

“그래.”

신립은 판세를 읽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국경에 접한 적의 움직임을 통해 모스크바 차르국에 변고가 생겼다는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우릴 계속 적대해야 하는데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건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거겠지.’

“만약 그렇게 되면 대장이 공을 세우게 돕겠습니다.”

“충성스럽군.”

“그렇죠! 충성스러운 부하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래. 만약 내가 영주가 된다면 네가 개척할 때 도와준다.”

“정말요?”

“그래!”

공수표를 남발하는 신립이었지만 만약 정말 영주가 된다면 돕지 못할 것은 없었다. 신립이 부하들과 함께 야망을 통해 하나가 되어가는 것처럼 다른 지휘관들도 휘하의 부하들을 끌어안고 있었다.

영주가 되고자 하는 열풍은 시베리아를 뜨겁게 할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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