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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또 다른 함대의 등장은 브리튼섬 전역에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순신의 함대만 해도 대규모 함대로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귀족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함대가 바다를 건너왔다.
“신대륙에서 왔다지요?”
“놀랍습니다. 전열함이 대체 몇 척이나 있는 걸까요?”
“함대가 넘어온 걸 보면 신대륙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큰 땅을.”
약간의 오해가 섞여있었으나 이를 정정해줄 신국 사람은 없었다.
“뭐 큰일 있겠습니까? 신국 덕분에 돈도 잘 버는데.”
“그렇죠.”
귀족들은 별로 불만을 품지 않았다. 신국은 잉글랜드의 귀족이라고 해서 차별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래할 상품이 있으면 언제나 동등한 거래상대로 대우해주었다.
신국과의 거래로 양모는 꽤 높은 가격에 팔려나갔다. 팔고 싶어도 양모가 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숲을 정리해 목재로 만들고 목초지로 개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숲이 없어지고 나온 목재는 상선이 되거나 신국이 주문한 선박으로 만들어지기 바빴다. 잉글랜드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를 위한 함선도 제작되고 있었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신국에서 군함 건조비를 두둑하게 줬기 때문에 조선소들은 군함 건조비를 비싸게 불렀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1세는 많은 군함을 소유하기가 어려웠다. 조선소를 압박해 강제로 뜯어낼 순 있었으나 함부로 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소도 귀족들과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익이 침범 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귀족들이었다.
나무로 배를 만들어 떼돈을 벌고 양모를 팔아 돈을 더 번다.
여기에 일반 백성들을 위한 정치는 없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신국이었다.
신국은 적극적으로 무직자들을 고용했다. 무직자들이 많으면 범죄자가 늘어나는 것이 현실인데 신국이 이것까지 해결해주니 귀족들의 입장에서 신국은 정말 좋은 나라였다.
그렇기에 군함이 런던항에 대규모로 입항했어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몇몇 충성스러운 여왕의 신하들은 물론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소용없었다.
이익을 가져다주는 신국은 복속하고자 하는 이들도 받아주었다. 잉글랜드가 망할 것 같으면 신국의 영주가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귀족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물론 배후에는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과 존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황실의 외척이 된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귀족들의 변화를 모를 엘리자베스 1세가 아니었다.
“어찌 생각하는가?”
여왕의 심복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막을 방법이 없었다. 무력으로 쳐내려 하는 순간 단숨에 잉글랜드가 무너질 테니까.
신국은 더 이상 먼 곳에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러시아를 집어 삼키고 여세를 몰아 스웨덴에 덴마크까지 꿀꺽했다. 유틀란트 반도에서 배를 타고 오면 영국은 금방이었다.
신국의 무지막지한 약탈자들은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들이 잉글랜드를 목표로 한다면 잉글랜드 왕실이 약탈당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과거 바이킹에게 유린당했던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다.
“방법이 없겠는가?”
“방법이라면.......”
한 신하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내용은 단 하나 혼인을 통한 세력 확장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신유성과의 혼인이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신국에서는 신유성에게 혼담을 넣었던 여왕을 자신의 처로 삼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괜히 이상한 짓을 해서 황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황제인 신유성이 공을 들여서 집어 삼키려고 하던 것을 옆에서 후딱 집어 삼키는 것 같았으니까. 한 마디로 새치기를 해서 빼앗는다는 모양새가 되기에 아무도 엘리자베스 1세와 혼인을 하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적당한 혼처는 별로 없었다. 우선 가톨릭 세력과는 혼인을 할 수 없었다. 가톨릭 세력과 손을 잡는 순간 여왕은 끝이었다. 남는 것은 신교 세력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신교 세력도 신국을 어떻게 할 수 있지는 않았다.
“으음.”
엘리자베스 1세는 고심했다.
‘결국 그 방법밖에 없는가?’
독하게 마음을 먹은 엘리자베스 1세는 명령을 내렸다.
“제임스를 후계자로 삼겠다.”
결혼을 할 수는 없었지만 브리튼섬을 하나로 통일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제임스. 1566년에 태어난 헨리 스튜어트와 메리 1세의 자식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몸이었다. 하지만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잉글랜드의 튜더 가문과도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즉, 제임스의 몸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몸이면서 잉글랜드의 왕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바로 현재였다. 잉글랜드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식이 없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군림할 정도로 잉글랜드에는 남자 후계자가 없었다.
튜더 가문은 엘리자베스 1세를 끝으로 멸문할 상황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해 후계자를 낳았다면 튜더 가문은 더 오래 존속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왕은 가문보다 권력을 택했다.
“내가 잉글랜드를 물려 받을 거라고?”
“그렇습니다.”
이제 9살이 된 제임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 여자가 미쳤어?”
제임스는 알고 있었다. 메리 스튜어트의 죽음이 엘리자베스 1세의 작품이란 것을. 제임스에게 엘리자베스 1세는 모친을 죽인 원수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그런 말씀은 하셔서는 안 됩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모두 다스릴 왕이 되셔야지요.”
“그 여자가 편히 죽는 꼴을 보라고?”
“그러셔야 합니다. 잉글랜드를 온전히 손에 넣는 것이 최고의 복수입니다.”
제임스를 따르는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스튜어트 가문의 복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브리튼섬의 패권이었다.
제임스가 브리튼섬의 패권을 가진 왕이 된다면 그를 따랐던 귀족들은 좀 더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니까.
어린 제임스는 노련한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혓바닥을 이길 순 없었다.
‘이게 아닌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항상 충성스럽게 자신을 보살펴준 귀족들을 제임스는 멀리 할 수 없었다.
결국 제임스는 후계자가 되기로 했고 이 사실은 브리튼섬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쓸데없는 짓을.”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은 엘리자베스 1세의 술수에 피식 웃었다. 여왕이 좀 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수를 쓴 것이 보였다.
‘스코틀랜드를 쥔다고 해서 신국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제임스를 후계자로 지정한 순간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여왕의 지배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중에 제임스가 왕으로 등극하게 될 테니 굳이 적대할 필요가 없은 것이었다.
제임스가 나이가 있었다면 여왕을 밀어내버렸겠지만 제임스는 아직 어렸다.
‘과연 여왕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후계자를 일찍 정한 상태에서 여왕이 권력을 온전히 휘두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10년?’
제임스가 아직 9살이니 10년에서 11년 정도 남았다. 이후에는 차기 왕을 중심으로 정계가 개편되는 것은 막기 힘들었다.
지금은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계자가 곧 왕의 경쟁자가 되는 셈이었다.
헨리는 이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귀족이라고 신국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신국은 스코틀랜드는 물론 웨일스와 아일랜드까지 영향력 아래에 두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이미 신국의 편이나 다름없었다.
‘이 기회를 잘 살리면 보다 일찍 신국에 합병되겠군.’
헨리는 여왕의 선택이 바로 기회라고 생각하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여러 장의 편지는 곧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몇몇 인물들에게 배달되었다.
신국의 바다를 책임지는 후지바야시 켄은 최근 들어 다시 후끈 달아오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놈들을 놓치지 마라!”
함대의 일부가 도망치는 포르투갈 선박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인도에서 완성한 프리깃들이 튀어나갔다.
프리깃은 최신형 후장식 대포가 탑재되어 있었다. 프리깃의 성능에 후장식 대포 덕분에 숫자상으로는 10배에 달하는 선박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포르투갈이 해양 대국이긴 했지만 이제 바다를 지배하는 것은 신국이었다.
그 어떤 국가도 프리깃 근처에 가는 선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최근 들어 만들어지는 것이 겨우 갤리온 수준이었던 것이었다.
프리깃을 보낸 후지바야시 켄은 항구 점령을 명했다.
페르시아만과 홍해는 물론 인근 바다에서 적대 세력의 해상 전력을 삭제해버린 후지바야시 켄은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신유성의 허락을 받고 아프리카로 진격 중이었다.
아프리카의 해안에는 포르투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항구가 많았다. 후지바야시 켄은 절대 항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항구의 주인인 경우에는 그나마 적당히 대접해주었지만 백인이 보이면 가차 없이 점령해버렸다. 물론 반항하는 세력에도 자비는 없었다.
계속해서 해안을 따라 남하하던 후지바야시 켄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마다가스카르 섬이었다.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커다란 섬에는 메리나 왕국이 태동하고 있었다.
함대를 둘로 나누어 섬의 해안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지나친다면 포르투갈인이 사용하는 항구를 빼먹게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후방에 적대적 항구를 남긴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에 후지바야시 켄은 차분하게 정리했다. 마음은 얼른 지중해를 봉쇄한 뒤 넓은 바다로 통하는 적대적 항구를 모조리 박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 급해선 실수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후지바야시 켄은 계속해서 인내했다.
물론 인내한다고 해서 마다가스카르 섬을 그대로 둔 것은 아니었다.
한호를 비롯해 권율과 유성룡은 마다가스카르 공략에 뛰어들었다. 이황의 세력이었던 이들은 최근 들어 성장세를 보이며 많은 수가 영주가 되었다.
이황의 밑에서 일을 배운 한호의 활약은 눈부셨다.
한호는 전투적 재능은 없었다. 전투 지휘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개척단을 이끌었으며 영주가 되었다.
영주가 된 바탕은 바로 뛰어난 보급 능력이었다.
완벽에 가깝도록 보급 물자를 지원했으며 현장 지휘관에게 선조치후보고를 하도록 시켜 개척단의 전투력을 최고로 이끌어냈다.
보급이 원활한 개척단은 빠르게 개척을 해냈고 한호는 영주가 되었다.
이후 한호는 영지를 더 개척했으며 다른 동료들도 도와 영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권율과 유성룡도 공병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영주의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신유성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자 따라 움직였다. 한양의 의회에는 대리인을 보내놓고 직접 신유성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하게 되었다.
“폐하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겠지요.”
“어떤 병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
“물론이죠. 안으로 깊게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해안만 점령합시다.”
이황의 파벌은 흩어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았다. 그리고 다시 모여 더욱 세력을 넓히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에 온 것은 이황의 파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명 조식의 파벌도 있었으며 신유성의 오랜 심복인 차돌을 비롯한 평민 출신 영주들도 있었다. 여기에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아파치족을 비롯한 아메리카 원주민 전사들도 합류한 상황이었다.
전투력은 모자라지 않았다.
이들은 화약 무기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창은 물론 검과 방패도 가지고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전사들은 신국의 방패와 검을 무척 좋아했다.
아파치 전사들은 검과 방패 대신 도끼를 들고 휘두르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엄청난 궁수이기도 했다. 활을 무척 좋아했으며 사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들 덕분에 신국은 마다가스카르 해안을 점령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마다가스카르의 부족들은 갑자기 쳐들어온 이방인들로 인해 보금자리를 빼앗겼다.
반격을 시도하긴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공병들이 만든 요새는 튼튼했으며 각지에서 모인 전사들은 접근전에서도 강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총이었다.
큰 소리가 나면 사람이 쓰러졌다.
포르투갈인들 덕분에 전장식 소총의 존재를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고 엄청난 속도로 이뤄지는 사격은 전장식 소총의 화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국이 쓰는 총기는 후장식 엽총이었다. 그리고 이 엽총에 쓰이는 탄은 산탄이었다.
여기에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지상전용 산탄 포탄이었다.
후장식 대포에 장전하는 포탄이 산탄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사거리는 짧았으나 살상력은 매우 높았다.
이 두 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돌격해도 신국에서 만든 거점을 털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습뿐이었지만 이마저도 아메리카 출신 전사들에 의해 막혀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마다가스카르의 부족들은 해안을 포기하고 내륙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에스파냐 공략전까지 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거점이 안정화되자 유성룡은 서둘러 유럽의 소식을 살폈다.
“지금 그냥 갈까요?”
권율은 그저 얼른 가고 싶을 뿐이었다.
“힘들 겁니다. 배를 직접 운용한다면 몰라도 그건 좀 위험해서.”
권율과 유성룡과 마주한 한호는 부정적이었다.
아무리 신국의 선박이 발전했어도 장거리 항해를 하게 되면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될지 모른다. 신국 해군이 항상 지근거리에 항구를 확보하고 움직이는 것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배를 사면 될 거 아닙니까?”
“프리깃은 팔지 않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한호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장거리 항해를 하려면 최소 갤리온을 타야 했으나 몇 척 안 되는 갤리온만 믿고 적이 다수 있을 거라 예상되는 위험 해역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해전이 벌어져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프리깃 정도는 타고 가야 안심할 수 있었다.
“천천히 가야지요. 이제서 다른 항로로 가봐야 늦으니까요.”
“어쩔 수 없죠.”
이들은 결국 후지바야시 켄이 빠르게 아프리카 해안을 정리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마다가스카르 섬 때문에 늦었던 신국 해군의 진격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포르투갈인들이 있는 항구를 만나면 뒤를 따르던 한호를 비롯한 개척자들이 정리를 해버렸다.
신유성은 제다에서 미녀들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세상이 신국에 의해 정복되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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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