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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기
칼레에서 드레이크의 도움을 받은 위그노는 상당수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물론 모두 한꺼번에 프랑스를 떠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남은 이들은 흩어져서 다른 곳에 집결하기로 했다.
이후 탈출한 이들이 향한 곳은 리가였다. 프랑스에서는 기즈 대공의 명령을 받는 해군이 이들을 잡기 위해 움직였으나 소용없었다.
바다로 사라져버리면 추적은 어렵다.
대충 방향만 잡고 무작정 쫓는 방법 밖에 없었다. 해적이라면 거래하는 상인이 있는 항구를 찾아가서 매복하면 되지만 칼레에서 탈출한 위그노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제 곧 유틀란트인데 괜찮을까?”
“가봐야지. 돈 좀 찔러주면 무사할 거야.”
드레이크는 일단 깃발을 에스파냐의 것으로 바꾸었다.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에스파냐의 깃발을 다는 것은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만약 일이 잘못 되면 에스파냐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뒤집어 씌우기에는 좋았다.
멀리 북쪽으로 올라간 뒤 남하하며 스카게라크 해협으로 들어섰다. 이후 항해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모두 일렬로!”
전투 대형으로 가지 않고 무조건 일렬이었다. 전투 대형으로 다니면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더구나 스카게라크 해협 다음에는 카테가트 해협이었다. 이쪽은 더 위험했다. 덴마크의 셸란섬 때문이었다.
코펜하겐이 있는 셸란섬의 동부와 스웨덴의 남부 사이에 있는 외레순 해협은 너무나 좁았다. 때문에 통과하려면 반드시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되어 있었다.
반면 외레순 해협보다 좀 더 넓은 것은 셸란섬 서쪽에 있는 스토벨레트 해협이었다. 이곳을 지나쳐 릴레벨트 해협을 거치면 발트해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쪽도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다만 외레순 해협을 지나는 것보다 조금 나은 정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위그노와 드레이크 모두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리가로 가기 위해서 가장 빠른 길은 이 길뿐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대형 선단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에스파냐 국기를 달고 있어 경계는 줄어들었다. 대신 빠르게 보고하기 위해 전령이 움직였다.
“에스파냐의 배들이라고?”
“그렇습니다.”
“설마 지원군일까?”
알 수 없는 일. 혼란. 하지만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덴마크에서는 일단 순시선을 보내 알아보라 했다.
“다가옵니다!”
“무시하고 계속 간다.”
드레이크는 무시하기로 했다. 배에 오르게 하려면 속도를 줄여야 하니까. 선단이 한 번 멈추면 다시 속력을 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던 덴마크 순시선의 보트는 결국 근처에 제대로 가보지도 못했다. 드레이크와 위그노 선단이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렸으니까.
“왜 무시하지?”
덴마크 순시선에서는 승선을 거부당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하지만 덴마크 해군은 어쩌질 못했다. 에스파냐 깃발을 달고 있는 배를 습격했다가 일이 틀어지면 에스파냐와 전쟁이었으니까.
합스부르크 가문과 척을 지고 살아나기란 힘든 세상이었다.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에스파냐 그리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니까.
아직 신대륙이 신국의 손에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퍼지지 않은 탓에 일어난 오해였다.
어쨌거나 드레이크와 위그노의 대형 선단은 모든 검문을 무시하고 해협을 지나쳤다.
좁디 좁은 해협을 통과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해전을 벌이기에는 정말 좁은 해협이었다. 만약 덴마크 해군이 해협을 틀어막고 포격을 한다면 피해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덴마크 해군의 느린 판단으로 인해 드레이크와 위그노 선단은 무사히 해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발트해에 들어서 리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가.
이순신은 대형 선단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적과 위그노라.’
갑자기 나타난 대형 선단은 발트 함대에 의해 박살날 뻔 했다. 만약 백기를 들고 항복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대포부터 쐈을 것이다. 그만큼 발트 함대는 굉장히 민감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발트 연안의 국가들이 공격해올지 모르니까. 지킬 자신은 충분히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경계를 철저히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항상 예민하게 경계했다.
배에서는 남자들만 내린 것이 아니었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한 가득이었다.
노인과 남자들은 프랑스에 그대로 남았다.
나중에 탈출하기로 한 것이었다.
“저쪽의 대장을 불러오도록.”
짧게 명령을 내린 이순신은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여기가 리가구나.”
드레이크를 비롯한 이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엄청나네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리가는 엄청나게 변했다. 무시무시한 포대가 잔뜩 보였다. 그리고 사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건 뭘까요?”
“모르지.”
이들이 의문을 품게 만든 건물들은 바로 공장이었다. 신국이 들어선 이후 여기저기에 공장이 세워졌다. 화약을 만드는 공장은 물론 직물을 만드는 공장과 제철소도 지어졌다.
쇠와 직물이 풍족하게 공급되었다. 리가의 경제는 엄청나게 활성화 되었다.
경제가 활성화 된 뒤로 리가의 시민들은 신국을 더욱 따랐다. 풍요를 안겨준다면 누가 지배하든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빼앗아가지 않고 베푸는 지배자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어쨌거나 리가에는 활기가 돌았다. 그래서 항구에 들어선 위그노들은 조금은 안심했다.
“두 분은 따라오시지요.”
드레이크와 위그노의 지도자는 병사를 따라 이순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리가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순신의 말은 통역을 통해 전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순신은 진열장에서 술병을 꺼냈다.
안에는 찰랑거리는 위스키가 담겨있었다.
“먼 길 왔으니 한잔씩 하지.”
투명한 유리잔에 따라진 위스키를 두 사람은 서슴지 않고 마셨다. 화끈한 느낌이 목을 타고 배로 들어갔다.
“좋은 술이군요.”
“좋은 술이지. 나도 최근에 알게 된 거라서 기쁘다.”
술이 들어가니 분위기가 풀렸다.
“우선 위그노의 정착은 허락한다. 정착 지원금이 나갈 거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감사합니다.”
위그노의 지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도움을 좀 받았으면 한다.”
“도움을요?”
‘역시 공짜는 없나?’
“발트해를 손에 넣을 생각이다. 그러려면 적들의 해상 세력을 일소해야 한다. 그대들이 가져온 배가 필요하다.”
“우리도 싸워야 합니까?”
“싸울 필요는 없다. 배만 주면 된다.”
이순신은 배가 필요했다. 해병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가 부족했다. 빠른 시간 안에 다 쓸어버리려면 더 많은 배가 있는 편이 좋았다.
직접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에 위그노의 지도자는 안도했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프랑스에 남은 사람들은 어찌합니까?”
“발트해를 손에 넣지 못하면 덴마크 때문에 결국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먼저 바다를 정리한다.”
이순신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스케가라크 해협부터 발트해까지 이어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덴마크가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까.
셸란섬 때문에 해협은 굉장히 좁았다. 작정하고 틀어막는다면 전투는 불가피했다.
이순신은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러자 위그노의 지도자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인지하고 있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언제까지 될까요?”
“그건 모른다. 우선 우리의 목표는 스웨덴이다.”
그때 가만히 있던 드레이크가 나섰다.
“사략 행위를 해도 됩니까?”
“사략 허가증은 있나?”
“있습니다.”
잉글랜드가 아닌 신국으로부터 발급 받은 사략 허가증을 가지고 있는 드레이크였다.
“작전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약탈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보고하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감사합니다!”
드레이크는 진하게 풍기는 돈 냄새를 맡았다.
다음 날, 드레이크는 약탈을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항구 관리는 비스뷔를 약탈하겠다는 드레이크에게 출항을 허가했다.
“수금하러 갈 시간이다!”
드레이크의 외침에 잉글랜드 해적들은 기쁨이 흘러넘치는 환성을 내질렀다.
“어딥니까?”
“비스뷔!”
“갑시다!”
해적들은 신이 나서 출항을 서둘렀다.
대부분의 간부들은 영주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적으로 살았던 성품이 금방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비스뷔에는 군함들이 있었다. 하지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리가에서 출격한 드레이크의 함대는 이들을 나포했다.
신국 함대라면 그냥 침몰시켰겠지만 드레이크는 나포를 주문했다.
‘배라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거야!’
해적들이 죽으면 손해가 심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레이크가 이끄는 해적은 모두 잉글랜드 출신들이었다. 드레이크는 해적이 죽어도 잉글랜드로 가서 다시 채울 생각만 했다.
배를 나포하느라 피해가 좀 있었다. 그러나 약탈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포로가 된 병사들을 선창에 가둔 뒤 비스뷔의 해안을 돌며 적당한 마을을 약탈했다.
여자와 아이는 물론 남자들까지 잡았다.
신국은 노예도 사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리가에 돌아왔을 때 드레이크를 따라 해적이 된지 얼마 안 된 신참들은 신기한 경험을 했다.
“죽은 녀석 이름이 뭔지 넌 알지?”
“그게 왜 필요합니까?”
“그들의 가족에게 보상금을 전해줘야 하니까.”
“네?”
죽은 해적들까지 챙겨준다는 말에 신참 해적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우리 몫에서 떼서 준다는 겁니까?”
머리가 줄어들면 보물을 그만큼 나눌 필요가 줄어든다. 즉, 자신의 몫이 늘어난다. 해적에게는 자신의 몫을 떼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피해 보상금은 신국 해군이 지불한다. 니들 몫 안 건드리니까 걱정마라.”
“진짭니까?”
“못 믿겠으면 따라다니면서 확인해.”
신참들은 고참들을 따라다니며 직접 확인했다. 노예들과 약탈품을 팔고 난 뒤에 금액은 이미 합의했던 비율로 배당해주었다.
은화 주머니를 들고 직접 세본 신참들은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됐지?”
“네.”
“그럼 신나게 즐기든 뭘 하든 맘대로 하고 내일 모레까지 배로 오는 거 잊지 마라. 또 나가야 하니까.”
고참들이 사라졌다. 뒤에 남게 된 신참들은 돈주머니를 들고 수군거렸다.
“죽어도 진짜 돈을 챙겨줘?”
“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설마 속인 거 아닐까?”
하지만 속인 것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었다.
해적들은 싸우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가족에게 보상금이 돌아오니 뭐니 그런 것은 없었다.
이를 알게 된 해적들 중 가족이 있던 이들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씨발. 존나 좋네.”
욕을 하면서 울고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나 은행에 저금할래.”
돈을 쓰지 않고 저금한 해적까지 생겼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던 해적들이 저금을 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신국을 향한 애정이 싹텄다.
이후 술값만 챙겨서 주점에 들어간 신참들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외쳤다.
“신국이여! 영원하라!”
“건배!”
이틀 후, 다시 약탈을 간 해적들은 다시 비스뷔를 털었다. 드레이크는 비스뷔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사로잡을 때까지 약탈을 멈추지 않았다.
한편 드레이크가 나포해 온 배들과 위그노들이 가져온 프랑스 선박들까지 합친 이순신은 거대한 함대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스톡홀름을 점령하러 간다.”
이순신은 자신의 작전을 노부나가에게 알렸다.
노부나가는 당연히 지원군을 보내주었다.
거대한 함대는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르는 보급선에는 원정군이 가득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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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