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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정원
리투아니아의 대공은 귀족들과 마주했다. 싸워보지도 않고 복속하기로 정한 것에 대한 반발을 가진 귀족들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이교도들에게 그냥 고개를 숙이다니요!”
이교도 운운하지만 귀족이 노리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다.”
“그래도 이교도와 손을 잡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너희들의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꽤 많은 숫자였다. 허나 리투아니아의 대공은 피식 웃었다.
“그런가? 하지만 나는 잘못이 없다. 그대가 나의 자리를 노리고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다.”
“하! 무슨 억지를! 대공! 설마 루블린 협정을 잊은 겁니까?”
“거기까지만 하라.”
모스크바 대공국과 전쟁을 하던 리투아니아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다. 그리고 상당수 귀족들은 폴란드로 기울고 있었다.
폴란드의 왕, 지그문트 2세의 도움을 받아 모스크바 차르국에 대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힘이 없는 리투아니아의 대공보다는 폴란드의 왕이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매력적인 군주였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루블린 합병이 이뤄졌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공동으로 선출한 통치자가 다스리는 형태로 변했다.
다시 말하자면 리투아니아의 대공은 사실상 신국에 복속할 결정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명백한 월권 행위였다.
그러나 루블린 합병 조약이 체결된 것은 1569년 7월 1일.
폴란드의 왕인 지그문트 2세가 다스리는, 폴란드의 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리투아니아의 대공이 모든 것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합병했다고 대공의 영지와 권리를 박탈했다면 불안을 느낀 리투아니아인들이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대공은 많은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국이 넘어오자 월권을 한 것이었다.
복속이 바로 문제였다.
‘어느 놈에게 고개를 숙이나 마찬가지라면.’
피해가 덜 가는 쪽에 숙이는 편이 나았다. 폴란드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종교적으로, 그리고 명분상으로도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실리를 따진다면 신국에 숙이는 것이 더 나았다.
대공은 중간에 끼어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끼어들어 피해를 입기보다 차라리 실리를 택한 것이었다.
“내 결정을 따를 수 없다면 따르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나의 결정은 변함없다. 나는 신국의 지배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럴 순 없다고!”
선동하던 귀족은 검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대공의 곁에 있던 남자가 움직이며 권총을 겨눴다. 심지에는 어느새 불이 붙어 있었다. 방아쇠만 당긴다면 발사가 가능했다.
“거기까지.”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낯선 피부의 이방인들이 들어섰다. 중무장한 병사들을 보며 귀족들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들의 뜻은 잘 알았다. 신국에 복속할 생각이 없다고?”
루스인 지휘관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죽어라.”
대공이 보는 앞에서 리투아니아의 귀족들은 살해당했다.
이후 노부나가의 군대는 복속을 반대했던 영주들의 영지를 급습해 모두 점령해버렸다.
폴란드의 왕 지그문트 2세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자신의 품으로 들어왔던 리투아니아가 갑자기 신국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신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르국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를 비롯해 리보니아가 그들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빌어먹을! 전쟁이다!”
지그문트 2세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적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무슨 일인가요?”
“오, 카트린. 별 거 아니오. 동방의 야만인과 손을 잡은 놈들이 있어서 그런 것 뿐이니.”
“동방의 야만인이요?”
전쟁 준비로 성이 소란스러워지자 지그문트 2세의 아내 카트린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럼 돈이 필요하겠군요.”
“부탁하오.”
“걱정 말아요.”
지그문트 2세의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를 합병할 수 있었던 배경은 결국 돈이었다. 리투아니아가 모스크바 차르국과의 전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폴란드가 경제적인 것은 물론 연합을 통해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지그문트 2세의 세 번째 아내인 카트린에게 있었다.
카트린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것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페르디난트 1세의 딸이었다. 현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와는 남매였다.
더 나아가 지그문트 2세의 첫 번째 아내는 바로 카트린의 언니, 엘리자베스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죽고 지그문트 2세는 리투아니아의 바바라 라지바우어와 결혼했다. 이후 바바라가 죽은 뒤에 다시 합스부르크의 여인인 카트린과 결혼한 것이었다.
혼인을 통해 합스부르크와 연결되니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폴란드는 리투아니아를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거나 폴란드는 전쟁 준비로 시끄러워졌다. 국경에는 병사들이 모였다. 그러나 바로 신국과 전투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신국 원정군이 워낙 대규모로 뭉쳐있었기에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지연작전을 펼치며 최대한 시간을 끌 뿐이었다.
한편, 신국이 리투아니아를 덥석 집어 삼키자 깜짝 놀란 두 나라가 있었다.
바로 스웨덴과 덴마크였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북방 7년 전쟁을 벌이던 중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전쟁으로 지쳐서 휴전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무엇보다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를 덥석 집어 삼키자 경각심이 생긴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스웨덴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북방 7년 전쟁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의 국왕 에리크 14세가 축출된 이후 요한 3세가 즉위했다. 그리고 요한 3세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잘 있는가?”
요한 3세는 덴마크의 왕인 프fp데리크 2세의 안부를 사신에게 물었다.
“건강하십니다.”
“그래, 조건은 생각해 보았나?”
“이대로는 너무 손해가 크시다 하셨습니다.”
“지금 손해를 따질 때가 아니질 않나? 동방의 악마들이 코앞이라니까!”
“그것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양보를 할 순 없지 않습니까?”
“으으음. 그렇다면 에스토니아를 포기하도록 하지. 서로 얻는 것이 없다면 되지 않나?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네.”
“하지만.”
“그 이상은 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 계속 싸우겠다면 받아주겠다.”
요한 3세는 선을 그어버렸다.
협상에서 저자세로 나가면 질질 끌려 다니기 마련이다. 때로는 협상이 결렬될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었다. 협상을 위해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은 협상의 의미가 없었으니까.
북방 7년 전쟁의 원인은 칼마르 동맹에 있었다. 칼마르 동맹의 주도권은 덴마크에 있었다. 그리고 이에 불만을 품은 스웨덴이 결국 동맹을 깨고 독립을 선언하며 전쟁이 터졌다.
독립은 이제 이루어진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스웨덴은 덴마크와 폴란드에 맞서 싸우며 정복당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면 스웨덴은 독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힘으로 굴복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니 더 이상 스웨덴을 강제로 아래에 두는 것은 어려웠다.
바이킹의 후예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치고받았다.
‘이제는 신국에 맞서 싸워야 한다.’
리투아니아를 꿀꺽 했다는 소리는 기겁할 일이었다. 더구나 잔혹한 군주인 이반 4세도 끝장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요한 3세는 신국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얼른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적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만 했다.
‘사촌하고 더 싸워봐야 남는 건 없다.’
참고로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2세는 에리크 14세와 요한 3세에게는 사촌이었다.
북유럽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국은 유럽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신국에 대해 모르던 이들은 없었다.
동방의 거대한 제국.
이것이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였다. 거대하지만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라. 그래서 전쟁의 대상으로 고려하는 국가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네들 이웃으로 툭 튀어나왔다.
놀란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
“대체 그 놈들이 왜 거기서?”
“차르란 놈은 어떻게 된 거지?”
“이건 위기다!”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전쟁을 준비하며 벌벌 떠는 이들이 생겼다. 하지만 호들갑은 북유럽, 그것도 발트해 근처의 나라들 정도였다.
프랑스를 비롯한 거대한 국가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한편, 소란을 일으킨 주범인 신국 원정군의 사령관 오다 노부나가는 술을 즐기고 있었다.
“보드카는 마셔봤지만 위스키라. 풍요로운 맛이군. 풍미가 있어.”
“와인도 괜찮습니다.”
“음. 그래. 좋은 맛이다. 폐하께 보내도록. 그나저나 성직자들이 술이라니. 거 참.”
노부나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서 볼 때 성직자들은 타락한 것으로 보였다. 갑자기 술과 여자를 끼고 놀던 타락한 승려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럽의 성직자들은 술을 마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만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책 필사는 어떻게 되고 있지?”
“수도사들이 협조하고 있어 순조롭습니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뭐든 배운다. 그게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이다.”
점령도 좋고 영주가 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바로 지식이었다. 신유성은 언제나 더 많은 지식이 신국의 서고에 쌓이길 원했다.
노부나가도 지식을 중요시했다. 신국이 더욱 강해지기 위해선 사소한 것이라도 놓칠 수 없었다.
‘연금술이라. 이건 좋아하시겠군.’
연금술 서적을 비롯해 책을 보던 노부나가는 다시 위스키를 마셨다.
‘아주 좋아. 신국에서도 만들었으면 좋겠군.’
어느새 성직자들이 술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잊고 노부나가는 술을 즐기고 있었다. 어차피 노부나가는 믿지도 않는 신이었기에 상관하지 않았다.
리보니아를 둘러싼 상황이 어지럽게 얽히는 중이었으나 한양의 황실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신유성은 약간 만족스럽지 않은 보고를 받았다.
“노동자들이 또 임금을 인상해달라고 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의회에서는 아무런 결론도 못 내리고 있습니다.”
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할 인물들이 신국 전역에서 모여들자 한양의 부동산 가격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다. 수많은 노동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쉴 곳이 없었다.
마차를 타고 출퇴근 하는 것도 점점 거리가 더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양 중심부의 땅값이 비싸다보니 하급 관리들이 한양 인근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에 노동자들은 또 다시 더 먼 곳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교통이 문제야.’
부동산 가격이 뛰지 못하게 법으로 만들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재산에 대한 문제는 신유성이라 해도 쉽게 건드릴 순 없었다.
잘못 건드리면 벌집을 건드린 꼴이 되니까.
‘시의회는 해결 못하겠군. 그렇다면 또 차선책을 내놔야겠지.’
신유성은 다른 해결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고층의 빌라촌이었다.
“한양 주변에 내 땅은 어떻지?”
“농사짓고 있는 땅이 있습니다.”
“그 땅들의 용도를 변경한다.”
“네?”
“내가 지금부터 그리는 건물을 지어 노동자에게 임대하겠다.”
신유성은 5층짜리 빌라촌을 설계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구조도 간단했다. 빌라 꼭대기에는 물탱크를 올리고 지하로는 하수도관을 묻었다. 그리고 금속 재료를 이용해 파이프를 만들었다.
상하수도를 집어넣은 것이었다. 여기에 철근을 넣어 건물이 하중을 버틸 수 있도록 했다.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4인 가족이 겨우 생활할 수 있는 정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과 실내에서 물을 받아 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었다.
공조에서는 바로 신유성의 설계대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하수도의 개념은 곧장 퍼져나갔다.
신유성이 짓기로 한 건물은 공짜가 아니었다. 신유성은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이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에 다른 지주들은 눈을 떴다. 그리고 신유성이 짓기 시작한 빌라 건물을 따라 짓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에게 임대해주는 것이기에 세를 많이 받을 순 없었다. 하지만 좁은 면적에도 많은 세대가 입주하기 때문에 결국 세를 올려 받는 효과가 나왔다. 건물이 조금 비싸긴 했지만 이러한 것으로 임시로라도 노동자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자 너도나도 빌라촌을 짓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교통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시 그걸 만들어야 해.’
신유성은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차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철로를 그리고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였다. 열차의 뒤편에는 수많은 차량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증기의 힘으로 많은 이들을 단숨에 실어나르는 것이 가능했다.
허나, 이 계획은 금방 반대에 부딪혔다.
“안 됩니다.”
“왜 안 되지?”
“더러운 연기가 황궁에 닿는 일은 있어선 안 됩니다.”
반대하는 자는 이지번이었다. 그리고 이지번이 반대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증기기관을 이용하려면 석탄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연기가 조금이라도 황궁에 닿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소신의 목을 치십시오.”
“그렇다면 황궁이 위치한 곳과 반대편에 역을 만들면 되지 않나?”
지도를 가리키며 먼 곳을 찍어주자 이지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양역은 한강의 남쪽, 강남에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이 때문에 강남의 땅값이 또 다시 어마어마하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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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