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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소용돌이
홍해.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정말 열심히 해적질을 했다.
“죽여라! 털어라! 그리고 나와라!”
어촌 하나를 약탈했다. 반항하는 자는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보물을 챙겼다. 하지만 어촌 같은 곳에 보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예전에는 챙기지 않았을 종이를 챙겼다. 이슬람 경전이나 세금에 관한 기록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신국에서는 뭔가 적혀 있는 종이는 무조건 일정한 가격을 쳐주었다.
이게 꽤 짭짤했다. 그래서 해적들은 종이를 아주 소중히 챙겼다.
“여자와 남자도 챙겨라! 나이 많은 여자는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어린 여자와 처녀라고 생각되는 이들은 건드리지 마라!”
인간도 돈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력을 사고파는 것이었다.
노예가 된 자는 생명을 보장 받는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한다.
“선장! 여기!”
그러다 가끔은 이상한 것을 찾기도 한다.
“뭐야? 노예?”
유럽인들이 다른 인종을 노예로 삼았듯이 오스만 제국도 유럽인들을 노예로 삼기도 했다.
드레이크는 백인 노예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 멍청한 새끼.”
붙잡혀서 목숨을 구걸했다. 욕을 한 해적의 눈에는 그렇게만 보였다.
“욕하지 마라. 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냐.”
“그래도 이교도를 위해서 일하다니.”
“어이, 너 그러다 죽는다. 우리가 지금 누구랑 일하는지 잊지마라.”
드레이크는 욕을 하며 돌아서는 해적을 보고는 속으로 칼을 갈았다.
‘죽일 놈 하나 더.’
드레이크는 신국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다. 성공하면 보수가 나온다. 어촌의 조그만 어선들도 비싸게 사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받은 돈으로 신국의 항구에서 얼마든지 상품을 살 수 있었다.
신국의 사략 해적과 함께 위험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증명서를 가져가면 할인까지 해주었다.
‘신국은 좋은 나라야.’
잉글랜드를 사랑하지만 신국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신국의 사략 해적들은 말했다.
신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더구나 신국의 사람이 되어 개척에 성공하면 영주가 될 수 있다고.
영주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드레이크가 신국에 푹 빠지게 만든 원인이었다. 더구나 신국은 에스파냐와 적대하고 있었다. 에스파냐에 원한이 있는 드레이크에게는 기쁜 이야기였다.
처음 포로로 잡혔을 때만 해도 어쩌나 싶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부활했다.
‘저 놈은 죽여야지.’
간부들 중에는 드레이크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뿐이었다.
해적으로 살다 죽는다?
어느 누구도 그런 것을 로망이라고 하지 않았다. 반면, 영주가 되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었다.
귀족.
그것이 될 수 있다면 동료였던 해적 하나 죽이는 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었다.
“놔둬도 될까요?”
“가까운 놈들 다 알아내.”
“그러죠.”
갑판장도 영주가 될 꿈을 품은 자였다. 항해사도 마찬가지였다. 신국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고 있는지 신국의 사략 해적들에게 들은 간부들은 잉글랜드를 떠날 생각으로 가득했다.
‘잉글랜드.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다.’
마음은 잉글랜드에 속해 있었으나 머리는 신국에 속하라고 난리였다.
아조프해, 아조프.
크림 칸국의 병력은 아조프의 요새에 들어섰다.
“수고 했소.”
“그럼 조금 쉬도록 하지요.”
오스만 제국군은 지원 병력이 무사히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요새에 병력이 늘어나니 안도하는 병사들도 많아졌다. 요새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신국의 기병들이 모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던 탓이었다.
신국의 기병들, 과거에 칸국이었던 곳의 젊은 기마 전사들은 수가 엄청났다. 전쟁이라고는 경험해보지 못한 애송이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찌보면 오합지졸이라 할 수도 있는 이들이었으나 아조프 요새에서 그런 것까지 알아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이 없으니 그냥 긴장하고 대비할 뿐.
그러던 차에 막강한 지원군이 도착했으니 한시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크림 칸국의 병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은 요새 내부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폈다. 그리고 쉬기 위해 숙소로 들어선 뒤에는 부하 한 명을 은밀히 불렀다.
“오늘 밤에는 동방의 명주를 마시고 싶다.”
“알겠습니다.”
아주 짧은 만남. 의미 모를 대화. 하지만 이것은 정말 술을 마시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암호였다.
‘시간을 길게 끌 것도 없으니 후딱 해치우는 게 좋겠군.’
지휘관과 그의 부하는 미리 암호를 정해놓았었다.
동방의 명주를 찾는 것이 바로 습격 암호였다.
밤이 되어도 요새의 경계는 느슨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어이. 여긴 무슨 일이야?”
“아, 길을 잃어서. 친구가 분명 이쪽으로 향했는데.”
“여긴 아무도 안 왔어.”
크림 칸국의 병사가 길을 잃은 척 찾아와도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그래? 녀석이 출출하다고 해서 먹을 것을 챙겨왔더니. 하여간.”
크림 칸국의 병사는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말린 고기를 꺼냈다.
“그건 뭐지?”
“양고기 말린 거.”
“나도 좀 주지?”
오스만 제국의 병사는 말린 양고기 조각을 입에 넣었다. 짭짤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좋네.”
“그지?”
분위기가 좋아졌다. 두 사람은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 그때 한 병사가 나타났다.
“너 이 자식 여기서 뭐해?”
“너 찾고 있었지.”
나타는 것은 또 다른 크림 칸국의 병사였다.
“됐고. 빨리 그거나 내놔.”
새로 나타난 병사는 빠르게 다가왔다. 오스만 제국 병사는 그냥 지켜보았다. 경계할 이유가 없어보여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읍!”
빠르게 다가온 병사는 육포를 씹으며 가까이 다가와 친근한 척 굴었다. 그러다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날카로운 것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흘렀다. 그러나 비명은 없었다.
곳곳에서 경계를 서던 오스만 제국 병사들은 같은 꼴을 당했다. 그리고 깨서 돌아다니던 이들도 길을 잃은 것처럼 다가온 크림 칸국의 병사들에게 속아 죽었다.
이후 깨어 있던 모든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자 요새의 지휘관과 간부들은 모조리 살해당했다.
살아남은 것은 잠들어 있던 오스만 제국 병사들뿐이었다.
잠든 동안에 요새의 주인이 바뀌었다.
아조프는 쉽게 함락 되었다.
이스탄불.
술탄의 궁은 시끄러웠다. 신국이 해상에서 무자비하게 약탈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잡기 위해선 병력을 보내야 했으나 소용없었다.
“신국의 해군을 막아내긴 어렵습니다. 요새를 강화하거나 아니면 해안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배가 모조리 신국에 당해버렸다. 해상 전력이 싹 사라지니 신국의 사략 해적들이 날뛰어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어디로 들어올지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땅에 내려온 해적들에게 반격을 날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 그들에게 보낼 배는 없다.”
셀림 2세를 대신해 군사 작전을 살피는 수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치겠군.’
육군 전력을 보내는 것도 어려웠다. 아조프 쪽에 병력을 집중 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아조프 함락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었다.
‘에스파냐 놈들도 그렇고.’
더구나 합스부르크 가문을 중심으로 거대한 함대가 편성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앙숙이 함대를 만드는 데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도 함대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신국이 끼어들었다.
함대를 조각낼 순 없기에 수상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에스파냐가 먼저다.”
쪼갠 함대로는 어느 쪽도 이길 수 없었다.
“반도에는 육군을 보낸다.”
흑해 방면 방어라인에서 병력을 뺄 순 없었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 결국 병력은 새로 징집해야만 했다.
“성전이다. 신께 영광을 바칠 전사를 모은다.”
성전이란 단어를 이용해 선동에 들어갔다.
체첵과 사르나이는 각자 티베트와 오이라트의 여자를 부하로 삼았다. 그리고 신유성과 동침을 했다는 소식이 한양에 전해지자 티베트와 오이라트 출신 상인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황실의 피가 이어지는 구나!”
오이라트 출신의 상인에게는 더없이 특별한 사건이었다.
과거 몽골 제국이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칸’이란 단어가 허락되지 않았던 오이라트였다. 오직 ‘타이시’라는 지위만 허락되었었다.
이것이 한이 되어 에센 타이시는 동몽골 황족에 대한 숙청까지 감행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약간의 불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훗날 신국이 약해지면 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오이라트 여자가 신유성과 잤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가능성은 활짝 열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선물을! 야! 해구신 좀 사와라! 그리고 산삼도 구해와라!”
황궁에서 떨어질 리가 없는 물품들이었지만 오이라트 상인은 선물을 바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얼른 아이를!’
아이만 태어나면 그것이 여자 아이라도 상관없었다. 황제의 자식 중에 오이라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말이야.”
오이라트 상인은 시끄럽다고 나온 아내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상인의 아내는 얼른 뛰어가더니 하녀를 향해 외쳤다.
“지금 당장 예쁜 애들 다 모아! 그리고 너! 너 그게 무슨 꼴이니! 얼른 뱉지 못해!”
상인의 아내는 예쁜 여자들을 모아 궁녀 모집에 응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딸이 치킨을 물고 뜯는 것을 보며 타박했다.
“살 빼! 그런 꼴을 하고 있으면 폐하 얼굴도 못 봐!”
“폐하 얼굴을 제가 어떻게 봐요?”
“너 얘기 못 들었어? 지금 황궁에 어떤 바람이 부는데!”
“하지만 먹을 걸 함부로 버리면 안돼요. 벌 받아요.”
상인의 딸은 치킨 다리를 들고 도망쳤다.
이러한 소동은 어린 딸을 가진 부잣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소동이 벌어지거나 말거나 낮의 신유성은 일에 몰두했다.
“증기선이 완성되었다고?”
“그렇습니다. 아울러 광산 개발도 어느 정도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나진을 비롯해 중원 그리고 안남까지 석탄 광산이 개발되었다. 석탄 광산이 개발되었기에 증기선이 다닐 수 있었다.
아직 초기의 증기선이기에 부족한 것이 많았으나 한 가지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것은 바로 연락선으로서의 기능이었다.
“앞으로 증기선을 연락선으로 쓴다.”
화물을 많이 싣는 것은 무리였지만 연락선으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이제 좀 더 빨리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증기선은 어찌 보면 낭비였다. 하지만 낭비라고 하더라도 신유성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석탄은 신유성의 것이었다. 신유성에게 중요한 것은 석탄을 팔아 벌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석탄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먼 곳의 소식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정보를 빨리 입수해야 더 정확한 판단을 적절한 시기에 내려서 명령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니까.
신유성은 아직도 전화에 집착하고 있었지만 전화기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거의 없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신유성은 원천 기술 분야에 더욱 투자를 늘렸다.
“학교를 더 늘린다. 그리고 학회를 연다. 학회에서 선정되는 논문을 발표한 자는 영주로 삼겠다.”
얘기를 듣던 이지번은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 놀랄 것 없다. 신국 전체에서 1년에 딱 한 명 뽑는 것이니. 그리고 더 내줄 영지가 없다면 그땐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겠지.”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이지번은 바로 학교를 늘릴 생각을 했다.
‘이 사실은 빨리 알려야 해.’
학문으로는 다른 지역 출신들에게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공조에서 영주가 많이 나오겠어.’
하지만 이지번의 예상은 뒤집어졌다.
훗날 학회가 열리고 가장 먼저 영주가 된 것은 아메리카에서 전염병과 싸우던 박지화였다. 그 다음으로 영주가 된 것은 역시 의술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허준이었다.
공조의 사람들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생명을 더욱 중시했기 때문에 의술에 더 무게가 쏠린 것뿐이었다.
어쨌거나 훗날 벌어질 일 중 하나일 뿐이었다.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치즈 감자를 가져오라.”
일이 끝나자 신유성은 식도락을 즐기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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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