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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40화 (24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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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

전기로 움직이는 모터는 이산해를 매료시켰다. 전기에 푹 빠진 이산해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을 제자로 들였다. 모두 전기 연구를 돕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덕형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돈 문제는 없었다. 이산해의 연구소는 신유성이 직접 후원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연구에 푹 빠진 이산해는 조금씩 성정이 변했다.

변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전기에 대한 것들로 가득했으니까. 쉬면서도 실험 결과에 대해 생각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바쁠 뿐이었다.

무엇인가를 확실히 정리하기 위해선 측정이란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온도계와 같은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온갖 실험이 이뤄지는 중이었다.

얼결에 연구소에 있게 된 이항복은 이산해라는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 저 분이 그분이라고요?”

“그래, 연구할 땐 사람이 좀 변하시지만.......”

이덕형이 애써 변명을 해본다. 하지만 차게 식은 눈빛만이 되돌아올 뿐. 그러나 이덕형의 간절한 눈빛에 결국 힘을 풀었다.

“알겠습니다. 딱 1년만 돕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된다.”

1년만 지내다보면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덕형이었다.

점심시간, 이항복은 연구소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이게 뭡니까?”

식당에는 온갖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마치 잔치라도 열린 것 같았다.

“마음껏 퍼다 먹으면 된다.”

“진짜요? 나중에 뭐 돈 내고 그러는 겁니까?”

“돈 걱정 할 것 없다. 연구원들은 모두 무료다.”

공짜라는 말에 혈기왕성한 이항복의 눈이 번뜩였다.

“남는 음식은 어찌 합니까?”

“그거야 나눠주기도 하고 그러지. 하지만 대부분 그리 남지는 않는다.”

“네? 그게 가능합니까?”

“여긴 연구소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신유성의 지원을 받는다지만 돈을 함부로 마구 낭비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네가 왔으니 음식이 조금 남을 수도 있겠구나.”

“그걸 다 계산해서 만듭니까?”

“그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을 매일 측정해 기록해 놓다 보면 필요한 음식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파악이 가능하게 된다. 연구소에서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도 연구원이었다.

이항복은 진짜인지 알아보기 위해 열심히 음식을 퍼먹으며 주변을 살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사람이 더 오지 않게 될 때까지 음식이 모자라진 않았다.

“진짜 조금씩만 남았네요.”

이항복에게는 신선한 일이었다.

“그런데 형님이 절 설득 못했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더 남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요리 만들기 전에 알려줬지.”

“그렇군요.”

이덕형과 잡담을 마친 이항복은 옆에 끼고 있던 서류 뭉치를 보았다.

서류는 대부분 실험에 관한 것이었다.

“모르는 것은 서고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

이덕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항복은 서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피식 웃은 이덕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산해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이항복은 열심히 서류를 읽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직접 확인했다.

“오오오오.”

열심히 돌아가는 모터를 보며 이항복의 눈이 반짝였다.

신기했다.

궁금했다.

연구소는 호기심을 풀기 위해 존재하는 곳. 가지고 있는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었다.

보통은 안 되는 일이지만 이덕형의 추천이 있기에 연구소에 쉽게 들어온 이항복이었다. 전기에 대한 정보를 열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게 음과 양의 조화로 돌아가는 건가?’

하나씩 읽으며 이해를 하자 여러 가지 시도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도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설명하고 허락 받아야 했다.

같은 실험을 여러 사람이 중복해서 반복하는 것은 낭비니까. 이미 결과를 아는 실험은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면 다시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전기의 이용이라.’

지금은 모터를 돌리는 것을 중심으로 기술이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항복은 이산해와 마찬가지로 전기의 성질에 대해 좀 더 파고들었다.

가장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역시 통신.

전기를 이용해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신유성이 뿌린 떡밥이었다. 이것을 문 이산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이를 이뤄낼 방법을 찾고 있었다.

실패한 실험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면서 전기에 대해 점점 더 이해하게 되었다.

실패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완벽한 실패라고 말할 순 없었다. 배운 것이 있으니까.

그렇게 신국의 과학은 실패를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런 저런 실험을 하던 이항복은 하나의 실험을 통해 대박이 났다.

“허허. 이런 방법이?”

이항복이 생각해낸 것은 바로 모스 부호였다. 한자는 불가능하다.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한글은 가능했다.

번거롭긴 했지만 몇 마디를 전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을 생각하면 꽤 효율적인 일이었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전기 통신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

“훌륭한 일을 해주었다.”

이산해는 이항복을 계속해서 칭찬해주었다. 이덕형은 옆에서 자부심이 깃든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어린 이항복이 자신을 앞지른 것이었으나 이덕형은 질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안목이 맞은 것에 흐뭇해했다.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항복은 얼떨떨해졌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나?’

실험에 푹 빠져 지내던 이항복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뭔가에 푹 빠져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 ‘우와아아아아!’하고 환호해준 상황과 같았다.

“감사합니다.”

자만할 수 있었으나 이항복은 자만하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뭔가 한 것인가?’

앞으로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맴돌 뿐이었다.

이항복은 이덕형과 함께 다시 실험에 푹 빠져들었다.

전신기의 등장은 의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 이건!”

덜덜덜. 손을 떠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전신기를 이용해 한양 밖에 있던 사람과 소통을 하게 되자 의회의 의원들 표정은 충격으로 굳어버렸다.

“선만 계속 이어진다면 아마 천리든 만리든 얼마든지 말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산해의 발표가 끝나자 의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질문이 폭주했다. 시끄러워졌다.

이산해는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시달렸지만 웃으면서 모두 답해주었다.

이후 전신기를 만드는 회사가 세워졌다. 회사의 주인은 이항복이었다. 회사가 세워지고 물건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예약이 쇄도했다.

“물건을 살 테니 나한테 주게나!”

의회의 의원들이 몰려든 것은 기본이었다. 소문을 들은 한양의 상인이란 상인은 모조리 몰려왔다.

상인들에게도 정보는 굉장히 귀중한 것이었다. 정보를 빨리 습득하는 것 자체로 손실을 줄이기도 하고 이익을 극대화 할 수도 있었으니까.

수요는 무시무시했다.

“아직 공장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뭐야? 내 돈은 못 받겠다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받아! 그리고 빨리 공장을 세워! 아니 내가 세워줄까?”

전신기를 갖지 못해 현기증 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게 전신기만 만들어진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걱정 마. 법은 우리가 만들 테니까 어서 전신기를 팔아!”

의회에서는 전신기를 활용할 전신국을 세우는 법안을 하루도 되지 않아 통과 시켰다. 예산이 부족하면 자비를 털어서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한양을 중심으로 한 전신국은 물론 지방 곳곳에도 전신국을 세우는 사업들이 추진되었다. 철도로 발트해까지 잇겠다는 포부도 있었지만 철도 개발 계획이 2순위로 밀릴 정도로 전신국에 대한 욕망은 강렬했다.

가만히 앉아서 세상의 소식을 빠르게 입수할 수 있다는 상상만 해도 짜릿했던 것이었다.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이! 세상이 변하고 있어!’

병조에서도 전신국의 존재는 각광받았다. 특히 황실 친위대에서는 자신들의 예산을 투입해 빨리 도입해야한다고 나서는 황실에 가장 먼저 전신기가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실의 안녕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에 반론을 할 수 없었다. 전신기를 만들어낸 연구소는 결국 신유성이 지원한 연구소였다. 이산해가 만들어냈다고 하지만 전기에 대해 알려준 것은 신유성이었다.

신유성이 아니었다면 전신기의 존재 따윈 모르고 죽었을 인생.

황실이 가장 먼저 혜택을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하긴 어려웠다.

황실 친위대가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바로 정보를 빨리 습득해야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반란군이 한양에 나타난다면 빠르게 정보를 입수해 대처하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뛰어서 전하는 것보다 전신기로 연락하는 편이 더 빨랐다.

한편, 전신기가 개발된 것을 아직 모르는 신유성은 한 가지 일에 빠졌다.

툭. 투툭. 툭.

뭔가 튀면서 냄비를 두드리는 소리. 말린 옥수수 알갱이가 튀고 있었다.

‘팝콘에는 콜라인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얼마 전에는 케첩을 손에 넣으며 눈물을 흘렸으면서 이제는 콜라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콜라만큼은 신유성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었다.

콜라 레시피는 정말 알 수 없었으니까.

대부분의 문명인들이 그렇듯 자신이 사용하는 것을 생산하는 방법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다.

툭. 투툭. 툭.

팝콘은 계속 만들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다. 뚜껑 사이로 조금씩 흘러나오는 버터 향기가 입에 침이 고이게 했다.

뚜껑을 여는 순간 훅 하고 밀려드는 진한 향기.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입안에 들어간 팝콘은 짭짤했다.

‘허전해.’

콜라가 없으니 허전했다. 하지만 더 허전한 것은 팝콘은 그냥 먹기만 해선 별로라는 것.

‘뭔가 봐야 하는데.’

영화관에서 주로 먹었던 팝콘이었다. 혹은 운동 경기를 볼 때도 먹었었다.

뭔가 관람하면서 볼 때 팝콘은 입을 더욱 즐겁게 해줬다. 오감을 만족시켜줬다.

‘야구를 볼까?’

하지만 적당한 야구팀은 없었다.

‘야한 것을 볼까?’

여자들은 많았다. 원한다면 여자들끼리 하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주녹정과 나츠가 미녀들을 교육 시켜서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리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야한 것을 보면 팝콘을 먹는 것보다는 직접 즐기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래, 격투라도 관람하자.’

“여봐라! 격투 대회를 열겠다!”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는 체급별로 나누도록 했다. 신유성이 알려준 것은 바로 복싱.

“주먹으로만 싸우는 것이다. 알겠나?”

“예! 폐하!”

복싱을 교육 받는 친위대원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신유성의 설명을 들었다.

규칙에 대한 설명은 금방 끝났다.

“일단 시험 삼아 지원자들이 한 번 해보도록.”

명령이 떨어지자 친위대원 둘이 나섰다. 그리고 치고 받는 시험이 시작되자 신유성은 팝콘을 입에 넣으며 관람했다.

‘잘 싸우는 군.’

싸움은 굉장히 치열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는 방식의 싸운이었기에 자세들이 어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복싱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가장 효율적인 자세를 찾은 것이었다.

‘역시 싸움엔 팝콘.’

치고받는 펀치 속에 땀과 피가 튀었다. 부어오르는 얼굴. 거친 열기.

야성이 꿈틀거리는 격투에 몰입하자 손과 발이 움찔거렸다.

‘어휴! 거기선 훅을 넣어야지!’

한 방에 훅 보낼 수 있는 틈을 발견한 신유성은 답답했다. 친위대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그저 펀치를 주고받기만 했으니까.

팝콘을 먹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입으로 씹었다. 손발이 근질근질했다.

‘내가 싸워도 저 놈보단 잘 싸우겠네.’

사실이었다. 신유성은 나이가 들어서도 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계속해서 검을 수련해왔기에 검술만 놓고 보면 친위대의 그 어느 누구도 신유성보다 더 잘 싸운다 하긴 어려웠다. 물론 친위대와는 싸울 일도 없었다.

죽으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만으로 정말 자결할 친위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넘어졌어!”

심판을 보던 친위대가 얼른 끼어들어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천천히 10까지 다 셀 때까지 쓰러진 친위대는 일어나지 못했다.

“승자에겐 상을 내리겠다.”

패자에게도 상을 내렸다. 영주로 만들어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유성의 육혈포를 승자에게 주고 패자에게는 가지고 있던 단검을 주었다.

‘이제 그만 일이나 할까?’

팝콘을 다 먹은 신유성은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일단 무단으로 하루 쉰 것에 대해 죄송합니다. 초기와 달리 연재시간까지 불규칙해지면서 늦게 올라오는 것도 죄송합니다. 그냥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저도 막 잘나가는 분들처럼 두 편씩 올리고 싶은데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쓰기 싫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능력이 안 되는 거겠죠.

항상 변함없이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참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이게 잘 되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다른 작품 설정도 떠올라 살짝 연재를 했었는데 이것도 막혔습니다.

욕심 부린 벌을 받는 모양입니다.

날씨도 더운데 좋은 소식으로 후기를 남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무더운 여름 더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 글을 읽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여름처럼 좀 더 뜨겁게 불태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재가 되는 그날까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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