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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아조프 함대는 아조프의 앞쪽에 있는 어찌 보면 호수처럼 생긴 작은 바다를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흑해엣 아조프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은 곳을 통과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통로를 신국에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조프의 조선소와 항구를 타격할 수 없었다.
결국 아조프 함대가 흑해로 나오는 것을 막는 게 최선이었으나 해안에 설치된 포대가 너무 많아 가까이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사거리와 파괴력이 월등히 우월한 신국의 대포는 숫자에서도 오스만 제국의 것을 앞서 나갔다.
하지만 아조프해를 벗어난 함대는 바로 이스탄불로 향하지는 않았다.
“방비가 강하니 다른 곳을 흔든다.”
“알겠습니다!”
약탈 허가가 떨어지자 아조프 함대에 합류했던 노예사냥꾼들은 신이 났다.
“오오! 오오오오!”
이스탄불을 터는 것은 아니지만 배를 타고 약탈하러 간다니 신이 났다.
먼저 목표가 된 곳은 트라브존이었다. 오스만 제국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기습이었다. 레이더 같은 것으로 바다를 감시하는 시대가 아니다. 배가 움직이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시대. 미리 정보를 입수하지 않는 이상 어디를 언제 공격할지 알 수 없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스탄불의 방어를 계속해서 강화했다. 이스탄불이야말로 가장 상징적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곳이 점령당했다는 소문이 돌면 오스만 제국은 각 지역의 책임자들이 독립을 선언해버릴 수도 있었다.
제국이 와해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병력은 모두 이스탄불에 집중되었다. 그런만큼 트라브존의 방어는 약해졌다. 그 결과 트라브존의 모든 것이 털렸다.
트라브존이 털린 소식은 빠르게 이스탄불에 전해졌다. 소식을 들은 셀림 2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병력을 모아 반격을 도모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끈질기게 버티며 전력을 강화해 반격하는 것만이 떠오르는 유일한 회생 방법이었다.
셀림 2세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 중이었지만 갑자기 입맛이 떨어졌다. 우울한 기분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살기 위해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정원을 거닐던 셀림 2세는 예니체리 한 명과 마주했다.
“최근 들어 궁 밖에서 나쁜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위기에 처했으니 나쁜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다. 중요한 것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
“그런가? 그래서 어찌 되고 있지?”
“잡힌 사람은 없습니다.”
“뭐?”
나쁜 소문이 도는데 아무도 잡힌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 일에 나선 신하가 없다는 뜻이었다.
셀림 2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똑같았다.
“이것들이.”
신하들의 움직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감히 배신하려고?’
나라가 어려워지면 악소문이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보통 때 같았으면 술탄에 대한 악소문이 퍼질 때 신하들이 서로 나서서 소문을 떠드는 자들을 잡았을 것이다. 잡아서 극형에 처하고는 술탄에게 보고하며 환심을 사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망하면 오히려 신하들은 제국민들을 선동해 한몫 잡으려 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셀림 2세를 직접 처단하고 자신이 술탄이 되려는 꿈을 꾸는 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쩌다가.’
셀림 2세는 술탄의 자리가 매우 위험해진 것을 느꼈다. 허수아비 술탄으로 전락하기 일보직전인 것이었다.
“예니체리를 모두 소집한다. 모두 무장을 하고 궁에 모이도록.”
셀림 2세는 이를 악물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셀림 2세의 신하들은 어리둥절했다.
“뭐 아는 거 있나?”
“나도 모르는데.”
늦은 시간에 이뤄진 호출이었다. 무엇인가 수상함을 느낀 신하들은 여러 경로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무장한 예니체리들이 모여 있어?”
불길함이 느껴졌다.
예니체리는 술탄의 친위대이기도 하니 궁에 있다고 크게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시각에 완전히 무장하고 더 많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황증거였다.
눈치로 먹고 사는 것이 바로 정치판이었다. 눈치 없는 자들은 장기판의 말처럼 이용당하다 버려지기 일쑤였다.
‘이대로 가서 충성을 증명할까?’
‘뒤로 빠지는 게 더 좋을까?’
눈치 싸움이 된 순간 함께 길을 가던 신하들은 서로의 안색을 빠르게 살폈다.
“갑자기 몸이 좀 안 좋군요.”
한 사람이 일부러 아픈 척하며 발길을 돌렸다.
“술탄께서 부르셨는데 아프다고 빠지면 됩니까?”
편 가르기가 시작되었다. 이대로 셀림 2세의 부름에 응할 자들과 뒤로 빠질 자들이 생겨났다.
실제로 아픈 것도 아니니 입으로 꺼내는 말은 모두 변명에 불과했다. 모두 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격한 논쟁으로 번졌다. 그리고 편이 갈라졌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아픈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닙니다!”
뒤로 빠지고 싶은 사람은 아픈 이를 옹호하며 함께 행동하기로 했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셀림 2세에게 더욱 충성을 보이고 싶은 이들은 공격적으로 나갔다.
이러한 소란은 곧바로 아직 입궁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전해졌다. 발을 멈추고 장고에 들어갔다가 다시 궁으로 들어선 이가 있는가 하면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가버린 자들도 있었다.
찔리는 것이 있는 이들은 궁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들어왔다가도 다시 나가려 했다. 예니체리를 잔뜩 모아둔 술탄을 만나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이 시대의 정치는 목숨을 건 전쟁이었다. 상대를 죽이고 난 뒤에 변명을 대충 꾸며내면 그만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자세한 사정을 알 리가 없고 지배 계층은 힘을 가진 존재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가끔 선동을 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의 선동도 그냥 묵살하며 반역자로 몰아가면 민심은 결국 왕에게 돌아간다.
힘을 가진 자가 정의인 것이다.
제국 전체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군대는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심장인 이스탄불을 좌우할 수 있는 군대가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권력자들은 지배자의 영향권 아래서 생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빨리 가자!”
준비는 이미 어느 정도 해두었었다. 셀림 2세는 은밀하게 일을 도모하느라 이스탄불 전역에 명령을 내리진 못한 상황이었다. 어디까지나 기습적으로 지배를 거부하려는 불순한 신하들을 걸러내려 한 것 뿐.
“놈들이 도망가?”
보고를 들은 셀림 2세는 분노했다.
“그렇습니다.”
“쫓아라! 모두 잡아 죽여! 살려둘 필요 없다!”
명령을 받은 예니체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도망치는 자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배를 타고 가버리니 추격이 쉽지 않았다.
도망가는 배가 많아서였다. 이들을 모두 잡으려면 더 많은 배들이 출항해야 했는데 이리 되면 이스탄불의 방어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이들을 놓치고 말았다.
이스탄불의 이상은 금방 아조프 함대에 전해졌다.
“뭐야 뭔 일 있나?”
정보원들이 알려온 소식은 간단했다. 어찌된 일인지 다수의 신하들이 배를 타고 도주했다는 것. 그리고 예니체리들이 몇 척의 배로 추격했다는 것이었다.
“놈들이 흩어졌다면 사냥해야지.”
아조프 함대는 흩어진 적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배들은 흑해를 벗어나려 했지 흑해 안쪽으로 도망치지는 않았다.
흑해 안쪽에서 아조프 함대가 설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 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힘은 더욱 약해졌다. 거대한 제국이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플리머스.
한적한 오후, 주점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남쪽으로 내려갔던 이순신의 북해 함대가 돌아오며 플리머스에 보따리를 푼 탓이었다.
“부어라! 마셔라!”
“엉덩이! 엉덩이!”
주점의 여인들은 남자들의 손길에 미소 지으며 분주히 술과 안주를 날랐다. 한바탕 털고 온 해병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가끔 몇몇 여인들이 해병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주점 주인은 얼른 근처에서 여자를 불러왔다.
잉글랜드가 양모를 중점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농지가 줄어들고 소작농들이 갈 곳을 잃었을 때 여자들도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은 선원이 되었고 여자들은 여기저기서 험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모가 좀 괜찮거나 젊은 여인들은 결국 술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편이 더 경제적 풍요를 누리기 쉬우니까.
“하하하! 훌륭한 가슴이야!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
“집하나 사주면 생각해볼게요!”
“그래? 거 집 얼마야?”
잉글리시 남자가 꺼낸 말이라면 허세라고 비웃었겠지만 지금 말을 꺼낸 남자는 신국 해병이었다. 그것도 신참이 아니고 꽤 직급이 있는 해병이었다.
잉글랜드에 집 하나는 장난처럼 살 정도의 경제력이 있는 것이 바로 신국 해병들이었다.
“어머! 정말요?”
“그래, 너 마음에 들었다. 쟤도.”
“아잉.”
해병이 허리를 잡아끌자 애교를 부리며 품에 안겼다. 반대편에 이미 다른 여급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주점의 문을 박살낼 기세로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전투 준비! 에스파냐 개놈들이 쳐들어온다!”
“뭐?”
잠깐 침묵했던 해병들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취한 해병들이 다리가 꼬여 엎어지기도 했다. 머리가 깨지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일어나 달렸다. 여자 둘을 끼고 있던 해병도 여자들을 밀어내며 달려 나갔다.
“개놈의 새끼들!”
“여기가 어디라고!”
해병들은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부두를 향해 달렸다. 에스파냐에 대한 원한이 있는 잉글랜드 출신 해병들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머리가 깨졌던 해병은 피를 쓱 닦아내고는 이를 악물었다.
“출항하라!”
“출항!”
“승선 끝났으면 출항!”
“거기 빨리빨리 움직여!”
순시선으로부터 들어온 보고에 플리머스 항은 난장판이 되었다. 이에 근처에서 항구로 들어오던 배들은 화들짝 놀라 방향을 바꾸었다. 군선, 그것도 신국 함대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뭔 일이래?”
“모르지.”
어선과 상선에 탔던 이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순순히 비켜주었다. 신국 함대가 바쁘게 움직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항구는 소란스러웠으나 신국 함대는 하나둘 빠져나가더니 배가 한 척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제야 겨우 항구에 들어선 상인과 어부들은 에스파냐 함대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거 설마 여기 털리는 거 아냐?”
“방금 신국 함대들 나가는 거 보고도 그런 소리 하는 건가? 믿음이 부족하구만 믿음이.”
“으음. 하긴.”
상인들은 곧바로 불안을 지웠다.
“그런데 이 근처에서 해전이면.......”
해전이 일어난다면? 예상 밖의 소비가 더 일어날 수 있었다. 신국의 황제인 신유성은 언제나 전투 수당을 두둑하게 지불했다. 그렇기에 전투를 치른 이들은 언제나 돈이 넘쳐흘렀다.
지하자원을 독점해서 벌어들이는 돈을 썩히지 않고 병사들에게 수당으로 지급해 신국의 영토를 더욱 넓히고 동시에 수당을 받은 병사들이 돈을 쓰면서 경제를 살리게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것은 이제 비밀도 뭣도 아니었다.
“얼른 움직이자고!”
대박을 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상인에게도 전쟁은 대박이 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순신은 전열함에 탄 채로 보고를 계속 들었다. 함대를 이용해 빠르게 에스파냐 함대를 찾아가 격파하기 보다는 상황을 보고 받는 중이었다.
“해병들 다수가 아직 취해 있습니다.”
“부상은?”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일단 조금 쉬도록 하지. 아직 하루 정도 거리가 있으니까. 병사들은 쉬게 하고 순시선을 이용해 적을 계속 감시하라고만 해.”
“네!”
배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해병들이었다. 해병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배를 정확히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이것은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기에 이순신은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한편, 에스파냐 함대는 기를 쓰며 항해하는 중이었다. 발견한 순시선들을 잡아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떼어버리려 하면 다가왔다. 결국 에스파냐 함대는 순시선을 잡기를 포기하고 원래 목표인 런던을 향해 항로를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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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