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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98화 (19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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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방제국

우랄 산맥의 상황이 뜨겁게 변해가고 있을 때, 아메리카의 상황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박지화와 허준은 영주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제발 우리를 거두어주십시오!”

“족장이 되어주세요!”

이제 어느 정도 조선어를 배운 여러 부족의 족장들이 두 사람을 자신들의 족장으로 모셔가려고 난리였다.

“어허! 우리 족장님이 되실 거라니까 그래!”

“이게! 싸울까?”

“그럴까?”

박지화와 허준을 족장으로 모시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이 가진 의술로 인해 구원을 받자 족장들은 크게 감명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그 감동이 작을 리가 없었다.

뛰어난 의술을 가진 박지화 그리고 그 제자인 허준.

이 두 사람은 결국 수많은 족장들의 표적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편으로 삼고 싶은 사람 1순위였다.

하지만 신국 사람인 두 사람이 일개 부족에 귀의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신국의 지배 체계를 깨달았다.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 이것을 알게 되자 족장들은 영주의 자리로 두 사람을 유혹하는 중이었다.

“지금 제 앞에서 싸우겠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박지화가 나서자 족장들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싸워서 다치면 결국 치료하는 것은 의원들이었다. 의원 앞에서 싸우는 것은 결국 의원의 일을 늘리는 꼴.

그렇잖아도 일이 많아 피곤한 박지화는 불필요한 싸움을 굉장히 싫어했다.

“말로 하십시오. 말로.”

피곤한 박지화는 그대로 천막으로 들어가 누웠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박지화와 달리 허준은 여러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모두 허준이 손을 뻗으면 그대로 품으로 달려들 분위기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다행이다.’

소녀들의 조선어는 아직 미숙했다. 그것이 허준의 숨통을 틔게 해주었다. 말까지 통했다면 옆에서 쉬지 않고 재잘거렸을 테니까.

밥을 다 먹은 허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진료를 위해 움직였다.

소녀들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밥 먹을 때 같이 먹는 정도가 소녀들이 접근할 수 있는 한계였다. 일할 때는 건드릴 수 없었다.

결국 소녀들은 열심히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힐끗 소녀들을 본 허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참. 미치겠네.’

허준이라고 남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소녀들을 안고 뒹굴고 싶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책임을 져야 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말이 잘 안 통한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었다. 서로에 대해 쉽게 알아갈 수단 하나가 사라지니까. 뜻이 아예 안 통하니 계속 머리를 굴리며 상대를 살펴야 한다.

매일이 피곤한 진료의 나날인 허준으로서는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일을 하는 것도 피곤한데 쉬어야 할 시간에도 머리를 굴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들을 멀리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잠자리로 끌어들이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원균은 오랜만에 돌아왔다. 전염병이 돈다고 하지만 개척을 이뤄내고 원주민들을 굴복시킨 덕분에 벌써 영주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영주를 소집한다는 총영주의 서신을 확인하고는 바로 움직였다.

‘의회라니! 이건 기회구나!’

의회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우들을 얼른 영주로 만들어야 해!’

원균에게는 형제들이 있었다. 이들이 전부 영주가 된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바로 일가친척들을 영주로 만드는 것이었다.

‘원씨가 다시 일어설 기회다!’

원씨는 매우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원주의 호족이며 고려의 태조 왕건 때 병부의 장관이라 할 수 있는 병부령이며 원성백에 봉해진 원극유의 후손이며 조선의 세종 때에는 호조참판에 오르기도 한 원임도 선조 중 하나였다.

원씨는 대대적으로 무가의 집안으로 호조참판에 올랐던 원임도 사실은 무과에 급제했던 무인이었다.

고려에서 조선까지. 그야말로 뼈대가 굵은 한반도의 명문가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원균의 집안이었다.

원균은 신국에서도 가문을 다시 한 번 부흥시킬 생각이었다.

서둘러 배를 수소문 했다. 하지만 배는 아직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결국 원균은 뭔가 돈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박지화와 허준의 상황에 대해서 들었다.

‘왜 영주가 안 된다는 거야?’

원균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무슨 생각이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원균은 바로 허준을 찾았다.

“어디 아프십니까?”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영주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건가?”

“그야 영주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없으니까요.”

“영주가 되면 의원이 될 수 있다. 의원이 되면 나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을 빈곤에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의회의 의원이 병을 고칠 순 없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영주님이 병에 걸렸는데 의원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겠습니까?”

“으음.......”

원균은 답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의원을 하찮게 여기기도 했었다. 기술자로서 언제나 부릴 수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의원들의 사회적 지위는 많이 올라갔다.

‘생명을 쥐는 자라 이건가?’

생각해보면 황제의 목숨도 결국 의원의 손에 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병은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걸리면 아프다. 그걸 제대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의원이었다. 돌팔이에게 맡겼다가는 오히려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무인 출신이기도 한 원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와 같은 의원이 있어야 나도 안심하고 싸울 수 있지.”

군대야말로 의원이 많이 필요하다. 조금 다친 병사도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으면 죽을 수 있고 죽음의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던 병사도 명의를 만나면 살 수 있다.

정예 병사 한 명이 살아나는 것은 단순히 한 명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신병을 정예병으로 키우기까지 걸리는 시간 또한 살리는 것이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곤란한 일 생기면 언제든 말하도록. 내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

“감사합니다.”

궁금증을 해결한 원균은 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허준도 자신을 알아주니 원균을 좋게 보았다.

아메리카의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땅이 워낙 넓기 때문에 지금까지 투입한 정도로는 티도 나지 않았다. 신흥 영주가 생기고 많은 부족들이 신국에 복속해 영주들이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메리카는 넓었다.

티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틀링기트족은 점점 발전하며 세력을 넓혔다.

“신국은 위대하다. 지배를 받아들여라.”

이제는 충실한 신국의 국민이 된 틀링기트족이었다. 전염병을 고치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질병을 고치기도 하고 뛰어난 물품을 끊임없이 제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넘어오는 말들과 기병들은 최고의 병력이었다.

이들과 함께하면 못 이길 부족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틀링기트족의 샤먼은 신국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신국의 의술을 배우며 샤먼이 병을 고치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글을 배우고 문화를 습득하며 틀링기트족은 점점 동화되었다. 특히 조상을 섬긴다는 유교 사상은 이들에게는 딱 취향을 저격하는 사상이었다.

“족장. 어떻게 할 건가? 같이 갈 건가?”

틀링기트족의 족장은 빛나는화살의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그럼 여긴?”

“걱정 마라. 신국의 군대가 지켜줄 거다.”

“그럼 가야지.”

신국의 군대가 지켜준다면 못 갈 것 없었다. 그렇게 틀링기트족의 족장이 빛나는화살과 배에 오르자 한 남자와 마주쳤다.

“원균입니다.”

“빛나는화살입니다.”

“반갑습니다.”

다 같이 영주였다. 원균은 빛나는화살이 아이누라고 해서, 틀링기트족의 족장이 아메리카의 원주민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았다.

‘다 같이 의원이 되면 이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다.’

의회에서 뜻을 함께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니 원균은 일단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다. 불필요한 일로 적으로 만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까.

사소한 일로 적이 되면 사사건건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항해가 시작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영주들은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항해는 지루했다. 더구나 예전에는 하루에 한 번 항구에 들릴 정도로 조심스러운 항해를 했다면 이제는 삼일을 연속으로 항해했다.

항해기술이 늘어나고 자신감이 붙자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거 지루하군요.”

“그렇습니다.”

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잠깐이었다. 처음에는 탁 트인 느낌에 가슴이 시원해지다가도 이내 지루해지는 것이었다.

“술이라도 한 잔 어떻습니까?”

“아, 술까지 마시면 속이 더 안 좋을 것 같아서 전 사양하겠습니다.”

틀링기트족 족장은 술을 거절했다. 배는 몇 번 타보긴 했었다. 호기심에. 하지만 이렇게 긴 항해는 처음이었다.

약간의 배멀미 때문에 고생하는 중이라 결국 술을 거절한 것이었다.

“아쉽군요. 그럼 항구에 도착하면 한 잔 합시다.”

원균은 입맛을 다시며 술병을 도로 집어 넣었다.

항해 시작 후 오일이 되자 항구에 도착했다. 땅에 발을 딛자 틀링기트족 족장은 살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아, 대지의 품은 역시 포근합니다.”

“그렇지요.”

가만히 놔두면 땅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빛나는화살이 얼른 부축했다.

“저기 주점이 보입니다.”

주점 근처에는 언제나 그렇듯 취한 선원들이 쓰러져있었다. 날씨가 꽤 풀렸으나 북쪽이기에 쌀쌀해서 근처에는 불까지 피워놓고 위에는 대충 가죽을 덮어주는 서비스까지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호위를 이끌고 주점 안으로 들어가자 왁자지껄하던 소란이 일순간 멈췄다. 딱 봐도 지체 높으신 분들이 행차하셨으니까.

“저 손님은 몇 분이나.”

“12명. 우리 셋이 한 상이고 나머지는 대충 근처에 잡아주면 된다.”

“네, 그런데 혹시 영주님들이신가요?”

“눈썰미가 좋군.”

기분이 좋아진 원균이 은화 한 개를 튕겨주자 점원은 넙죽 인사하며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어이! 주정뱅이들! 그만 마시고 일어나! 다 마셨잖아!”

술에 취한 선원들이었지만 시비를 걸진 않았다. 술에 취했어도 분위기 정도는 살필 수 있었으니까.

자리에 앉은 빛나는화살은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나도 저런 이들과 어울렸는데.’

뭔가 멀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영주가 되면서 얻은 것들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도 옛날 분위기 한 번 내볼까?’

“이거 우리 때문에 분위기가 죽은 모양입니다.”

“하하, 조금 미안하긴 하군요.”

“제가 술을 돌리려고 하는데 괜찮겠지요?”

“그럼 저도 질 수 없죠.”

빛나는화살과 원균이 의기투합했다.

“이봐! 여기 안에 사람들에게 술 한 잔씩 돌려! 나 빛나는화살이 쏜다!”

“방금 나간 녀석들에게 술 한 병씩 주고 여기 탁자마다 안주 하나씩 돌려! 나 원균이 쏜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빛나는화살은 원균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럼 나는 한 잔 더 쏜다!”

“최곱니다!”

“멋쟁이!”

빛나는화살과 원균 덕분에 분위기가 살아났다. 공짜술과 안주를 먹게 되었으니까. 방금 자리를 양보하며 나간 이들도 술을 한 병씩 공짜로 얻게 되어 불만은 없었다. 밖에 나가 모닥불 앞에서 안주로 나온 국물과 함께 술을 홀짝이며 소소한 풍류를 즐겼으니까.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되자 빛나는화살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 분위기야.’

예전처럼 가까워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균 또한 빛나는화살처럼 추억에 잠겼다.

‘대장.’

원균이 떠올린 것은 이정이었다. 한 때는 경쟁자로 여기기도 했었으나 함께 전쟁을 치르며 가까워진 좋은 상관이었다.

‘야심도 별로 없는 양반.’

그랬다. 이정이 아주 야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청나게 출세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딱,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정도만 나아가겠다는 절제심을 가진 남자였다.

그런 이정 옆에서 생활하며 원균도 많은 것을 배웠다.

‘나중에 인사라도 하고 싶지만.......’

하지만 신국은 넓었다. 인사 한 번 하러 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잘 지내겠지.’

술을 들이킨 원균은 우적우적 말린 생선을 씹었다.

한편, 분위기에 취한 틀링기트족 족장은 선원들과 어울려 술잔을 들고 춤을 추기까지 했다.

“놀자! 놀자! 젊어서 놀자!”

요상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족장은 연신 술을 들이켰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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