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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프랑스에서 잡은 노예들이 런던에 도착했다. 잉글리시들은 이들에게 전혀 동정을 갖지 않았다. 같은 국가 출신들인 위그노 또한 마찬가지였다.
위그노에게는 학살을 일으킨 자들과 한 패였으며 잉글리시에게는 100년 동안 싸운 라이벌이며 잉글리시가 현재 부정하고 있는 가톨릭 세력의 일원들이었다.
“이야! 정말 신국은 대단하지! 우리는 못한 건데!”
“그러게! 요즘 정말 살맛난다!”
신국이 잉글랜드와 가까워진 이후 런던은 활력이 넘쳤다. 일거리가 넘쳐났다. 소작농이었던 자들은 서둘러 런던은 물론 신국이 세운 임시 거주지가 있는 곳을 찾았다. 위그노를 위해 세운 임시 거주지를 중심으로 빠르게 경제가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일자리가 거기에 있으니까.
농촌에서 먹고 살 기회를 잃은 자들에겐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리고 신국은 그 희망에 응답했다. 여론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노예들 중 남자들은 광산에 투입 되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발트해 지역으로 보내졌다. 이후 이순신의 함대는 런던에서 얼마 머물지 않고 다시 출격했다.
며칠 머물지 않은 아주 잠깐의 사이에 함대의 해병들이 쓴 돈은 어마어마했다. 프랑스에서 약탈한 금품이 은행 구좌로 배당되자 이를 곧바로 찾아서 쓴 덕분이었다.
이순신의 함대가 다시 남쪽, 히혼으로 향하는 동안 홍해에서도 작전이 펼쳐졌다.
메카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메디나가 나온다. 배를 타고 메디나와 가까운 해변으로 이동한 신국 원정군은 메디나로 진격했다. 하지만 메디나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항복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메디나를 지키던 자들은 그냥 항복했다. 메카와 같이 해준다면 저항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젠장.’
나가오 가케토라는 입맛을 다셨다. 전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재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무산 되었다.
그렇다고 항복하겠다는 사람들을 죽일 수도 없었다. 일본 전국시대의 영주였을 때는 마음대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신유성이 다스리는 신국의 영주일 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다가 걸리면 혼자 죽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도 하지 않아 자식도 없은 나가오 가케토라에게도 아끼는 것은 있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좋은 선택이다.”
메디나를 지키던 사막 부족은 메카의 일을 소상히 전달 받았다. 저항해도 이길 수 없는 적, 더구나 상대는 성지를 빼앗으려는 이교도는 아니었다. 황제인 신유성이 직접 통치하지 않고 시장을 따로 뽑으라고 했다. 결국 실질적으로 메카를 다스리는 것은 무슬림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헛된 피를 흘릴 생각이 없어진 것이었다.
“빨리 정리해!”
가케토라는 얼른 메디나를 정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었다.
아조프.
흑해에 위치한 도시로 요새가 있던 이곳은 신국의 손에 떨어졌다. 이후 이곳을 정복한 신국은 지속적으로 항구를 보강하고 조선소를 확장했다.
오스만 제국은 이곳을 다시 탈환하려고 했지만 크림족과 노가이족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거대한 신국을 등에 지고 하는 약탈은 너무나 달콤한 사업이었다. 털면 털수록 더욱 풍요로워지니 약탈은 더욱 심화되었다. 과거에는 유럽인들을 잡아서 오스만 제국에 팔았다면 이젠 오스만 제국인을 잡아 신국에서 파는 것이었다.
신국에서는 일괄적으로 모두 사주었다. 신유성이 모두 사준 것이었다. 신국 연방 정부의 재정으로는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신유성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돈이 줄어든다?
아무런 문제없었다.
돈을 써서 적을 약하게 할 수 있다면 군대를 보내 전투를 치르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히는 일이었다.
약탈하러 가는 자들도 군대라 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정규군이 아닌 일반인들이었다. 이들은 노예를 잡으면 한몫 잡을 수 있단 소리에 너도나도 약탈에 참여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여자들까지 약탈에 나설 정도였다.
그만큼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이익을 향한 인간의 광기는 무서웠다. 그리고 그들의 광기는 곧 신국에 대한 광적인 충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폐하를 위하여!”
“위하여!”
아조프의 주점에서는 수많은 노예사냥꾼들이 모여 축배를 들었다. 한탕 하고 돌아온 이들이 모여서 뒤풀이를 하는 중이었다.
“진짜 매일 이렇게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예사냥꾼 하나가 양갈비를 뜯으며 히죽 웃었다.
“평생은 힘들 거야. 폐하가 세상을 전부 손에 넣으면 털 인간이 없을 거 아냐.”
“그렇지. 그러니까 빨리 영주가 되어야지.”
“어디 좋은 소식 들은 거 있어?”
“바다 건너에 신대륙이란 곳이 있는데 그렇게 개척 안 된 땅이 많데. 그냥 가서 자리 잡고 ‘내꺼!’하면 된다던데?”
아메리카 해안은 신국 함대가 완전히 정복했다고 봐야했다. 촘촘히 만들어진 항구들은 해안선을 신국의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랐다.
내륙은 제대로 진출하지도 못해 아직도 미개척지로 남은 곳이 많았다.
“그래? 그럼 천천히 가도 되겠지?”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가긴 아깝잖아?”
“그렇지.”
노예사냥꾼들은 아직 아조프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어딘가 좋은 땅을 개척해 척박한 지역을 벗어나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살고 있던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향 아니면 못 산다는 식도 아니었다.
노예사냥꾼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아조프에서 배를 띄우면 이스탄불까지 금방이었다. 이스탄불을 함락시키고 약탈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척 많았다.
약탈자들에게는 군침이 질질 흐를 정도로 맛있어 보이는 성찬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그저 그런 국가가 아니었다. 이슬람의 중심인 국가였다.
강력하고 화려했다.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찬란한 역사와 함께하는 보물도 무척 많았다.
노예사냥꾼들은 어서 빨리 약탈가는 날이 오길 고대하며 열심히 고기를 뜯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한 무리의 남자들이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장! 럼 한 잔!”
들어온 남자들의 복장을 본 순간 모든 이들이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여 예를 표했다.
남자들이 입고 있는 것은 바로 신국 원정군 제복이었다.
제복을 입은 군인들은 럼을 단숨에 마신 뒤 주점 안을 돌아보며 외쳤다.
“오늘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려한다!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뜻을 받들어 어리석은 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줄 용감한 제국민은 나서라!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할 것이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였기에 모두 자신이 들은 것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농담이 심하시군요?”
“농담 아니다. 진짜다.”
“진짜 진짜요?”
“진짜 진짜 진짜다.”
함성이 뒤를 이었다. 주점의 공기가 뒤흔들리며 고막이 먹먹해 질 정도의 함성이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약탈자들은 모두 신이 났다.
이스탄불.
셀림 2세는 최근 앓아누웠다.
“메카가....... 메카가.......”
꿈을 꾸다 일어난 뒤에는 메카를 중얼거렸다.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메카를 점령당했다. 성지를 빼앗겼다. 종교를 중심으로 뭉친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권력누수가 일어나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쉴레이만 1세를 향한 그리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합스부르크 가문을 덜덜 떨게 만들었던 쉴레이만 1세에 비하면 셀림 2세는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무능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럭저럭 무난한 수준이었지만 비교 대상이 워낙에나 대단하기 때문에 무능해 보이는 것이었다.
쉴레이만 1세가 이룩한 제국. 그것을 자신의 대에서 말아먹고 있으니 가슴이 쓰린 셀림 2세였다.
가슴이 시리고 아파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신국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레판토 해전에서 대패를 당해 전력에 문제가 생긴 것까지는 그래도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조프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메카까지 빼앗긴 것은 충격이 컸다. 더구나 신국은 이미 페르시아를 집어삼켰다.
‘두렵구나.’
공포심을 안겨주는 정복 속도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스만 제국도 순식간에 먹혀버릴 것 같았다.
그야말로 괴물.
과거 동방에서 나타났다는 정복왕 징기스칸이 절로 생각났다.
‘어찌 해야 하나!’
공포에 떨던 셀림 2세는 결국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다. 모든 것이 다 꿈이었으면 싶었다.
‘그래, 자고 일어나면. 이번에야말로 자고 일어나면 꿈에서 깨어나는 거야.’
하지만 현실도피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안 좋은 소식이 셀림 2세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고? 감히 내 허락도 없이 군을 움직여?”
“아조프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수상에게 군사적인 일을 일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셀림 2세의 허락은 꼭 필요했다. 군을 움직이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가까이 접근한 군대가 갑자기 돌변해 배신을 하면 겉잡을 수 없는 피해가 일어난다.
아무리 오스만 제국이 크고 군대가 많다고 해도 셀림 2세를 비롯한 이들이 사로잡히면 반란이 성공할 수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군주들은 부하의 군대라고 해도 함부로 군을 움직이는 것을 수상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군을 물리게 하면 수도 방어를 강화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수상의 반문에 셀림 2세도 입을 다물었다.
황제가 수도를 버리고 떠난다? 이것은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행동이었다.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예루살렘은?”
“아마 지금쯤이면 메디나까지 진격했을 겁니다. 예루살렘까지는 시간과 여유가 좀 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신국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았다.
위에서도 내려오고 밑에서도 올라왔다. 동쪽에서도 다가왔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기가 막힐 일이었다.
“알았다.”
결국 셀림 2세는 허락하고 말았다. 수상은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이 놈들이......’
이가 갈렸다.
‘감히 날 무시해?’
술탄의 허락 없이 군대를 일으킨 의미마저 모를 정도로 셀림 2세가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군대를 움직인 뒤에 나중에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셀림 2세였다.
‘어떤 놈들하고 결탁한 거냐?’
셀림 2세는 은밀히 아무도 모르는 심복을 불러 수상과 나머지 사람들의 뒤를 캐도록 명했다.
스트랫퍼드.
앤 해서웨이는 집에 도착했다. 정말 꿈과 같은 2차 예선은 이제 끝났다. 환영을 받으며 집에 들어선 앤은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어려서부터 자주 본 익숙한 천장. 다시 보게 되었으나 반갑지는 않았다.
‘힘들어.’
앤은 상실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2차 예선이 마치 꿈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앤을 둘러싼 환경이 확 바뀌었다.
2차 예선은 과거에 만족하는 마음을 죽여버렸다.
합숙하면서 맛본 진미를 비롯한 모든 것들은 앤의 영혼까지 사로잡았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허락된다면 한 번 더 그러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아니야. 일 해야지. 내가 무슨 생각이람.’
귀족과 같은 생활은 이제 끝이었다. 이제는 평범한 농장 소녀가 되어 집안일에 익숙해져야 할 시간.
‘일단 자자. 자고 일어나면 더 나아지겠지.’
결과는 나중에 알려준다고 했다. 앤은 보나마나 자신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정말 떨어진 거냐?”
“네, 제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러냐.”
앤의 아버지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1차 예선에서 떨어졌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2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2차 예선만 통과했다면 앤의 팔자가 확 바뀌는 것이었기에 아쉬움은 더더욱 컸다.
“계십니까?”
아침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누군가 싶어 문을 열어주었더니 뜻밖의 소식을 가져온 신국 군인이었다.
“앤 해서웨이양은?”
“제 딸입니다.”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대회 본선 진출 자격을 획득하셨습니다.”
“네?”
잠시 뒤, 앤의 아버지는 괴성을 지르며 집안을 뛰어다니더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스트랫퍼드에서 뛰어다니며 소리를 꽥꽥 지르다 자신과 비슷한 짓을 하는 존 셰익스피어와 만을 수 있었다.
앤 해서웨이와 셰익스피어 자매가 나란히 본선에 진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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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