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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56화 (25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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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리스본의 함락은 포르투갈을 단숨에 무너트리기에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 전역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신국의 지배를 거절하는 자들은 약탈해도 좋다.”

척계광이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

세바스티앙 1세를 배신한 귀족들은 자신들의 국왕은 잡아다 바쳤다. 척계광은 세바스티앙 1세의 목을 쳤다.

신국에 저항하던 군주의 최후는 리스본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세바스티앙 1세와 함께 하던 귀족들은 모조리 목이 잘렸다.

오직 신국에 붙은 이들의 목이 그대로 붙어 있었을 뿐.

저항한다면 누구든 목을 친다는 이야기에 리스본 시민들은 공포에 떨며 굴복했다. 이미 부두를 붉게 물들인 신국의 힘을 보았기 때문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리스본을 장악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척계광은 내통한 귀족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것이 바로 약탈 명령이었다.

신국에 복속하지 않은 자들을 약탈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었다.

마녀 사냥을 하듯 신국의 지배를 거부한 귀족들을 공격했다. 귀족들과 동행한 포병과 해병들 덕분에 다른 귀족들을 약탈하는 일은 어렵지도 않았다.

지배를 받아들인 이들은 살았고 거부한 이들은 죽거나 노예가 되었다. 사로잡힌 병사들은 물론 병사의 가족들까지 노예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펠리페 2세에게 전해졌다.

“사악한 이교도를 처단하자! 군대를 소집하라!”

바다에서는 매번 패배했다. 배와 대포의 성능이 너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지에서의 전투는 그래도 자신 있었다.

‘리스본을 장악한 신국 해군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바다에서는 잡지 못하지만 육지에서는 밀어낼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었다. 숫자에서 신국 군대는 밀리는 형편이었으니까. 여기에 세바스티앙 1세를 배신하고 신국에 붙은 귀족들의 병사들을 합친다고 해도 에스파냐의 병사들이 숫자에서 압도할 수 있었다.

‘땅으로 올라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펠리페 2세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신국에 패배를 안겨줄.

에게해.

이스탄불을 약탈하러 떠났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난관에 봉착했다. 에게해에서 이스탄불까지 가려면 아주 좁은 곳을 통과해야만 했다. 문제는 이곳이 굉장히 좁고 길어서 운신이 어렵다는 것. 잘못하다가는 배가 나포되거나 침몰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대장, 어렵지 않을까요?”

정보를 입수한 드레이크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보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해서 왔다. 하지만 전해들은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

이스탄불을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군대라면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후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략해적이었다. 허탕치고 돌아간다는 것은 사업 실패를 의미했다.

“이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털어야지. 어디든.”

드레이크의 말에 다른 선장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를?”

“여기. 여기가 그래도 제일 만만하지 않겠어?”

손가락은 지도 위에 있는 아테네를 가리켰다.

아테네.

길고 긴 역사를 품은 도시는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며 결국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서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다.

개종을 하지 않은 그리스도 교인들은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무거운 세금과 차별에도 굴복하지 않고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빈틈이 보이면 반란을 일으켰다.

“오스만은 끝났수다.”

“그렇지. 끝났지.”

“하지만 이대로 독립한다고 더 나은 것도 아니지 않수?”

아테네의 권력자 몇몇이 모여서 쑥덕거렸다. 이들의 지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그리스 출신 중간 권력자들이었다.

“그렇지. 이대로 독립해봐야 좋을 건 없지.”

독립. 그것은 참으로 달콤한 과실이었다. 하지만 독립이란 것은 결국 힘을 가진 자에게만 허락된 것.

“신국을 받아들이고 영주가 됩시다.”

신국의 소문은 널리 퍼지는 중이었다. 오스만 제국과 신국이 대립하니 소문이 안 퍼질 수 없었고 그리스인들은 상인들을 통해 신국의 정보를 계속해서 수집했다. 그리고 신국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국가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야지. 복속하면 영주가 될 수 있지만 반항하면 노예로 만드니.”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회의는 만장일치로 끝났다.

신국에 복속하는 것으로.

이후 아테네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인들은 모두 목숨을 잃거나 사로잡혔다.

“이거 참.”

드레이크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털까요?”

“털긴 뭘 털어? 쟤들 털었다가 우리 목 날아간다.”

아테네를 기습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저항이 없었다. 저항하긴 커녕 깃발을 확인하자 병사 하나가 와서는 신국에 복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다.

“그래도 다 털어버리고 입 막으면 누가 안다고.”

“소문나면? 너 여기 사람 다 죽일 자신 있어?”

드레이크의 부하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는 것에 도가 텄다고 하더라도 도시 전체를 학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잘못해서 복속하려던 아테네를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면 드레이크를 비롯한 인근에 있던 사략해적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엉뚱한 생각하지 마라. 이순신 그 사람보고 싶냐?”

해적 간부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신국 해군은 막강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이순신이었다.

땅에서건 바다에서건 붙으면 죽음을 안겨주는 사신으로 소문이 난 이순신이었다.

아군에겐 인자하지만 적군에겐 무시무시한 사신일 뿐이었다.

해적 간부들도 이순신이 자신들과 한편이라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제일 무서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제다에 계신 폐하께서 이 소릴 듣고 달려오면 어쩌려고?”

“요 놈의 입이! 아니 이놈의 머리가 돌덩이라 그럽니다. 어휴! 어휴!”

말을 꺼냈던 간부는 자신의 입을 때리더니 머리를 마구 두들겼다.

이순신이 무섭긴 하다. 하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누가 뭐라고 건국 황제인 신유성이었다.

“아무튼 허튼 짓 생각하지 마라. 만약 저 녀석들 손가락 하나 건드리면 내가 모가질 쳐버린다. 밑에 놈들에게 확실히 전해!”

“네!”

드레이크는 신유성까지 언급하며 겁을 주었다. 드레이크가 자신의 이름으로 겁을 주는 것보다 이순신이나 신유성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확실하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이 놈들을 그냥 받아주면 손해는 어디서 채우지?’

드레이크는 아테네의 복속을 받아들이며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아테네 시민들은 해적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스만 제국에 오랫동안 차별 받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신국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드세요.”

그리스식 식단은 해적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맛은 괜찮네.”

“그렇지.”

술은 불행하게도 없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보니 술을 만들지는 않은 것이었다. 대신 대마초가 있었으나 대마초는 금지된 것이었다.

결국 해적들은 음식만 잔뜩 먹고 접근해오는 여자들과 어울리는 정도에서 끝났다.

“어머 이 근육 봐!”

“멋져요!”

여자들은 창녀가 아니었다. 평민의 자식들이 많았다. 이들은 오스만 제국을 약하게 만든 신국에 호의적이었다.

드레이크도 몇몇 여인들을 품에 안았다. 사양할 일이 아니었다.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니고 좋다고 안겨오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책임지라고 달라붙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남녀 사이에 정을 쌓는 것은 말이 없어도 가능했다.

몸으로 하는 대화였으니까.

한참 일을 보고 나자 한 남자가 찾아왔다. 오스만 제국의 중간 권력자였으며 이제는 아테네의 영주가 될 남자였다.

“나의 병사들을 해적으로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음?”

정사를 치르고 맛있는 치즈를 씹으며 고민하는데 갑자기 들어온 청탁이었다.

“지금부터 폐하의 허락을 받고 사략해적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부탁합니다.”

“호오?”

청탁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드레이크 해적단의 규모는 엄청났다. 이들이 약탈을 하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게 된다. 신국의 사략해적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한 예비 영주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를 얻길 원했다. 이집트로 복속을 알리러 배가 떠났지만 제다에 있는 신유성이 이야기를 듣고 사략 허가까지 내줄 때까지는 꼼짝도 못하고 기다려야만 했다. 예비 영주는 조금이다로 더 벌고 싶었다. 그래서 청탁을 하는 것이었다.

‘이들과 함께 약탈을 가면 돈을 벌 수 있다!’

정확히는 그리스 청년들의 돈이 되겠지만 예비 영주는 자신의 소개로 해적단에 넣어주는 대가로 소개비를 받을 생각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기회군.’

사략 해적의 허가를 받은 드레이크는 얼마든지 해적을 고용할 수 있었다. 장부에 정확히 기입하고 보고하면 되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지. 이스탄불을 털려고 하는데 사실 병력이 부족했소.”

“그러면 우리가 지상에서 돕도록 하죠.”

“그럼 계약을 합시다.”

편법으로 군대를 일으키는 일이었으나 막힘이 없었다. 계약이 이뤄지자 수많은 그리스 청년들이 참여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오스만 제국을 향해 반란을 일으킬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런데 신국의 해적이 되어 약탈할 기회가 생겼다.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이들은 한탄하면서 물러나야 할 정도로 지원 열기는 뜨거웠다.

“우선 해방부터 해야겠다. 해적을 더 늘려야 하니까.”

“찬성입니다.”

그리스인들을 해적으로 받아들여 수를 엄청나게 늘린 드레이크 해적단은 아테네를 벗어나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해변은 물론 그리스인들이 살던 섬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해적이 되어 약탈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잡힌 오스만 제국인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다. 과거 그리스인들을 부려먹던 이들이 이제는 부려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드레이크가 그리스를 해방하면서 돌아다닐 무렵, 신성로마제국군은 열심히 오스만 제국을 휘저었다. 그러던 도중에 변고가 생겼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가 사망한 것이었다.

“뭐라고 폐하께서?”

“그렇습니다.”

“명령은?”

“돌아오란 말씀은 없었습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미 죽은 막시밀리안 2세의 명령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신성로마제국에 편입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황제가 죽었다. 이제 눈치를 봐야할 것은 바로 후계자였다.

“그런데 마티아스님이 아니고 루돌프님이라고?”

“그렇습니다.”

군을 지휘하던 지휘관은 혀를 찼다.

“하필이면.”

“장자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막시밀리안 2세의 뒤를 이은 것은 바로 루돌프 2세였다. 병약하고 무능하며 게으른 것으로 유명한 루돌프 2세는 군인들 사이에선 굉장히 인기가 없었다.

문인들 사이에선 인기가 좀 있었다. 문학적 소양이 좀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거대한 신성로마제국을 다스리는 군주로는 많이 모자랐다. 특히 지금처럼 위험한 적이 판을 치는 시대에는 군주로서 성공하기 어려운 능력이었다.

“돌아가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황제에게 잘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지휘관이었다.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막시밀리안 2세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명분으로는 꿇릴 것이 없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의 영역을 휘젓는 신성로마제국군의 뒤를 노리는 알렉산드로 슈이스키는 두 눈을 번뜩였다.

‘놈들이 방심하고 있군.’

여기에 한 가지 더, 신성로마제국에 보냈던 첩자로부터 막시밀리안 2세가 죽었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뒤를 이은 놈이 루돌프!’

“후후후! 하하하하하하!”

알렉산드로는 신이 신국과 함께한다고 느꼈다.

‘나의 선택은 정녕 탁월했다!’

중요한 순간에 황제가 죽어버린 것이었다. 더구나 뒤를 이은 것은 무능한 루돌프 2세였다.

기분이 좋아 볼이 계속 실룩거렸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일단 놈들의 보급을 끊는다. 약해지면 그때부터 한 놈씩 잡아먹으면 될 일.”

“알겠습니다.”

부하가 나가자 알렉산드로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놈들을 처리한 뒤에는 아테네로 가서 모병을 하고.’

그리스인들이 오스만 제국에 불만이 많이 품은 것을 알고 있는 알렉산드로는 병력을 늘릴 수단으로 그리스를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는 이미 드레이크가 손을 댄 상태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알렉산드로에게는 아직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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