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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13화 (21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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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소용돌이

드레이크와 해적들은 나쁜 대우는 받지 않았다. 우선 잉글리쉬일 경우에 대비해 신국 해군은 적당히 대우를 해주었다.

“잉글리쉬인가?”

“그렇습니다.”

후지바야시 켄과 드레이크는 포르투갈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잉글리쉬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기는요. 돈 벌려고 왔죠.”

“해적이 아니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드레이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이미 다 알고 있는 건가?’

어설픈 변명이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달은 드레이크는 결국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사실 해적이 맞습니다. 잉글랜드 여왕 폐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잉글랜드는 이 해역으로 진출할 셈인가?”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이쪽으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진출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들을 털어서 돈 좀 벌어볼까 했습니다.”

“잉글랜드는 에스파냐와 적인가?”

“적입니다. 아주 안 좋죠.”

기회가 오자 드레이크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이야기를 떠들었다. 피의 메리로부터 시작된 신교에 대한 박해. 그리고 피의 메리가 죽고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의 움직임이 그것이었다.

“그럼 에스파냐하고는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인가?”

“우리 여왕님이 아직도 혼자이신 이유시죠.”

합스부르크 가문의 구애는 끝이 없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인물들이 모두 차이자 이제는 북해를 비롯한 이들이 구애를 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혼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다리 건너면 합스부르크와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신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기보다는 가톨릭과 신교를 놓고 화합을 시도한다는 명분으로 저울질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1세는 혼사를 모두 거절했다. 더구나 결혼을 하게 되면 잉글랜드의 왕으로 들어와 자신이 밀려나게 된다.

권력의 달콤함을 맛 본 엘리자베스 1세는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잉글랜드는 에스파냐와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그런가? 재미있는 이야기군.”

적의 적은 아군이라 할 수 있었다. 에스파냐는 신유성이 적으로 점찍은 국가 중 하나, 때문에 후지바야시 켄은 에스파냐에 좋은 감정이 하나도 없었다.

신유성이 싫어하니 그냥 싫은 것이었다.

“만약 배를 돌려만 주신다면 이쪽으로는 오지도 않겠습니다.”

드레이크는 선처해주기를 간청했다.

“해적이라니 한 가지 조건을 걸겠다.”

켄은 그냥 배를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홍해로 들어가라.”

드레이크에게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홍해로 들어가 신국의 사략 해적들과 함께 오스만 제국을 마구 약탈하라는 것.

성공한다면 돌려보내 준다는 조건에 드레이크는 받아들였다. 어차피 오스만 제국도 아군은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신국의 해적들과 함께 움직인다고 하니 안도했다. 적어도 희생양으로 쓸 생각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켄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진심을 시험해보려는 것도 있었으나 배를 하나라도 늘려 오스만 제국에 큰 타격을 입히고 싶어서였다.

서방 전선 곳곳에서 전쟁이 다시 크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해가 지났다.

“오늘도 바쁘다.”

“폐하. 하지만.”

신유성은 최근 여자들을 안아주지 않고 있었다. 출산을 끝내고 살도 빼고 준비를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고 어떻게 할 순 없었다.

“폐하께서 질리신 걸까?”

“그럴지도 몰라요.”

여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 슬슬 나이가 들며 몸의 탄력이 점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깨끗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조금씩 나이가 든 것 같아 보일 때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매화의 경우에는 아직 팔팔했지만 나이가 있는 체첵이나 사르나이의 경우에는 안절 부절이었다.

“이러다 찾아주지 않으시면 어쩌지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황궁에서 황제의 총애를 잃으면 죽을 때까지 얼굴 한 번 못 만나게 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식이 있으니 자식을 만날 때 같이 볼 수 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안 볼 수도 있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전쟁 군주였다.

전쟁터에 나가서 안 돌아오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황궁에서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또 다시 전쟁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유성은 의회에서 벌어지는 논의에 신경 쓰면서도 무기 개발에 정신이 없었다.

‘또 전쟁터에 가실 거야.’

주녹정은 신유성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나츠나 매화도 같은 생각을 했다. 같이 지내온 세월이 길다보니 이제는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찾으시게 만들어야지.”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요?”

“최근 여러 곳의 미녀들을 궁으로 불렀으니까. 그녀들과 함께 침소에 들 생각이다.”

“네?”

주녹정의 과감한 선언에 나츠는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놀랄 것 없다. 그녀들을 철저히 아래에 둔다면 문제 될 것이 있겠나?”

“그렇군요.”

정사를 치름에 있어 신유성은 일대일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문란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불만을 품는 여자는 없었다.

신유성에게 안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나츠였다.

나츠는 모스크바 출신의 소녀를 앞에 두었다.

“이제부터 넌 날 모시면 된다.”

“네.”

모스크바 출신인 루스족 소녀는 공손하게 절하며 답했다. 서투른 조선어였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피터 슈이스키가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에게 오래 전에 미소녀들을 보내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알렉산드로는 여러 보야르들과 만나고 다니면서 평민 출신의 예쁘다는 소녀들을 모아 한양으로 보냈다.

그리고 주녹정이 예쁜 여자를 찾는다고 할 때 얼른 제안했던 것이었다.

한양에서 지내며 조선어를 빠르게 배운 소피아는 나츠에게 설명을 들었다.

‘내가 폐하와?’

신유성과 잠자리를 하게 된다는 말에 서글프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 상반된 감정에 몸이 떨렸다.

일찍이 아버지를 전쟁에서 잃고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소피아는 거리에서 유혹하는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겨울은 추웠고 사람들은 냉정했다.

입을 하나라도 줄여보려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소피아는 남자가 집에 돈을 주는 것을 확인한 뒤 따라 나섰다. 소피아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피아를 잡지 않았다.

‘이건 기회야. 강해져야 해.’

소피아는 나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깊은 밤.

신유성은 연구를 끝내고 침소에 들었다.

‘아직도 연구 중이라니. 너무 신중하단 말이야.’

의회의 의원들은 아직도 1호 법안에 대해 토론을 했다. 여러 가지 법안을 생각해내는 중이었다.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설렁설렁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황제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였다.

만약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여겨지면 의회는 해산될 터였다.

신유성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

현재 운용하고 있는 모든 원정군을 움직이는 자금은 신유성의 재산이었다. 해군의 선박들도 소유자는 따지고 보면 신유성이었다.

조정, 이제는 연방 정부라 불려야 할 곳에서 소유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정부의 예산보다 훨씬 돈이 많은 신유성이었다.

황제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눈치를 봤다. 더구나 신유성은 신동으로 소문 났던 황제였다.

어중간하게 일을 처리했다 실망을 안겨줄 순 없었다.

그렇기에 온갖 지혜를 짜냈다. 자신들이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전을 깎아내며 부정을 저질렀던 영지 출신의 의원들도 열심히 돈의 신용을 지킬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부정을 저지른 적이 있는 만큼 온갖 방법에 훤했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법안이 늦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재촉할 일은 아니지.’

신유성은 재촉하지 않았다.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급한 것은 정작 다른 것이었다.

바로 무기였다.

시간이 흐르자 보고가 올라왔다. 모스크바 차르국을 점령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들려온 것은 신기전과 척탄병들이 쓰는 폭탄이 모스크바군 장비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무기의 우위를 점해야 하는데.’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전투는 더욱 치열해진다. 전투가 치열해지면 피해가 커지고 전쟁 부담이 늘어난다.

‘언제쯤 완전히 파악이 될까?’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지만 아직 안정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화력은 끝내주지만 아직 성질을 다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다.

화약은 잘못 다루는 순간 끝이었다.

조그만 불씨 하나로 창고 하나를 몽땅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흑색 화약보다 훨씬 파괴력이 높은 면화약이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찾기 전에는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다.

‘육혈포도 벌써 만들었는데.’

탄피를 이용해 쏘는 육혈포도 이미 완성했다. 탄피도 만들었다. 면화약을 넣고 실험도 해보았다.

후장식은 성공했지만 가끔 총이 폭발했다.

멀리 떨어져서 줄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사람이 직접 들고 쐈다면 인명피해가 났을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후장식 총기의 개발은 거의 끝에 도달해 있다고 봐도 좋았다.

‘이것만 제대로 되면!’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총기를 든 보병과 기병의 전투는 확연히 올라가게 된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확 달라지는 것이었다.

후장식 총기는 총을 복제한다고 해도 탄약을 제대로 생산할 수 있는 탄약 공장을 만들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었다.

전장식 총기는 화약을 넣고 총알을 쑤셔 넣어서 쏘면 그만이지만 후장식은 정밀한 탄약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유성은 적이 후장식 총기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금방 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부에서 누군가 알려주기 직전에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화기를 연구하는 모든 장인들에는 첩보원이 붙어서 감시했다.

기술을 빼내가려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뭔지 몰라도 일단 기술을 빼가서 어딘 가에 팔아먹으려고 나쁜 마음을 품은 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자들은 모두 잡아서 목을 땄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참수했다. 집안도 날려버렸다.

건드리면 엿 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기에 기밀에 접근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빨리 완성 되면 그 다음에는!’

다음은 유럽으로 진출할 생각이었다. 황궁을 떠나 아내들과 함께 세계 여행 좀 해보려는 것이었다.

눈을 감자 즐거운 상상이 밀려왔다. 신유성은 그대로 잠들었다.

늦은 아침.

어기적거리며 일어난 신유성은 김치국수를 먹었다. 겨울이었지만 시큰한 김치국물에 말아먹는 국수는 술술 입으로 넘어갔다. 이후 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뒹굴었다.

그때였다.

“폐하, 소첩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라.”

나츠가 찾아왔다. 신유성의 눈은 곧바로 나츠의 뒤에 선 소피아에게 향했다.

금발에 푸른 눈은 시선을 잡아끌었다.

신유성의 시선을 알아차린 나츠는 나서서 소개를 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지?”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폐하를 모시고 싶습니다.”

나츠는 함께 자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안 한지 꽤 오래 되었기 때문에 신유성도 흔쾌히 허락했다.

“좋다. 이리 오거라.”

팔을 벌린 신유성의 품에 나츠는 살며시 안겼다. 길고 긴 입맞춤 끝에 나츠는 어느새 옷이 벗겨졌다. 아이를 여럿 낳은 몸에서 소녀의 흔적은 사라지고 농염한 여인의 매력이 흘러넘쳤다.

게걸스럽게 가슴을 탐하며 은밀한 부위를 쓰다듬었다.

“하윽.”

나츠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서.’

소피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소피아는 미리 얘기를 들은 대로 옷을 하나씩 벗었다. 그제야 신유성이 고개를 들었다.

“뭐하는 거지?”

“오늘 소첩과 함께 안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츠는 간절한 표정으로 신유성을 바라보았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폐하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늙어서도 폐하와 함께 침소에 들고 싶습니다. 소첩을 욕심 많다 욕하셔도 좋습니다.”

나츠의 간절한 표정에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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