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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
윌리엄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다. 똑똑하고 재치가 넘쳤기 때문이었다. 어린 위그노 아이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함께 조선어를 배우고 이야기하며 놀았다.
“오늘은 점심은 카레 나온다더라.”
“난 튀김만두가 더 좋은데!”
“무슨 소릴! 스테이크가 최고라고!”
신국의 지원을 받는 임시 거주지의 학교의 급식은 일반인들이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들이 나왔다. 그냥 사먹으려면 돈을 꽤 많이 내야 하는 음식들이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것들. 최고로 맛있는 것은 배고플 때 먹는 것이다. 야구하자.”
윌리엄이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하자 아이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실컷 즐겁게 야구를 하며 에너지를 소비한 아이들의 식욕은 왕성했다. 급식으로 나온 음식들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난 나중에 크면 카레만 먹을 거야.”
카레를 좋아하는 아이는 접시를 핥았다.
윌리엄은 접시를 핥지는 않았다. 그저 묵묵히 카레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뿐.
하루는 빨리 지나갔다. 학교가 그만큼 즐거웠기에 해가 저물어 저녁을 먹는 시간이 되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이 생활할 순 없었다.
기숙사는 외지에서 온 아이들의 차지.
현지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 간다.”
“내일 봐!”
고개를 끄덕인 윌리엄은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아이가 통학하긴 먼 거리였지만 학교에서 공짜로 운영하는 학교 마차가 있어서 집에 오는 것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일 봐.”
같이 마차를 타고 하교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윌리엄은 집에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누나들은?”
“앤 누나 집에 놀러갔어요.”
“또?”
“네.”
윌리엄은 두 누나를 생각했다. 학교에서 앤 해서웨이와 친해진 두 누나들은 자주 앤의 집에 놀러갔다. 밤새 뭘 하는지 몰라도 윌리엄은 누나들이 없는 시간이 좋았다.
‘이 평화! 오늘은 널 끝내주마.’
가방에서 책을 꺼낸 윌리엄은 웃었다. 학교에는 엄청나게 책이 많았다. 그리고 윌리엄은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특히 소설들은 밤샘을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등불 아래, 윌리엄의 눈동자는 글자들을 따라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앤 해서웨이의 집.
앤은 새로 사귄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다. 가끔 식탐이 좀 심해서 가끔 자신의 접시를 노리긴 하지만 그것 빼고는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폐하는 분명 많은 미녀들과 사랑을 나눠보셨을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침대에 함께 누워 이야기꽃을 피웠다. 셰익스피어 가의 두 자매의 상상력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앤은 웃으며 두 소녀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냥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밤이 깊어지면 말수가 줄어들고 어느새 잠들게 된다.
‘따뜻해.’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앤은 양 옆에서 자신을 껴안은 두 소녀를 보며 웃었다. 포근한 체온이 기분 좋았다. 생각 같아선 소녀들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일어나 학교 가야지.”
“으응, 잠깐만.”
“늦게 가면 밥 못 먹을 텐데?”
“내 밥!”
두 소녀는 벌떡 일어났다. 악몽이라고 꾼 것처럼.
얼른 학교에 가야 한다며 난리를 치며 준비에 들어갔다. 새벽부터 시끄럽게 굴었지만 실례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해서웨이 집안도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아침마다 오는 등교 마차를 타고 세 소녀는 학교로 향했다.
아침으로 나온 것은 부드러운 하얀 빵과 햄 그리고 치즈와 같은 것들이었다.
“아아! 맛있어!”
부드러운 하얀 빵은 맛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것을 학교에만 오면 매일 아침 먹을 수 있었다. 하얀 빵에 버터를 발라 먹기만 해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여기에 햄과 치즈를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었다.
반숙으로 익힌 달걀도 더욱 풍요로운 아침을 여는데 한몫했다.
마지막에는 사과 주스로 입안을 말끔하게 한다.
행복이 넘치는 식사가 끝나자 윌리엄의 두 누나는 재잘재잘 시끄럽게 떠들며 학교생활을 즐겼다.
앤도 식사 후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다.
‘즐거워.’
원래라면 집에서 집안일을 한 뒤 동생들을 돌봐야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동생들도 모두 함께 학교에서 맡아주니까. 가족이 모두 나와 있으면 집이 비어 도둑이 들 위험이 있지만 이것은 해서웨이 집안의 친척들이 해결해주었다.
어차피 시골이라 오가는 인간들은 거기서 거기였다. 최근에는 부랑아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치안을 위해 신국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경호원을 고용해 온 동네를 감시해주었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마부로 고용된 이들은 어차피 남는 시간에 여기 저기 순찰을 돌기도 하고 가끔 마을 사람들을 돈 받고 마차를 태워주기도 하며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일에 열심이었다.
덕분에 앤은 아무런 걱정 없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문 시간이 되자 앤은 자신의 행복한 마음을 그대로 작문에 표현했다.
“폐하의 은총으로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폐하께서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잉글리쉬가 신국 황제를 칭송하는 작문이었다. 문제 삼으려면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는 심각한 이야기였으나 바깥으로 세어나갈 일도 없었다. 아니 세어나간다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신국인이 되는 길을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트랫퍼드 사람이 지금이라도 신국인이 되고 싶다고 신청만 하면 누구든 받아줄 정도로 신국인이 되는 것은 쉬웠다.
민심이 이미 신국으로 기울어가고 있기 때문에 만약 귀족들이 신국을 적대하기 시작하면 백성들이 귀족들을 배신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훌륭합니다. 해서웨이양. 자리에 앉으세요.”
교사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다음 학생을 지목했다. 그렇게 조선어 작문 시간이 지나갔다.
점심시간, 학교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제복을 입은 신국의 해군이었다.
“와! 멋지다!”
“나도 해군이 되고 싶어!”
꼬마들은 해군의 제복에 반해 저마다 해군이 되고 싶다고 떠들었다. 제복을 입은 절도 있는 행동을 하는 젊은 남자들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그런데 군인들이 학교에는 무슨 일일까?”
나이가 좀 있는 학생들은 뭔가 느꼈다. 임시 거주지에서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을 만나려면 학교가 아닌 훈련장 쪽으로 갔어야 했다.
“설마 징집령인가?”
“우린 잉글리쉬잖아?”
“우리 말고 쟤들.”
잉글리쉬 소년들은 위그노 소년들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틀렸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모든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미녀 대회 1차 예선 통과자들을 발표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가 누군가 시끄럽다고 외치자 작아졌다.
“스트랫퍼드에서는 다섯 명이 뽑혔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앤 해서웨이!”
발표가 시작되며 자신의 이름이 불렸지만 앤 해서웨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해? 얼른 나가.”
“응? 나?”
“그래, 빨리 가봐! 축하해!”
“응.......”
앤은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갔다. 단상에는 앤과 함께 윌리엄의 두 누나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소녀가 더 있었다.
“이상은 1차 예선 통과자들이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2차 예선 참가를 위한 허락을 받도록!”
앤은 해군들의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차 예선 통과자는 1차 심사를 통과한 것뿐이었다. 인원이 너무 많기에 각 지역에서 5명씩만 뽑아 2차 예선을 치르며 주녹정이 주관하는 본선에 보낼 미녀들을 뽑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1차에 뽑혔다는 소식을 들은 앤의 아버지는 기분이 좋았다. 1차에 통과한 것만으로도 신국에서는 약간의 혜택을 준 것이었다.
“앤, 잘 해야 한다.”
“네! 아버지!”
처음에는 미녀 대회 참가에 소극적이었던 앤은 어느새 적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행복한 생활이 앤을 바꾸었다.
‘폐하를 즐겁게 해드려야 해.’
받은 행복이 있으니 되갚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준 신유성의 은혜를 생각하며 앤은 짐을 쌌다. 물론 은혜라고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교의 교육도 한몫했다.
한편, 윌리엄의 집에서도 존 셰익스피어는 싱글벙글 웃었다.
“경사구나. 너희 둘이 뽑힐 줄이야.”
“아직 1차잖아요. 2차에 가면 더 힘들 걸요?”
“그렇지. 하지만 부디 많은 미녀를 뽑았으면 좋겠다.”
신유성이 엄청난 호색한이길 빌고 또 비는 존이었다.
어쨌거나 1차 예선을 통과한 소녀들은 하룻밤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2차 예선을 위해 런던으로 떠났다.
윌리엄은 자신의 누나와 함께 떠나는 소녀들을 보며 문득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이러지?’
윌리엄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미래에 자신의 부인이 되었어야 할 앤 해서웨이를 떠나보낸 윌리엄은 이상한 감정을 털어내고는 학교에 갔다.
메카.
“쇠뇌 앞으로! 쏴!”
명령과 함께 화살이 허공을 날았다. 수많은 신국 보병들이 줄을 서서 쏘는 쇠뇌에 앞에서 달려들던 이슬람 전사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알라.......”
죽어가면서도 신을 찾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이들은 그렇게 무력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잉글랜드에서 행복이 번지는 것과는 대조되는 상황.
“대포를 쓰면 편할 텐데.”
“성지라잖아. 지켜줘야지.”
“하긴.”
신국 원정군이 메카까지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배를 타고 홍해로 들어온 뒤 해안에 상륙했다. 그리고 메카까지 최단거리로 진격해온 것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신국 원정군을 막을 힘이 없었다. 메카의 코앞까지 왔다는 소식에 사막 부족들이 성지를 지키기 위해 꾸역꾸역 모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무장은 너무나 빈약했다.
대포는 없었다. 총도 몇 자루 되지 않았다. 활을 든 이들이 좀 있었고 대부분 칼을 들었다.
신국에 의해 해안이 털린 뒤 내륙의 사막 부족들은 제대로 된 거래를 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바다가 막히니 물류의 흐름이 느려졌다. 그리고 육로로 움직이니 거래량도 확 줄어들었다.
당연히 무장도 빈약해졌다.
김시민과 곽재우는 전투를 치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끝도 없이 밀려오네요.”
“그냥 복속하면 될 걸 가지고.”
곽재우는 투덜거렸다. 이슬람 전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전에서 죽을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었다.
광기가 서린 죽음의 돌진은 막아선 군대를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국의 원정군이 뒤로 물러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뭣들 하나! 저들은 적이다! 쏴!”
지휘관이 성질을 내며 육혈포의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총성이 여섯 번이나 연속으로 울렸다. 제대로 맞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폐하께서 하사하신 무기를 가지고도 저런 약졸들에게 진다면 어쩌자는 건가! 폐하를 뵐 면목이 없지 않나!”
더 뛰어난 무기를 갖고도 진다면 그야말로 대망신이었다.
“쏴!”
신기전이 떨어지고 쇠뇌를 쏘았다. 그렇지만 이슬람 전사들은 죽어가면서도 아군의 시체를 방패삼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거리를 줄이려 해도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가까이 접근하면 폭탄이 기다렸다.
“적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총병은 이제부터 소탕에 들어간다!”
엽총과 육혈포로 무장한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에서 적이 튀어나오는 일은 예사였다. 죽은 척 하고 있다가 덤비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육혈포를 든 이들은 시체를 마주하면 적당한 거리에서 확인 사살부터 했다.
김시민과 곽재우도 쇠뇌를 쏘다가 엽총을 지급 받고 뛰었다.
“옵니다!”
“쏴!”
고함을 지른 곽재우는 엽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며 산탄이 날아가 이슬람 전사의 가슴팍을 헤집어 놨다. 산탄의 힘에 적중된 이슬람 전사는 뒤로 튕겨나가며 쓰러졌다. 재빨리 탄피를 빼내고 재장전을 한 곽재우는 다음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성지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카는 신국의 손에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