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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
메카의 함락은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부족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시 되찾아야 합니다!”
“성지를 되찾자!”
지하드. 성전.
성지를 빼앗긴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들에겐 치욕이었다. 하지만 막상 메카의 앞까지 몰려든 이들은 자신들의 또 다른 형제를 만나야 했다.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성지 순례를 할 수 있습니다. 신국의 백성이 된다면 문제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뭐라고?”
사막 부족을 가로 막은 것은 서둘러 메카로 들어온 다른 이슬람 신자들이었다.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와 페르시아 등 각지에 존재했던 이슬람 신자들이 신국의 메카 점령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이었다.
“신국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우리는 신국 사람이지만 성지를 마음대로 순례할 수 있습니다.”
“이이.......”
성전이란 단어를 이용해 선동을 한 종교 지도자는 말문이 살짝 막혔다.
‘여기서 물러날 순 없다.’
선동을 하면서 종교 지도자는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수가 모이며 종교 지도자의 말을 듣는 이들이 더욱 많아진 것.
“어찌 성지를 형제의 피로 더럽힌 자들과 함께 한단 말인가! 그대들은 틀렸다!”
그때였다. 선동을 하려던 종교 지도자를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대 또한 틀렸다. 더 이상의 피는 무의미하다.”
“뭐라고?”
“성지를 순례 할 수 있다고? 그 말을 신국의 황제가 보장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선동하려던 종교 지도자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선 이는 다른 무리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였다.
가톨릭에만 파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슬람에도 당연히 파벌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반목은 종종 피를 부르기도 했다.
같은 종교를 믿으면서도 방식의 차이에 따라 파벌이 갈라진다.
“성지를 어찌 알라를 믿지도 않는 자의 손에 놔두려 하는 가!”
무시당한 종교 지도자가 외쳤다.
“성전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해 권력을 탐하는 자여. 그대가 어찌 신의 이름을 입에 담는가?”
“뭐라고! 지금 나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대의 행위에 형제를 위한 마음은 없고 오직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것이 보이는데 신께서 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가?”
“무슨 소릴! 그대야말로 겁에 질려 신성한 의무를 져버리려 하는 것 아닌가!”
“성지를 누가 관리하든 무슨 상관인가? 이교도의 손에 성지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성전을 외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출입이 보장된 이상 이것은 성전이 아니다. 성지를 자신의 손에 쥐려는 권력 투쟁일 뿐이다. 나는 나의 형제들이 권력 투쟁을 위해 죽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 우리의 피는 오직 신을 위한 것이다.”
“큭!”
반절에 해당하는 이들이 등을 돌렸다. 나머지 반도 성전이란 확신은 없었다. 선동하던 종교 지도자는 이를 악물었다.
“신국의 황제는 비열하구나!”
“뭐라고? 이 자식이!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신국 병사 하나가 발끈해서 총을 뽑았다.
“그만!”
“하지만 저 놈이 폐하를!”
“그만!”
설득을 위해 나섰던 신국 지휘관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선동하던 종교 지도자를 바라보았다.
“한 번만 더 폐하를 모욕한다면 그땐 가만히 있지 않겠다.”
지금까지 공손하던 태도가 사라졌다.
“뭐라고? 해보자는 건가?”
“지금은 폐하의 명을 수행하는 중이라 참겠다. 하지만 바로 군대를 되돌리지 않는다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오라! 이제야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이 사악한 이교도 자식들아!”
“난 경고했다.”
신국의 지휘관이 물러가자 싸울 생각이 없던 이슬람 전사들은 등을 돌려 메카로부터 멀어졌다. 전투를 반대한 지도자의 말 그대로였다.
신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목숨을 바칠 수 있었다. 하지만 권력을 탐하는 인간을 위해 목숨을 버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카가 점령당했다는 말에 발끈해서 왔을 뿐이지 평상시대로 메카에 들락거릴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메카를 지키다 전사한 전사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애써 묻어버렸다.
“성전이다!”
결국 선동한 종교 지도자를 따르는 이들은 메카를 되찾기 위한 전투를 시작했다. 그리고 메카를 지키던 신국 원정군은 의욕에 불타 올랐다.
“지금 쳐들어오는 놈들은 폐하를 모욕한 놈들이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는다!”
“예!”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니,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려 신기전을 비롯해 폭탄을 사용했다.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온 자들은 총알 세례에 목숨을 잃었다.
신국 병사는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겁에 질려 도주하는 자들은 없었다.
죽어나가면서, 죽음의 공포와 마주한 상태에서 오히려 더욱 앞으로 달려들었다.
“알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신을 부르며 질주하는 이슬람 전사. 그러나 총성과 함께 쓰러지고 만다. 뒤를 이어 계속해서 이슬람 전사들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숫자가 모이면 어김없이 폭탄이 날아와 터졌다.
죽어가면서도 뒤돌아서지 않는 광기는 상대에게 위압감을 안겨줄만 했지만 신국 원정군에는 통하지 않았다.
신유성을 욕했다는 이유로 분개한 병사들의 사격 속도가 빨라졌다.
죄책감도 없었다.
결국 덤벼들었던 이슬람 전사는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본 다른 전사들은 신국의 힘에 놀랐다.
“참으로 무서운 군대구나.”
“신이 내리신 시련일까요?”
“저들 중에 우리 형제가 있다. 형제를 어찌 시련이라 하겠나?”
“하지만.......”
“그만.”
후퇴를 결정한 종교 지도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막을 수 없다.’
메카에 이어 메디나까지 신국의 손에 들어갈 것 같았다. 사막 부족 자체를 잡아서 복종 시키려 한다면 매우 힘든 일이 되겠지만 성지만 손에 넣고 관리하는 것이라면 신국이 더 유리했다.
성지순례를 했던 자들이 길잡이를 한다면 헤맬 이유도 없었다.
‘그가 약속을 지키길 바랄 뿐.
’
죽음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신이 아닌 인간을 위해 죽는 것은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메카를 손에 넣었다는 소식은 증기선을 통해 빠르게 신유성에게 전달되었다.
“좋군. 그렇다면 이제부터 시장선거를 하도록 하지. 아라비아 반도는 모두 내꺼지만 성지는 신도들의 것이니 그들이 직접 관리하게 하겠다.”
신유성은 성지 관리를 다른 사람에 맡길 뜻을 피력했다. 그러자 모여있던 무슬림 신하들이 질문을 던졌다.
“시장이라 하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앉힐 수도 있는 것입니까?”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그대들의 형제 중에서 뽑아야지. 하지만 후보가 많을 테니 누가 누굴 뽑아야 할지 고민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후보는 알아서 추천하도록.”
누가 시장으로 뽑혀도 인정하겠다는 의미였다.
“황제 폐하 만세!”
무슬림 신하들은 모두 신유성을 찬양했다. 성지를 관리할 사람을 무슬림 중에서 뽑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시장이란 것은 임기가 있으니 어느 한 가문이 독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지에 대한 공격으로 잠깐이나마 우울해졌던 마음에 희망이 밀려들었다.
소식은 증기선을 타고 빠르게 전해졌다. 메카에도 전해지자 메카 점령전에 참가했던 무슬림 병사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신유성이 성지를 직접 건드리지 않겠다고 의지를 표명한 까닭이었다.
‘이걸로 아라비아 반도를 손에 넣기 더 쉬워졌다.’
신유성은 성지를 직접 관리할 필요를 못 느꼈다. 무슬림도 아니라 성지를 직접 관리하는 것은 짐이 될 뿐이었다. 어차피 성지도 신국의 안에 있는 것. 그것 하나면 족했다.
시장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만들어놓으면 누구의 소유도 아니게 된다. 영주를 두게 되면 성지를 이용한 영주가 이슬람 신도들의 구심점이 되기 때문에 시장이 관리하게 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무슬림 영주들은 서로가 한 번쯤은 자신이 성지의 시장이 되고 싶어서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한 신유성이었다.
‘그나저나 이집트를 손에 넣고 하려면 더 많은 군대가 필요한데.’
반도를 손에 넣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받는 부족들은 언제 어디서 기습을 가해올지 몰랐다. 복종하는 듯 하면서도 뒤에서 뒤통수를 칠 수도 있었다.
아랍인의 테러 활동은 미국인이 극도로 혐오하는 것 중에 하나, 신유성이 가진 미래의 기억에도 확실히 새겨진 것이었다.
‘병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
성지의 방어를 더욱 확실히 굳히는 것은 물론 중요한 거점을 보호하기 위해선 군대가 계속 주둔하고 있어야 했다.
털린 뒤에 복수하는 것은 하책이었다.
공격할 엄두도 못 내게 만들어야 했다.
“신국의 모든 무슬림 영주들에게 전하라. 새로운 군단을 만들기 위해 군단을 만들어 보내라고.”
일부 지역에 징집령이 떨어졌다.
회의를 끝낸 신유성은 허기를 느꼈다.
‘오늘은 뭐 먹지?’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마요네즈에 감자를 찍어먹는 건 이제 질리는데.’
생각나는 것은 케첩. 그리고 살사.
유학 생활을 하며 많이 먹었던 그리운 것들.
김치는 그립지 않았다. 이미 많이 먹어봤으니까. 가끔 떡볶이도 해먹었다. 떡볶이는 이제 꽤 유명해져서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하지만 신유성은 만족할 수 없었다.
주방으로 향한 신유성은 새로운 식재료를 살폈다. 그 중에는 토마토도 있었다.
‘이것은?’
신유성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드디어!’
발견한 것이었다.
“오오오오오오오!”
떨리는 손으로 토마토를 들었다.
감자와 거의 동시에 토마토가 신국에 전해졌지만 이제야 신유성의 근처에 토마토가 도달한 이유는 간단했다.
맨드레이크와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식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전해 들었지만 이지함을 비롯한 이들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토마토는 상대적으로 찬밥을 받으며 순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토마토에 대한 것들을 확인한 뒤에야 신유성의 근처에 배달된 것이었다. 신유성이 새로운 먹을 것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확인이 끝나자 보낸 것이었다.
신유성은 정성스럽게 케첩 만들기에 들어갔다.
다른 업무는 다 내팽개쳤다. 여자를 안는 것도 마다했다.
‘케첩! 케첩!’
토마토를 졸여서 토마토소스를 만들기도 했다.
케첩이 완성되자 떨리는 손으로 프렌치프라이를 하나 집었다. 케첩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흡!”
눈물이 주륵 흘렀다.
물론 기억하고 있던 케첩 맛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케첩 레시피를 잘 모르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케첩이었다.
개선해야 할 점을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어느새 프렌치프라이가 다 사라졌다.
‘이번에는 완벽한 피자를!’
다음으로 착수한 것은 바로 피자 만들기.
피자 반죽을 만들어 준비한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토핑과 치즈를 올렸다. 그리고 구웠다.
“으으으으음!”
완성된 피자의 맛도 모자란 것이 꽤 있었으나 어쨌거나 피자.
신유성은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34년 만에 겨우 케첩을 맛 본 신유성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잃게 된 이항복은 군에 입대하려 했다.
“아우! 군대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막지 마시오. 이 한 몸 나라를 위해 바칠 것이니!”
“그러지 말고 나랑 어디 좀 가자! 응?”
떠나려는 이항복의 잡고 늘어지는 남자의 정체는 이덕형이었다.
“형님! 아우의 길을 막으시려는 겁니까?”
“아니, 멀쩡한 머리로 왜 군인을 하려고 그래? 네가 군대 가는 건 죄악이야! 스승님에게 가자!”
“싫습니다!”
“이 녀석이! 좋아! 그럼 날 때려눕히고 가라!”
“하라면 못할 줄 아쇼?”
이항복은 주먹을 꾹 쥐었다. 하지만 결국 이덕형을 때리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형제처럼 지내온 두 사람이었다.
“그러지 말고 따라와라.”
이덕형이 이항복을 끌고 간 곳은 바로 이산해의 연구소였다.
“여긴........”
“네 머리가 어울리는 곳이다. 군대보다는 여기가 더 좋을 거다.”
이덕형은 바로 자신의 스승인 이산해를 불렀다.
“네가 오성이구나. 뛰어난 오성을 기대하겠다.”
이산해는 이상한 농담을 건네더니 서류 한 뭉치를 안겨주었다.
“내일까지 다 읽어라.”
부스스한 머리를 한 이산해는 다시 연구소 안으로 사라졌다. 이덕형이 당황하는 동안 이항복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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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