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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이게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신유성이 만든 롤플레잉 게임은 완벽한 아날로그 게임이었다.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 있는 무대 위에 괴물 분장을 한 이들이 나오면 움직여 싸웠다.
진짜로 때리면 아프니까 연극을 하는 것처럼.
“으으으윽!”
“꽥!”
살짝 맞은 이들은 몇 번 툭툭 건드려주자 넘어진다. 그러면 게임을 하는 용사는 승리의 자세를 취한다.
전투에서 승리하면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보상을 가져온다.
“경험치 100 획득! 등급이 올랐습니다!”
한 쪽에서 계산을 하는 사람이 외친다. 그러면 머리 위에 등급 숫자를 바꾼다. 투구 위에 달린 등급 표는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재미있었나?”
“....... 재미있었습니다.”
질문과 대답 사이의 공백을 읽은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나도 안다. 그냥 물어봤다.”
실패작이었다. 그냥 실패가 아니었다. 대실패였다.
‘역시 직접 하는 건 유치해.’
계산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직접 움직이면 잘 되질 않았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가자.’
그래서 결국 주사위를 이용하기로 했다. 목각으로 만든 캐릭터들을 이용한 방식은 그나마 흥미를 이끌었다.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즐기는 신하는 별로 없었다.
게임을 위해 투입되는 인원만 해도 상당했다. 모두 고급 인재들이었다. 컴퓨터를 대신해 규칙을 적용시키며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게임에 투입할 순 없었다.
“으음.......”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신유성은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신하들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을 회피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말하라. 재미없었지 않나? 왜 재미없었는지 말하라!”
“저 그게.......”
황제가 만든 놀이를 재미없다고 말하긴 힘든 일이었다. 그냥 별로였다고 말하는 것만 해도 상당히 용기를 낸 것이었다.
결국 신유성은 알아냈다.
‘별로 와 닿지 않는 소재!’
마왕과 용사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신유성의 신하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잘 알지 못하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상상하기 어려우니 규칙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자연히 재미가 떨어졌다.
잘 모르는 것을 즐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정서 문제군.’
신유성은 다시 한 번 더 제작에 도전했다. 신하들은 신유성의 행동에 따라주었다. 조금 괴상한 놀이이긴 했으나 심각하게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폴란드.
신유성이 게임 제작에 몰두하는 시각, 폴란드를 집어삼킨 오다 노부나가는 한 가지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척계광.’
노부나가에게는 라이벌이었다. 척계광은 상당히 뛰어난 장군이었다. 노부나가보다 훨씬 더 큰 공을 세웠던 것이었다. 노부나가가 많은 공을 세웠지만 척계광보다 더 크다고 하긴 어려웠다.
‘여기까지 건너오다니. 신대륙에 그냥 있을 것이지.’
신대륙의 땅덩어리는 엄청나게 컸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나라는 없었다. 식민지를 건설했던 유럽의 세력은 척계광이 몽땅 박살을 내놨다.
나머지는 개척이 남았을 뿐. 척계광은 직접 군을 움직여 개척하지 않고 바로 잉글랜드로 넘어온 것이었다. 개척은 가만히 놔둬도 뛰어들 사람이 많기 때문이었다.
“준비는?”
“아직 어렵습니다.”
노부나가는 폴란드를 넘어 독일 지역을 비롯해 유럽으로 쳐들어가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독일 지역에는 신교 세력이 많았다. 네덜란드는 독립하기 위해 에스파냐에 저항하는 중이었다. 위그노도 마찬가지.
신교와 구교 사이에 틈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를 비롯해 신성 동맹이 더욱 더 격렬하게 이단이라고 몰아세울수록 틈은 더 크게 벌어졌다.
하나로 힘을 모아도 신국을 막아내기 힘든 상황에서 신교와 구교의 갈등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었다.
신교 입장에서는 차라리 신국의 지배를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이 때문에 노부나가는 군을 움직이지 않고 관망하기만 했다.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척계광이 넘어오자 조급해졌다.
‘공을 나누긴 싫은데.’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군을 움직일 순 없었다. 원정군의 모든 작전은 평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평가에 따라 공적이 정해진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불필요하게 군을 움직여 문제를 만들었다면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질 수 있었다.
결국 노부나가는 편지를 썼다.
노부나가의 편지를 받은 척계광은 피식 웃었다.
‘양보라.......’
내용은 좀 더 두고 보자는 것이었다. 프랑스를 비롯해 북해에 인접한 국가에 대한 침공을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척계광은 양보를 해달라는 것으로 읽었다.
폴란드에서 진격하면 신성로마제국의 근거지까지는 금방이었다. 헝가리는 물론 오스트리아까지 진경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심장과 같은 곳.
이곳을 붕괴시키는 것이야말로 신성 동맹을 와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무너지고 나면 합스부르크 가문 아래 숨 쉬던 이들이 신국에 붙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었다.
‘귀족들이야 뻔하지.’
더 강한 자에게 붙어 귀족으로 남는 것을 선택할 이들은 널렸다.
지조 없는 자들이란 생각이 들지만 신유성의 통일 방법에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지조 없는 자들 덕분에 신국이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했으니까.
어쨌거나 오스트리아만 잡으면 되는 것이지만 노부나가는 쉽게 군을 움직이지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이라고 가만히 앉아있는 가마니는 아니었다.
폴란드 국경에 끊임없이 병력을 증강했다. 이들은 대부분 광신도에 가까웠다. 신국이 악마의 제국이기 때문에 신의 뜻에 따라 싸우겠다고 나선 이들이었다. 대부분 이들은 자신들을 십자군이라고 자칭했다.
병력뿐이라면 못 싸울 것은 없지만 전선이 매우 길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무기도 상당했다.
신성로마제국군의 일부가 오스만 제국을 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나 노부나가가 이끄는 신국 원정군을 견제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척계광이 먼저 움직인다면?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은 척계광이 될 확률이 높았다.
가진 것은 해상전력뿐이었지만 임시 거주지에서 훈련받고 있는 위그노를 비롯해 브리튼섬 주민들로 이뤄진 브리튼 용병들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에스파냐로 쳐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바다에서 움직이는 것은 공격 지점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육지의 지형에 구애받지 않고 해안이라면 어디든 가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척계광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척계광은 웃었다. 기다려달라는 것은 곧 가장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양보해달라는 의미니까.
‘미안하지만 그냥 기다릴 순 없지.’
척계광은 움직이기로 했다.
“난 리스본으로 갈 것이네.”
“저도 돕겠습니다.”
척계광과 이순신이 손을 잡았다.
약 100척에 달하는 대함대가 리스본을 향한 출정 준비로 바빠졌다.
나가오 가케토라는 결국 아프리카로 넘어갔다. 맘루크와 오스만 반군을 훈련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끝나자 훈련을 멈췄다. 보급은 새로운 지휘관을 뽑아 신병을 맡겨서 하도록 해버리고는 도망치듯이 아프리카로 넘어갔다.
정확히는 누비아 남부였다.
누비아 북부는 이집트에 속해있었지만 누비아 남부는 속해있지 않았다. 이집트의 남쪽에 있는 지역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가케토라가 이 곳을 선택한 것은 필연이었다.
누비아의 해안에 도착한 가케토라는 성급하게 치고 들어가지 않았다.
“항구를 강화해라. 항구 건설이 먼저다.”
어려서부터 전쟁을 해온 가케토라는 보급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리고 대군을 보급하기 위해선 거대한 항구는 필수였다.
‘이곳 항구가 발전한다면 개척자들도 기어들어온다.’
개척자들과 상인 그리고 용병들이 들어오면 인근 방어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방어만 단단히 굳히면 그 다음은.......’
오직 정복만이 있을 뿐이었다.
가케토라의 피는 뜨겁게 끓었다.
스코틀랜드.
하나의 소문이 스코틀랜드에 퍼졌다. 그러자 신흥 귀족들이 모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의 왕이 잉글랜드의 개가 된다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신흥 귀족들은 대부분 신국과 교류를 하며 귀족이 된 이들이었다. 경제적 성장으로 인해 귀족들이 지원하는 길드들은 크게 성장했다. 길드들은 신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자신들의 영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것은 신흥 귀족들에게 매우 큰 힘을 안겨주었다. 변하지 않는 지지 세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말이 심하다! 그리고 잉글랜드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차지한 귀족들은 당연히 신흥 귀족들을 찍어 누르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국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재정 문제는 생길 수가 없었다. 다른 귀족이 거래를 끊는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거 팔데 없습니까? 그럼 제가 사지요. 얼마든지 가져오세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니까. 신국에서는 끊임없이 물건을 사주었다. 이 때문에 신유성의 구좌에서 돈이 빠져나갔지만 신유성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결국 스코틀랜드의 구세력은 신흥 귀족들을 국왕을 모독한 죄로 잡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군대가 움직였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신흥 귀족들은 빠르게 선언했다.
“나는 오늘부터 신국의 영주가 될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영지민들은 당연히 좋아했다. 이후 지주들을 비롯해 신국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저마다 신국에 복속하겠다고 선언했다.
“배신이다! 반역이다! 놈들은 더러운 반역자들이다!”
“저 놈들을 받아주지 마시오.”
당황한 구세력 귀족들은 당연히 신국에 경고했다. 하지만 경고가 먹힐 리가 없었다.
“복속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우린 지킬 뿐입니다. 결정은 폐하께서 내리십니다. 폐하의 결정이 있기 전에 그들을 공격한다면 신국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왕당파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우리한테 이럴 순 없는 거요!”
“결정은 폐하께서 내리십니다.”
비난이 쇄도했으나 신국 관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일은 잉글랜드에서도 일어났다.
“스코틀랜드 놈이 우리의 왕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사이가 나쁜 이유는 상당히 오랫동안 전쟁을 했기 때문이었다. 100년 전쟁 때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의 편에서 잉글랜드와 싸우기도 했다. 또한 엘리자베스 1세의 부왕인 헨리 8세는 스코틀랜드를 집어 삼키기 위해 전쟁을 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스코틀랜드 출신을 왕으로 삼는 것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자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모두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의 공작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사람을 왕으로 모시지 못하겠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신국에 복속할 명분이었다.
“차라리 신국에 복속하겠다!”
“합시다!”
“갑시다!”
헨리 윌리암스 크롬웰은 선언했다.
“우리의 여왕이 결국 잉글랜드의 자존심을 버렸다.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 땅에 사는 우리의 긍지가 땅에 떨어졌다. 현재 스콧들이 신국에 복속한다고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들도 신국의 황제 폐하를 섬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코 우리의 위에 서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또한 내가 신국의 신하가 되어 그들과 동등한 곳에 설 것이다! 나의 영지민들이여! 함께 새 시대를 열자!”
헨리의 연설은 먹혀들었다. 조금 똑똑한 사람들은 헨리의 속셈을 파악했지만 떠들지는 않았다. 신국에 속하는 편이 좋은 것은 사실이니까.
오히려 똑똑하고 돈 좀 있는 이들은 서둘러 움직였다.
‘영주가 될 수 있어!’
신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주가 될 기회가 열려 있었다. 신국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정보 덕분이었다.
“빌어먹을 놈이!”
엘리자베스 1세는 치를 떨며 헨리를 저주했다.
“빌어먹을 크롬웰! 쳐 죽일 크롬웰!”
여왕이 이성을 잃고 분노하며 날뛰었으나 누구하나 말리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귀족들의 이탈 행렬은 끝이 없었다.
스코틀랜드는 물론 잉글랜드의 신흥 귀족들은 벌써 다 빠져 나갔다. 지주들도 신국에 복속하겠다면서 지배를 거부했다.
지배를 강요할 수 있는 힘이 약한 잉글랜드 왕실은 결국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나도 가야겠군.’
여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이들도 빠져나갔다. 웨일스는 물론 아일랜드도 신국에 복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자베스 1세는 결국 신국에 복속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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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