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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기
폴란드가 크림 칸국이 있던 지역, 우크라이나 방면으로 공격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신국의 군대는 어떻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뭐?”
바로 신국의 원정군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아조프는 이제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 기를 쓰는 상황.
신성 동맹 입장에선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신국이 문제였다.
거대해도 너무나 거대했다. 그래서 신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오스만 제국이 한 방에 쓰러지는 것은 그다지 달가운 것도 아니었다.
신국을 견제해줄 세력이 필요했다.
폴란드에서는 간접적으로 오스만 제국을 도우며 또한 신국의 군대를 크림 지역으로 움직이려 한 것이었다. 크림 지역이 위기에 처하면 아조프를 지키기 위하여 군을 움직일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허나, 신국 원정군은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깜찍한 놈들이군.”
“그렇습니다.”
노부나가는 폴란드군이 한 짓에 대해 듣고는 피식 웃었다. 폴란드로의 진격은 쉽지 않았다. 신기전과 폭탄을 비롯해 신형 무기로 잔뜩 도배한 요새는 건드리기 까다로웠다.
피해를 입을 것을 각오한다면 못 무너뜨릴 것은 없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원정군이 큰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병사를 잃으면 다시 채우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계속 원정군 사령관에 붙어있으리란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신유성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 제일 싫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하다.’
“놈들의 병력 이동 상황을 말하라.”
“네, 현재 폴란드군은.......”
정찰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덕분에 폴란드군의 병력 이동 상황을 전부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병력은 어디서 마구 복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곳으로 이동시키면 다른 한 쪽은 비게 되어 있다.
예비 병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빈틈이 생긴다.
‘예비 병력만으로 채운 곳도 빈틈이지.’
노부나가는 빈틈을 찾았다.
“각 지역에 전해라. 약탈을 허락한다고. 최대한 많은 노예를 잡으라 해라. 노예를 산다고 전해라.”
명령을 내린 뒤 노부나가는 군대를 해안 쪽으로 집결시켰다.
약탈 허가가 떨어지자 가장 흥분한 것은 바로 크림족과 노가이족이었다.
“하하하! 노예를 잡자!”
원래 노가이족과 크림족이 하던 사업 중 하나가 노예사냥이었다. 하도 많이 약탈하고 다녀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해서 겁먹지도 않았다.
“이제는 동업하는 처지니 잘 부탁합니다.”
“그럽시다. 한 탕하고 나서 술이나 한잔 합시다.”
크림족과 노가이족은 이제 연합하기까지 했다. 폴란드군이 숫자가 많으니 아예 뭉쳐서 휩쓸어버린 것이었다.
요새는 물론 단단하다.
하지만 요새를 그냥 지나치면?
일반 보병이나 점령을 하려는 군대였다면 보급선 문제로 인해 요새를 지나치긴 어렵다. 하지만 약탈자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자기 먹을 것만 챙겨서 방어가 약한 쪽으로 파고들면 그만이었다. 숫자가 많으니 도중에 만나는 소규모 부대는 그냥 밀어버렸다.
이후 마을 하나를 만나면 완전히 다 털어버렸다. 기존에 털던 보물은 물론 기타 문서까지 털었다. 그리고 사람을 몽땅 사로잡아서 귀환했다.
이 때문에 폴란드인들은 다시 공포에 떨었다. 폴란드가 합스부르크 가문과 연계해 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왕의 군대는 강해졌지만 그 보호가 백성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이 사라지면 인근 마을 사람들 상당수가 마을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보호를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곳에 가서 정착하려는 이들이 늘어났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남은 이들도 있었다. 매일 같이 기도를 올리며.
하지만 전쟁 국가의 백성이라는 운명은 잔인했다.
“아아아악!”
“도망쳐!”
아비규환.
적대하는 자에게 자비는 없다.
크림족과 노가이족은 반항하는 자들은 철저하게 응징했다. 사로잡은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했다. 잡힌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주어 마음을 꺾는 것이었다.
그래야 노예로 만들 수 있으니까.
반항하지 못하도록 뇌리에 공포를 심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지간해서는 반항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반항하다 처형당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면 몸이 자연히 굳는 것이었다. 그러면 좀 더 좋은 때를 기다린다며 사람은 자기 합리화를 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방식은 공포심이 희석되면 효과가 없지만 초기에는 효과가 분명한 것이었다.
크림족과 노가이족은 사로잡은 노예들을 팔았다. 남자 노예들은 공사에 투입하거나 광산 개발에 투입되었다. 여자들은 농사에 투입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런 일이 벌어지자 폴란드는 조금씩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생산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이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일어나는 가장 큰 문제였다.
전쟁은 어떤 형식으로든 생산력에 영향을 미친다.
신국처럼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공장이 들어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인력이 부족하면 생산력이 심각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를 가진 폴란드는 점점 빚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빚을 상당부분 합스부르크 가문이 막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타격이 들어왔다.
아메리카의 식민지와 단절된 것이었다.
“상황은 어떤가?”
“심각합니다.”
펠리페 2세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돈이 부족했다. 이제 막 치고 나가야 할 상황인데 돈이 부족했다.
아메리카에서 보물을 잔뜩 실은 배가 있어야만 에스파냐의 경제가 굴러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군대를 만들어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고 있었다. 이제는 반대로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지우기 위해서 치고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정말 조금만 더 몰아치면 영광스러운 승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국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날아가게 생겼다.
“메디치 가문은 뭐라고 하나?”
“돈을 최대한 융통하겠다고 했습니다.”
메디치 가문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돈을 안 빌려 줄 수 없는 대상이었다. 나중에 떼먹힐 가능성이 높아도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
권력이 깡패였다.
그것도 군대를 가진 권력이었다.
대신 메디치 가문은 많은 이권을 보장 받기를 원했다. 펠리페 2세는 당연히 허락했다. 휘하에 빚을 져서 허덕이고 있는 귀족 몇 명 쳐내고 메디치 가문에 이익을 안겨주는 것 정도였으니까.
“폴란드의 상황은?”
“일단 신국 견제에 들어갔지만 신통치 않은 모양입니다.”
“대체 왜 갑자기 튀어나와선.”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리가는? 리가를 틀어막아야 하지 않나?”
“노력 중이지만 소용 없다고 합니다.”
“후우........”
펠리페 2세는 리가에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신국 함대의 소식을 듣고 긴장했다.
“빨리 함대를 만들도록 하라.”
신국의 함대가 행여나 에스파냐 앞바다에 나타날까 두려웠다. 바다를 빼앗긴다고 해서 나라가 금방 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다가 막히면 힘들어지는 것은 분명했다.
리가.
이순신은 전열함을 요청했지만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전열함을 만들 조선공을 보낼 테니 직접 만들라는 것이었다.
“으음.......”
“차라리 직접 만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같이 답변을 확인한 신립은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이걸 봐라.”
설계도와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이 적힌 서류를 받아보았다.
“헉!”
전열함은 그리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엄청난 양의 목재가 필요했다. 숙련된 조선공도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또한 여기에 맞는 대포도 생산해야 했다.
“힘들겠군요.”
“그래, 힘들다.”
전열함은 물론 위협적이다. 하지만 전열함 한척 만들 자원으로 갤리온을 여러 척 만들 수 있었다. 배에 필요한 자원 외에도 숙련된 조선공을 전열함 만드는 데 투입하다보면 다른 선박 생산이 중단되게 된다.
“하지만 배는 좋아.”
이순신은 전열함 설계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거 좀 더 작게 만들 수 없을까?”
“네?”
“한 번 알아보도록 해봐.”
“하지만 보안은 어떻게.”
“그래, 보안은 중요하지.”
전열함 설계도는 아무나 볼 수 없는 기밀에 속한 문서였다. 오직 신국에 충성하는 조선공들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전열함을 건조할 조선소를 만들게 되면 모든 것은 기밀로 취급해야 했다.
조선소에 드나드는 사람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신국에서는 기술 유출에 민감하게 굴었다. 그리고 기술 유출하다 걸리면 반란죄가 적용되었다.
인생 망가지는 거 순식간이다.
이순신은 조선소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조선공을 다섯 명 불러 한 명씩 면담했다.
한스는 조선공이었다. 나이가 많았다.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노구를 이끌고 배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직접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견습 조선공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노하우를 하나씩 전수해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가의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신국에 협력하게 된 이상 신국이 모든 전쟁에 이겨야만 했다. 만약 신국이 져서 물러나게 된다면 협력했던 사람들은 물론 그 가족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신국이 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협력했다.
“부르셨습니까?”
나이 많은 조선공과 이순신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에 어려움은 없었다. 통역들이 있었으니까.
“신국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 제 나라입죠.”
“정말 그런가?”
“물론입니다.”
“그러면 그대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다. 대신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네는 물론 자네 가족들은 한 동안 감시하에 지내야 한다."
“네?”
이순신은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고 엄포를 놓았다.
“정말 하겠는가?”
한스는 압박을 받았다.
‘충성을 증명하라는 건가?’
받아들인다면 가족이 고립된 상태에서 지내게 된다. 뭔가 위험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 주저하게 되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고 있다지만 신상에 문제가 생길 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올 것만 같았다.
“하겠습니다요.”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안 하면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르니까. 평소 이순신이 이상한 짓을 시키지 않았으니 믿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이순신은 표정을 풀고 용건을 말했다.
“그대에게 맡길 일이 있다. 이 설계도를 봐라.”
고급스러운 종이. 정밀한 설계도.
한스는 난생 처음 보는 종류의 설계도였다.
‘이럴 수가?’
설계도 자체가 뛰어났다. 전열함 설계도라서가 아니었다. 설계도의 정밀한 표현에 놀란 것이었다.
놀랄 일은 더 있었다. 설계도에 그려진 배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만들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미 만들어진 배라는 말을 들었다.
“허허.”
신국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한스는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이 배를 좀 더 소형화 할 생각이다. 크기와 포문을 좀 줄이는 대신 속도를 높이고 싶다. 할 수 있겠나?”
“해보겠습니다.”
전열함을 소형으로 개조하는 의뢰였다. 의뢰를 하는 동안 본인은 물론 가족은 고립되어야만 했다. 의뢰가 끝나도 최소 10년은 감시 하에 살게 될 터였다. 하지만 이미 받아들인 일이었다.
이순신의 의뢰로 프리깃이 탄생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