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209화 (209/271)

0209 / 0271 ----------------------------------------------

욕망의 정원

매일 같이 실험을 통해 새롭게 자료를 정리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한 자료에 실린 것이 실험 대상에 올랐다. 이 물질은 실험을 거쳐 신유성에게 보고되었다.

최근 들어 시간이 많이 남아 실험 기록을 살피며 자신이 원하는 물질이 있나 기다리던 신유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페르시아의 연금술책에서 얻게 된 지식을 토대로 황산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과학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으나 황산에 대해서는 알았다. 무연 화약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간신히 기억하는 것이었다.

다만 지금까지 황산을 어떻게 얻는지 몰라 전전긍긍했을 뿐.

신유성은 벌떡 일어나 달렸다. 그러자 궁녀들이 달렸고 호위들이 뒤를 이어 달렸다. 앞을 가로막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황제의 앞길을 막는 것은 오직 황제가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이외에는 허락되지 않는 행위였다.

황궁에서 황제의 앞을 막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신유성은 뒤에 사람을 달고 뛰었다. 빠르게 달리자 어느새 삽살개도 다가와 함께 달렸다. 풍산개 김백구도 노구를 이끌고 뒤를 따랐다.

달려서 도착한 곳은 연구소였다.

“이것을! 이것을 얻게 되었다고! 어디 보자!”

“폐하! 위험합니다!”

보고서를 흔들며 황산을 찾자 공조의 장인들이 외쳤다. 순간 친위대가 몸을 던져 신유성의 앞을 막는 것은 물론 철저히 둘러쌌다.

“비켜라! 난 해야 할 일이 있다!”

“위험합니다! 폐하!”

친위대는 막무가내였다. 장인들이 위험하다고 외쳤으면 위험한 것이다. 신유성은 어쩔 수 없이 연구소 밖으로 끌려 나갔다.

“폐하, 새로 얻게 된 물질은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가까이 해선 아니 됩니다.”

“후우, 알았다.”

잠깐 이성을 잃었던 신유성은 정신을 차렸다. 알고 보면 황산은 매우 위험한 물질이었다.

멀리서 보기만 하겠다.

신유성은 망원경을 통해 황산을 살피게 되었다.

황산을 얻은 뒤에는 일사천리였다. 질산과 황산을 이용해 나이트로셀룰로스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면화약이 탄생한 것이었다.

면화약의 폭발을 본 무기 개발 장인들은 엄청나게 놀랐다.

“폐하! 이것은!”

엄청난 폭발에 다들 난리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나이트로셀룰로스를 손에 넣고도 바로 무기화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지?’

화약을 만드는 재료의 비율이나 정확한 공정 같은 것은 신유성의 기억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이트로셀룰로스를 얻고도 계속해서 실험을 해야 할 뿐이었다. 좀 더 정보를 뽑아서 정확하게 화약을 제조해야 했다. 화약은 위험 물질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다뤘다가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답답하네.’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유성은 면화약을 개발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폐하께서 또 한 건 하셨다지?”

“그러게. 그 분이 있어서 다행이지.”

“암.”

고급 회관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신유성을 찬양했다. 이제 한양에는 고급 회관들이 즐비했다. 신국 각지에서 모인 영주들은 고급 회관을 이용하기를 원했다. 돈 많은 상인들과 영주들이 바글바글하니 기존의 회관만으로는 수용이 불가능했다.

수요가 엄청나니 공급이 뒤를 이었다.

새로 지어진 회관에서는 연일 미래에 대한 의논이 이어졌다. 또한 파벌 형성에도 한몫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또 황자님이 태어나셨지.”

“그러게. 그런데 후궁을 더 들이시지 않는 것인가? 폐하도 참 금욕적이시군.”

“내 말이.”

아내가 여럿이지만 사람들은 신유성을 금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 영주가 되면 아내 이외에도 애인을 여럿 두는 것은 흔했다. 기생도 여럿 안는다. 여자를 바꾸며 잠자리를 하는 일이 많았다. 백 명은 훌쩍 넘는 수의 여자들과 관계를 맺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냥 장사만 하는 상인들도 신유성보다 더 많은 수의 여자들과 동침을 했을 정도였다. 이런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눈 돌아가는 미녀들이 즐비한 황궁에서 오직 부인들만 바라보며 꾹꾹 참는 신유성은 금욕적이었다.

“그나저나 이젠 새로이 후궁을 들이셔야 할 텐데.”

“그러면 오죽 좋겠나?”

고급 회관의 회원들 중 황실이 영원하길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훗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오직 황실이 영원하기만을 원했다.

황실의 안녕의 자신들의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유성이 여자를 많이 안고 황족을 팍팍 늘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다.

“그 분께서 색욕을 다 가져가신 모양일세.”

“허허, 참말로.”

회관의 회원들이 말하는 그분은 바로 신유성의 형인 신주성이었다.

여자의 몸을 그려 돈을 벌기도 했던 신주성은 매우 유명했다. 신주성은 매일 같이 여자를 갈아치우며 안았다. 여자들의 그림도 마구 그려댔다. 한양의 기생들 중 신주성이 안아보지 않은 기생은 없다고 할 정도로 여자를 밝혔다.

“그런데 그 분이 그린 나녀도가 그렇게 멋지다며?”

“내 한 번 초대를 받아 가봤는데 장난이 아니었어. 갖고 싶었지만 팔지 않으신다니 어쩌겠나.”

신주성은 더 이상 돈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었다. 신주성이 외상을 그으면 바로 다음날 처리되었다. 신주성은 나름 많이 쓴다고 하지만 신유성의 입장에서는 하품 나오는 액수였다. 어쨌거나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더 이상 그림을 팔지 않았다. 대신 여자들의 그림을 그려 수집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딱 그 분의 절반만큼만 여자를 품으시면 좋으실 텐데.”

“그러게 말일세.”

사람들은 신유성이 어서 여색을 탐하길 빌고 또 빌었다.

“어떤 여자가 아름다운 여자인가요?”

“으음, 일단 엉덩이가 아름다워야지요. 다음은 가슴입니다.”

주녹정은 신주성과 마주했다. 아이를 출산한 주녹정은 펑퍼짐한 옷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신주성은 주녹정을 제대로 볼 순 없었다. 주녹정이 주렴 뒤에 앉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름답다 생각되는 여자의 그림을 그려서 주세요.”

“알겠습니다.”

신주성은 주녹정의 부탁을 받고 물러났다.

“후우.”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주녹정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이를 출산한 뒤 거울을 보며 자신이 점점 나이가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신유성이 언젠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선 안 돼.’

실망하고 거리가 멀어진다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다. 신유성은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모자란 느낌이었다.

‘최근에도 또 기행을 하시고.’

신유성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궁녀의 보고에 의하면 매일 아침 신유성이 눈을 뜨기도 전에 먼저 기상하는 것은 굵직한 몽둥이라고 했다. 너무나 꼿꼿하고 우람해서 터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할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고 했다.

‘좀 더 즐기셔도 괜찮은데.’

하지만 신유성은 아무나 품에 안지 않았다.

‘꼭 안겨드려야지.’

사랑하는 남자의 관심이 다른 이성에게 향하는 것은 사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주녹정은 이미 그러한 일을 여러 번 경험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신유성이 보여준 애정을 생각하면 기쁘게 해주고 싶을 뿐이었다.

주녹정이 보기에도 신유성은 너무나 금욕적이었다.

아그라.

이황은 매일 같이 업무에 전념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쉬는 일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올렸던 상소는 결과적으로는 무시당했다. 신유성은 의회를 고집했다. 그렇기에 이황은 신국의 안녕을 위해 더욱 노력했다.

인도의 지역들은 하나둘 신국의 품으로 떨어졌다. 국경 지역을 드나드는 이들을 통해 신국의 영주가 된 이들이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알려지자 신국에 복속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늘어난 탓이었다.

어쩔 때는 자기들끼리 전쟁을 하기도 했다. 내전이었다. 신국에 복속하려는 자들과 이를 반대하는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언제나 나서는 것은 신페이였다.

복속을 원하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신페이가 이끄는 원정군이 나서면 그걸로 상황 종료였다. 결국 인도는 전부 신국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참으로 무섭구나.’

무서운 기세로 불어나는 신국을 보면 이황은 소름이 돋기도 했다. 유학자로서 신유성의 통치 방법은 정말 문제가 많아 보였다. 그런데 신유성은 무너지기는커녕 신국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욕망을 이용해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있었다.

언어와 인종이 다른 인도 지역 사람들까지 넘어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적이지는 않다.’

이황은 신유성이 사라지면 모두 꿈에서 깨어나게 될 거라 여겼다. 그렇기에 신유성이 더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젊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

권력자들이 모두 천수를 누리다 죽은 것이 아니니 젊은 신유성이 오래 살길 바라는 것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유학을 전하자.’

이황은 유학을 한반도가 아닌 인도지역에 보급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했다.

에스파냐.

펠리페 2세는 결국 자신의 조카와 결혼했다. 이로 인해 족보는 완전히 꼬이게 되었다.

여동생의 딸과 결혼했으니 여동생이 장모가 된 것이다. 반면 펠리페 2세의 여동생 입장에서는 딸이 오빠의 아내가 된 것이다.

심각하게 족보가 꼬이는 혼인이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 결혼을 강행했다.

펠리페 2세는 그렇게 조카를 품에 안게 되었다.

“뭐라고? 신국이?”

“그렇습니다.”

신혼을 만끽해야 할 시기였으나 펠리페 2세는 심각한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대체 언제 거기까지? 분명 신국이 저 멀리 동방에 있던 나라 아니었나?”

대략 위치를 떠올린 펠리페 2세는 경악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북방까지 왔습니다.”

“으으음.”

펠리페 2세는 살짝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까지 경계했던 것은 오스만 제국 정도였다. 신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이교도 국가였지 두려움을 품을 상대는 아니었다. 위치상 아주 먼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뒤집어졌다.

리투아니아를 삼키며 발트해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폴란드가 위험하다.’

폴란드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공을 들이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매를 한 남자에게 보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들로 일단 견제하다보면 어떻게 되겠지. 신께서 나를 지켜주신다.’

펠리페 2세는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갑작스러운 것은 펠리페 2세만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도 깜짝 놀랐다.

“아니? 차르국은 어디가고?”

“그게 신국이라고 합니다.”

모스크바 차르국의 이반 4세와 전쟁을 한 게 엊그제 같은 오스만 제국이었다.

“설마 갑작스럽게 후퇴한 게?”

“그런 모양입니다.”

이반 4세는 오스만 제국과 전쟁 중에 갑자기 군을 뒤로 뺐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움직임에 오스만 제국은 의아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추격까지 했었다.

비록 이반 4세를 놓치긴 했지만 적을 물리쳤다는 생각에 오스만 제국은 의기양양했었다. 그런데 이제야 승리의 원인이 밝혀졌다.

오스만 제국이 잘 싸운 게 아니라 신국이 끼어든 덕분에 이긴 것이었다.

“으음, 그럼 문제가 심각하군.”

셀림 2세도 펠리페 2세처럼 위기를 느꼈다.

‘큰일이다. 배만 타면 바로 여긴데!’

셀림 2세의 위기감은 펠리페 2세보다 더 컸다. 발트해에서 함대를 내보내도 에스파냐에 닿으려면 한참 걸렸다. 반면 신국이 흑해를 통해 함대를 만든다면 이스탄불까지는 금방이었다.

폴란드가 리투아니아와 연합해 흑해까지 진출할 교두보를 만들었을 때도 느끼지 못한 위기감이었다.

“함대를 더욱 늘려야겠군.”

“알겠습니다.”

아무도 셀림 2세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군사적인 문제는 수상이 대체로 다 알아서 했지만 이번에는 수상도 셀림 2세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젠장, 신국이라니.’

셀림 2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스만 제국이 거대해진 것까지는 좋았지만 나라가 커진 만큼 적도 늘어났다. 지켜야 할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게 좋겠지.’

신국과의 전쟁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 모든 이들의 생각이었다. 강력했던 무굴 제국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밥만 먹고 전쟁만 하나?’

셀림 2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쉴레이만 1세가 보고 싶어졌다.

‘아버지!’

허나 마음속으로 아무리 불러보아도 쉴레이만 1세가 살아 돌아올 일은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