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259화 (259/271)

0259 / 0271 ----------------------------------------------

입성

사람은 움직인다. 행위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영향력이 일정 수준이 되면 하나의 역사가 된다.

드레이크의 해적단은 이스탄불을 눈앞에 두었다.

역사가 만들어지기 직전이었다.

“잘 하자.”

“네!”

“정말 잘 해야 해. 여기까지 오기 얼마나 힘들었냐?”

“맞습니다!”

“그러니까 잘 하자. 응?”

“네!”

“자! 다 같이 외친다! 잘 하자!”

“잘 하자!”

이스탄불 약탈. 이것이 바로 드레이크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일이었다.

이스탄불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궁에 틀어박힌 예니체리의 저항은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스탄불을 수비해야 할 자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신국이 건드리지 않으니 방심했다.

원래는 방심할 수 없는 일이지만 누군가 신국의 의도가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라는 말에 이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혼란을 빠르게 끝내버리면 문제없을 거라는 말로. 한 마디로 인지부조화에 빠져 자기 편할 대로만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다른 계산이 깔려 있었다.

“오셨습니까?”

“배신은 알지?”

“물론입니다.”

배신을 위한 망언이었을 뿐이었다.

“그럼 준비 하고. 잘 하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통하고 있던 인간들은 안심하라는 듯 활짝 웃었다. 배신하기로 한 이들은 상당히 많았다.

예니체리가 궁 안에 틀어박혀서 이스탄불의 시민들을 선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쉽게 선동되지 않았다.

일단 시민들은 셀림 2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자살하기 전까지는 지지가 상당했었으나 자살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셀림 2세의 행동은 곧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끝까지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렇기에 지금 일어나는 모든 혼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중립을 지키는 이들이 많았다.

윗사람들의 권력 다툼에 괜히 목숨을 던질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오스만 제국은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드레이크가 돌아가자 배신자들은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실패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공만이 살 길입니다.”

배신자들은 궁을 한 번에 쓸어버릴 병력이 있었다. 상인들을 비롯해 영향력 인물들의 지지도 은밀히 받고 있었다. 하지만 예니체리들을 쓸어버리지 않았다.

간단히 싸우는 척하면서 균형을 유지했다.

배신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예니체리들이 포기하지 않게 적당히 밀리는 척 해주었다.

빈틈도 만들어주어 희망을 이어가게 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에 도달한 것이었다.

“돌격!”

배신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배신하지 않은 자들과 뒤섞인 상태에서 단숨에 궁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배신이 시작되었다.

예니체리들을 빠르게 제압하는 것은 물론 여기저기서 배신하지 않은 충성스러운 자들의 뒤통수를 날렸다.

암살을 통해 지휘권을 빼앗고 병력을 자신의 밑으로 끌어 모았다.

배신에 동참하는 병사들은 점점 늘어났다.

희망이 없는 전투를 계속 이어가기보다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한 이들이 많았다. 더구나 종교적인 문제도 이미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 신국은 전통적인 이슬람 국가는 아니었으나 이슬람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해주었다. 이슬람 영주는 영지에서 얼마든지 이슬람교도들과 부둥부둥 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교도와의 전쟁이 아닌 이상 일반 병사들은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할 이유가 매우 적었다. 생존에 위협이 된다면 모를가 신국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항복하면 살 수 있다! 살 기회를 버릴 것인가? 우린 지금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영광 속에서 살 수 있다!”

배신자들의 선동은 달콤했다. 죽음보다 사는 것이 더 낫기에 동참하는 병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처리해야 할 것은 오직 배신에 반대하는 충성스러운 자들뿐.

“예니체리만 잡으면 끝난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배신자들 곁에는 엽총과 권총을 가진 해적들이 끼어 있었다.

“저게 신국의 무기라고?”

“기본 무기래. 저 인간들은 사략해적이라고 하는데.”

“해적이 저런 무기를?”

엽총에서 발사되는 산탄은 무시무시했다. 후장식 총기의 장전 속도는 오스만 제국 병사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세상에. 지금 몇 발 째지?”

“10발?”

“벌써?”

엽총을 쏘며 빠르게 전진하는 해적들은 일당백이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바로 권총이었다.

엽총을 쓰며 전진할 때 숨어있던 예니체리들이 갑자기 습격했다.

엽총 장전이 아무리 빨라도 가까이 붙은 예니체리들을 빠르게 처리하긴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그때 해적은 엽총을 버리고 검과 권총을 뽑아들었다.

아주 가까이 붙은 상황.

검으로 적의 공격을 쳐내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면 여지없이 가슴에 총을 맞은 예니체리가 쓰러졌다.

육혈포. 육연발 권총의 위력은 접근 전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했다.

여섯 명을 잡고 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찬 뒤 다른 허리쪽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내서 쐈다.

한 명이 근접 전투에서 최대 12명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전투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적당히 가까워지면 권총으로 쏜다.

몇 명 되지도 않는 해적들은 순식간에 기습했던 예니체리들을 처리해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오스만 제국 병사들은 기가 질렸다.

전투가 끝난 뒤, 해적들은 권총을 재장전했다. 재장전 하는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다.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장전이 끝났다. 그리고 바로 진격.

어마어마한 전투 속도였다.

‘신국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일개 해적들의 무력이 엄청났다. 총기의 차이로 인해 전투력이 엄청나게 달랐다.

‘더 무서운 것은 저런 병사를 찍어낼 수 있다는 것.’

검과 권총을 들고 싸우는 것은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권총과 방패를 든다면?

냉병기로 무장한 군대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린 아이도 병사를 죽일 수 있다.’

권총을 쥐고 쏠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어렵게 무술 수련을 받지 않았어도 아이가 어른을 죽이는 것이 가능했다.

한 발 밖에 쏘지 못해 빗나가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진 것도 아니다. 무려 육연발이었다.

이제는 흔한 무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권총이었다. 그리고 권총을 사용하는 자들은 신유성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탄약 공장은 황제만이 소유할 수 있는 건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탄약을 생산할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황제의 허가 없이 탄약을 생산하면 반역죄로 다스리기 때문에 아무도 생산할 엄두를 내지 않고 있었다.

어쨌거나 무지막지한 드레이크 해적단의 활약으로 예니체리들은 별 힘도 못 썼다. 오스만 제국의 배신자들은 어느 정도 큰 희생이 뒤따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해적들의 활약으로 큰 피해가 없었다.

결국 예니체리는 모조리 당했다. 그리고 배신자들에 의해 이스탄불은 결국 신국의 손에 떨어졌다.

“좀 더 주세요.”

“배에 실을 수 있는 만큼 가져가도록.”

니키타 로마노프는 프랜시스 드레이크에게 궁의 보물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했다.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래, 적당히 가져간다면. 하지만 서적에 관한 것들은 양보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드레이크는 입맛을 다셨다.

배가 많이 있지만 궁의 재물을 모두 싣기에는 부족했다. 궁에는 그만큼 털어갈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보물처럼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서적과 문서들이었다.

니키타는 이것들이 상당히 중요함을 알고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드레이크는 만족했다. 일단 궁의 재물만 해도 상당한 액수였다. 해적단에 골고루 지급해도 모두 적당한 크기의 땅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개척 회사를 차릴 수 있겠어.’

이스탄불 약탈을 끝으로 드레이크는 해적단을 해체하고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해적은 결국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적국과 해상에서 계속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면 해적으로 살아도 늙을 때까지 할 수 있겠지만 신국으로 인해 해적은 오래 갈 수 없는 직업이 되었다.

‘슬슬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니까.’

의회에서는 더 이상 해적을 늘릴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줄일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의회에서 논의한 것은 황제인 신유성에게 의회의 의견이라며 제안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를 신유성이 보고 타당하다고 여겨 받아들이면 곧 제국에 적용된다.

‘개척은 돈이 돼.’

그래서 드레이크는 개척에 눈을 돌렸다.

개척 회사는 단순했다. 개인이 직접 영지를 개척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투자자에게 투자금액만큼의 개척지를 내주는 방식이었다.

회사에서는 땅을 개척해서 돈을 벌고 투자자는 돈만 내면 자신의 명의로 된 영지가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영지가 무조건 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주가 되기 위해서라면 작은 땅이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나았다.

의회에 입성하기 위한 열풍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개척할 땅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드레이크는 이미 영주였지만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일하자! 일!’

더욱 더 풍족한 삶을 위해 드레이크는 궁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가져갈 재물을 탐색했다.

니키타 로마노프는 결국 이스탄불을 함락시킨 자로 이름을 올렸다.

프랜시스 드레이크에게 보물을 준 대가이기도 했다. 드레이크도 니키타의 도움이 없었다면 쉽게 이스탄불을 공략할 순 없었다. 그러니 적당히 보물을 먹고 물러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스탄불 방어에 들어간다.”

별다른 피해 없이 이스탄불을 먹었다. 도시는 파괴되지도 않았다. 배신자와 압도적인 무기의 차이로 인해 이스탄불을 빠르게 정리해버린 것이었다.

이스탄불이 점령당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니키타 로마노프의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었다. 이반 4세의 밑에 있을 때에도 오스만 제국과는 전쟁을 했었다. 이반 4세는 직접 오스만 제국과 싸우기 위해 원정군까지 이끌 정도였다.

이반 4세에게 더 이상 충성을 하지는 않지만 과거부터 이루고자 했던 일을 신국의 힘으로 이뤄낸 것은 사실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적에게 싸우지 않고 배신하게 만든 힘이 무서웠다. 니키타 로마노프는 한 일이 별로 없었다. 제대로 전투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넘어왔다. 그만큼 신국의 위세가 엄청났다는 소리였다.

‘주변을 정리한 뒤에 움직이면 되겠군.’

지도를 바라보는 니키타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세계의 대부분이 신국 차지였다.

‘얼마 남지 않았어.’

니키타는 더 거대한 영지를 얻기 위해 다음 목표를 바라보았다.

다음 목표는 신성로마제국이었다.

한편, 알렉산드로는 혀를 찼다.

‘아깝다.’

알렉산드로는 진심으로 아까워했다. 병력이 조금만 많아서 더 빨리 이스탄불에 도착했다면 이스탄불의 정복자는 니키타가 아닌 자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로마군은 양보 못한다.’

알렉산드로는 의욕을 불태웠다. 경쟁자의 이스탄불 점령은 제대로 된 전투도 없이 이뤄진 점령이었다. 배신자들을 받아들여 이들을 이용한 것이니까.

알렉산드로는 대신 신성로마제국군을 박살내 무용을 뽐내기로 했다.

“더 빨리 움직인다!”

기병들만 추려낸 알렉산드로는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무장은 권총으로! 탄약을 최대한 많이 가져간다!”

대포는 아예 빠져있었다.

엽총도 무장에 포함되었지만 가장 많이 챙긴 것은 바로 권총탄이었다.

“가자!”

보급을 끝낸 알렉산드로는 기병들만 이끌고 먼저 나섰다.

이것이 바로 훗날 두고두고 회자될 총기병이었다.

나진.

한반도의 유명한 공업 단지인 나진에는 황제인 신유성의 탄약 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탄약 공장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리고 공장 건물이 하나가 아니었다.

나진 인근의 넓은 땅에 세워진 탄약 공장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탄약 공장에서 생산되는 탄약들은 빠르게 마차에 실렸고 이후 항구로 옮겨져 배에 실린 상태로 신국 전역에 퍼졌다.

탄약의 소모가 심하니 공장 가동이 줄어들 이유는 없었다.

이것이 바로 신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 중 하나였다.

“어이! 오늘 끝나고 술이나 한 잔 하지!”

“좋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전쟁의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신국의 탄약 공장은 하루도 쉬지 않고 탄약을 생산해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