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201화 (201/271)

0201 / 0271 ----------------------------------------------

러시

시의회의 일은 순식간에 알려졌다. 마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생긴 노동자들은 좀 투덜거렸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마차를 이용하는 비용만큼 임금을 올려주는 것이 법으로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임금 외에 교통비를 지급하라는 법 때문이었다. 한양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한해서만 지급되는 것이라 다른 지역은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얼른 이사하죠.”

“그래, 가자.”

한양 내에 거주하던 많은 노동자들은 단체로 이주를 시작했다. 마차를 타고 출퇴근하면 되니까. 시간이 좀 걸리지만 비싼 세를 주고 버티는 것보다 이사 가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하지만 한양 바깥쪽에는 아직 제대로 된 주거 지역이 없기에 공사를 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건설회사도 또 신나는 비명을 질렀다. 어쨌거나 일감이 생겼으니까.

많은 이들은 시의회라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의회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게 될지 깨닫고 영주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났다.

“영주가 되야 합니다! 의원이 되려면 영주가 되어야 한다고요!”

“가자! 개척하러!”

개척 러시가 시작되었다. 황금이나 그런 것을 캐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영주가 되기 위해서 가는 것이었다.

시의원 하나가 대박이 났다. 말장수였는데 말과 마차를 이번에 한양에 공급하게 된 것이었다. 신유성은 이것을 묵인했다.

의원이 되면 단체로 이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것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금광 같은 것을 찾는 것보다 더 확실한 투자처였다.

아니, 금광은 찾아도 신유성 것이었으니 애초에 찾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영주가 되는 것이 최고의 투자였다.

신유성이 보장하는 자리니까. 물론 이 때문에 신유성을 비롯한 황실을 거부할 수 없었다. 황실을 거부한다는 것은 황실이 내려준 영주라는 지위마저도 거부하는 것이 된다. 능력이 있어 자신의 영지를 지킬 수 있었던 전국시대의 일본 영주들과 같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토벌되어 모든 것을 빼앗길 뿐이었다.

영주가 되고자 하는 개척 러시는 더욱 극심해졌다.

상소가 올라왔다. 이황의 상소였다. 이황의 상소는 의회를 반대하는 내용이 가득했지만 반대하는 이유가 황실의 안녕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끙끙거렸다.

의회에 찬성하는 이들에게 이황이 찬물을 뿌린 격이었다.

“충심이 대단하다. 그에게 영지를 내리겠다. 하지만 의회는 만들어져야 한다.”

신유성은 의회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궁합이 좋지. 하지만 황실은 자본주의와 궁합이 나쁘다.’

황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력은 물론 좋은 것이다. 신유성도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권력도 결국 보물과 같은 것. 결국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황실로 칼날을 향하게 될 뿐이었다.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도전을 받게 된다.

‘나라면 무서울 게 없지만.......’

신유성은 도전을 한다면 박살낼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후손들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상속이란 것이 꼭 똑똑한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법은 없으니까.

운이 좋으면 상속하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운명이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신유성은 최대한 도전을 받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살아있을 때 해야 해.’

죽은 다음에 흐름을 만들려고 하면 막대한 희생을 치르게 될 뿐. 그렇기에 신유성은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며 상류층이 의회에 익숙해지는 것은 물론 백성들이 의회란 존재에 대해 배울 시간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회가 생겨서 제대로 굴러간다면 신유성은 정복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내정을 의회에 맡기고 정복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자식들은 외가에 맡기고 부인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가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전쟁 때문에 독수공방할 일은 없어지니까.

‘오늘은 뭘 먹지?’

상황을 모두 살핀 신유성은 곧바로 식사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

매일 더 맛있는 것을 먹으려는 노력은 멈추질 않았다.

이지번은 이조를 찾았다. 그리고 이조에 조선 출신 사람들을 집어넣은 뒤 단단히 당부했다.

“백성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한 사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문제가 없어야 할 것이며 청렴해야 한다. 백성들을 아껴야 한다. 만약 문제가 있는 인사를 천거할 경우에는 작당한 것으로 간주해 엄벌을 내리겠다.”

신유성이 하려는 의회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이지번은 시의원을 뽑는 일에 민감해졌다.

‘절대 욕심 많은 작자가 뽑혀선 안 돼!’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욕심 많은 자들이 제멋대로 착복하는 일을 상상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명나라처럼 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집으로 돌아온 이지번은 아들 이산해를 찾았다.

“또 연구하고 있었느냐?”

“네.”

으리으리한 집의 한쪽에는 이산해의 연구실이 만들어졌다.

“영주를 더 늘려야 한다. 너도 도와라.”

“안 됩니다. 연구해야만 합니다. 이건 폐하의 일입니다.”

“으음.”

원래라면 군말 없이 따랐을 이산해였다. 하지만 전기를 연구하는 일은 신유성을 위한 일. 황제의 일을 하겠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이지번은 과거 노비가 되었었던 조선 출신 양반들을 찾아가 힘을 보태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은혜를 입었다며 다들 흔쾌히 참가해주었다.

그렇게 이지번도 하나의 파벌을 만들었다.

이후 이지번은 이황은 물론 이이에게도 편지를 보내 자신을 지지하는 영주들을 많이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모스크바, 1569년 9월.

신국이 신유성에 의해 엄청난 변화를 다시 한 번 겪는 동안 모스크바에도 큰 이변이 생겼다.

차르인 이반 4세의 부인인 마리아가 사망한 것이었다. 25살 밖에 되지 않은 마리아의 죽음에 많은 이들은 의심을 품었다.

“차르가 독살한 것 아니겠나?”

“그럴 수도 있지.”

이반 4세는 마리아의 외모에 반해 결혼했지만 차차 마리아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다. 더구나 마리아는 이교도였다. 많은 이들이 이를 문제 삼아 걸고 넘어졌었다. 좋아하는 것도 사람들이 모두 문제가 많다고 말하면 조금씩 식기도 한다. 더구나 마리아는 아랫사람들이 전부 싫어했다. 마녀와 같다며 다들 싫어한 것이었다.

“차르는 미쳤어.”

악소문이 점점 퍼졌다. 차르가 아내를 독살했다는 소문은 점점 더 상세해지며 보야르들 사이에 퍼졌다.

사실 보야르들은 차르인 이반 4세에게 불만이 많았다. 잔혹한 성정의 이반 4세는 한 번 권력을 쥔 뒤로 무자비하게 굴었다. 이 때문에 보야르들은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명령을 따랐다. 하지만 빈틈이 없을 것 같던 차르의 지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차르의 밑에 있다가는 전쟁터의 소모품으로 죽을 걸세. 나를 보라고. 내가 어떤 공을 세웠는데. 그런데 차르는 실패하자마자 나를 없애려고 발악했지. 자네도 내 꼴이 나지 않는다는 법이 없어.”

알렉산드로는 열심히 보야르들을 만나 설득했다.

마지막까지 설득에 응하지 않던 이들도 서서히 넘어왔다. 적당한 명분도 있었다.

“차르는 미쳤어. 광인을 군주로 모시는 것은 죄악이야.”

아내도 독살한 차르. 이것이 바로 명분이었다.

원래 보야르들 중에 이반 4세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려는 이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긴다는 확신도 없었고 만약 동료중에 누군가 배신하게 된다면 혼자 무모한 돌격을 하는 꼴이 되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렉산드로가 나타나 이것이 뒤집어졌다.

알렉산드로는 확실히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신국과 은밀히 밀무역을 하며 이익을 얻게 해주었다.

이쯤되니 실패할 경우 신국으로 도망치면 된다는 생각을 하나둘 하게 되었다.

국경의 보야르들은 신국의 원정군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에 이미 다 넘어왔다. 남은 것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뭉친 친차르 파벌이었다.

이들은 설득 시도를 하는 것조차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마리아가 죽으면서 불만을 품게 된 보야르는 알렉산드로의 표적이 되었다.

“알았네.”

결국 친차르파였던 보야르 하나가 넘어왔다. 이후 친차르파였던 보야르는 은근히 세력 규합에 들어갔다.

“이 정도면 더 기다릴 것도 없겠군.”

국경의 보야르들은 전부 신국에 붙기로 했다. 증거로 자식들을 하나둘 노부나가의 진영으로 보내고 있었다. 모두 후계자들이었다.

보야르들의 후계자들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이들을 위해 파티를 열었다. 후일 보야르들은 이제 신국의 영주가 될 몸들이기 때문에 소홀히 대접하지 않았다. 많은 영주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의회에서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세미온 스트로가노프는 노부나가와 마주했다.

“반갑군.”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자세한 얘기는 통역을 통해 하게 되었다. 세미온 스트로가노프는 노부나가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며 눈을 빛냈다.

‘이 사람이 원정군 사령관이니 잘 보인다면!’

세미온의 눈은 빛났다. 현재 세미온은 형제들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차르인 이반 4세에게 인정받는 상인 아니키 스트로가노프의 막내아들이지만 사실 가진 재산은 위의 두 형들에 비하면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

두 형들은 아니키 스트로가노프의 재산을 물려받아 잘 살고 있었으나 세미온은 아니었다. 그래서 기회가 생기자 신국과 밀무역을 하며 재산을 늘리고 있었다.

‘두 형들은 차르에게 붙었지만 난 아니다.’

아버지인 아니키 스트로가노프는 건강이 오늘 내일 하는 중이었다.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잠시 상행을 간다고 하고선 이렇게 노부나가를 찾아와 보야르들의 후계자들과 뒤섞여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차르를 친다면 저도 전쟁에 나갈 수 있을까요?”

“왜 그러나?”

“사실 저는 보야르가 아닙니다. 제 위로 두 형이 있는데 이들은 차르에게 붙었죠. 그래서 공을 세워 충성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런가?”

노부나가는 가만히 세미온을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 앞에 세미온은 저항하기가 힘들었다.

‘무슨 눈빛이!’

맹수와 같이 차가운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다. 주먹을 불끈 쥐고 세미온은 버텼다.

‘여기서 물러나면 그냥 작은 상인에 불과하다.’

큰 상인이 되려면 온갖 괴물들과 마주할 수 있어야만 했다. 아니키 스트로가노프가 가끔 들려준 이야기를 상기한 세미온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버텼다.

“형제들을 죽이겠다는 소린가?”

“저는 신국 사람입니다. 형제를 직접 죽이진 못하지만 신국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럼 형들이 살려달라고 한다면 어찌 할 건가?”

“그건.......”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냥 죽인다고 할까? 아니야 그러면 혈연도 쉽게 내버리는 놈을 어찌 믿냐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안한다고 한다면?’

쉽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려운 질문인가?”

어려운 질문 맞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전혀 어렵지 않다는 식으로 추궁했다.

“네, 어렵습니다.”

“그대는 어리석군.”

“죄송합니다.”

“대답하지 못한 점은 마음에 든다. 쉽게 선택했다면 널 베었을 거다.”

무슨 대답을 해도 죽었을 거란 사실에 세미온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선 형제를 쉽게 버리는 놈을 믿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적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을 형제란 이유로 살려주겠다는 인간을 곁에 둘 수도 없었다.

그러니 죽인다.

이것이 노부나가의 답이었다.

“보급에 힘쓰도록. 보급을 잘한다면 작은 영지 하나는 내주도록 하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은 폐하께 하고.”

“네!”

“나하고는 사이좋게 지내면 되네. 스트로가노프 가문의 당주가 되도록 돕지.”

“감사합니다!”

노부나가는 웃으며 술을 권했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노부나가는 파티를 십분 활용해 자신의 편을 늘리려고 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가 보야르들을 설득했다고 하지만 노부나가는 보야르들의 후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미온을 얻게 되었으니 루스인들과의 연결고리가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파티는 연일 벌어졌다. 보야르의 후계자들은 신국의 뛰어난 문화에 흠뻑 취했다. 척박한 모스크바의 생활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한 생활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야르들에게 알렸다. 이에 보야르들은 안심하고 알렉산드로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음모가 계속 진행되었다.

하지만 음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대체 어떤 놈이 이따위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냐!”

이반 4세를 헐뜯는 소문에 니키타 로마노비치는 버럭 성을 냈다. 니키타의 여동생은 아나스타샤, 차르인 이반 4세의 첫 번째 아내였다. 이후 니키타는 이반 4세의 신임을 얻었고 현재는 그랜드 보야르이며 트베리의 군주로 한창 전쟁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소문을 뿌린 놈들을 잡아들여!”

보야르의 이름 하나가 조사 결과 밝혀지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