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202화 (202/271)

0202 / 0271 ----------------------------------------------

러시

“진격한다. 최대한 빨리.”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하지만 신국 원정군은 진격해야만 했다. 보야르의 이름 하나가 모스크바에서 언급되며 니키타 로마노비치가 날뛰고 있었다.

이름이 언급된 보야르는 당연히 체포에 불응했다. 그리고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주변의 보야르들이 얼씨구나 하고 쳐들어가 짓밟아버린다. 그리고 재산을 나눠먹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신국에 복속하기로 한 보야르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알렉산드로와 내통하던 보야르들이 일제히 신국에 복속한다며 반기를 들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기병부터 간다.”

포병은 이동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기병이라면 단숨에 진격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의 명령이 떨어지자 원정군 기병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랄산맥에 대기하고 있던 이정의 부대에도 진격 명령이 떨어졌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곳과 이별할 때가 왔다.”

이정의 연설에 병사들은 다들 실실 웃었다. 요새의 생활이 최악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겨울에는 엄청나게 춥고 눈이 오면 한없이 삽질을 해야만 했다. 눈을 치우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래서 떠난다고 하니 다들 웃는 것이었다.

“늦게 준비하는 놈은 남겨두고 가겠다.”

순간 바퀴벌레처럼 병사들은 사방으로 퍼졌다. 이정이 정말 두고 간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혹시라도 본보기로 누군가 하나 남겨두고 갈지도 모르니까. 그것이 자신이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 얼른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드디어 전쟁이군요.”

“너무 좋아하지 마라.”

신립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움직이자 이순신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출한 이순신은 결국 이정의 밑으로 들어왔다. 부자가 한 부대에서 싸우게 된 것이었다.

“형님도 참.”

신립은 웃음을 지우고 얼른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반면 이순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얼마나 죽게 될까?’

신국이 더욱 성장하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죽어갈 사람들이 떠올라 그리 들뜨지 않았다.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한 이순신은 이를 악물었다. 군인인 이상 싸워야했다. 적이 있으면 죽여야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죽음을 기억하며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기병들의 진격은 바람과 같았다. 겨울이 아직 오지 않은 벌판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신국에 복속한 보야르들의 군대에 합류했다.

니키타 로마노비치는 사실을 이반 4세에게 알리는 한편 모스크바의 방어를 일단 굳혔다.

‘방어를 해야 하는데.......’

신국과의 전쟁에서 이미 한 번 패한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공격해 들어가는 것에 망설였다. 하지만 마냥 지키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반 4세는 오스만 제국과 전쟁 중이었다. 전쟁을 하는데 보급은 필수였다. 배신한 보야르들은 바로 보급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이반 4세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보야르들의 배신은 니키타에겐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만큼 알렉산드로의 행보가 은밀했다는 소리였다.

‘방어를 한다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차르가 오지 않는다면 몰아낼 수 없다.’

답답했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더구나 이반 4세의 패배는 황실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었다. 백성들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공격한다.”

원래라면 방어를 하며 반란군의 명분이 거짓된 것임을 알려 뒤흔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국이 개입한 이상 방어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또 다른 배신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모스크바를 넘길 수 있었다.

신국 기병들은 계속 달렸다. 그리고 랴잔에 집결했다. 랴잔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은 니키타가 가로 막고 있었다.

“랴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랴잔의 보야르는 한껏 웃으며 신국의 군대를 반겼다. 그렇지 않아도 모스크바군이 언제 밀고 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버틸 수는 있었으나 피해가 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신국이 온 이상 피해를 분담하게 되었다. 전력이 상승했으니 승전은 물론 모스크바로 진격까지도 가능했다.

“진격은 어떻습니까?”

“아직 포병이 오지 못했습니다. 포병이 도착할 때까지 적을 가둬두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포병은 랴잔에도 있었다. 그러나 방어를 위한 것이라 공격을 하려면 한참 모자랐다.

신국 기병들은 랴잔을 돌아다니며 경계에 들어갔다.

양측의 대립은 금방 깨졌다. 겨울로 들어선 어느 날의 새벽, 선공을 취한 것은 니키타가 지휘하는 모스크바군이었다.

모스크바군은 천천히 진격했다. 이른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자 이정의 부대는 정찰을 위해 움직였다.

“조심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정은 정찰을 나가는 이순신을 걱정했다. 아들을 험지로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 없었다. 만약 이순신을 안전한 곳에 계속 둔다면 부하들의 신뢰를 까먹게 된다.

결국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지휘관이 되어야만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이순신이 기병들을 이끌고 나서는 모습을 보며 이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의 기온은 무척이나 싸늘했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라쟌의 위치도 따스한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추위 속에서 말을 타고 달려 길을 탐색하던 이순신은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정지!”

부대가 정지하자 바람소리와 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처음에는 너무나 작아 착각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착각이 아니었다.

우중충한 회색 하늘 아래 보이는 희미한 검은 그림자들.

‘적이다.’

두 말할 것도 없는 적이었다.

“너는 얼른 돌아가서 전투 준비를 하라고 일러라.”

“대장은 어쩌려고요?”

“난 좀 더 살펴보고 가겠다.”

명령에 신립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걱정마라.”

이순신은 말을 달렸다. 그를 따라 부하들도 함께 달렸다. 멀리 아른거리는 적의 그림자를 향해서.

“적 정찰병입니다!”

이순신의 모습은 모스크바군에게도 보였다.

“가서 잡는다!”

기병들이 움직였다. 보통 기병은 아니었다. 코사크 기병이었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늑대처럼 코사크 기병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이순신의 정찰대와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정찰대는 달려오는 코사크 기병을 보고 우회해 본대를 살피려 했다. 적의 규모와 구성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제대로 된다면 적을 상대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반면 적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방어 작전을 짜는데 차질이 올 수 있었다. 잘못하면 공격 한 방에 무너질 수 있었다.

‘끈질기군.’

이순신은 정찰 실패를 예감했다.

“돌아간다.”

미련은 빨리 버렸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이순신이 말 머리를 돌리자 정찰대가 뒤따랐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우회하니 코사크 기병은 헛힘만 쓴 꼴이 되었다.

“쫓지 마라!”

“쳇!”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순신은 바로 퇴각하지 않았다. 거리를 벌린 뒤 적이 더 이상 쫓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아주 먼 거리를 우회했다. 모스크바군은 전방으로만 정찰병을 보낸 탓에 우회한 이순신을 막지는 못했다.

‘포병은 별로 없군.’

다행이었다. 적에게 포병이 별로 없다면 방어가 좀 더 수월해지니까.

정찰이 끝나자 이순신은 서둘러 본진으로 돌아갔다.

정찰병들은 전투 시작 직전까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이순신 이후에는 신립이 다시 정찰을 나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적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냥 방어만 하는 것도 애매하군.’

원정군의 부대장들은 모두 공격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방어가 피해가 적긴 하지만 지금은 공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포병도 별로 없는 적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요.”

“적의 기병은 어쩔 셈입니까? 잘못하면 피해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랴잔을 지키는 것입니다.”

“차라리 적을 분쇄하고 빨리 모스크바에 입성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모두 공적을 탐내고 있었다.

“방어를 우선해야 합니다. 적을 공격했다가 피해가 커지면 사령관께서 좋게 생각하진 않으실 겁니다.”

이정은 공적을 탐하는 부대장들에게 은근히 경고를 날렸다. 뒤늦게 위험을 깨달은 부대장들은 헛기침을 하며 방어에 동의했다. 허나 한 명은 고개를 흔들며 공격을 주장했다.

“이대로 방어만 할 순 없습니다. 적을 쉽게 접근하게 둬선 안 되죠.”

“설마 그들을 쓸 셈입니까?”

회의에서 언급된 존재들은 바로 척탄기병이었다. 척탄병에서 조금 더 나아간 이들로 폭탄이 달린 화살을 적을 향해 쏘는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뭐 어떻습니까? 곧 있으면 보급이 올 텐데.”

“그럼 한 번 보내봅시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척탄기병이 출동했다.

척탄기병. 이들은 폭탄을 투척하던 척탄병에서 한층 더 발전해 말을 타고 움직이게 되었다. 이들이 쏘는 화살은 보통 화살보다 길었다. 화살의 끝에는 심지가 붙은 폭탄이 달려있었다.

신기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신기전은 화약의 힘으로 발사되는 것이지만 척탄병이 쓰는 폭탄화살은 화살촉이 있어야 할 곳에 폭탄이 달려있었다.

심지에 불을 붙이고 쏘면 날아간다. 그리고 목표에 명중하는 순간 폭발한다.

몇 번이고 실험을 통해 개발된 심지는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도 꺼지지 않았다.

폭탄 화살이기 때문에 무거워 멀리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사람이 팔로 던지는 것보다는 훨씬 멀리 날아갔다.

“가자.”

척탄기병이 말을 타고 달렸다. 적의 진격로로 예상되는 곳은 피하고 우회해 적의 측면으로 접근했다.

“가자.”

근처에 도달할 때까지 방해는 없었다. 진격을 서두르던 모스크바군은 정찰에 약간 소홀한 면이 있었다. 더구나 날씨도 별로 좋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눈이 녹으며 젖은 흙이 패였다. 전투마들의 격렬한 돌격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모스크바군에 전달되었다. 소란과 함께 병사들이 움직이고 대기하고 있던 코사크 기병들이 앞을 가로막기 위해 달려왔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알아서 쏴라!”

척탄기병들이 흩어졌다. 그리고는 화살을 쟀다. 폭탄 화살은 아니었다. 평범한 화살이었다.

여진 출신인 척탄 기병들에게는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양쪽 다 해오던 터라 익숙했으며 군대에서 훈련을 받으며 달인이 되었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코사크 기병의 말을 노렸다. 사람보다는 말이 노릴 구석이 더 많았으니까.

화살에 맞은 말들은 금방 죽지 않고 날뛰었다. 낙마는 당연한 일.

낙마한 것만으로 전투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코사크 기병들은 결국 척탄기병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은 어느 정도 벌어주었다. 모스크바군은 척탄기병의 접근에 대비해 창병들이 창을 세웠다.

기병의 돌격을 막기 위한 창진이었다. 기병들의 눈에는 무수히 바늘이 돋아난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하지만 척탄 기병은 직접 타격할 생각 따윈 없었다.

돌격을 하다 폭탄 화살의 사정거리에서 멈추더니 심지에 불을 붙였다. 이런 모습에 모스크바군은 의아해했으나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화살을 쏘기에도 먼 거리였고 총을 쏴도 확실히 닿지 않을 거리였으니까.

준비가 끝나자 척탄기병들은 폭탄화살을 쟀다. 이어서 폭탄화살이 허공을 날았다.

그제야 방패를 든 이들이 나서서 앞을 막았다. 방패로 화살 공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화살이 떨어지는 순간 폭발했다. 폭탄 속에 있던 쇳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상처를 입혔다. 막았던 방패는 화약의 폭발에 부서졌다.

“아아아아악!”

모스크바군의 비명이 멀리서 들려왔지만 척탄기병들은 계속 폭탄화살을 날렸다. 계속해서 폭발이 일어나자 피해가 커졌다.

“저 놈들을 막아! 돌격해!”

후미에 있던 기병들을 재촉해 척탄기병을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폭탄화살을 날린 척탄기병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화살 떨어졌다. 돌아가자.”

등을 보이며 도망치자 모스크바군 기병들은 따라잡지 못했다.

이후 척탄기병들은 모스크바군 근처에 출몰하며 공포를 안겨주었다. 그럴 때마가 기병들이 나섰고 이들과의 전투에서 척탄기병은 언제나 승리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모스크바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