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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전투는 시작부터 치열했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는 로마군은 똘똘 뭉쳐 움직였다.
“적을 외부부터 무너뜨린다! 돌격!”
“돌격!”
알렉산드로의 기병대는 절대 정면으로 돌파를 시도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다가가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사격을 가하며 스쳐지나갔다.
“아아아아악!”
“화살을 쏴!”
“총은! 총병은 어디 있나!”
“화살을 쏴! 쏘라고!”
이동 중인 포병들은 쓸모가 없었다. 신기전을 쏘려고 해도 워낙에 분산된 상황이라 효율이 좋지 않았다. 제대로 싸우려고 자리를 잡으면 돌진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움직이려 하면 돌진해서 발목을 잡았다.
총이나 화살을 든 병사들은 자리를 잡고 싸우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움직여야 한다! 전진!”
“전진!”
물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는 자와 발목을 잡으려는 자의 전투는 치열했다. 알렉산드로는 피해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들었지만 군을 뒤로 물리진 않았다.
‘놈들을 잡아야 한다.’
“탄약 소모가 심합니다! 앞으로 4번만 더 돌격하면 다 떨어집니다!”
상황은 알렉산드로에게 마냥 좋은 것도 아니었다.
후장식 총기는 강하다. 빠른 연사 속도와 재장전 속도는 압도적인 무력을 갖출 수 잇게 해주었다. 하지만 연사가 빠르고 재장전이 빠른 만큼 탄약 소모 속도도 빨랐다.
“여유분은? 여유분도 없나?”
“여유분까지 모두 합해서입니다!”
‘젠장!’
욕이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는 욕을 내뱉거나 하지 않았다. 지휘관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덕목, 그것은 바로 침착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하들의 사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지휘관이 안절부절 하면 밑에 있는 부하들은 상황이 부정적이라고 인식하게 되니까.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작전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항상 침착한 모습을 유지해야만 했다. 많은 전투를 치렀던 알렉산드로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군의 보급은?”
“알아보겠습니다!”
알렉산드로는 겉으로는 침착을 유지했다.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자신만만. 그러나 속으로는 똥줄이 타는 느낌이었다.
‘젠장.’
손에 땀이 흘렀다.
‘조금만 더 버텨라!’
상황은 로마군도 좋지 않았다.
“부상자가 너무 많습니다!”
“으음.”
부상자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전진 속도가 느려지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아울러 부상자를 돌보는 병사가 많아지는 만큼 전투력도 저하된다.
‘버리고 가면?’
냉정하게 따지자면 부상병을 버리고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딱 잘라서 부상병을 버리고 갈 순 없었다.
부대의 사기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부상자를 버리는 지휘관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병사들이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 탈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로마군 지휘관은 부상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섰다.
“형제들이여! 할 말이 있다!”
비장한 목소리가 병사들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는 이교도와 전쟁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 간악한 이교도들은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지휘관은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은 좋지 않다. 이대로 여기에 발이 묶이면 우리는 더 이상 물을 얻을 수 없다.”
부상병들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
“이것은 신이 내리신 시련! 시련 앞에 굴복한 우리가 어찌 신의 곁으로 갈 수 있겠는가!”
선동으로 분위기를 잡자 부상병들에게 결단을 요구하기가 편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대들의 용기를 보여라! 나 또한 그대들과 함께 저 사악한 무리들과 싸울 것이다!”
함성이 일었다.
부상병들은 이를 악물었다.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결국은 부상병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
죽음을 각오하라는 것이었다. 싸우다 죽든, 뒤에 남겨져 있다가 죽든 선택은 자유였다.
부상병들은 결국 뒤에 남는 것을 택했다. 뒤에서 적이 다가오면 발목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총 4번의 돌격이 이뤄졌다. 신국 기병대는 결국 탄약을 모두 소모해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보조 무기로 가지고 있던 기병검뿐이었다.
하지만 기병검으로 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제부터 냉병기로 붙게 되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니까.
“뒤로 빠진다.”
알렉산드로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결국 뒤로 빠질 것을 명했다.
기병들이 물러가는 것을 본 로마군은 함성을 내질렀다. 부상병을 뒤에 남기면서까지 전진한 결과 결국 원하는 것을 얻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보급입니다!”
기병대가 전투로 시간을 끄는 사이 보급 마차가 기병대가 있는 곳 근처에 도달했다.
“마차가 올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가서 가져온다!”
알렉산드로는 기병들을 직접 움직여 보급을 받으러 갔다.
“딱 좋은 것이 있군.”
탄약을 챙기던 기병들의 눈이 번뜩였다. 보급품 사이에 폭탄이 보였다.
“어서 편하게 해주자고.”
폭탄까지 챙긴 기병대는 말을 달렸다. 계속된 전투에 체력도 많이 떨어졌지만 유리할 때 몰아쳐야만 했다.
“괴롭겠지만 조금만 참자! 적은 더 괴롭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가자! 형제들이여!”
로마군은 물이 있는 곳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도달했다.
“드디어!”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자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허나, 물가가 안전지대는 아니다. 풀려있던 긴장은 한 병사의 외침에 의해 깨졌다.
“적이다!”
신국 기병의 재등장에 난리가 났다. 익숙하게 전투를 위해 움직였다.
“이제부터 전투 준비에 들어간다!”
물까지는 1킬로미터 정도 남았으나 이 정도는 큰 문제도 아니었다. 신국 기병들이 전진을 막기 위해 가로막는다면 오히려 전멸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포병은 물론 신기전까지 설치가 완료되었다. 어떤 방향에서 와도 싸울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허나, 신국 기병들은 무모한 돌격은 하지 않았다.
“명심해라! 적의 포격만 이끌어내면 된다! 시간을 끌어라! 절대 밀집 대형을 취하지 마라!”
산개한 신국 기병들은 로마군 포격 사정거리 안에서 맴돌며 포격만 이끌어냈다. 가끔 신기전이 날아오기도 했으나 기병들을 잡기에는 무리였다.
“놈들의 수가 뻔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공격하지 마라!”
지루한 대치가 이어졌다. 로마군은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소모전을 이끌어가던 신국 기병들은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깝다고 생각되자 한 방향에서 돌격을 감행했다.
“쏴!”
“무조건 잡아!”
로마군의 이목이 돌격해온 방향으로 쏠렸다. 그러자 돌격하던 이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돌격이 이뤄졌다.
기병들의 피해가 있었으나 크지는 않았다. 대신 로마군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가까이 접근한 신국 기병들이 폭탄을 투척하고 간 탓이었다.
“아아아아악!”
포탄이 터질 때마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병력이 밀집된 곳에 폭탄이 떨어졌기에 효과는 컸다.
로마군은 이를 악물었다. 기병들이 투척하고 간 폭탄으로 인한 피해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싸우지 않을 순 없었다.
도망칠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기병들을 상대로 도망치는 것은 기병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보병은 그야말로 잡아먹기 좋은 먹이에 불과했다.
그러니 싸웠다. 싸워서 적을 물리치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국 기병들은 희망을 무참히 짓밟았다.
3면에서 계속해서 적을 압박하던 신국 기병들은 밤이 되자 기습적으로 폭탄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폭탄을 투척하고 도망치는 기병을 막기란 매우 어려웠다.
로마군은 물을 얻게 되었지만 이동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신국 기병들은 보병들이 도착할 때까지 무려 절반에 달하는 로마군을 해치웠다.
이후 보병이 도착한 뒤에 로마군은 제대로 된 저항은 해보지도 못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보병들과 함께 움직인 신국 포병들이 간단하게 로마군 포병들을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이 전투로 인해 알렉산드로의 총기병대는 유명해졌다.
이스탄불이 정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이 떨어졌다. 예루살렘으로 진격하던 맘루크군과 오스만 제국 반군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예루살렘에는 가야죠.”
예루살렘 정복을 통해 이집트의 소유권을 정리할 계획이던 두 세력은 갑자기 목표를 잃었다.
예루살렘이 항복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스탄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무리해서 저항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지키기도 어렵고 괜히 피를 보기도 싫은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강경파를 제압하고 복속을 하며 예루살렘 인근의 땅을 영지로 받길 희망했다.
많은 이들이 노리던 예루살렘은 결국 손쉽게 신국의 품에 떨어졌다.
이스탄불의 함락이 가져온 충격이었다.
어쨌거나 갈 곳을 잃은 맘루크군과 오스만 제국 반군, 통칭 이집트지역방위군은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한편, 포르투갈에서는 연일 긴장 상태가 이어졌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포르투갈 왕실을 배신한 귀족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바로 옆나라, 에스파냐 제국의 군대가 계속해서 국경에 밀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수의 대군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에 포르투갈 출신 귀족들은 겁에 질렸다.
‘이길 수 있을까?’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는 십자군을 모집했다. 그리고 그 수가 물경 40만에 이를 거라는 소문이었다.
물론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다. 사실은 딱 절반인 20만 정도 모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40만의 절반인 20만이 모인다고 해서 무시할 순 없었다.
20만이면 엄청난 대군이었다.
허나, 소식을 들은 이순신과 척계광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보급은 어떤가?”
“원활합니다. 1년 동안 매일 같이 탄약을 소모한다고 해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보급은 계속 받도록.”
“알겠습니다.”
한반도 나진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탄약은 증기선을 비롯한 수많은 보급선에 실려 리스본으로 배달되었다.
보급선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날이 가면 갈수록 보급선단은 더욱 늘어났다. 배가 늘어나면 대부분 선주들은 군대와 보급선 계약을 맺었다.
보급선을 오간 경험이 훗날 상선을 운용할 때 필요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었다. 신출내기 선장들이 안전하게 유럽까지 오가는 경험을 쌓는 것으로 딱 좋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보급선이 되면 적자가 날 수 없었다.
신유성이 선원들의 임금까지 지급해주고 식량과 식수는 군대와 함께 보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돈이 썩어 넘치는 신유성은 아낌없이 돈을 썼다. 쌓아둬야 관상용으로밖에 못 쓰니 일단 쓰고 보는 것이었다.
황제인 신유성이 엄청나게 돈을 써대니 새롭게 신국에 복속한 지역에도 돈이 돌았다. 상인들은 당연히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며 신유성을 찬양했다.
고객을 왕이라고 한다면 신유성이야말로 최고의 고객이었다.
아낌없이 돈을 쓰니까.
돈을 많이 쓰는 황제라서 인기가 엄청나게 좋았다.
탄약 공장은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었다. 보급은 계속 이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멀고 먼 리스본에 탄약이 넘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귀족들을 불러라!”
회의가 끝나고 척계광은 포르투갈 출신 귀족들을 소집했다.
“불안한 것은 안다. 그러니 지금부터 각 귀족들은 모든 재산과 가족을 리스본에 집결 시켜라.”
“설마 포기하는 겁니까?”
“어차피 에스파냐의 군대만 격파하면 땅과 영지는 다시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의 목숨과 재산을 잃게 되면 다시 찾는 것은 힘들지 않나? 신국은 그대들을 끝까지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영지를 잃게 된다면 내 영지 일부를 떼어주겠다.”
척계광의 영지는 굉장히 컸다. 원정군 사령관을 지냈던 만큼 공적이 대단했고 그만큼 얻은 땅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척계광이 말로만 약속하지 않고 계약서까지 써서 남겨주자 포르투갈 출신 귀족들은 안심했다. 그리고 모든 귀족들은 가족과 재산을 리스본에 집결시키며 자신들의 병력도 불러들였다. 이 때문에 이들이 지배하던 영지에서는 혼란이 일어났다.
“어떻게 되는 거야? 설마 에스파냐에 넘기는 건가?”
“일단 리스본에서 싸운다던데?”
“그럼 우리가 있는 곳에서 전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야?”
“그렇겠지.”
그러자 겁에 질린 이들은 리스본으로 함께 움직였다. 일부 신국을 신용하지 않는 이들은 에스파냐에 붙기로 했다.
전쟁의 불길이 포르투갈을 삼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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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