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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소용돌이
한양, 황궁.
주녹정을 비롯한 후궁들은 연일 면담 신청이 끊이질 않았다. 예전에도 신청자는 많았으나 최근에는 아예 폭발 중이었다.
“아무래도 궁녀를 새로 뽑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어떻게 뽑으면 될까요?”
“우선 아무나 뽑을 순 없지. 폐하를 모실 여자를 뽑는 일이다.”
면담 신청자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추천하는 여성을 궁녀로 뽑아달라는 것이었다. 황제와 동침하도록 도와준다면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부류도 있었다.
“공정하게 하는 것이 좋겠죠.”
“그래, 잡음이 인다면 폐하께서 어찌 생각하시겠는가?”
다른 사람들이야 권력이나 성공을 위해 여자를 바치는 것이지만 주녹정을 비롯한 후궁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신유성을 즐겁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청탁으로 뽑을 이유는 없었다. 신유성이 나눠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구나 기회는 무한히 주어졌다.
“우선 지금까지 뽑지 않은 지역의 여인들을 뽑는 것으로 하죠. 색다른 여인들을 안는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복속한지 얼마 안 된 지역은 말이 잘 안 통해요. 소피아만 해도 그렇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잠자리에서의 일인데.”
“잠자리에서의 일이야 얼마든지 한다지만 문제는 인성이다. 더러운 마음을 품은 것들을 폐하의 곁에 둘 순 없다.”
“맞는 말이에요.”
신유성을 즐겁게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이용하려 드는 여자가 가까이에 접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유성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짓밟는 일이기도 했다.
“그럼 심사는 철저히 하는 것으로 하지.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두를 일이 아니다.”
“그러면 기준은.......”
여인들의 회의는 길어졌다.
궁녀 모집 공고가 떴다. 그러자 단숨에 내용이 퍼졌다.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이들은 한탄했고 부합되는 이들은 기대를 품었다.
조선어. 키. 몸무게. 건강 상태. 예절. 학식 등 기준은 다양했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자의 경우에는 특별 추천을 받아야만 응시가 가능했다. 그리고 특별 추천은 한 달에 딱 한 번만 치르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공고가 나가자 면담 신청은 확 줄어들었다.
한편, 주녹정은 후궁들과 내린 결정을 신유성에게 알렸다.
“괜찮은 이야기군. 그대로 하라.”
이제는 거절할 일이 아니었다.
‘각 지의 여자라. 나쁘진 않아.’
계산이 시작되었다.
‘한양에 또 바람이 불겠군. 적당히 의류 회사를 만들고 패션쇼를 열게 해야겠어. 미인 대회도 열어야겠네.’
신유성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주녹정은 크게 감탄했다.
“미인 대회라면 기준을 가려내기가 훨씬 쉽겠군요. 하지만 다른 남자들이 보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건 맡기겠다.”
‘폐하에게 안길지도 모르는 여자의 몸을 다른 남자가 보게 할 순 없어.’
모든 것을 신유성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지배당하는 주녹정은 오직 여자로 된 심사위원을 구성해 여자들만 참석하는 여자들만의 행사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간단히 말해서 금남의 행사.
허락된 남자라면 신유성만이 유일했다.
“의복을 선보이는 의복전시회라면 다른 이들과 함께 해도 괜찮겠지요.”
“그래.”
의복전시회. 패션쇼 이야기였다.
“의류 회사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몸을 더 아름답게 치장하는 일이니 수익이 괜찮을 것이다.”
신유성의 훈수에 주녹정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잠시 피곤하시면 쉬시지요.”
대화 도중 신유성의 남성이 벌떡 선 것을 본 주녹정은 웃으며 신유성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심히 놀렸다.
입 안이 하얀 액으로 가득해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한양의 모토나리 저택.
“허허, 이런 좋은 일이.”
모토나리는 의복 전시회와 미인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하를 불렀다.
“얼른 회사를 하나 더 만들어라. 돈을 벌 기회다. 그리고 미녀들 교육에 더 신경 쓰도록. 절대 모자람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다른 지역의 여자들도 데려와라. 그 가족들까지.”
“가문에서만 뽑는 게 아닙니까?”
“상관없다. 누구든 궁녀로 들어갈 자격이 생긴다면 양녀로 들이겠다.”
명령을 내린 모리 모토나리는 조용히 정원을 바라보았다.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은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이럴 때 술을 한 잔하며 미녀를 품으면 그만이거늘.’
문득 지나간 추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었다. 늙은 모토나리는 생각과는 달리 술을 찾지도 않았다. 몇 년 전에 들인 어린 첩도 찾지 않았다.
‘이제 갈 때가 된 건가?’
모리 모토나리는 낮잠을 청했다.
모토나리의 가신들은 저마다 안타까워했다. 나이든 모토나리가 점점 기력을 잃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우울한 생각을 멈추질 못했다.
“주군께서는 얼마 안 남으신 걸까?”
노환이었다.
그 동안 가문을 영광으로 이끈 모사꾼에게도 죽음은 찾아왔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본의 전국 시대에서 살아남았기에 죽음은 낯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모토나리는 모두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으며 몇몇 가신은 덕분에 의원이 될 수 있었다.
모토나리의 결정으로 신국에 복속했고 영광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가문의 사람들은 다들 신의 한 수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결정이라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록을 책으로 남기기까지 할 정도였다.
“가시는 길 걱정하시지 않도록 편히 보내드려야 한다.”
“그럼 이번 일들은 어느 누구보다 완벽하게 해내야겠군요.”
“그래.”
모토나리의 부하들은 궁녀들을 뽑는 일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모토나리가 아프다고?”
“그렇습니다. 노환이라고 합니다.”
“그래.......”
소식을 들은 신유성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모리 모토나리.’
대단한 지략가였다. 대담하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모토나리가 신유성의 편이었다는 것. 모토나리 덕분에 일본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신국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모토나리였다.
신유성은 모토나리의 공로를 잊지 않았다.
“어려울 때 나를 도운 충신이다. 어의를 보내 살피도록 하라.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오라.”
무리한 것이 아니라면 소원 하나 쯤을 들어줄 생각이었다.
다음 날, 어의가 모토나리를 찾았다.
“하하, 폐하의 성은에 그저 감복할 따름입니다.”
모토나리는 웃으며 어의를 맞이했다. 신유성이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황제의 관심을 직접 받는다는 것은 권력을 유지하기에 좋은 일이었다. 황제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 없어도 가신들을 비롯해 제3자의 눈에는 명문가로 비춰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권력을 쥐어주기도 한다.
정치란 그런 것.
모토나리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기쁠 뿐이었다. 사실 노환으로 죽음 준비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연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다였다. 딱히 어디를 고치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하시지요.”
“허허,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모토나리에게는 청탁을 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폐하를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신국에 복속한 뒤로 후계 구도는 탄탄해졌고 가문이 무너질 일이 확 줄어들었으니까.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영웅이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가도 다음 세대에 쫄딱 망해 일가족이 전부 사망하는 일도 흔히 일어났다.
혹독한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은 모토나리에게 신국은 그야말로 별천지와 같았다.
“참으로 충신이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유성의 호의를 부드럽게 사양하는 것도 다 계산이었다.
빚을 지워두는 것이었다.
모토나리의 소문은 자연스럽게 황궁의 여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러한 소문은 선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궁녀 한 명을 들이밀 거라고 생각했는데.”
“빚을 졌군요. 폐하께서 받아들이라 하셨으면 예외를 두었어야 했는데.”
모토나리가 굉장히 계산이 빠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들 속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빚진 것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혜택을 주는 것도 좋겠죠.”
“그럼 의복전시회 준비의 일부를 맡기도록 하죠.”
“그게 좋겠네요.”
의복전시회는 그야말로 신국의 상류층 의복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욕구는 다양해졌다. 특히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욕구는 어마어마했다.
돈이 있는데도 쓸 곳이 별로 없었다.
보통은 이쯤 되면 돈보다 더 자신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권력에 관심을 두게 마련이었다. 허나, 신국의 사정상 더 위를 노리는 것은 불경한 행동이었다.
황제에게 도전할 기미를 보이다가 은밀히 제거된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너무나 은밀히 처리되어서 소문도 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망한 것으로 보고될 뿐.
허나, 북해도의 첩보기관에서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감히 황제의 권력에 이빨을 박으려 한 자들은 사고를 치기도 전에 처리해버린 것이었다.
상류층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래서 신유성의 권력을 넘보질 않았다. 더구나 현 황제인 신유성에게 도전할만한 힘을 가진 자들은 모두 심복이었다. 특히 이에야스의 경우에는 사실은 형제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로 각별했다.
황제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 상류층은 하나의 거대한 벽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다른 길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사치와 명예였다.
영주의 직위를 통해 신분을 보장 받은 이들은 최근 의원 활동으로 정신이 없었다. 의원이 되었다는 것은 굉장한 명예였다.
앞으로 중요 도시에는 시의회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니 많은 이들이 기대를 품을 정도였다.
국가의 행사에 참여할 기회는 곧 권력이었다. 그리고 권력이 곧 명예로 작용했다. 여기에 사치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부류라는 우월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다양한 사치 방법이 더해지니 돈 쓸 곳이 너무나 많았다.
가장 쉬운 예가 바로 고급 회관이었다.
고급 회관의 요리는 신국 전역에서 구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 요리였다. 어느 한 곳의 식재료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맛보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고급 회관에서 요리를 즐기며 사교 활동을 즐기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회관에서 만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의복과 장식품이기도 했다.
남과는 다른 생활을 한다는 의식.
특권을 주어졌다는 생각은 상류층을 만족시켜주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경쟁을 했다. 황실은 건드릴 수 없으니 자신들끼리 경쟁했다.
그런 차에 의복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상류층 사람들은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경제적 활동에 참여해 돈을 벌어두기 위해 노력했다.
모리 가문에 주어진 것은 바로 이런 상류층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행사의 주도권 중 일부였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그래, 이제부터 바빠질 테니까.”
주녹정을 비롯한 여인들은 함께 황궁의 한 곳으로 이동했다.
백 명이 훌쩍 넘은 여인들은 거대한 욕탕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정말 크다.”
“여기가 폐하께서 쓰시는 곳인가?”
여자들은 금방 친해졌다. 아니, 친한 척 했다고 해야 할까?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며 서로의 몸을 씻어주었다.
어찌 보면 다들 경쟁자였다. 하지만 경쟁심을 겉으로 드러내며 수작을 부리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대욕실 한 곳에 서 있는 궁녀들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모든 행동이 관찰되며 이것이 궁녀 선발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을 알기에 조신하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정말 성격이 밝아서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도 있었지만 계산에 의해 밝게 행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레이는 그런 여자들의 욕실에 나타났다. 뒤에는 수많은 궁녀를 거느렸다. 모두가 활동이 간편한 옷을 입은 궁녀들이었다. 손에는 검까지 들고 있어 살벌했다.
무장이 허락된 궁녀들은 궁녀이면서 친위대이기도 했다.
“모두 나와바라.”
레이의 명령에 여자들은 씻다 말고 일어나 줄을 섰다. 알몸을 관찰 당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허나 레이는 부끄러워하거나 말거나 여자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문제 있는 사람은 없군.”
다들 한 미모 하는 이들뿐이었다.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
이후 여자들은 빨리 씻고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조가 들어오자 레이가 아닌 매화가 들어와 여자들의 몸에 이상이 있나 살폈다.
신유성과 동침하기 위해 줄을 선 여자들의 행렬은 길고도 길다 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