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199화 (19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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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방제국

한양으로 속속들이 영주들이 모여들었다. 한양의 부동산은 다시 한 번 폭등했다. 이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일을 할 사람들이 거주할 곳이 없습니다. 일하러 오가는 시간만 반나절도 더 걸립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가격을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막는다면 손해를 보라고 강요하는 것 아닙니까?”

회의 시간, 신유성은 가만히 신하들이 하는 얘기를 듣기만 했다.

‘값이 올라도 문제. 안 올라도 문제.’

안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정체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너무 오르면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변해버린다.

가만히 있던 신유성은 입을 열었다.

“한양을 구역별로 나누고 각 구역에 대표를 뽑아 임시로 시의원으로 정하겠다.”

신유성은 단독으로 일을 밀고나가지 않았다. 한양은 신유성의 땅.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의회가 무엇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

의회는 황제의 권한을 축소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국가의 분열을 막는 기능이 있었다. 서로 조금이나마 소통하면서 타협을 할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신유성이 던지는 떡밥이었다.

분열을 막기 위한.

“시의원이요?”

“그렇다. 한양에 한해서 의회가 어떤 것인지 알리고자 한다.”

신유성의 말에 감히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의회란 것이 어떤 형태로 어떤 기능을 하게 될지 신하들도 알고 싶었으니까.

신하들은 빠르게 한양의 구역을 나눈 뒤, 각 구역에서 대표를 뽑으라고 상인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이 때문에 한양의 상인들은 난리가 났다.

“내가 할 거라니까 그러네!”

“어허! 자네 가진 땅도 별로 없지 않나? 우리 구역에 내가 땅이 제일 많으니 내가 해야지!”

“무슨 소릴! 돈은 내가 더 벌었어!”

“이 인간들이! 사람은 내가 제일 많이 고용했다!”

난장판이었다.

기루에 모인 상인들은 여자와 술은 쳐다보지도 않고 언쟁을 벌이느라 목에 핏대를 세웠다.

서슬이 퍼렇다. 말이 물리적인 힘을 낼 수만 있었다면 상대를 열 번은 더 죽이고 남을 정도로 날카로운 말들이 오갔다.

의원이 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황제인 신유성이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뛰어들고 보자는 심리가 팽배했다.

“거 참! 이래서야 끝이 없겠구만!”

한 동안 진탕 말싸움을 벌이다 지치자 모두 주저앉았다. 목이 말라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자 다시 기운이 샘솟았다. 범 같은 기세였다.

모든 구역에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것은 아니었다.

모리 모토나리나 돌쇠가 있는 구역은 이미 시의원을 할 사람들이 정해졌다. 이에야스가 있는 구역도 그랬다. 오직 고만고만한 상인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서만 경쟁이 치열했다.

결국 아무도 시의원이 되지 못했다. 그러자 상인들은 결국 줄을 서기 시작했다. 황제와 가깝다는 이에야스나 외척이라 할 수 있는 돌쇠를 찾아가 청탁을 한 것이었다.

상인들의 움직임은 빠짐없이 신유성에게 보고되었다.

‘그래, 남이 더 잘 되는 꼴을 보긴 힘들지.’

상대가 자기보다 월등히 잘난 사람이라면 경쟁심을 품기도 어렵다. 하지만 비슷한 처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니 쉽게 양보하기가 어렵고 싸움이 난다.

자신들의 힘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도움을 청한다. 싸움에선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

사소한 것에 끼어들면 안 된다. 황제가 의회에서 어느 한쪽편만 노골적으로 든다면 의회를 시작한 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신유성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알아서 하란 말만 되풀이했다.

보고를 다 들은 신유성은 조용히 황실 주방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뭘 먹을까?’

다시금 요리를 하는 기행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내들이 또 임신했다. 황실의 경사라며 다들 떠들썩했다. 아이들을 외가로 보내고 한가해졌었지만 임신했으니 다시 몸을 사리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신유성은 다시 독수공방에 들어가야 했다.

‘햄버거? 아니야. 치킨? 아니야. 피자는 토마토가 없고.’

이미 실컷 욕구를 푼 결과 아이가 생긴 것이니 아직은 여유가 넘쳤다.

‘스테이크는 어제도 먹었고.’

정사를 벌여야 할 시간이 줄어들어 남는 시간에는 다른 것들을 하면 그만. 지금까지는 일을 했으니 보상을 받아야 할 시간. 주방에 들어선 신유성은 양념을 한 닭을 볶았다.

닭고기 조각들이 매콤한 양념을 머금고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었다.

신유성은 이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너무 매워서 힘들 때는 우유를 마셨다.

이를 본 다른 이들은 살짝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저 매운 걸.’

신유성이 고추를 도입한 이후 고추는 많이 퍼졌다. 황제가 먹는 것이라고 하니 호기심에 다들 한 번씩 먹어보기도 했으니까. 말라카를 비롯한 더운 지방에서 가져온 고추는 맵기 그지없었으나 한반도에서 키운 고추는 상당히 덜 매웠다.

하지만 덜 맵다고 안 매운 것은 아니었다.

아직 매운 맛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은 신유성의 식성이 무섭다고만 여길 뿐이었다.

‘저렇게 매운 것을 즐겨 먹을 정도가 되어야 몸이 저렇게 크는 걸까?’

‘이것이 폐하의 비결일까?’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어떤 사람은 신유성의 천재성이 매운 고추에서 비롯되었다고 헛소문을 퍼트릴 정도로 고추는 신비로운 식재료가 되고 있었다.

단지 신유성이 즐겨먹는다는 이유로.

“폐하, 드릴 말이 있습니다.”

“말하라.”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주녹정을 비롯한 여인들이 찾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과 연관된 이들이 청탁을 받은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누굴 뽑았으면 좋겠습니까?”

“처음부터 내가 정할 생각이었다면 아예 통보를 했을 것이다.”

“하오나.......”

“적당히 알아서 해라. 난 모르는 일이다.”

신유성은 방치했다. 이에 여인들은 약간 곤란해 하더니 저마다 의견을 주고받았다.

“나는 빠지도록 하지.”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주녹정이었다. 여자들은 다들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황실의 위엄이 달린 문제라며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녹정에게 청탁을 한 사람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 사람이 붙는다면 주녹정의 위신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날 떠나거나 무시하는 이들이 있다면 더욱 좋은 것 아니겠나? 누가 나를 진심으로 따르는지 알기 편하니.”

“그렇군요.”

“그럼 저도 포기하겠습니다.”

주녹정에 이어 나츠까지 포기했다. 나츠 또한 알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까지는 알 수 없으니 쉽게 믿고 가까이 두기는 어려웠다.

하나 둘 포기하자 결국 남은 것은 화진이었다.

“저도 포기하고 싶은 데요.”

“그럼 우리 다 포기하는 걸로 하지.”

“그럴까요?”

외가에 보낸 아이들에게 잘 보이려는 이들이 많은 것도 안다. 허나, 위세가 꺾인 여인들이라는 소문이 돈다면 다른 자에게 붙으려 할 터.

‘아이들 곁에는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붙어야지.’

이것이 여인들의 계산이었다. 이렇게 해도 계산을 하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다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걸러낼 수는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에 결국 청탁은 모리 모토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몰리기 시작했다.

모리 모토나리는 집으로 찾아오는 상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 받아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토나리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더 오래 살까?’

의조의 의원이 살펴보기까지 했으나 모토나리의 건강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기력을 잃는 것을 조금 늦춰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 녀석이 잘 할까?’

모토나리는 아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들이 딱히 나쁜 영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모토나리의 기준에서 볼 땐 부족하기만 했다.

‘차라리 좀 더 나은 쪽과 손을 잡는 게 낫겠지.’

한 파벌을 이끄는 것은 상당한 균형 감각을 요구한다. 또한 사람의 심리를 읽고 몇 수 내다보며 움직일 줄 알아야 했다. 무작정 날뛰기만 해서는 잡혀 먹는다.

곰도 늑대 무리에게 걸리면 사냥 당하기도 한다.

모토나리 덕분에 가문은 큰 권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가문의 힘만 믿고 날뛰다간 언제 어떻게 뜯어 먹힐지 모른다.

‘무리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낫다.’

그래서 모토나리는 결정을 내렸다. 고개를 숙이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내 폐하께도 숙인 고개다.’

가문의 힘을 보존하기만 한다면 훗날 자신과 같은 인재가 당주가 되었을 때 다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 모토나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이에야스와 손을 잡기로 하고 선물을 보냈다.

결국 한양에서 시의원을 뽑지 못한 구역은 이에야스가 정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를 두고 황제가 이에야스를 총애한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이에야스는 코웃음을 쳤다.

‘미련한 놈들.’

신유성과 교감은 없었다. 더구나 이에야스는 신유성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시의원직을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만 뽑았다.

사실 시의원이 되고자 하는 상인들이 주는 선물들이 이에야스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충성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을 그대로 믿기에 이에야스가 어릴 적 거쳤던 전국 시대는 너무나 격렬했다.

불신이 판치는 시대에서 자란 이에야스가 믿는 사람은 부인도 아니고 신유성 하나뿐이었다.

‘충성이고 뭐고 헛짓거리 하면 벤다!’

“한조. 놈들이 뭔 짓거리 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폐하께서 지켜보시고 있다.”

“알겠습니다.”

이에야스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자신이 시의원으로 밀어준 상인이 나중에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었다.

아랫사람을 제대로 관리 못했다는 오명은 물론 잘못하면 이에야스마저 썩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이에야스는 오히려 청탁을 한 이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들 포기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에야스가 맡은 것뿐이었다.

‘그나저나 시의원이라. 대체 뭘 하시려는 걸까?’

이에야스는 신유성이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며칠 뒤, 시의원이 모두 결정 되자 신유성은 시의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황제를 직접 만나게 된 시의원들은 모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바들바들 떨었다.

‘크시다!’

신유성은 말 그대로 키가 매우 컸다. 190센티미터가 넘으니 이 시대 사람들에 비하면 거인이라 해도 좋을 정도.

사람은 자신보다 큰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위압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황제라는 직함까지 더해지니 신유성을 직접 만난 시의원들은 모든 것을 신유성의 위엄이라고 여겼다.

의문의 1승을 챙긴 신유성은 시의원들을 둘러보더니 한 가지 안건을 말했다.

“최근 한양의 땅값이 폭등하는 중이다.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기고 있어 이를 논하기 위해 그대들을 임시지만 시의원으로 뽑은 것이다.”

시의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우릴 문책하시려고?’

“땅의 금전적 가치는 결국 사람이 정하는 것. 비싸게 거래하는 것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로 인해 한양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이 살 곳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라는 단어는 공장이 생긴 이래 쭉 쓰기 시작한 단어였다.

“예전부터 노동자들이 살던 지역은 한양에서도 낙후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이 살던 지역의 지주들이 비싼 값에 부동산을 거래하기 시작한 이후 노동자들이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젠 아예 한양 밖에서 일을 하러 들어온다.”

시의원들은 여전히 묵묵히 듣기만 했다.

“문제는 노동자들이 밀려나며 한양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대들에게 듣고 싶다.”

질문을 받은 시의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았다.

“지금 당장 답할 것 없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다음 회의는 3일 후에 다시 열지. 그때까지 방법을 생각해보라.”

회의가 끝난 뒤, 시의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문제를 논하기 시작했다.

회의를 지켜본 신하들은 신유성의 의중을 추측하기에 바빴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상인들이니 아마도 자기들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지 않을까 싶은데.”

“그냥 자신들이 직접 고용인을 더 늘리고 끝나겠지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노동자들은 여기 저기 일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심부름을 대신해주기도 하고 공사판에 뛰어들기도 했다. 일감이 많으니 일을 조금 도와주는 선에서 일당을 받기만 해도 먹고 살기에는 충분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저렴할 때 얘기였다.

땅값이 올라가자 점점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이 주거비로 나가기 시작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결국 더 싼 곳을 찾아 움직여야 했고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이들이 너무 멀리 밀려나게 되면 한양은 결국 노동자 부족 현상을 겪게 된다.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면 직접 고용한 하인을 늘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폐하께서 무슨 복안이 있으시겠지요. 어쩌면 의회를 앞두고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죠.”

신하들은 고용인을 더 늘리는 것으로 결론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3일 후 나온 결론은 전혀 달랐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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