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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잉글랜드는 뜨거워졌다. 개척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개척단 모집합니다!”
개척에 나서는 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귀족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귀족들이 더 뜨겁게 반응했다.
“아버지! 개척단을 맡겨주십시오!”
“알았다! 가라! 윌리엄!”
장자는 영지를 계승한다. 반면 차남을 비롯한 이들에게 남는 것은 그다지 없다. 이들은 장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무엇인가 주어지는 일은 별로 없었다. 때문에 이런 저런 요직에 앉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개척 열풍에 뛰어들었다.
개척에 성공만 하면 영주가 되니까. 차남이나 삼남이 영주가 되면 가문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지니 가주의 입장에서도 지원해주는 것이 이득이었다. 미리 재산을 분할해준다는 식으로 지원해주면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장자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어쨌거나 개척 광풍은 귀족들부터 상인들까지 강타하며 전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개척을 위한 물품을 생산하는 것부터 개척에 필요한 모험가까지 사람들이 필요했다. 개척단에 참여해 개척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영지를 개척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머! 자기! 혹시 개척자?”
“그래, 내가 이번에 신대륙으로 떠나는 해서웨이가의 개척단 소속이야.”
“어머! 해서웨이가면 그 폐하의 여인 중 한 명이라는?”
“그래, 그 분의 가문이지. 에헴!”
“오늘 밤 어때? 자기 나랑 천국가자.”
주점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대화. 남자들은 개척자인 척하면서 여급들을 유혹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돈을 준다고 해도 개척자라고 하면 일단 호감을 보이는 것이었다.
개척자의 아내는 언젠가 영주가 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모든 여자들이 꼭 남자에게만 기댄 것은 아니다.
“우리 가문을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
남자 후계자가 없는 귀족가의 여식들이 개척에 나서기도 했다. 상인 집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결혼을 하게 되면 부모가 남겨준 유산을 남자에게 빼앗길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러한 일을 막고 자신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영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었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지위와 돈이 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신국에서는 여자가 개척에 나선다고 말리지는 않았다.
브리튼 전체가 단숨에 훅 달아올랐다.
개척을 꿈꾸는 사람들로 인해 조선소는 쉴 날이 없었다.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친 드레이크 해적단은 아프리카 북부 해안을 따라 움직였다. 오스만 제국의 선박이 보였지만 드레이크 해적단을 공격하는 선박은 없었다. 드레이크 해적단은 신국의 국기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오스만 제국 세력은 이미 신국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집트가 신국에 넘어간 시점에서 오스만 제국과 국경을 마주할 일은 별로 없었다. 과거 지중해를 지배했다고 일컬어지던 하이레딘 같은 제독이 없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 해군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들이 저울질 하는 것은 독립했을 때와 복속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거부하자 신국에서는 따로 점령할 것처럼 굴지도 않았고 험악하게 굴지도 않았다. 신국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 삼키려고 침을 흘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신유성은 오스만 제국을 정리한 뒤에 마지막에 아프리카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이러한 의중을 아는 수뇌부는 그저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신국이 가만히 있다고 이러한 의중을 모를 아프리카의 지배자들이 아니었다. 다만 복속을 거부하는 자들 때문에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복속을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셨습니까?”
트리폴리에 도착하자 트리폴리에서 열렬히 드레이크 해적단을 환영했다.
트리폴리, 7세기경 카르타고에 의해 세워진 3개의 식민 도시를 통틀어 부르는 그리스어 ‘트리폴리스’에서 유래된 도시의 이름이었다.
지중해를 두고 로마와 다투었던 카르타고는 이미 사라졌다. 그리고 도시의 어원이 된 그리스는 현재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음, 고맙소.”
드레이크 해적단은 트리폴리에서 푹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드레이크는 트리폴리에서 이스탄불에 대한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다. 행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한편 해적단은 주점에 들렀으나 술을 마시지는 못했다.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트리폴리에서는 술을 팔지 않은 것이었다.
대신 여자들은 있었다. 물론 술을 대신할 것도 있긴 했으나 그것은 할 수 없었다.
“마약을 하는 놈은 모가지를 자르겠다. 폐하께서는 약쟁이를 싫어하신다.”
해적들은 트리폴리 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마초를 필 수 없었다.
신유성은 모든 마약을 연방 정부에서 관리하길 원했다. 연방정부의 의원들은 신유성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 이미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정신 건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반도와 중원 쪽에서는 신유성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중국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가정제가 약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소문이 난 상황이었다.
종교 지도자들 중에는 약을 이용해 신도들을 조종하는 자들도 있었기에 반기를 들었지만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신유성 앞에선 먹히지도 않는 반항이었다.
반항하던 자들은 반항하던 자들과 대립하는 자들의 먹잇감이 되어 사라졌다. 황제가 명분을 깔아줬고 마약 사범들에게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강력 조치를 취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약을 아예 없앤 것은 아니었다.
마약으로 분류되지만 의약품으로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정부의 인가를 받은 의원만이 마약을 치료에 쓸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해적들은 술도 못 마시고 약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만 안았다.
“아, 뭔가 빠진 느낌이야.”
“그럼 가기 전에 술파는 놈들을 좀 털자고 해보자.”
“그래, 니가 해봐.”
“아니 난 니가 해보라고 그러는 거지. 어디 내 말이 먹히겠어?”
“그럼 난 먹히겠냐?”
뭔가에 취하질 않으니 정신이 멀쩡했다. 그래서 흥이 나질 않았다.
해적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 특히 이번 약탈 대상은 매우 위험했다. 그러니 인생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죽으면 두 번 다시 즐기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불평을 할 순 없었다.
술은 괜찮아도 마약은 황제가 금지한 품목이니까.
결국 선원들은 여자만 실컷 안았다. 그리고 실컷 양고기를 구워 먹은 뒤에 배에 올랐다.
즐기지 못해 욕구불만에 빠진 드레이크 해적단은 곧바로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나아갔다.
아조프 함대는 흑해에서 마구 날뛰었다. 이젠 거칠 것이 없다는 듯 자유롭게 활보했다.
이스탄불의 오스만 제국 함대는 절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고 이스탄불을 지켰다. 아조프 함대를 잡겠다고 움직였다가 각개 격파 당하는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조프 함대는 자유롭게 움직였다.
오데사에 있던 알렉산드로는 병력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충분히 병력이 모이면 움직이려 했으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니키타 로마노프가 먼저 이스탄불에 닿을 것 같아서였다. 더구나 경쟁자는 더 있었다.
바로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어느 쪽을 쳐야 할까?’
이대로 계속 병력만 모으다가는 공을 전부 빼앗길 판이었다. 혹은 신성로마제국을 그대로 놔두면 놈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길 것 같았다.
‘가만히 있다가는 놈이 날 물어뜯겠지.’
병력이 있었음에도 신성로마제국을 막아서지 않은 것을 지적당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는 니키타가 십중팔구 자신을 지적할 것이라 여겼다.
러시아에서 영향력을 더욱 키우기 위해선 서로가 장애물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스탄불.’
가장 먹음직한 것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는 결국 이스탄불을 포기했다.
‘신성 로마제국에 뒤를 내줄 순 없다.’
이스탄불만 목표로 움직이다 잘못하면 신성로마제국에 뒤통수를 맞을 수 있었다. 이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차라리 놈들의 뒤를 치자.’
신성로마제국이 이스탄불을 치기 위해 움직이는 뒤를 노리고 알렉산드로는 군을 움직였다.
신성로마제국이 신나게 이스탄불을 향해 진격하고 그 뒤를 알렉산드로가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성로마제국을 위협하는 또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이 벌어지는 곳은 바로 프로이센 공국이었다.
프로이센 공국은 알브레히트 폰 프로이센에 의해 세워졌다.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며 기사와 사제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결혼을 할 수 있는 몸이 된 알브레히트는 외삼촌인 지기스문트 1세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았다. 이후 알브레히트는 역병으로 사망하고 뒤를 이은 것이 바로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공작이었다.
하지만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공작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정신 장애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으음?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뭐라고 했지?”
주변인들은 이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일시적인 것이길 원했으며 열심히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도는 통하지 않았고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의 증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폴란드가 신국의 손에 떨어진 뒤 공국의 운명이 달랑거리는 상황에서 공작이 정신 장애를 보이니 공작가의 귀족들은 불안에 떨었다.
“아무래도 다른 분을 대신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섭정으로는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의 사촌형인 브렌덴부르크-안스바흐 후작, 게오르크 프리드리히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신국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신국에 복속하기로 하지.”
“네?”
“공국의 앞날을 생각하면 그것이 더 좋지 않은가? 제국을 지배하는 합스부르크가는 프로테스탄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신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믿기 힘든 일이었으나 북방의 덴마크나 스웨덴에서는 종교에 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폴란드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할 길은 확실하지 않은가?”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다. 말뿐인 상황에서는 상대가 하는 말을 믿기 힘들다. 하지만 언행일치를 통해 행동으로 보여주게 되면 신뢰가 싹트게 된다.
신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었으며 건드리지 않았다. 더구나 복속해온 이들을 몰라 처리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회에 받아들여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에 소문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알렉산드로 슈이스키였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은밀히 밀사를 보내도록 하지. 나는 섭정이니 공국의 영주로는 나의 사촌인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가 영주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영지와 함께 신국과 함께 할 것이다.”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공작이었다.
“그 놈들은 폴란드를 집어 삼켰어! 약탈했어! 받아들일 수 없다!”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응? 뭐라고 했지? 내가 뭐라고 했지?”
정신 이상 증세가 있는 공작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일부 맞는 말을 하긴 했으나 섭정이 있는 이상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공작의 말을 따를 순 없었다.
프로이센 공국은 결국 복속을 선언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혀를 찼다.
“아쉽군.”
프로이센은 상당히 먹음직했다. 배를 타고 약탈해도 좋고 육지로 진격해도 좋았다. 강력한 용병들인 란츠크네흐트가 있는 땅이었으나 노부나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란츠크네흐트가 주로 쓰는 것이 창이었기 때문이었다.
산탄이 개발되면서 폭탄도 더욱 발전했다. 척탄병이 날뛰면 밀집 창진 따윈 금방 와해시킬 수 있었다.
강력해 보이는 적들을 철저하게 유린하면서 오히려 공포를 심어줄 수 있엇다. 그러나 프로이센에 공포를 심어줄 기회가 노부나가에게 오지 않았다.
프로이센 공국이 복속을 선언한 까닭이었다.
“그대들은 지금부터 신국의 신하들임을 명심하시오. 그리고 합스부르크 가문과는 전쟁 중이니 절대 그들과 교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거요. 친인척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만나 정보를 주는 일이 발생한다면 첩자로 간주해 참수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프로이센의 사신들이 물러가고 노부나가는 지도를 살폈다.
‘오스트리아와 좀 더 가까워졌다.’
공을 세울 기회는 잃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심장과 조금 더 가까워 진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노부나가였다.
한편, 프로이센이 갑자기 뚝 떨어져 나가자 신성로마제국에 비상이 걸렸다.
“밀어먹을 프로테스탄트! 빌어먹을 신국! 빌어먹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연신 욕설을 쏟아내며 프로이센과 신국을 욕했다.
“어찌해야 합니까?”
“어찌하긴! 병력을 더 모아라!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우리쪽 사람들이 지배하도록 만들어라! 절대 프로테스탄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지 마!”
“반항하면 어찌합니까?”
“죽여! 반항하는 놈들은 신성을 모독하는 이단이다!”
병력을 강제로 징병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만을 품은 이들이 수두룩했지만 지배자의 뜻을 거스를 힘은 일반 평민에게는 없었다. 결집되지 못한 힘은 가벼운 충격에도 와해되기 마련이었다. 주동자라는 명목으로 몇 명 잡아다 공개처형하면 나머지는 공포에 떨며 흩어졌다.
하지만 불만을 품은 이들은 결국 구교의 반대파인 신교에 몸을 담기 시작했다.
기존의 지배세력에 불만을 품고 무조건 반대파에 서는 사람이 늘어났다.
갈등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일반 평민의 입장에서는 지배자가 누구이든 알 바가 아니었다. 충성하며 목숨을 바쳐도 돌아오는 건 말 몇 마디가 전부인 경우가 허다했다. 어쩔 땐 그 마저 허락 받지 못하고 웃음거리로 전락하기도 했다.
구교 세력은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하지만 통제를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사람들을 억압할수록 반발하는 세력은 더욱 늘어났다.
신성로마제국에 지배력은 의도와는 달리 균열이 심해지며 점점 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