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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37화 (23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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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

1574년 2월.

신유성은 잉글랜드의 사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 그러니까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 건가?”

“그렇습니다.”

잉글랜드에서 사신으로 파견된 귀족은 긴장했다. 신유성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족의 예상대로 신유성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1세. 그래. 굉장한 여자인 것은 분명하지.’

대단한 사람이란 것은 인정했다. 정치적인 수완은 확실했으니까.

‘몇 살이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리고 들어온 대답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 몸의 누님이군.’

1533년생인 엘리자베스 1세였다. 신유성보다 7살 더 많았다.

‘연상 연하 커플이 아주 없는 시대는 아니지만.......’

나이 많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결혼하는 일이 아주 없는 시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엘리자베스 1세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잉글랜드라.’

여왕과의 결혼은 정치적인 결합으로 이어진다. 잉글랜드를 꿀꺽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신국 황실에서 여왕의 영향력이 생기며 더 많은 것을 챙길 수도 있었다. 더구나 엘리자베스 1세는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여자.

‘잘못하면 문제만 커지지.’

신유성에게는 정치적 경쟁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펠리페 2세를 비롯해 유럽의 수많은 권력자들이 잉글랜드 여왕에게 청혼했던 것과는 반대였다.

“나이가 좀 많군.”

신유성은 괜히 나이를 트집잡았다. 정략결혼의 세계에서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서로에게 이익을 안겨주느냐 하는 것. 하지만 나이는 좋은 핑계거리이기도 했다.

“그 정도는 그다지 큰 차이가 아닙니다.”

잉글랜드 귀족의 표정은 살짝 굳었지만 항의하지는 않았다. 탐탁지 않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틀렸나.’

여왕과 결혼하게 한 뒤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왕이 신국 황실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귀족이 된다면 평범하게 복속한 것보다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이었다.

“그나저나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입니다.”

“크롬웰이라....... 들어 본 거 같기도 하고.”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은 훗날 ‘올리버 크롬웰’이라고 불릴 남자의 할아버지였다. 어쨌거나 엘리자베스 1세의 총애를 받는 기사로 사신으로서 신유성을 찾게 된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은 신유성의 중얼거림을 듣고 한 인물을 떠올렸다.

“토마스 크롬웰을 떠올리신 겁니까?”

“응? 음. 그런 것 같군.”

토마스 크롬웰. 헨리 8세의 수석 장관이었으나 결국 처형당한 토마스 크롬웰은 헨리의 친척이었다.

‘올리버 크롬웰이 생각나네.’

신유성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올리버 크롬웰이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서 크롬웰이란 성을 듣고 반응한 것이지 지금부터 하려는 일에 크게 영향을 미칠만큼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영광입니다.”

헨리의 입장에서는 토마스 크롬웰은 자랑이기도 하고 수치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처형당해 죽은 남자니까. 하지만 크롬웰 가문을 신국의 황제가 기억하고 있다고 하니 영광이라고 답했다.

“그나저나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네?”

“나의 신하가 될 생각이 없나?”

대놓고 회유하는 신유성이었다.

“그것이.......”

“그대가 나의 신하가 된다면 영주로 삼을 것이다. 지금 잉글랜드에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많다. 그들보다 늦게 복속하게 된다면 그대의 입지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더 많은 것을 약속할 수 있다.”

꿀꺽.

침을 삼켜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날 기다리게 할 셈인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신유성. 헨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왕 폐하의 일은 글렀다. 그렇다면!’

잉글랜드 귀족들 사이에 퍼지는 분위기는 헨리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신유성을 만나기 전에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결국 신유성의 편에 서면서 더 많은 권력을 쥐게 되었다.

신유성은 배신자라고 불릴 수 있는 자들도 차별하지 않고 받아준 것이었다. 더구나 의회의 존재에 대해 들었을 때는 감동하기까지 했다.

더 나은 통치를 위해 귀족들이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장을 벌였으며 지금은 황권을 잠시 위임한 상태라는 말까지 들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각 영지에서는 종교적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교가 달라서 함께 할 수 없다면 다른 영지로 떠나면 될 뿐이었다.

신국에 복속하면 장점은 많고 단점은 적었다.

“폐하의 검이 되겠습니다.”

헨리는 결국 신유성의 신하가 되기로 했다. 괜히 질질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을 총애하던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은 죄책감을 억눌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다. 가문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군대를 보내주지. 그리고 호위를 위해 내 배를 타고 돌아가도록.”

헨리는 신유성의 전열함을 타고 잉글랜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열함에는 육혈포로 무장한 군대와 북해도 출신의 요원들도 한 가득이었다. 전열함의 뒤에는 후지바야시 켄이 붙인 갤리온 30척이 뒤따랐다.

한반도, 한양.

“허허! 이건 정말 대단합니다.”

“이 정도 수확량이라니. 앞으로 백성들이 굶을 일이 많이 줄어들겠습니다.”

감자가 수확 되었고 이지함을 통해 계속해서 보고가 올라갔다. 의회에서는 감자란 작물에 연신 감탄했다.

맛도 좋았다.

신유성이 해먹었다면 감자칩을 해먹고는 다들 극찬을 할 정도였다.

감자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종자를 더 확보해서 더욱 수를 늘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다 먹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신국 전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신국은 거대했다. 그렇기에 종자를 퍼트리는 것만 해도 아직 숫자가 부족했다. 방방곡곡 감자를 퍼트리려고 의원들은 혈안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 의원들이 대표하는 영지의 식량 사정이 좋아지니까. 더구나 감자는 쌀처럼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산에서도 키울 수 있었다.

지형이 안 좋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너도나도 다 같이 영지에 감자 심으려 했다. 감자 심기 열풍이 몰아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옥수수란 것도 참 맛이 괜찮군요.”

“이것도 보급하도록 합시다.”

감자보다는 좀 늦었지만 옥수수도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좀 그렇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다만 토마토는 아직도 찬밥 신세였다.

감자는 만주는 물론 시베리아를 넘어 러시아까지 전해졌다. 각 지역의 영주들은 농민들을 단단히 교육 시켰다.

교육을 받은 농민들은 감자를 보며 희망을 품었다.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농작물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더구나 감자 같이 지형의 영향을 덜 받는 작물은 신의 축복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었다.

“이게 다 폐하 덕분이지.”

“그래, 폐하께서 그러셨지.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고.”

신유성이 했던 말은 어느새 널리 퍼졌다. 감자 종자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다들 신유성이 했던 말을 떠들며 나눠준 탓이었다.

때문에 감자를 받게 된 농민들은 신유성을 신처럼 떠받들었다.

신유성 덕분에 좋은 작물을 얻었으니까.

이렇게 퍼지던 감자는 리가에도 전해졌다. 그리고 배를 타고 잉글랜드에도 도착했다.

잉글랜드에 도착한 감자는 상품으로 팔리지 않았다. 다만 위그노가 임시로 정착한 거주지를 중심으로 재배가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프랑스 놈들 이상한 걸 키우고 있어.”

“이제 프랑스 놈들이라고 할 순 없지. 신국 사람이잖아.”

“그래도.”

몇몇은 투덜거리며 감자 키우는 위그노를 욕했다. 100년 전쟁을 벌였던 대상이라는 것도 있고 자신들보다 더 편하게 잘 사는 모습이 배가 아프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위그노는 꾸준히 탈출했다.

프랑스에서는 탈출하는 위그노를 잡을 수 없었다. 드레이크와 이순신이 북해를 지배하고 있던 탓이었다.

브리튼 섬을 중심으로 북해에서 보이는 타국 선박은 모조리 털거나 침몰시켰다. 이 때문에 바다를 오가는 상선은 잉글랜드와 신국 상선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잉글랜드는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었다. 신국과의 교역을 독점한 것은 물론 가끔 프랑스를 비롯한 북해의 항구에 들려 물건을 풀면 모두 비싼 값에 팔렸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잉글랜드 상인들은 엄청난 부를 쌓고 있었으나 그 부가 아래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못 사는 사람들은 계속 힘겨운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런데 프랑스를 탈출한 위그노들은 달랐다.

임시 거주지는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깨끗한 건물에 좋은 음식이 배급되었다. 옷도 지급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어른들은 거주지의 일을 했다.

잉글리쉬들의 눈에는 놀면서 배불리 먹고 노는 것으로 보였다. 질투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더구나 거주지 한 쪽에서는 제복을 입은 위그노들이 훈련을 받기도 했다. 신국의 병사가 되기 위한 훈련이었다.

멋들어진 제복을 입은 단체의 모습이 또 괜히 부러웠다.

그래서 말이 곱게 나가지 않은 것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 여차하면 우리도 받아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

“응?”

“생각해봐. 저기 여자는 프랑스 여자가 아니야. 신국 여자라고. 그리고 신국 여자와 결혼을 하면 우리도 저기서 살 수 있어.”

“천잰데?”

몇몇 젊은이들의 눈이 불타올랐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 대부분의 여자들은 임시 거주지의 남자들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미녀 대회 참가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신국에서는 타국의 여자들이 신청해오니 당혹스러워했지만 안 받아주지는 않았다. 점령지의 여자만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 따윈 없었으니까.

황후인 주녹정이 된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황후의 의견도 듣지 않고 신청자들에게 안 된다고 할 순 없었다.

그래서 미리 신청서를 받아주었는데 주녹정은 허락한다는 말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본격적으로 심사가 시작되었다.

임시로 심사위원들까지 보내졌다.

심사위원들은 신청서를 검토하며 자격이 되는 것 같은 여자들을 몰래 살펴보았다. 하나씩 살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신국이었다면 좀 더 많은 인원이 파견되어 확인했겠지만 잉글랜드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어쨌거나 심사가 진행되는 중이니 브리튼 섬의 여자들은 복권 당첨일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초조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스트랫퍼드.

다른 지역의 임시 거주지와 같이 스트랫퍼드에도 임시 거주지가 들어섰다. 그리고 위그노를 비롯한 이들이 살기 시작하자 엄청나게 경제가 활성화 되었다.

소비 집단이 들어오니 스트랫퍼드의 장사꾼들은 호황을 맞이했다.

“이 놈들! 어디서 행패야! 썩 꺼지지 못해!”

스트랫퍼드의 일부 상인들은 건달들이 위그노의 임시 거주지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행여나 불상사가 벌어져서 장사가 안 되면 손해니까.

그리고 또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리 애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죠?”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트랫퍼드 상인들은 자신들의 자식이 임시 거주지 안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조건은 없었다. 학교에 나가면 밥도 주고 조선어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위그노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점이 약간의 불만이었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자신의 자식을 학교에 보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신국에서 공통어로 쓰인다는 조선어를 배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임시 거주지의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십대는 무조건 무료였다. 어린 아이들의 식비를 굳힐 수 있다는 사실에 외지에서 온 부랑자들도 자식을 보낼 정도였다. 이 때문에 말썽이 좀 있었으나 임시 거주지의 책임자가 아이는 모두 받아준다고 해서 모두 함께 공부했다.

소문이 돌자 일자리를 잃은 소작농들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임시 거주지로 향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지 못하지만 살 길은 열어줄 생각으로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행동 때문에 임시 거주지로 이용할 땅을 구입하는 것은 매우 편해졌다.

임시 거주지가 들어서면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도 하니 브리튼섬의 귀족들은 서로가 자신들의 영지에 임시 거주지를 유치하기 위해 로비를 할 정도가 되었다.

어쨌거나 이런 가운데 윌리엄과 윌리엄의 두 누나는 가정교사에게 교습을 받던 것을 중지하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윌리엄의 두 누나는 앤 해서웨이와 친해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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