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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정원
봄이 왔다. 노부나가는 이미 모스크바 차르국을 점령했지만 신유성에게는 전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만 도착했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이상 결국 전권을 내려줘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제국을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신유성은 답답함을 느꼈다.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문제를.’
모스크바의 문제를 듣고 신유성은 상황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외교부터 주변의 영지들의 지원 상황까지. 하지만 질문을 던지면 답은 몇 개월 후에 돌아온다. 그때 가서 답을 듣고 명령을 내려 봐야 쓸모없다.
그러니 노부나가가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조금 다르게 나오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화기! 전기! 전화기! 전기!’
답답한 마음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했다. 아예 답을 몰랐다면 기존의 방법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라는 답을 알고 있는 신유성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무연화약!’
그리고 화약 개발에도 힘을 기울였다.
후장식 소총을 만들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유성은 탄피 개발까지 끝냈다. 하지만 문제는 화약이었다.
흑색 화약을 사용하면 대량의 그을음이 발생한다. 이것은 정밀해야 할 후장식 총기에 치명적이었다. 그을음이 총기 내부에 차게 되면 고장 나기 쉬웠다. 그을음은 제대로 제거해주지 않으면 총기를 부식시킬 정도로 좋지 않았다. 이래서 전장식 소총이 있지만 활이나 쇠뇌가 아직도 쓸 만한 것이었다.
특히 활의 경우에는 숙련된 궁사가 쏠 땐 소총보다 더 뛰어난 연사력을 보여주었다.
활과 쇠뇌를 뛰어넘으려면 무연화약은 필수였다. 하지만 무연화약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화학 공장을 지어야 했다.
‘황산. 황산. 황산.’
무연화약이 개발되면 증기기관과 같은 혁명이 일어난다. 전기도 마찬가지였다.
신유성은 고민을 양쪽 다 연구를 했다. 낮에는 화약, 밤에는 전기에 몰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물건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됐다!”
기초적인 발전기였다. 증기 기관을 이용한 발전기였다. 증기를 이용해 코일을 회전시키는 기계를 만든 것이었다. 코일이 회전하면서 생기는 전기.
이것으로 다시 모터를 돌렸다.
‘전구가 있으면 좀 좋아?’
하지만 전구는 정말 몰랐다. 문명인으로서 전구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전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가르쳐주니까 대충 어떻다는 것만 듣고 넘긴 것이 다였다.
“폐하! 이것은!”
잠시 딴 생각하는데 옆에서 이산해가 흥분해 날뛰었다. 전기에 대한 연구를 해보았지만 대충 끼워 맞추기 식으로 이론을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제대로 된 개념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에 기초를 이용하는 응용과학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전기를 보고 이산해는 깨달았다.
‘모든 것은 저 안에 있다!’
자석과 코일을 보며 이산해는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은 이산해는 정신없이 뭔가 막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신유성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비켜주었다.
‘깨달음을 방해하면 안 되지.’
“안으로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 그리고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라.”
추상같은 황제의 명령에 황실 친위대는 조용히 연구실을 겹겹이 에워쌌다.
철통같은 경비에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이산해는 전기에 대한 것을 신유성에게 보고했다.
“수고했다. 참으로 장하다. 바라는 것이 있는가?”
“지금은 그저 쉬고 싶습니다.”
“그래,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이산해가 만든 자료를 읽어보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신유성이 원하는 것은 원리의 이해. 이산해의 자료를 읽으며 신유성은 금방 원리를 파악했다.
“흐흐흐흐.”
‘전구 그리고 전화기!’
신유성은 당장 공조의 장인들을 불러 자료를 뿌렸다. 이제 겨우 전기의 개념을 잡았을 뿐이었다. 앞으로 이를 이용해 무엇을 만들게 될지는 오직 장인들의 손에 달려있었다.
장인들은 전기의 자료를 보고는 연구에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신유성이 만든 물건을 보고 전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미치기 일보직전에 자료가 배포되니 달려드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연화약!’
신유성은 전기 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하자 다시 다른 곳에 관심을 쏟았다.
“폐하께서 요즘 또 개발에 열중하시고 계십니다.”
“의회는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인 건 압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 해야 합니다.”
현재, 한양에는 신국 전역에서 모인 의회 관련자들로 바글거렸다. 영주가 직접오거나 아니면 영주의 대리인이 직접 왔다.
이로 인해 한양의 집값은 더욱 뛰고 있었다. 의원이 될 이들에게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큰 집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할 정도.
하지만 한양에서 괜찮은 집은 구하기 힘들었다. 땅값이 올라가니 집은 예전처럼 짓지도 못했다.
마당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집들은 이층 삼층 위로 솟기 시작했다. 폭을 좁힌 대신 위로 올린 것이었다. 이런 집에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여럿이 같이 살기도 했다. 덕분에 돈을 버는 것은 건설업자들이었다.
한양은 그야말로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집이 헐리고 지어지고. 사람이 모이고.
백화점은 연일 인산인해였다. 세계의 모든 거이 모인다는 백화점이라 돈 좀 있다 싶은 이들은 전부 백화점에 몰려갔다. 돈이 없어도 백화점에 가서 구경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면 범죄자들이 슬슬 기승을 부릴 수도 있었다. 허나, 한양에서는 범죄자가 날뛸 수 없었다.
“요전에도 어떤 미친놈이 약을 들여오려고 했다지요?”
“다 잡았습니다.”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감히 어딜.”
어둠 속에서 회의를 나누는 이들 중 한 명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핫토리 한조였다.
“한양은 신이 계신 곳이요. 이곳에서 불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신성모독이요.”
“맞습니다.”
신유성을 신처럼 모시는 이들의 은밀한 모임이었다.
“요즘 난리치는 영주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다들 조용히 조선어를 공부할 뿐이죠.”
“그쪽으로 좀 더 신경 씁시다. 폐하께선 조선어로 연설하실 테니. 의회의 의원이 되려면 당연히 폐하의 말을 직접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그림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균의 집에는 손님들이 있었다. 빛나는화살과 틀링기트족의 족장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집을 구하지 않았다. 원균이 극진히 대접하니 따로 집을 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나중에는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갈 생각이었고 후일 대리인을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원균은 자신의 집에 머물면 된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 집에 머물다보면 외부인이 보기에는 한 패로 보이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에 권하는 것이었다. 절대 손해라고만 할 순 없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틀링기트족의 족장은 연일 감탄을 하며 지냈다.
‘이게 다 무엇인가? 여긴 신들의 세상인가?’
한양까지 오면서 본 것들은 모두 신기했다. 하지만 한양을 보는 순간 경악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시장에 갔을 때는 깜짝 놀랐다.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보였다.
이후 틀링기트족의 족장은 한양의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집중했다.
‘뒤쳐지면 안 돼.’
하나라도 더 배워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 정도 가지고 뭘요.”
그리고 원균과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원균의 집안은 돈이 많아 보였다. 한양에서 꽤 큰 집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런 판단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동하며 생활하던 족장에겐 집이란 것도 신기했지만 신국의 문화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부자인 원균과 친하게 지내면 얻을 것이 많으리라 판단했다.
“앞으로 친하게 지냅시다.”
“하하, 당연한 말씀을! 자! 한잔 쭉 하시지요!”
바로 옆에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시고 있어서 내린 판단은 아니었다.
빛나는화살과 틀링기트족의 족장을 접대한 원균은 한양의 동향에 대해 살폈다.
‘여전히 강하구나.’
황궁을 바라보는 원균은 가슴이 뿌듯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양은 예전보다 더 발전했다.
‘드디어 남만인들을 치는 것인가?’
원균의 가슴속에는 호승심이 치솟았다. 한양으로 오면서 본 전열함 2척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신국의 거대함을 고스란히 배로 표현한 것 같았다.
‘전투를 한다면 절대 못 이긴다.’
갤리온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상대로 보였다. 엄청난 전열함은 더 많이 찍어낼 여유가 있으면서도 찍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다른 배들을 찍어내느라 바쁘단 것이 이유였다.
‘역시 폐하다.’
원균은 신유성이 영주들을 비롯해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라면 그냥 전열함만 찍었다.’
그리고 새로 얻게 될 땅 전부 자신의 것이라 선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유성은 그러지 않았다. 백성들에게 나눠 먹을 기회를 주었다. 이것을 두고 원균은 신유성이 너무 무른 것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계산이 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신유성의 행동에 고개를 흔든다.
영주 열풍이 불면서 신국 사람들은 무척이나 호전적으로 변했다.
전쟁 아니면 개척.
이 두 가지 중 하나는 꼭 머릿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대리인을 두고 돌아가야겠다.’
첫 회의만 참석하고 나면 바로 개척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한양에 영주들 혹은 영주 대리인들이 바글거리며 의회를 기다리는 동안, 노부나가의 원정군은 리보니아로 진격했다.
차르국, 아니 이제는 루스라고 명명된 지역은 알렉산드로와 니키타에게 맡겼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포병들의 처리는 니키타가 맡았다. 이들을 흡수하게 되면 진정한 군대로 거듭날 수 있음에도 노부나가는 신경을 껐다.
만약 니키타가 반란을 꿈꾼다면 바로 죽을 테니까.
알렉산드로는 물론 니키타의 곁에도 정보기관의 첩보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정식으로 교육 받은 닌자출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가 전향하며 넘어온 루스인들 중 신국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른 이들을 뽑아 첩보원으로 교육해 배치한 것이었다.
이들은 평범한 군인으로 위장하고 알렉산드로는 물론 니키타의 군대에 스며들었다. 몇몇은 보야르들의 신임을 받는 부하들이 되었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들이 나서서 소식을 알리게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신국의 움직임에 리보니아는 난리가 났다.
“빌어먹을! 신국이 옵니다!”
“뭐시라?”
리보니아는 상황이 복잡했다. 원래는 리보니아 연맹이 있었으나 이반 4세와 전쟁을 한 이후로 연맹은 해체되었다. 그리고 일부가 리투아니아에 그리고 다른 일부는 폴란드에 속하게 되었다. 여기에 스웨덴과 덴마크까지 이쪽으로 끼어들었다. 전략적으로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상당히 복잡한 땅이었다.
리보니아는 어찌 보면 이리저리 찢겨진 상황이라고 보면 딱 좋았다. 이반 4세의 러시아에 넘어간 땅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노부나가가 밀고 들어갔다. 명분은 간단했다.
“항복하십시오.”
노부나가가 보낸 사신은 정중했으나 내용은 불손하다 할 수 있었다.
“항복? 지금 항복이라 했나?”
“그렇습니다. 항복하시면 영주의 자리를 보장합니다.”
“허허. 허허허허.”
리투아니아 대공령의 대공은 너털거리며 웃었다.
“살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가?”
“제가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가지 못한다면 바로 전쟁입니다.”
“백성들이 그대들을 따를 거라 믿나?”
“그거야 사령관님이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사신은 담담하게 자신이 할 말만 했다.
노부나가는 가장 먼저 표적으로 삼은 리투아니아 대공령에 사신을 보냈다. 국경에 대군이 진을 치고 있었다. 손가락만 까딱한다면 수많은 기병들이 리투아니아를 유린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대공은 전쟁을 준비하긴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설마 동방의 악마들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갈등이 일어났다. 항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국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대체 그 큰 나라가 어떻게.’
자신이 없는 근거는 바로 차르국의 멸망이었다.
신국과 차르국이 싸우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르가 죽고 나라 전체가 신국에 넘어갔다는 소식은 듣지도 못했다.
엄청난 기세로 싸움을 거는 폭군 이반 4세가 전쟁에서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느새 이웃한 땅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운 이웃은 굴복하라며 협박 중이었다. 아주 고약한 이웃이었다.
‘이길 수 없다.’
싸운 과정을 안다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지의 적은 위험했다. 과거에 동방에서 온 악마들은 저항하는 자들을 학살했었다.
“정말 영주 자리를 주는 건가? 자치권도?”
“종교의 자유도 주어집니다. 여기 신국 영주들의 권리와 의무가 적혀 있으니 살펴보시지요.”
사신은 가지고 온 책자를 넘겼다. 고급스러운, 얇은 책자를 받아서 읽던 대공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리투아니아가 신국의 품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