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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소용돌이
크림 칸국.
카잔 칸국의 이웃이며 오스만 제국의 동맹이었다. 카잔 칸국은 모스크바 차르국에 의해 점령당했고 이후 이반 4세는 카잔 칸국이 있던 지역을 지나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반 4세는 죽었다. 이후 크림 칸국은 영역을 확대하려 했다.
원래 노예무역으로 돈을 벌던 크림 칸국이었다.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지역에서 노예를 잡아 오스만 제국으로 팔아 부를 축적했었다. 그렇기에 모스크바군이 사라지고 공백이 생기자 이 지역을 차지하려 했다.
하지만 크림 칸국은 더 무서운 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니키타 로마노비치는 이반 4세가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포병들을 흡수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크림 칸국의 전사들을 몰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 편, 시베리아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서도 기병들이 튀어나와 침략자들에 맞섰다.
신국의 움직임에 크게 혼줄이 난 크림 칸국은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일부 부족들이 신국에 복속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흑해에 접한 일부 지역이 신국의 손에 떨어졌고 이는 오스만 제국에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흑해를 둘러싼 세력을 동맹으로 삼거나 차지해서 이스탄불을 바다에서 공략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반 4세가 싸움을 걸어왔을 때도 지독하게 싸웠다.
그런데 어이없게 크림 칸국의 일부 부족이 신국에 복속하면서 해안 지역이 신국의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아조프에 요새를 만들어 방어를 하던 이들에게는 곧바로 명령이 떨어졌다.
“신국이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흑해에 신국의 선박이 들어서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대혼란의 시작이었다. 이스탄불이 위험해지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에스파냐가 해전을 걸어오려고 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흑해에 적대 세력이 발을 붙이게 되면 큰일이었다. 해군 전력이 양쪽으로 찢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력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거 위험하게 됐어.”
“그렇지요. 그냥 복속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크림 칸국의 칸은 얼마 전 다녀간 노가이족의 대상인을 떠올렸다.
‘신국에 복속해서 이렇게 좋은 옷 입고 다니는 거지.’
옷은 물론 먹는 것까지 상당히 다양한 것들이 변해 있었다.
‘노예? 그것보다 소나 더 팔지?’
예전에는 노예를 잡아다 노동력으로 썼었다. 그런데 이제는 소를 더 달라고 했다. 그렇게 소를 주고 비단을 구입했다.
대추 야자를 먹던 대상인은 이제는 사탕을 먹었다. 대추 야자는 상당히 단 음식이었다. 하지만 사탕의 달콤함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신국에 복속하면서 많은 이들이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크림 칸국의 부족들을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예전에는 모스크바 차르국 때문에 막혀 있었다. 카잔 칸국이었던 지역은 모스크바 차르국의 점령 지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스크바 차르국이 멸망하고 신국의 땅이 되니 교류가 활발해졌다.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진 교류 덕분에 많은 부족들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일부가 칸의 지배를 거부하고 신국으로 넘어간 것이 바로 증거였다.
“종교의 자유는 보장해준다고 한 게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더구나 영역을 칸의 영지로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좋아. 차라리 잘 됐어. 내가 먼저 복속을 해주지.”
맡고 있는 지역을 전부 자신의 영지로 만들기 위해 칸이 먼저 움직였다. 이렇게 되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부족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신국에서는 칸의 편을 들어줄 테니 싸우지도 않고 땅을 빼앗을 수 있었다.
크림 칸국의 칸은 바로 복속하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다. 그러는 사이 오스만 제국의 사신이 와서 싸울 것을 종용했다.
“우리는 그대들이 필요하다.”
“알았다.”
말로는 싸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싸워서 뭐해? 죽기만 하는데.’
충성심이나 그런 것은 없었다. 만약 모스크바군이 쳐들어왔다면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싸울 순 있었다. 하지만 신국은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으며 이는 먼저 들렸던 노가이족의 대상인으로부터 확인했다.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오스만 제국과의 관계는 동맹 관계이지 상하 관계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좋은 교역 파트너였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과 손을 잡았다.
노예들을 잡아오면 오스만 제국에서 사주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젠 오스만 제국에게만 기댈 필요가 없어졌다. 신국에 복속하게 되면 신국 전체와 거래가 가능해진다. 비단도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크림 칸국의 칸은 다른 마음을 품었다.
‘아조프를 빼앗아 버리자.’
아조프는 요새였다. 중요한 항구의 역할도 했다. 이곳을 빼앗는다면 훗날 신국이 오스만 제국과 싸울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무엇보다 요새를 끼고 있으면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피해를 덜 입을 수 있었다.
크림 칸국의 칸은 바로 전사들을 이끌고 아조프로 향했다. 겉으로는 지원을 나가기로 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에게도 목적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전까지 신국에 복속하는 일을 의논했던 부하들은 의아해 할 정도였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부하들은 칸의 명령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폴란드.
“이건 정말 획기적인 물건이군.”
“그렇습니다.”
신국이 리가에서 항구를 만들고 있을 때 폴란드는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었다. 그것은 바로 신기전이었다.
신국이 계속해서 전장에서 신기전을 이용하자 정보는 결국 알려졌다.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물건은 획기적이었다.
총이나 대포가 발달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연사 속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기전은 달랐다. 미리 장전해놓고 한꺼번에 수십 발을 날릴 수 있었다. 화차만 들리면 수천 발도 가능했다.
대포의 사정거리는 금속 기술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늘리기 어려웠지만 신기전을 따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투척하기 위한 폭탄도 함께 개발되었다.
“신국의 무기를 손에 넣었으니 두려워 할 것 없다. 중요한 것은 보급이다. 차질이 없도록 하라!”
“네!”
폴란드의 왕 지그문트 2세는 자신 있었다.
‘그나저나 이걸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도 그런데.’
신국을 압박하려면 여러 방면에서 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덴마크와 스웨덴이었다. 그 중 스웨덴이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스웨덴 녀석들에게 팔까?’
팔게 되면 금방 복제해서 쓰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보를 주지 않아도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되면 따라하게 된다. 그렇기에 지그문트 2세는 팔기로 결정했다.
무기를 팔아 돈을 벌려는 것이었다.
“스웨덴에 사신을 보낸다. 이것들을 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장해서 우리와 싸우게 되면 큰일입니다.”
“어차피 그들도 나중에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없어지면 오히려 우리만 손해다. 지금은 신국을 쳐야 할 때다.”
스웨덴은 발트해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경쟁자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큰 경쟁자가 등장했다. 신국을 몰아내는데 실패한다면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길 거라는 위기감이 경쟁자인 스웨덴에게 손을 내밀게 한 것이었다.
물론 손을 내밀었다고 공짜로 무기를 주는 것은 아니다. 줄건 주고받을 건 받는다.
한편,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지나 북상하기 시작한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선박 발견!”
“어디 녀석이냐!”
“모르겠습니다! 에스파냐도 아니고 포르투갈도 아닙니다!”
신국의 갤리온들이었지만 드레이크와 선원들은 알아보질 못했다.
“뭐야?”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향하고 있었다. 향신료를 사오는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단숨에 배를 늘리는 것은 물론 해적질할 선원도 보충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인도행을 택했다. 신대륙으로 가서 에스파냐 선박을 습격할 수도 있었으나 한 척으로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배들이 나타났다.
“어,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모르는 놈을 보면 도망친다. 이게 오래 사는 지름길이지. 도망친다!”
드레이크는 지체하지 않고 후퇴를 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식수와 식량을 제외하고는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배의 속도는 빨랐다. 신국의 갤리온들도 최대한 속도를 내봤지만 드레이크의 배와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항로를 비틀며 조금씩 거리를 벌리던 드레이크는 밤이 되자 역으로 아라비아해로 향했다.
신국의 갤리온들은 간발의 차이로 드레이크의 배를 잡지 못했고 그대로 희망봉까지 가면서 해안을 뒤졌다.
며칠 후.
“젠장. 여긴 어떻게 된 거야?”
드레이크는 난감해졌다. 아라비아해로 들어서며 발견한 함대 때문이었다.
신국의 함대였다. 남사고함이 소속된 함대는 페르시아만으로 돌아가 보급을 하고 있었지만 후지바야시 켄은 계속해서 함대를 구성해서 보냈다. 바다에서 오스만 제국의 선박을 아예 지워버리기 위해서였다.
“안 되겠다. 그냥 서쪽으로 가자.”
해안을 끼고 움직이는 것이 선원들에게는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하지만 해안에 적대적인 세력이 있다면 결국 멀리 돌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설마 인도까지 이렇겠어?’
인도에서 포르투갈이 물러났다는 정보는 물론 입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역을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약탈을 통해 큰 이익을 챙길 수도 있을 거라고 드레이크는 판단했다.
정 안 되면 해적질하기 위해 가져온 무기라도 팔아치우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무기를 판 뒤에는 상인으로 가장해서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허나, 드레이크의 판단은 틀렸다.
캘리컷 앞바다에 나타난 드레이크는 식수와 식량이 거의 떨어졌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캘리컷에 입항해야만 했다.
‘젠장, 바다를 떠돌게 하면 반란이 일어날지도 몰라.’
해적선의 선원들은 온순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침해 받는다면 선장이고 뭐고 봐주지 않고 덤벼든다. 오히려 선장이라는 이유로 가혹하게 굴거나 하면 바로 반란이었다.
해적선을 탄 모든 해적은 동등했다.
해적들의 민주주의였다.
선장이나 기타 간부들은 좀 더 전문적인 일을 하기에 배당에서 더 떼어가지만 그뿐이었다. 선장의 의무는 해적 선원들을 잘 먹여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체 저들은 뭐야? 설마 신국이 여기까지?’
포르투갈이 패배해 물러났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 향신료를 얻을 수 있는 말라카에서 물러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포르투갈이 말라카에 진출했으니 드레이크는 포르투갈 선박을 털면 향신료를 그냥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계획은 배의 간부들은 물론 해적들도 동의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인도까지 왔는데 일이 틀어졌다.
신국이 생각보다 더 먼곳까지 정복해버린 탓이었다.
“입항한다!”
‘어쩔 수 없다.’
항구에서 튀어나온 군함을 보며 드레이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응전하지 마라! 백기를 들고 무기는 내려라!”
“선장!”
“여기서 싸우면 다 죽는다! 나만 믿어라!”
드레이크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이놈들 뭐죠? 말이 안 통하는데요?”
“생긴 건 지저분한 남만 놈들처럼 생겨선. 이놈들 말 알아듣겠어?”
“전혀 모르겠는데요?”
저항을 하지 않기에 신국 해군은 드레이크의 배를 침몰시키지 않았다.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도 않도 마치 아군의 상선마냥 천천히 항구로 입항하려고 하니 싸울 의향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었다.
이어서 배에 올라 모든 무기를 압수했다. 생긴 게 남만인처럼 생겼으니 일단 경계하는 것이었다.
저항은 없었다. 그렇기에 대화를 시도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혹시 알아들으면서 딴 소리 하는 거 아냐? 진짜 못 알아듣는 척하면 벤다!”
한 병사가 검을 뽑으며 포르투갈어로 외쳤다. 그제야 드레이크는 한숨을 내쉬며 포르투가 말을 했다.
“전 잉글랜드 출신 상인입니다. 대체 어디 분들이십니까?”
“우리는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신연방제국 소속 해군이다.”
“신연방제국?”
처음 듣는 국명이 낯설었지만 걸고 넘어갈 필요는 없었다.
“잉글랜드라니 그걸 어떻게 믿지? 포르투갈 놈이지?”
“아닙니다! 전 순수 잉글리쉬입니다! 믿어주세요!”
“고민할 거 뭐 있어? 일단 전부 포박하고 배 안을 뒤져보면 알게 되겠지.”
“알겠습니다.”
신국 해군들은 드레이크 앞에서 조선어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눈치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파악했다.
“전 정말 잉글리쉬입니다. 포르투갈 나빠요!”
“그래? 그럼 포르투갈은 나쁘고 에스파냐는 좋냐?”
해군이 농담을 던졌다. 그 순간 드레이크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 새끼들은 모조리 지옥에 보내야 합니다!”
“응?”
“에스파냐 새끼들은 모조리 토막 내서 지옥에 보낼 겁니다!”
엄청난 살의에 해군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진짜 싫어하는가본데?”
“그러게.”
에스파냐는 적이었다. 그렇기에 에스파냐에 엄청난 적의를 가진 드레이크는 약간의 호의를 살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