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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트라브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조프 함대에 의해 약탈 당하던 곳은 이제 신국의 땅이 되었다.
“병력 피해는?”
“추가 병력은 언제쯤 오나?”
“10일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보급은?”
“5일 후에 도착합니다.”
“좋다! 보급이 털리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하고! 공병은 방벽을 더 보강한다!”
니키타 로마노프는 트라브존까지 진출했다.
‘조금만 더 가면!’
신유성에게 군대를 이끌고 오스만 제국과 싸우는 것을 허락 받은 덕분이었다. 이들은 원정군 소속은 아니었다. 신유성이 특별히 개척군이라는 이름으로 이스탄불까지의 개척을 허락했을 뿐.
니키타 로마노프가 움직였기 때문에 알렉산드로 슈이스키도 움직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로는 니키타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한 번 영향력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알렉산드로는 니키타처럼 대군을 보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데사에 병력을 집결시켜 덩치를 불리는 중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무너지고 있었다.
되살아날 희망 따윈 없었다. 이를 알기에 많은 지역들이 술탄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성로마제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공격!”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명령을 받은 군대는 국경의 오스만 제국을 공격했다.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두고 보지 않으려 한 것이었다.
전투는 어렵지 않았다.
해전에서 대패한 이후 오스만 제국은 해군을 다시 키우려했다. 하지만 도중에 신국과 얽히며 전력의 상당수가 신국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지속되는 전쟁으로 부담이 심해진 상황이라 보급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아 오스만 제국군은 무너졌다. 신성로마제국군은 무서운 기세로 정복해나갔다.
“항복하는 자는 노예로 잡는다! 불을 지르지 마라! 마음대로 날뛰다가 부수는 놈들은 모가지를 쳐버리겠다!”
신국이 고스란히 집어삼키게 되면 결국 신국만 좋을 일이었다. 때문에 신성로마제국에서는 노동력과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다.
신국으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을 만회하기 위해선 이 방법 밖에는 없었다.
오스만 제국이 제대로 버텨주었다면 공격하지 않았겠지만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니 결국 공격했다. 원래 신성 동맹이 원하던 대로 오스만 제국이 신국을 잘 견제해주기만 했어도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목표는 콘스탄티노플이다!”
이스탄불을 향한 신성로마제국의 진격은 거침이 없었다.
“대장. 이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래도 불안한데.”
“걱정마라. 조금만 있으면 잉글랜드는 신국에 넘어간다. 그리고 우린 영주가 되는 거고. 잘 알면서.”
“그렇죠.”
“영주가 되면 품위 유지를 위해 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알지? 공장도 세우고 하려면 돈이 더 필요해.”
“알았습니다.”
“그래. 잘하자. 응?”
지브롤터 해협 근처에 있는 항구. 아프리카 쪽에 붙어있는 작은 항구를 습격한 것은 바로 프랜시드 드레이크의 해적단이었다.
이들은 잉글랜드는 물론 브리튼섬 곳곳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토지를 사들였다. 보통은 농사도 짓지 못할 땅을 사지는 않는다. 가치가 떨어지니까.
하지만 신국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땅을 개척해 영지로 인정받으면 영주가 될 수 있었다.
영주가 되면 의회에 입성이 가능했다.
사막의 쓸모없는 땅이라도 들어가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들이 널려있는 것이 신국이었다. 북극 같은 곳에도 개척하겠다며 들어가기도 했다.
영지로 인정받으면 영주가 되니까.
한양에 있는 의회에 입성할 수 있으니까.
날이 가면 갈수록 영지로 삼을 수 있는 땅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국 사람들은 더욱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신국의 정복이 끝나고 땅의 주인들이 전부 정해지면 그것으로 영주가 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누구라도 영지를 인정받으면 영주가 될 수 있는 시기.
글도 못 읽는 노동자도 개척해서 인정받으면 단숨에 영주가 될 수 있었다.
신국이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거대해졌음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아직까지 돌아가며 경제가 잘 돌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개척을 하기 위해선 보급을 해야 한다. 보급을 하기 위해선 소비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돈 좀 벌리면 너도나도 개척하겠다며 떠났다.
이들이 고용한 개척 용병들의 품삯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보급품은 더욱 많았다. 덕분에 보급품을 파는 상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언젠가 끝이 올 잔치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분위기를 타고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해적단의 간부들은 영주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
잉글랜드를 비롯해 브리튼섬이 신국의 소유가 되는 순간 바로 영주로 등극할 수 있는 지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스탄불을 털면!’
보물을 쫓는 드레이크는 이스탄불을 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국 상인들을 통해 들은 정보를 종합해 내린 결론이었다.
이순신의 함대를 따라다니며 털면 안전하다. 돈도 꽤 벌 수 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이스탄불을 털어 한몫 단단히 잡으려는 것이었다.
드레이크의 해적단은 보급을 끝내고 바다로 나갔다.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면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선박을 봤지만 무시했다. 상대도 해적단을 보고 지나쳤다.
드레이크의 해적단은 총 50척에 달하는 대규모 해적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다, 신유성의 회의실.
“돈이 남습니다.”
“그럼 써야지.”
“어디에 쓸까요?”
신유성은 탁자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어디다 쓸까?’
엄청난 금액의 돈이 다시 신유성의 구좌로 들어왔다. 언제나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돈이 들어오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숨만 쉬어도 돈을 버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하자원의 독점 때문이었다.
신국의 경제가 개척으로 인해 활발해졌다. 그러면서 점점 거래규모가 커졌고 화폐를 만들 귀금속의 수요가 늘어났다.
일본의 은광은 이미 신유성의 것이었다. 은광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은이 있어 신유성은 상당히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여기에 일본 지역에서 금광도 개발되었다. 돈을 더 벌게 되었다. 허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신대륙의 은광을 손에 넣는 순간 신유성의 부는 엄청나게 폭증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에스파냐가 열심히 은을 캐서 유럽으로 옮겼어야 했으나 신국이 꿀꺽해버렸다. 에스파냐의 돈줄은 신국의 황제, 신유성의 것이 되었다.
이 외에도 은광은 여기저기서 개발되었다.
여기에 경제가 발전하며 강철의 수요가 급증했다. 철광석 또한 지하자원으로 분류되었기에 신유성이 돈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해서 사람들은 말한다.
신유성이 쓸 돈이 없어지는 그날이 신국이 망하는 날이라고.
어쨌거나 무서운 속도로 구좌에 쌓이는 액수는 여기 저기 마구 퍼부어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엄청난 양의 선박을 찍어내게 하고 신형 대포와 총을 만들게 하고 탄약 공장을 세워도 돈이 남아돌았다. 원정대에 보급을 빵빵하게 해주어도 돈이 남았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니 은행 구좌의 잔고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돈 버는 재미가 없단 말이야.’
어린 시절 돈을 벌겠다며 왜관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것이 문득 떠오른 신유성은 피식 웃었다.
‘그땐 정말 즐거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 되지도 않은 액수였다. 그러나 어릴 땐 그것을 번 것만 가지고서도 마음이 들뜨고 즐거웠다.
‘앞을 바라볼 때야.’
잠시 옛일이 떠올라 씁쓸해지려던 기분을 다스렸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어떻게 쓰면 즐거울까?’
황제로서 즐거움을 추구할 때였다. 최근에는 정복 자체도 그리 큰 감흥이 없었다. 영주가 되고자 하는 광풍이 신국을 집어삼킨 덕분에 신유성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정복은 착착 이뤄지고 있었다.
처음에 굴렸던 작은 눈덩이가 이제는 엄청나게 거대해진 것이었다.
따로 어떻게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알아서 구르며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신유성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보았다.
“대학을 더 짓도록 하지. 지금부터 나의 여인들이 살던 고향에 대학을 지어라.”
일단 엄청난 규모로 대학을 짓도록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야 기술 개발이 빨라지겠지.’
교육 받은 이들이 많아야 문명이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지금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신유성은 기술이 어서 빨리 개발되었으면 했다.
‘하다못해 간단한 게임이라도!’
게임이 무척이나 하고 싶었으나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신유성은 기술 개발에 일단 돈을 투자하기로 했다.
‘돈이 많이 남네.’
그래도 남는 것은 돈이었다.
‘또 어디다 쓰지?’
먹는 것에 써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식비는 연방 정부에서 직접 챙겨주었다. 매달 신유성에게 지급되는 정부의 돈이 또 따로 있었던 것이었다.
‘그냥 나눠주긴 그렇고.’
주녹정을 비롯해 자신의 여인들에게 나눠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신유성은 그냥 돈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준 것만 해도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날 위해서 써야 하는데.’
하지만 돈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돈을 쓰지 못해 답답해진 신유성은 기분 전환을 위해 움직였다.
찰진 소리가 가득 울리는 해변의 별장.
시원한 파도가 보이는 탁 트인 전망, 신유성은 미녀들을 엎어놓고 허리를 열심히 흔들었다.
“아앙! 아앙!”
허리를 흔들다 지치면 미녀들에게 허리를 흔들게 했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좌우의 미녀들을 괴롭했다.
야릇한 상황. 허나 신유성의 표정은 권태로 가득했다.
‘이것도 이제 별로네.’
수많은 여자들을 안았다. 모두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다. 그러나 계속 안다보면 결국 익숙해진다. 좀 더 새로운 자극을 얻으려면 새 여자가 필요할 정도였다.
정사 자체가 주는 쾌감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익숙해지니 점점 지겹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그게 그거 같은 느낌.
흔들리던 허리가 멈췄다. 손을 거두었다.
“아.......”
미녀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뭐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신유성이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었다. 굳이 미녀들을 만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없었다. 오히려 미녀들은 자신들이 부족해 신유성이 멈췄다고 생각하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폐하, 혹시 뭔가 불쾌하신 거라도 있으셨는지요?”
“좀 피곤해서 그러는 것뿐이다. 물러가라.”
미녀들이 물러가고 홀로 남게 된 신유성은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탁 트인 바다를 봐도 가슴의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게임. 게임. 게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온통 게임 생각뿐. 손쉽게, 빠르게 상상을 자극하는 게임이 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었지만 변하지 않는 욕망이었다.
야구를 비롯해 운동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신유성은 운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신유성이 죽자고 덤벼들면 다들 적당히 실수를 가장해 져주니까.
가끔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도나 신유성에게 맞춰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에야스도 최근 들어서는 많이 바빴다.
‘노부나가도 바쁘고.’
다들 바빴다. 신국이 거대해지는 만큼 할 일이 넘쳐났다.
‘황제는 고독해.’
홀로 고독을 씹던 신유성은 결국 게임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여봐라!”
신유성은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컴퓨터는 없었으나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 컴퓨터가 없으면 인력으로 해결하면 되지.’
여유가 생긴 신유성은 결국 게임 개발에 손을 대고 말았다.
신유성은 보드게임을 제작하도록 했다.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컴퓨터가 해야 할 계산을 사람에게 시켰다.
수많은 이들이 그림을 그렸다. 컴퓨터가 없으니 그래픽을 못 쓰지만 주인공은 물론 몬스터를 비롯한 캐릭터들을 목수를 통해 조각하게 만들었다. 캐릭터와 몬스터의 역할을 할 성우까지 구했다.
시나리오를 짜게 만들었다.
“마왕을 쓰러트리는 용사의 이야기다. 한 번 해보아라.”
첫 작품은 신유성이 직접 제작해서 신하들에게 하게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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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