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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사람들
스톡홀름.
스웨덴의 수도인 웁살라로 가기 전에 있는 항구 도시다. 구스타프 1세 바사왕에 의해 중심 도시로 발돋음하게 된 스톡홀름은 현재 상당히 발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만큼 선박도 많았다.
“적이다!”
스웨덴 해군은 캐럭 20척을 스톡홀름에 상시 대기 시켰다. 비스뷔에 전력을 보내면서도 주요 항구를 지키기 위해 상당한 전력을 남겨둔 것이었다.
신국의 발트 함대가 등장하자 스웨덴 해군은 바로 출항해 전투에 들어갔다.
“숫자는 같다! 포격전으로 간다!”
이순신은 절대 백병전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백병전으로 가면 승리와 함께 적의 배를 나포해 큰 수확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질 수도 있었다.
‘놈들이 못 싸운단 법은 없지.’
이순신은 리가에서 함대를 만들며 역사를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바이킹이란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바이킹들은 무시무시한 약탈자들이었다. 싸움도 상당히 잘했다.
‘방패진은 의외지만.’
더구나 방패진은 신국에서 쓰는 것과 비슷했다. 이는 신유성이 바이킹의 것을 베낀 것이었지만 이순신은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바이킹의 후예들이 백병전에서 약할 것 같지 않았다. 약하지 않더라도 모험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철저히 포격전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해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스톡홀름 항구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해전을 보려 했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해전을 보면서 기도를 중얼거렸다.
허나,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신은 응답하지 않았다.
신국의 발트 함대는 차근차근 한 척씩 스웨덴 해군을 침몰 시켰다. 대부분 이순신이 탄 기함이 한 일이었다.
뛰어난 갤리온의 성능과 이순신의 지휘가 어우러지자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무엇보다 기함을 뒤따르는 함선의 보조도 상당했다.
신립은 최대한 기함의 움직임에 맞춰서 배를 움직였다.
기함이 노린 것은 신립도 노렸다.
스웨덴 해군은 별 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신국의 발트 함대에 아주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침몰한 배는 없었다.
실전을 빙자한 훈련 덕분이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지식을 실전을 통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예비 함장들은 더 이상 ‘예비’라는 수식어를 달 필요가 없어졌다.
모두 능숙하게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는 꼬박 2일에 걸쳐 일어났다. 그리고 스웨덴 해군의 배는 모두 침몰했다.
“돌아간다.”
이순신은 전투가 끝나자 약탈도 하지 않고 바로 퇴각했다. 며칠 후, 비스뷔의 함대가 뒤늦게 스톡홀름에 와서 허탕만 쳤다.
이후 비스뷔의 함대는 해산했다.
스웨덴에서는 스톡홀름 방어가 어려워지니 배를 뺐다. 언제 약탈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이 배를 빼자 덴마크와 폴란드도 배를 뺐다. 그리고 한자 동맹에 속한 도시들도 배를 뺐다.
결국 비스뷔의 배들만 남았다.
모두 떨어져 나가자 이순신은 비스뷔를 정리해버렸다.
한양, 황궁.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신유성은 드디어 원정을 떠나기로 했다. 원정을 가기 위해 선택한 길은 해로였다. 새로 만들어진 2척의 전열함중 한 척은 신유성이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배에 타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여자였다.
이는 어쩔 수 없었다. 황후인 주녹정과 후궁들을 시중들고 보호하기 위해선 여자들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배는 철저히 신유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배의 선원들은 친위대가 직접 할 예정이었다. 이 때문에 친위대는 선원으로서의 훈련도 받았다.
아니, 신유성이 타는 기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호위함대 전체가 친위대로 채워졌다. 바다에서 배 하나가 배신 때리고 들이 받으면 그것만 해도 문제가 커지니까.
호위함은 기함이 아닌 전열함 한 척과 갤리온 40척이었다. 상품 따윈 싣지도 않았다. 오직 전투를 위한 보급만 할 뿐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의회에 들리겠다.”
신유성은 떠나기 전에 연설을 할 생각이었다.
의회에는 이미 의원들이 모여 있었다. 실시간으로 확장하는 신국인지라 다음 날 갑자기 새로운 의원이 합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폐하께서 원정을 가신다지?”
“척장군은 신대륙으로 보내셨다는데.”
“그럼 그쪽으로 가시는 건가?”
의원들은 신유성의 행보에 관한 추측을 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신유성이 등장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침묵이 의회 안에 내려앉았다.
가볍게 인사를 한 신유성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잠시 한양을 떠나 있을 생각이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한양을 떠나지만 황도를 옮기는 것은 아니다. 황실이 외유를 나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건 그렇고 내가 없는 동안에도 국정은 멈춰선 안 된다. 그래서 내가 나가 있을 동안 잠시 나를 대신해 의회가 결정을 내리도록 권한을 위임하겠다.”
쿵.
의원들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착각하지는 마라. 황권을 넘긴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정 분야와 법을 제정하는 것에 대해 맡기는 것뿐이다. 돌아와서 만족스럽지 않을 땐 다시 법을 바꾸겠다. 그리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의장은 이이에게 맡기겠다. 그럼 난 가볼 테니 일보도록.”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신유성이 돌아서자 의원들은 전원 목이 터져라 외쳤다.
“괜찮겠습니까?”
“이제 저들의 본색이 나올 것이다. 혁에게 지켜보게 하라. 그리고 엉뚱한 짓을 하는 놈들을 잘 기록해둬라.”
“폐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명령을 받은 것은 초기부터 신유성을 따랐던 닌자 중 한 명이었다. 이제는 정보부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신페이가 수장이지만 너무 많이 알려져 있었다. 실질적인 수장은 이름도 그 무엇도 남기지 않고 움직였다.
오직 같은 조직에 있는 이들만이 진면목을 알 뿐이었다.
“항상 고맙다.”
정보부의 수장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신유성의 감사 인사가 갑자기 가슴에 콕하고 박힌 탓이었다.
감동에 부르르 떠는 정보부의 수장을 뒤로하고 신유성은 외유를 위해 황궁을 나섰다.
마차가 제물포를 향해 힘차게 달렸다.
신유성이 떠나는 길까지 의회의 의원들은 전원 나와 배웅했다. 황궁 앞에서 모두 줄을 서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절에 익숙하지 않은 지방의 의원들도 모두 따라했다.
마차가 떠나고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의원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제 안 보입니다.”
황궁 친위대 한 명이 말하자 그제야 의원들은 고개를 들었다.
“이제 회의 합시다.”
모두 피곤하다거나 허기를 느낀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디 딴 데로 가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회의에 빠질 수 없었다.
지금까지 했던 회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회의가 될 첫 회의였기 때문이었다.
이이는 단상에 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국정을?’
황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이가 맡은 역할은 황제의 대리.
수렴청정도 아니었다. 인척도 아닌 이이가 황제의 대리로 회의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신유성이 얼마나 자신을 믿는지, 의원들을 믿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이이는 신유성의 배포에 크게 감동했다.
“먼저 황제폐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황제 폐하 만세!”
이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황제인 신유성을 향한 만세 삼창이었다. 그 어떤 의원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만세 삼창을 따라했다.
“폐하께서 우리 의원들을 얼마나 신뢰하시는지 오늘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신국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았을 것입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러니 의원 여러분. 앞으로 후회를 남기지 맙시다. 빛나는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신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뭉쳤다.
회의가 시작되고 여러 가지 제안이 올라왔다. 신국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제안이었다.
다소 황당한 것도 있고 문제가 있는 것도 있었지만 모두 기록되었다. 그리고 의원들은 치열한 토론에 들어갔다.
회의장 한 구석에서는 정보부 수장이 경비원의 옷을 입고 회의를 직접 지켜보았다.
1571년 10월 7일, 이오니아 해 파트라스만.
일요일 아침이었다.
오스만제국함대는 레판토 해군기지에서 출항했고 신성동맹함대는 메시나에서 출항했다.
오스만제국함대의 전력은 갤리선 230척, 56척의 갤리엇선, 대포는 총 750문이었다. 반면 신성동맹함대의 전력은 갤리선 206척, 갤리아스 6척, 그리고 대포는 총 1815문이었다.
배의 숫자로만 본다면 오스만제국함대가 앞서지만 대포에서는 신성동맹함대가 훨씬 앞섰다. 여기에 세부적인 무장으로 들어간다면 차이가 있었다.
신성동맹함대의 병력은 화승총과 머스킷총으로 무장한 병력이었으나 오스만제국함대의 병력은 상당수가 복합궁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여기에 원래 역사와 다른 무기가 끼어있었다.
바로 신기전과 투척용 폭탄이었다. 문제는 오스만제국함대는 화약이 부족했는지 신무기의 수가 신성동맹함대보다 훨씬 적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양측은 치열하게 싸웠다.
질 수 없는 싸움.
“이교도 놈들에게 질 수 없다! 장전하고 쏴라!”
신성동맹함대에서는 계속해서 화약 무기를 쓰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스만제국함대도 포를 쏘긴 했다. 하지만 대포의 수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화력의 차이는 오스만제국함대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버텨라! 쏴! 놈들을 잡아라!”
배가 가까워지자 병사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신성동맹함대의 병력은 총을 쏘고 오스만제국함대의 병력은 화살을 쐈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싶으면 신기전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쏴! 쏘란 말이다!”
그러다 배가 더 가까워지면 폭탄을 투척했다.
양측에 피해가 누적되었다. 신기전과 투척 폭탄으로 인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역시 갤리아스였다.
“대체! 저것들은 뭐란 말인가!”
오스만제국군은 갤리아스를 보고 수송용 상선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상선이라고 생각한 갤리아스는 전투함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갤리아스는 오스만제국함대의 진열로 뛰어들어 대포를 마구 피해를 입혔다.
계속해서 불을 뿜은 갤리아스 때문에 오스만제국함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전투는 배들이 뒤엉키는 난전으로 들어갔다.
백병전이 일어나기 전에 피해를 입은 오스만제국군은 계속해서 밀렸다. 버텨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어떻게 해보기엔 배들이 너무 엉켜 있었다.
신성동맹함대는 계속해서 오스만제국함대의 배를 무력화시켰다.
전투는 오후 4시 정도에 끝이 났다.
오스만제국함대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피해 보고를 먼저 받은 곳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셀림 2세였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나? 대패?”
“그렇습니다.”
“그거. 그거 이리 내놔!”
전령이 든 보고서를 빼앗아든 셀림 2세는 부들부들 떨었다.
‘궁수를 다 잃었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궁수는 단기간에 훈련시킬 수 있는 병력이 아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려선 절대 안되는 전력이었다.
그런데 해전 한 번에 막대한 수의 궁수가 날아갔다.
배의 피해도 엄청났다.
“끝났어. 다 끝났어.”
결정적인 피해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이 해군을 만들 때 신성동맹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셀림 2세는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끝났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한편, 시간이 좀 지나 보고를 받은 펠리페 2세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으하하하하하! 드디어! 놈들을! 박살냈다! 보았느냐! 신의 가호를! 나의 힘을!”
에스파냐를 비롯한 신성동맹함대의 피해는 오스만제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승이었다.
신성동맹함대의 선박은 대부분 사용에 문제없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오직 하나, 지중해의 패권이 신성동맹으로 넘어왔다는 것.
이제 지중해는 유럽인들이 좌우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펠리페 2세는 얼마 안 가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심장 떨어지는 소식은 신대륙에서 건너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