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226화 (226/271)

0226 / 0271 ----------------------------------------------

신무기

말라카.

하노이에서 볼 일을 마친 신유성은 말라카에 도착했다.

“여기가 그곳인가요?”

“그래.”

그곳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암살당할 뻔했던 곳.

주녹정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불길해요.”

“너무 그러지 마. 여기 영주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겠어?”

“그렇게 챙겨줄 필요가 있나요?”

“여기 영주 덕분에 쉽게 일이 풀린 것도 있으니까.”

일본이 쉽게 넘어온게 모토나리 덕분이라면 말라카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섬들이 쉽게 넘어온 것은 말라카의 영주 덕분이기도 했다.

“알았어요.”

주녹정은 참기로 했다.

‘여기서 여자는 안 뽑아!’

후궁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말라카였지만 그리 오래 지내지는 않았다. 주녹정은 물론 후궁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마음이 그리 좋지 못하다보니 재미있게 지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신유성은 말라카에서 열흘 정도 쉰 뒤 다시 움직였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페구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페구는 많이 발전해 있었다. 항구도 엄청나게 발전했다. 수많은 배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저나 전쟁이라.’

전쟁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카리브해에 돌입한 신국 함대는 에스파냐 해상 세력을 싹 몰아냈다는 이야기였다.

‘나쁘지 않네.’

에스파냐의 자금줄을 틀어막았다. 이것으로 오스만 제국이 에스파냐에 의해 급격하게 몰락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에스파냐도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노부나가도 잘 하고 있고.’

리투아니아를 먹은 이후 노부나가는 주춤하는 모양새였지만 신유성은 잘 하고 있다고 여겼다. 에스파냐를 비롯해 오스만 제국까지 신국이 사용했던 무기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디어만 알면 응용하기 어렵지 않은 무기였다.

‘하지만 이건 따라하지 못할 거다.’

신유성은 허리에 찬 육혈포를 쓰다듬었다.

후장식 권총은 만드는 기술을 입수해도 공장을 세우지 못하면 말짱 헛일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총알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비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총알에 사용되는 화약을 만들어낼 공장도 세워야 한다.

원천 기술이 없다면 기밀을 입수해도 단기간에 따라 하긴 어려운 것이었다.

‘이 전쟁도 이긴다.’

신유성은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페구에 도착한 뒤, 많은 이들이 주녹정과 후궁들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 찾아왔다.

“알겠다. 의복전시회를 열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용건은 간단했다. 의복전시회를 열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복전시회를 열어 직물 소비를 늘리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최대한 아름답게 꾸민 여자들이 황후인 주녹정과 후궁들의 눈에 들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신유성에게 여자를 안기기 위해선 황후와 후궁들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신유성도 굳이 이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항상 주녹정을 존중해주었다.

자신을 향한 총애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주녹정은 신유성을 즐겁게 해주려 노력했다. 나츠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향락을 즐길 생각 외에는 더 없었다. 자식을 황제로 올리겠다는 욕심을 일찌감치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후 미녀대회가 열리고 딱 4명의 여자만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여자가 뽑히자 페구를 비롯한 주변 지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신유성의 침실에 들어갈 수 있는 후보가 뽑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황실과 자신들의 피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

아니, 황실과 인연이 닿았다는 사실이 지역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황실과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 것이었다.

혈연, 피.

주녹정과 후궁들은 오직 신유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자들을 뽑는 것이지만 신국의 백성들에게는 황실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행사였다.

이 때문에 연락선을 타고 미녀 대회에 대한 사실이 신국 전역에 퍼졌다. 그리고 신유성의 다음 행선지가 어디일지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황실과 더 가까워지려 노력할 때, 신유성은 미녀들을 세워놓고 엉덩이로 이름을 쓰게 했다.

흔들거리는 엉덩이를 감상하며 이름을 알아맞히는 것이었다.

한양 외곽의 어느 밭.

감자가 수확되었다.

“허허! 허허허허!”

이지함은 수확한 감자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럴 수가! 이렇게 빨리?’

감자를 심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벌써 수확 시기가 온 것이었다. 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

심지어 감자는 논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산속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것이었다.

기적의 작물.

이지함은 금방 흙에서 캔 감자에서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냈다.

“이거. 삶아봅시다.”

“예.”

감자 한 바구니가 삶아졌다. 껍질을 까서 입에 넣자 살살 녹는 맛.

여기에 소금을 살짝 찍으니 아주 맛이 훌륭했다.

“허허! 허허허허!”

이지함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 정말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지금도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국 전체의 식량 상황이 썩어 넘쳐날 정도로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정복 전쟁이 계속 되는 동안 소비된 군량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소비 되고 있었다.

이제는 일일이 수를 세는 게 귀찮을 정도로 많은 어선이 있어 식량 문제로 곤욕을 치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생선이 아닌 다른 먹거리가 나타났다.

기쁜 일이었다.

“종자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최대한 늘려라! 그리고 종자를 함부로 파먹는 인간은 엄벌에 처하겠다!”

이지함은 감자 보급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못 먹으면 병에 잘 걸린다. 그러니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도 병을 예방하는 행위. 의조에서는 병자를 줄이기 위한 사업으로 감자 보급을 선택해 예산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토마토는 소외 받았다.

감자가 심어졌던 밭 옆에서 덩그러니 옥수수와 함께 남겨져 있었다.

프랑스.

신국에 복속했던 위그노 해적들은 모두 영주가 되었다. 빠른 시간 안에 영주가 된 비결은 바로 적극적인 협조.

원래 카리브해에서 에스파냐를 약탈하던 해적들이기 때문에 길잡이로서 역할을 하며 공을 세웠다.

신국 함대는 이들의 공을 참작해 섬 하나를 통째로 이들에게 넘겼다. 그리고 알아서 구역을 나눠 영주가 되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영주가 된 해적들은 더 이상 해적들이라고 부르긴 어려운 상황.

어쨌거나 영주가 된 이들에겐 영지민이 필요했다. 프랑스에서 박대 받고 있는 위그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원주민과 친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은 종교와 문화를 가진 위그노들이 더 친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영지민을 늘리기 위해 위그노 영주들은 프랑스로 몰래 돌아왔다.

“뭐라고요? 에스파냐가 정말 없다고요?”

“그렇다. 이제 난 신국의 영주가 되었다. 그대들도 나를 따라오면 종교 때문에 문제가 생길일은 없을 것이다. 신국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그리고 영주는 영지의 종교를 정할 권리가 있다.”

신국의 영주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위그노들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프랑스에서는 기즈 대공 때문에 사실 난리였다.

기즈 대공은 가톨릭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로 나라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위그노는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었다.

“가야지요! 그게 사실이면 여기서 이럴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 가는 거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신대륙으로 가고자 하는 위그노는 많지만 배는 별로 없었다. 위그노 영주들도 몰래 왔기 때문에 많이 데려가긴 어려웠다.

“배가 필요합니다.”

“습격합시다.”

“어디로 할까요?”

“어디든!”

칼레, 밤.

어둠속에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하늘에 뜬 달이 있었지만 그림자들을 어둠 밖으로 끄집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그림자들은 달빛을 길잡이 삼아 칼레로 숨어들었다.

숨어든 그림자들은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 되자 습격을 시작했다. 항구를 빼앗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칼레 내부에도 이미 준비하고 있던 그림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위그노였다.

만약 외부의 군대가 이렇게 접근해왔다면 어려웠겠지만 위그노는 기본적으로 같은 프랑스인이었다.

내부의 적은 그만큼 막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은밀하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다.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배신이 더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방어를 무시하고 공격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모두 죽입니까?”

대부분의 병사들은 사로잡혔다.

“아니, 살려서 끌고 간다. 신국은 노예가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배가 부족합니다.”

“발트해로 가면 된다. 거기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된다.”

항구를 습격한 위그노는 리가로 향했다.

위그노는 칼레를 비롯해 주요 항구를 습격해 배를 강탈했다. 프랑스를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샤를 9세는 뒷목을 잡았다.

“대체 이게! 으윽!”

샤를 9세. 형인 프랑수아 2세의 뒤를 이어 10살에 프랑스의 왕이 된 젊은 왕이었다.

“놈들이 감히!”

분노 때문에 뒷목을 잡았던 샤를 9세는 진정되자마자 다시 날뛰었다. 집기를 부수는 것은 물론 근처에 있는 사람을 마구 구타했다.

충동적인 성격으로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샤를 9세가 날뛰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모조리 죽여 버려!”

하지만 분노한 샤를 9세의 명령에도 프랑스의 귀족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삐걱거렸다.

앙리 2세의 죽음 이후로 프랑스의 왕권이 서서히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반면 기즈 대공의 권력은 더욱 커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샤를 9세는 더욱 날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날뛰어도 소용없었다.

권력을 쥐지 못한 자의 말에 따라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뛰어들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잉글랜드, 런던.

함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었다.

“칼레? 엎어지면 코 닿는 거기?”

“니 코는 참 길구만? 난 넘어지면 거시기가 닿던데.”

“에라이! 크크크크.”

주점에서 간부들과 술을 마시며 적당한 인재를 물색하던 도중 소식을 입수한 것이었다.

“이봐, 형제들. 칼레 얘기 좀 더 해줄 수 없나?”

드레이크가 술병을 내밀자 얘기하던 선원들이 신이 나서 나불거렸다.

‘오호? 위그노라?’

드레이크도 위그노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었다. 신국에 복속하기로 한 이후 은밀하게 정보를 가져다주는 요원이 런던에 자리 잡은 덕분이었다.

위그노에 대한 정보가 드레이크의 손에 들어간 것은 최소한 같은 편끼리 싸우지 않게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

‘그 녀석들을 도와서 리가로 가면 되겠군.’

리가에서 신국이 함대를 만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드레이크는 몰래 리가로 갈 생각이었다.

“좋은 이야기 잘 들었네. 행복하시라고!”

드레이크는 술을 한 병 더 사주고는 서둘러 주점을 나섰다.

이후 드레이크는 함대를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아직 제대로 완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위그노의 일을 돕기 위해서였다.

칼레는 정말 금방이었다.

근처에 가자 프랑스 선박들이 보였다.

“어서 신호를!”

드레이크는 연막탄을 터트렸다. 포탄 대신 색깔 연기를 잔뜩 뿜어내게 만드는 연막탄이 터지자 프랑스 선박들의 움직임이 조용해졌다.

위그노에도 연막탄의 의미를 아는 요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잉글랜드 놈이랑 이렇게 손 잡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배에서 마주한 위그노의 영주와 드레이크는 악수를 하며 피식 웃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