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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55화 (25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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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리스본.

“지금 그게 무슨 소린가?”

“신국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다시 말해보라! 그게 정녕 사실인가?”

“그러하옵니다!”

“크윽!”

부정하고 싶은 사실이었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물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었다.

신국의 함대가 리스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함대이기에 느리게 움직였다. 덕분에 정보를 미리 입수해서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시간은 얼마나?”

“하루면 당도합니다.”

“하루....... 허허. 허허허허허.”

포르투갈의 왕 세바스티앙 1세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허탈한 마음은 곧 분노에 밀려났다.

“십자군을 모아라! 놈들에게 질 수 없다!”

“하지만 폐하! 해상에서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바다에서 못 이긴다면 땅에서 싸운다!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세바스티앙 1세는 사실 그리 좋은 왕은 아니었다. 사냥과 승마에 푹 빠져서 지내며 국정은 별로 살피지 않는 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바스티앙 1세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기사왕’이란 별명이었다.

아부하는 자들을 좋아하며 허영이 강한 세바스티앙 1세는 보다 강력한 군주로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기사왕이란 칭호를 좋아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십자군을 모집하기에 만들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바로 옆나라인 에스파냐는 바다에서 경쟁하던 경쟁 국가였으나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동맹국으로 변했다.

모두 신국 때문이었다.

그리고 펠리페 2세가 신국과 싸웠고 곳곳에서 십자군을 실시하니 세바스티앙 1세가 십자군을 실시하는 것을 막을 신하는 없었다.

“하오나 땅에서 싸우면 수도가 파괴될 것입니다!”

“건물 좀 부서진다고 싸움을 포기하란 건가? 정녕 네 놈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싸우기를 반대하는 신하들을 압박하는 세바스티앙 1세였다.

‘젠장. 아직도 옛날 생각하나?’

세바스티앙 1세와 다르게 포르투갈의 귀족들은 신국에 두 손 든 상태였다. 명나라 시절에 알게 된 신유성과는 정말 사이가 좋았었다. 옛날에 들여온 모피는 귀족들도 원하는 고급 상품이었다. 어쨌거나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는 좋은 교역 상대는 어느 날 권력자가 되더니 돌변했다.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리고 말라카를 빼앗겼다. 이 때 받은 타격은 어마어마했다.

향신료라는 최고의 상품을 독차지할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신유성과 싸워서 남는 것은 없었다. 오직 패배만 있었다.

말라카 다음에는 인도에서 물러나야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프리카에서도 쫓겨나는 상황이었다. 아메리카 쪽에도 발을 걸치고 있긴 했었지만 이쪽도 끊어졌다.

해양 대국이었기에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에 먹히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항구들이 계속 신국에 넘어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항구와 본토의 생산력만으로는 나라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귀족들은 당연히 이런 상황이 싫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확연히 줄어들었으니까.

신유성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은 귀족들은 세바스티앙 1세를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아직 잃은 것이 많지 않은 귀족들은 고민했다.

‘더 이상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을 수 없다.’

아직 잃을 것이 많은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세바스티앙 1세에게 불만을 품은 귀족들은 은밀한 회합을 가졌다. 겉으로는 전투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래야 의심을 받지 않으니까.

하지만 불만을 가진 파벌은 은밀히 밀사를 보내기로 했다.

“내통을 하겠다고?”

“그렇습니다.”

“흠.”

척계광은 피식 웃었다.

“일이 잘 풀리겠습니다.”

옆에서 이순신이 거들자 척계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명단을 받았다.

밀사가 물러나자 한 부관이 나섰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함정이면 어떤가?”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척계광의 반문에 부관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척계광은 자신이 있었다. 함정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함정 따위가 통할 군대가 아니지.’

100척의 신국 함대를 막을 수 있는 함대 따윈 다른 나라엔 존재하지 않았다. 전열함에 이어 프리깃들이 다수 포함된 함대였다. 후장식 대포를 장착한 군함들의 화력은 이 시대에서는 괴물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포르투갈의 귀족들이 거짓으로 내통을 한 것이라면 그대로 포르투갈 전역을 약탈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내일은 바빠질 것이니 해병들을 배불리 먹이고 푹 쉬게 하라.”

“예!”

전투 전에 영양 섭취는 필수였다. 전투가 계속 되는 동안에는 물 마실 시간도 충분치 않으니까.

하루가 지나고 신국 함대는 리스본 앞바다에 나타났다. 포르투갈은 모든 선박을 전투에 동원했다. 전함은 물론 어선까지 징발해서 전투에 동원한 것이었다. 어민들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

참전하지 않는 자들을 이단으로 처형시키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 이단으로 찍히면 그 다음에는 몰락 이외에는 없었다. 운 좋게 목숨을 건져봐야 짐승 같은 대접이나 받을 뿐이었다. 가진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고 사람대접도 못 받는 생활은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었다.

“빌어먹을! 내가 왜 여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원치 않는 전투에 참전하게 된 이들의 마음은 불안과 공포로 마구 흔들렸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살고 싶다.’

포르투갈 해군은 공포에 덜덜 떨고 있었다. 과거 아프리카를 넘어 인도 그리고 아시아까지 진출했던 자들의 기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국의 승리는 포르투갈의 패배.

계속해서 누적된 패배는 공포로 변했다. 신국의 배와 바다에서 만나는 것은 재앙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형제들이여! 모두 힘을 합쳐 이교도를 몰아내자!”

종교의 힘을 빌리려 했으나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미 공포에 질린 상황에서 강압적으로 끌려온 이들은 패배 의식으로 가득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냥 물에 뛰어드는 게 낫지 않을까?’

육지에서 행군 중이라면 탈영이라도 할 텐데 바다에서는 어려웠다.

‘살 수 있을까?’

살고자 하는 이들은 전투 시작과 함께 물로 도망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에 뛰어든다고 전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육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끝이었다.

전투 중에 신국의 배에 올라타 자비를 구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공포와 불안이 만연한 상황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신국의 프리깃.

프리깃들은 멀리 돌아서 포르투갈 함대의 측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면에서는 전열함들이 돌진해오고 있었고 그 뒤를 갤리온들이 천천히 뒤따르는 중이었다.

신국이 돌격해오는 것을 알고 포르투갈 함대는 이를 악물고 돌격했다.

전열함이 포르투갈 함대의 진영으로 파고들었다. 무시무시한 전열함은 포르투갈 함선의 대포에 맞고도 묵묵히 돌진했다. 그리고 진영으로 파고든 순간이었다.

“쏴!”

명령과 함께 시작된 포격.

이순신의 기함이 불을 뿜자 포르투갈 군함 두 척이 박살났다.

양 측면에 있던 포르투갈 군함들이 포격에 침몰했다.

전장식 대포라면 장전하느라 시간이 걸린다. 이 공백을 이용해 잽싸게 붙어 포격을 하거나 백병전으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후장식 대포의 장전은 훨씬 빨랐다.

“쏴!”

접근하던 배들은 다시 박살났다.

“쏴!”

계속해서 이어지는 포격에 포르투갈 함대는 주춤했다.

“괴물!”

“놈들이 사악한 마법을 쓰고 있다!”

“악마다!”

지휘관들은 악을 쓰며 전투 의지를 살리려고 했다.

“악마에게 등을 보이지 마라! 싸우다 함께 영광의 나라로 가자!”

몇몇 귀족 지휘관들은 함께 죽자며 사기진작에 들어갔다. 성공한 이들은 무섭게 전열함을 향해 돌진했지만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쏴!”

이순신의 기함은 묵묵히 포를 쏴댔다. 이러한 것은 다른 전열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척계광의 전열함은 약간 고전했다.

대포가 전장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뒤엉켰다.

포르투갈 함대는 악착같이 전열함에 기어오르려 했다. 허나 소용없었다.

대포는 없었지만 다른 무기는 많았다. 특히 원거리에서 쏘는 폭탄은 공포를 안겨주었다.

쇠뇌를 개조해 쇠뇌용 화살의 화살촉을 유탄처럼 개조한 이 무기는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이었다.

충격을 받아 폭발하는 순간 쇳가루가 사방으로 튀니 좁은 배 위에 몰려있던 해병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졌다.

“사격!”

척계광의 배에서는 폭탄 말고도 후장식 엽총이 사용되었다.

전열함의 갑판이 포르투갈 함선의 갑판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더 효율적이었다.

“에잇! 이거나 먹어라 개놈들아!”

한 지휘관이 부하들이 다 죽자 자폭을 했다. 배에 실려 있던 화약을 몽땅 갑판으로 올려서 불을 붙였다.

거대한 폭발에 전열함도 휘청했다. 하지만 침몰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후 같은 공격은 반복되지도 않았다.

척계광의 전열함이 다른 배들로 인해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다른 선박들도 바로 옆에 붙을 수 없게 되었다.

어쨌거나 척계광의 전열함은 난전을 겪어야만 했다.

전투는 오래 걸렸지만 결국 신국의 승리로 끝났다.

뒤로 돌아간 프리깃들의 공격에 뒤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포르투갈 함대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승입니다!”

“위험했다.”

전투가 끝나자 척계광은 한숨을 내쉬었다. 포르투갈 함대에서는 전열함 중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 척계광의 전열함을 집요하게 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척계광은 버텼다.

전열함이라 원래 전투인원이 많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나중에는 배에 기어오른 포르투갈 해병들도 있었지만 권총 사격에 칼질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죽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포대를 무력화 시키라고 신호를 보내야지.”

원래라면 신국 함대에서 직접 할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내통자가 있었다.

내통을 하기로 한 귀족들은 신국 함대가 승리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에 마음이 들떴다. 이대로 세바스티앙 1세와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숙청되면 살아남은 귀족들은 많은 것을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고 으쓱한 곳에서 접촉이 있었다.

포대를 모두 장악하라는 명령.

내통을 한 귀족들은 자신들의 병력을 은밀히 포대로 보냈다. 이미 귀족들이 통제하고 있는 포대도 있었지만 아닌 포대도 있었다.

밤이 되었어도 포대의 병사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언제 오는 거지?”

“낮에 왔으면 좋겠는데.”

“바보. 아예 안 오는 게 좋지.”

“야, 쟤들이 바보도 아니고 안 오겠냐?”

불안 속에 투덜거리는 병사들은 격려를 위해 찾아온 이들은 반갑게 맞이했다. 약간의 술과 고기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했다. 대신 고기를 뜯으며 잠시 안식을 취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안식으로 이어졌다.

포대는 빠르게 장악되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포대가 장악된 이후 신국 함대에서는 일부 해병들이 숨어들어 포대의 대포들을 확실히 파괴하고 돌아왔다.

포대가 파괴되고 신국 함대가 부두에 들어섰다.

이후 항구에서는 피가 흘렀다.

부두에 들어온 배를 잡으려는 포르투갈 병사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세바스티앙 1세가 만든 포르투갈 십자군의 피가 거리에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어난 것은 광기였다.

“이교도에게 죽음을!”

“와아아아아아!”

포르투갈 십자군은 끊임없이 부두로 향했다. 그러나 완전히 무장한 신국 해병들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대포를 쓰지도 않았다.

엽총으로 사격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폭탄을 던졌다. 그것만으로 포르투갈 십자군은 전투력을 상실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은 뒤에 세바스티앙 1세는 리스본에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항복하려던 귀족들은 도망치는 세바스티앙 1세를 잡아 신국에 바쳤다.

리스본이 무너지자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는 파르르 떨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더위 때문에 잠시 정신이 가출했었습니다.

얼른 시원해졌으면 좋겠네요.

어쨌거나 모두 더위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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