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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니키타 로마노비치는 미칠 것 같았다.
‘젠장! 벌써부터 이러면!’
신국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는 마련했다. 최근 들어 전장은 변하고 있었다. 신국이 이용한 신기전은 곧 모방되어 오스만 제국에서도 사용했다. 차르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개발했으며 유럽 국가들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니키타는 척탄병은 물론 신기전까지 끌고 왔다. 시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신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기를 사용했다.
“무엇이었나?”
“폭탄이 달란 화살이었습니다.”
“어이없는 놈들이군.”
사실 화살은 전신 갑옷을 입거나 방패를 들면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폭탄 화살은 막아봐야 소용없었다. 폭발하며 뿌리는 쇳가루가 눈에라도 들어가면 그것으로 전투력은 끝이었다.
실명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폭탄이 방패에 닿거나 하면 터졌다. 화살 앞부분의 폭탄이 깨지며 심지의 불이 화약에 닿기 때문이었다.
‘말을 타고 폭탄을 쏘고 가다니.’
알고 보면 무척이나 간단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작은 차이가 결국 전장에서 승부를 가르려 하고 있었다.
“진군 속도를 올린다!”
되돌아갈 순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순 없어!’
절대 돌아갈 수 없었다. 반란을 진압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냥 돌아간다면 현재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사태를 관망하는 이들이 일시에 신국에 붙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반 4세의 지배력이 결국 사라졌다고 판단한 이들이 신국이란 배로 갈아탈 수도 있었다.
배신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부 죽더라도 물러나선 안 되는 전투가 있는 법이었다.
허나, 니키타의 마음속에서는 절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척탄 기병의 등장으로 피해를 입고 군의 사기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무기가 준비되어있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면 아찔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품어선 안 되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니키타는 갈등했다.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갈등했다.
‘가문을 지켜야한다.’
로마노프가를 지키고자 하는 일념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진군 속도를 올리자 피해가 척탄 기병에 의한 피해는 줄어들었지만 탈영이 늘어났다. 겨울 초입이라고 하지만 매서운 한파와 떨어진 사기 때문에 탈영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을 잡기 위해 추격대를 보내기는 했으나 잡힌 탈영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병사 몇 명을 본보기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죽이는 것으로 탈영을 방지할 뿐이었다.
전투는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사기는 최악이었다. 더구나 갑작스럽게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폭설이 오자 전투는 중단이었다. 돌격하겠다고 달려가야 표적 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저 상대가 기습을 가해오지 않을까 방비하는 것이 전부였다.
니키타는 풀리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폭설로 인해 고생하는 것은 신국 원정군도 마찬가지였다. 기병들은 빠르게 이동한 덕분에 문제가 없었으나 보병과 포병이 문제였다.
“어으, 뒤지겠네.”
“내 코 붙어있냐? 감각이 없어.”
“이거나 먹어라.”
한 병사가 방귀를 뀐 뒤 움켜쥐고는 코에다 뿌렸다.
“크악! 이 자식이! 더럽게!”
“코 멀쩡하네.”
다른 병사들은 이를 보며 낄낄 거렸다. 진격이 멈췄다. 폭설 때문에 이동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공병들은 눈을 이용해 바람을 피할 이글루를 지었다. 아메리카 북부의 원주미들이 만드는 방식은 이미 공병들에게 전수되었던 것이다.
‘이러면 좋지 않은데.’
뒤늦게 포병과 함께 움직이던 노부나가는 인상을 구겼다. 진격이 멈췄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치고 들어가 쓸어버리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랴잔에서 적과 대치중입니다.”
“그쪽에도 눈이 오나?”
“네.”
폭설을 뚫고 기적적으로 전령이 도착했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 품에 넣고 다니던 술병과 사탕 그리고 두툼한 깃털로 만든 방한복 세트가 아니었다면 얼어 죽었을 것이다.
‘당분간 전투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반 4세가 시간을 번 게 되는데.’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도 모스크바군을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원정을 나갔던 이반 4세의 군대가 돌아오기 전에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에 실패하고 이반 4세가 멀쩡하게 모스크바로 돌아와 배신한 보야르들을 정리한다면 두 번 다시 적의 분열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신국이 차르국의 배신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소문이 다른나라에서도 돌면 앞으로 다른 나라들을 분열시키기 어려웠다.
니키타가 물러설 수 없는 것처럼 노부나가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혜를 쥐어짜던 노부나가는 알렉산드로를 불렀다.
노부나가와 만남을 가진 알렉산드로는 잔뜩 긴장하며 부하들을 불렀다.
“이제부터 우린 모스크바로 간다.”
“네? 이렇게 눈이 오는데요?”
“그러니까 간다.”
목숨을 건 여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었다.
“성공하면 니키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모스크바에 가서 할 일은 하나였다. 모스크바를 지키는 자들을 신국에 복속시킬 것.
현재 모스크바의 상황은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니키타가 반란을 진압한다며 군을 대거 이끌고 랴잔으로 향한 탓이었다.
‘꼭 해내야 해.’
노부나가는 알렉산드로에게 잔뜩 겁을 주었다. 이반 4세가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니 알렉산드로는 불안에 떨었다.
이반 4세의 잔혹함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반 4세가 돌아와 계획이 틀어지면 세력을 만들어 의회에 입성하고자 하는 꿈이 무너진다. 그래서 알렉산드로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보상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알렉산드로는 누구보다 의욕을 불태웠다.
상대를 잘 파악하고 있던 노부나가는 말 몇 마디로 알렉산드로를 움직이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평소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상대와 평소에 아무런 교류도 없고 대화도 하지 않았다면 막대한 보상을 약속해야 겨우 이룰 수 있을 일이었다.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일이었으니까.
알렉산드로는 부하들을 이끌고 우선 랴잔으로 먼저 향했다.
한편, 소식을 들은 이반 4세는 불같이 분노했다.
“이런 썩을 놈들! 감히 뒤통수를 쳐! 다 죽여 버리겠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반 4세가 날뛰었다.
근처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광기에 물든 이반 4세의 곁에 있다가 맞아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은 결국 접었다. 그리고 후퇴하자 오스만 제국군이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이반 4세를 괴롭혔다.
쳐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후퇴할 땐 아니었다.
싸움 걸어놓고 후퇴한다고 적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얻어맞은 만큼 되갚아 주고 싶은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였다.
이반 4세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오스만 제국군을 뿌리쳐야 했다. 병력 피해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결국 퇴각 중간에 오스만 제국군과 또 다시 한 바탕 붙고 말았다. 그제야 오스만 제국군은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반 4세는 매일 같이 날뛰었다.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처럼.
아랫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어서 돌아가야 해.’
회군 속도를 높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만약 누군가 실수해서 회군이 느려진다? 그럼 실수한 사람은 물론 실수한 사람의 상관까지 이반 4세의 표적이 될 것이다.
분노의 먹이로 실컷 얻어맞다가 운 좋으면 사는 거고 아니면 죽는 거다.
공포로 지배하는 이반 4세의 위엄은 아직 죽지 않았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바탕 폭풍이 몰아닥치고 있었지만 이러한 사정이 금방 유럽의 각 국가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스크바 차르국 입장에서는 침략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 흘러들어가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입단속을 했다. 신국의 입장에서도 딴 놈이 숟가락 얹는 것을 우려해 침묵했다. 그러니 첩자를 보내 파악하기 전에는 알려질 일이 없었다.
에스파냐.
펠리페 2세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며 계속 오스만 제국을 압박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더구나 이반 4세까지 오스만 제국에 전투를 걸었기에 더욱 신이 나서 압박했다.
그러던 차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사촌인 막시밀리안 2세과 여동생인 마리아의 딸, 안나가 바로 대상이었다.
“그러니까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면 결국 나와 결혼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습니다.”
사신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막시밀리안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지만 그 이전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다. 펠리페 2세도 에스파냐의 황제이자 여러 지역의 군주였지만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다.
모두 한 가족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가문은 자신들의 소유를 다른 가문에 넘기지 않고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킬 목적으로 결국 이와 같은 결혼을 추진 중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다.”
사신이 물러갔다. 형식적인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허락을 구하는 허례는 필요했다. 허례조차 하지 않으면 가문이 가볍게 여겨질 수도 있으며 또한 상대가 무시당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사촌이라지만 그래도 권력자였다. 함부로 대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어린 아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조카를 아내로 들이려 하는 펠리페 2세였다.
‘분열을 막아야 한다. 승리가 필요해.’
사신이 물러가고 펠리페 2세는 지도를 보았다. 현재 가톨릭교의 상황은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영국은 성공회가 그리고 일부 다른 지역에서는 신교가 점점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각한 지역 중 하나는 바로 프랑스였다.
프랑스의 개신교 신자들, 위그노와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톨릭의 숙적인 오스만 제국과 싸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부 분열로 인한 전쟁에 휘말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펠리페 2세로서는 개신교가 퍼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는 더욱 필요했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선 분열은 있어선 안 되는 일.
합스부르크 가문마저 권력 때문에 분열한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래서 조카를 아내로 받아들여 더욱 결속을 다지려는 것이었다. 먼저 죽은 어린 아내는 프랑스 왕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만약 아들을 낳았다면 합스부르크 가문은 프랑스도 집어 삼켜 더욱 강대해질 수 있었으나 실패했다. 그렇기에 조카와 결혼하는 것으로 다른 부분을 단단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친척간의 결혼을 통해 더욱 결속을 다지려고 할 때, 에스파냐에 상당한 감정을 품은 잉글랜드는 가난과 싸우고 있었다.
“젠장. 내가 양보다 못하단 거야 뭐야?”
“못하지. 양보다 돈이 안 된다는 소리잖아? 크크크크크.”
주점에서 남정네 둘이 술에 취해 떠들었다. 이들은 바로 지주에게 쫓겨난 소작농들이었다. 현재 잉글랜드에서는 한 가지가 유행하고 있었다.
양을 키우는 것.
양을 키우는 것이 소작을 주는 것보다 훨씬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지주들은 농사 대신 목축을 택했다. 이로 인해 소작농들은 살 곳을 잃었다.
직업 자체가 사라진 것이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소작농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한 바탕 농민 봉기가 일어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없었다. 지주들은 돈이 되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힘없는 소작농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지방으로 가봐야 농사지을 땅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가까운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무슨 짓이든 해서 돈을 벌려는 것이었다.
두 남자도 그런 부류였다.
주점에는 음울한 분위기가 흘렀다. 시끌벅적하지만 온갖 부정적인 말들과 욕설이 오가는 현장이었다. 시끄러워도 음울한 이유였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나며 음울한 분위기가 깨졌다.
“이봐! 일자리가 필요한 녀석 여기 있나?”
“뭔데?”
“나와 배에 타지 않겠나? 난 향신료를 가지러 인도에 갈 거다!”
“오오! 그래?”
배를 타는 일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한 번 대박을 치면 좋다. 자금을 좀 모아서 최근 신대륙으로 알려진 곳에 가면 땅이 널려 있다고 했다. 소작농 출신들은 아메리카에 가서 자기 땅을 갖기를 원했다. 하지만 개척도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기반을 마련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 미래를 생각하는 이들은 뱃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자리라니 달라붙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데 댁은 누군데?”
“내 이름은 프란시스 드레이크다!”
프란시스 드레이크, 훗날 잉글랜드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될 남자의 상황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빌어먹을 에스파냐 놈들!’
드레이크는 산후안 디 울루아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떠올렸다.
사촌인 존 호킨스와 함께 사략선에 탔던 드레이크는 산후안 디 울루아에서 에스파냐군과 싸우게 되었다. 전력은 당연히 사략 해적인 드레이크 쪽이 열세였다.
결국 전투는 패하고 약 80명 정도의 선원들만이 잉글랜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프란시스 드레이크였다.
‘두고 보자 에스파냐 놈들!’
이후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에스파냐에 대한 원한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인도로 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벌어서 더 좋은 배를 구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에스파냐와 싸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좋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진데! 배 타고 죽지 뭐!”
“술이나 돌려!”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술을 한잔씩 돌렸다. 그렇게 사략선에 탈 선원을 모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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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