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264화 (26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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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선거라고요?”

“그렇다. 선거다.”

이동 중, 신유성은 심복인 신페이를 불러다 선거에 대한 설명에 들어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있다.”

신페이는 선거라는 개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불필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있는 영주의 숫자도 엄청났다. 그런데 여기에 의원 수를 더 늘린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주들은 가문에 의해 세습되는 권리다. 시간이 지나면 영주가 되지 못한 이들과 영주가 된 이들 사이의 간극이 커진다. 문제는 이들이 아니다.”

신유성은 건포도를 하나 입에 넣으며 씹었다.

“영주와 영주가 아닌 백성들 사이에 간극이 있어도 천하를 아우르면 결국 백성들도 어쩔 수 없다. 문제는 바로 영주들이다.”

“영주들이요? 그 놈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소신이 모두 죽여 버리겠습니다.”

신페이는 진지했다. 정말 신유성에게 반기를 드는 자가 나온다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줄 생각으로 가득했다. 북해도에 사는 이들은 황실에 대한 반기를 드는 것 자체를 금기로 여길 정도였다. 반란군과 싸우는데 절대 물러설 이들이 아니었다.

“안다. 하지만 죽이면 제국은 결국 분열된다. 그러니 죽이지 않을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선거라는 겁니까?”

“그렇다.”

그제야 신페이는 이해했다.

‘영주들을 견제할 세력을 만드시겠다는 건가?’

선거를 통해 의회에 입성한 의원들은 영지민들의 지지를 받기 마련이었다. 비록 시간이 정해진 자리이지만 의회에 입성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잠깐이지만 영주와 같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영지에서 선거를 하니 영주의 입김이 많이 적용되겠지만 적당히 이용하면 영주들을 견제할 세력으로 키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들지 않습니까?”

“어차피 돈은 써야 한다. 생산된 것들을 소비해야지. 경제가 둔화되면 제국은 망하게 되어있다.”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돈 쓸 곳을 찾기 위해 하는 선거였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황실 직속 기관으로 둘 것이다.”

선관위의 장은 황태자로 결정되었다.

“이는 나의 의지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정복이 끝난 뒤 첫 선거를 열 수 있을 것이다.”

“폐하의 뜻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이후 신페이는 선거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 신유성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신유성의 의중을 확실히 파악해야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얘기만 듣고 대충 자의로 해석해 일을 진행하다보면 일을 맡긴 사람의 의도와 달리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또한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생각을 나누며 더 좋은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급하게 닥쳐서 하는 일이면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할 시간이 없으나 미리미리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에 신유성에겐 시간이 아주 많았다.

“우선 출마하려는 자들에게는 대학 학력이 있어야 한다. 학력이 없는 자에게 자격은 주지 않는다.”

이는 학교를 활성화하기 위한 계책이었다. 대학까지의 과정을 마친 이들에게만 출마 자격이 주어진다면 많은 이들이 대학을 가기 위해 아우성일 터였다.

‘이것만 해도 당분간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 되겠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건물은 지어봐야 쓸모없다. 하지만 필요로 하는 건물은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일정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 한 지역구의 인구가 모자랄 때는 여러 영지를 통합해 하나의 지역구로 한다.”

“그러면 경쟁이 무척이나 심해지겠습니다.”

“그게 좋은 거다.”

‘한 지역구에 영지가 여럿이 속하게 되면 경쟁이 심하겠지만 능력 있는 놈들은 다른 방법으로 여러 의원을 배출하려고 하겠지.’

그것은 바로 인구를 증가시켜 한 영지 안에서 지역구를 여러 개를 만드는 것이었다.

신국의 백성들은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한 영지에 인구가 몰리게 만들 수도 있었다.

‘살기 좋은 영지가 되면 사람은 더 몰리겠지.’

영주들끼리 살기 좋은 곳을 만들게 하기 위해 경쟁을 붙이려는 것이었다.

“서로 경쟁이 붙는다면 황실에 고개를 쳐드는 놈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럴 여력도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신유성의 또 다른 노림수였다.

영주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결국 힘을 축적하게 된다. 그리고 축적된 힘은 어디론가 분출되길 원하게 되고 결국 황실을 목표로 삼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것이 황제니까.

세계 최고의 부자, 지하자원의 주인이 바로 황제였다.

수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는 황제, 탐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전쟁도, 개척도 결국 끝이 찾아온다. 하지만 선거는 세월을 통해 계속 반복되는 정치적 전쟁. 황제인 내가 허락한 권력 투쟁인 것이다.”

서로 싸우고 경쟁하게 만들어 황실의 안전을 도모하는 한 편, 발전을 노리는 것이었다.

‘역시 폐하시다.’

길고 긴 얘기 끝에 신유성의 의중을 파악하게 된 신페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모두 폐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신페이는 한양으로 사람을 보냈다.

알렉산드리아.

위대한 정복자로 알려진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의 이름을 따라 도시의 이름이 지어진 곳으로 오랜 역사가 숨쉬는 도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도시의 동방원정 때문에 도시의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만 도시 건설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도시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수도로 삼았다. 한 때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세계의 경제, 문화적 중심지로 위명을 떨치기도 했던 도시는 결국 정복당했다.

신국의 황제인 신유성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도시에 입성했다. 입성 전에 신페이가 군대를 보내 혹시 모를 일에 이미 대비했기 때문에 그 어떤 소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도시라.’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선 신유성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냥 여행을 위해 온 것이 아닌 정복자로서의 입성이었다.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딴 도시를 정복한 것이다.

묘한 감흥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허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실망이 밀려왔다.

‘등대도, 도서관도 다 부서졌구나.’

유명한 건축물들이 이미 박살났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이란 것도 알고 보면 티끌에 불과한 것을.’

오래된 도시의 거리를 보며 신유성은 감상에 젖었다.

이후 가장 큰 건물에 자리를 잡자 명령을 내렸다.

“즉시 항구 건설에 들어간다. 포대를 만들고 방어를 굳힌다. 이제부터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신성로마제국과 합스부르크를 잡는다.”

명령이 떨어지자 바로 실행되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에 해낼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군대는 로마로 보낸다. 로마를 먼저 점령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겠다.”

예루살렘이 항복하면서 맘루크와 오스만 제국 반군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잃었다. 가만히 놔두면 이집트의 지배권을 두고 싸우게 되니 기회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로마 정벌이었다.

“곧바로 로마로 향합니까?”

“아니, 적당히 반도 남부 어딘가에 내려주고 보급만 해줘라.”

“하지만 선박이 부족합니다.”

“흑해는 더 지킬 필요가 없지 않나? 아조프 함대를 불러들인다.”

아조프의 함대, 흑해 함대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이스탄불이 함락되며 오스만 제국 해군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원래부터 흑해 함대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으나 구심점이 무너지며 해군은 그대로 몰락했다.

흑해를 둘러싼 지역은 모두 신국의 영역. 더 이상 흑해를 수호하기 위한 함대를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없애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혹시 모를 해적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명령을 내리고 얼마 뒤, 후지바야시 켄이 소수의 함대를 이끌고 알렉산드리아에 입항했다.

“폐하아아아아아!”

“오랜만이다.”

세우타에는 아직도 다수의 함대가 있었다. 함대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아프리카 해병들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늘어날 뿐이었다. 죽은 자들이 많았지만 새로 자리를 채우는 이들이 더 많았다.

아프리카 해병들을 조그만 배에 태워 에스파냐의 해안에 내려주면 알아서 약탈해왔다. 우수한 무기를 가진 아프리카 해병들은 굉장히 뛰어난 약탈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항구에 들리면 어김없이 배를 나포해왔다. 배를 나포하면 돈을 많이 주니까. 이렇게 나포한 배는 함대에서 소속되어 아프리카 해병들이 타고 싸우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함대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

덕분에 후지바야시 켄이 세우타에서 발을 빼서 알렉산드리아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새롭게 복속을 청한 자들이 있습니다.”

후지바야시 켄은 혼자 오지는 않았다. 바로 세우타 인근의 권력자들이었다. 일부는 오스만 제국에 속해 있던 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은 오스만 제국의 몰락과 함께 독립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를 보고 생각을 접었다.

신국은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병사를 아무리 죽여도 그 병사는 결국 신국의 주력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었다. 아프리카 해병들의 존재가 바로 증거였다. 아프리카의 해안을 모두 점령하고 올라온 신국 함대에 저항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더구나 대량의 아프리카 해병을 보유한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 말고도 지중해에 퍼지기 시작한 이름들이 있었다.

후지바야시 켄이 해군이라면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해적이었다. 신국의 허가를 받은 사략 해적은 자국의 선박이나 영토만 아니면 어디든 가서 약탈을 해도 죄를 묻지 않았다.

이스탄불을 약탈했다는 것이 소문이 퍼지자 다들 벌벌 떨었다.

약탈자 드레이크의 위명은 그만큼 자자했다. 허나,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이름은 따로 있었다.

이순신.

후지바야시 켄이 신국 해군의 총책임자로 알려져 있지만 가장 뛰어난 제독은 이순신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공포의 대상이 되는 프리깃을 도입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위명이 자자했다.

신국의 최고 전함인 전열함이 있었지만 타국 사람들에게 가장 깊게 각인된 것은 바로 프리깃이었다.

전열함보다 작지만 빠르고 강한 화력을 지닌 프리깃은 그 어떤 국가의 배들도 상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후장식 대포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연사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단 한 척이 홀로 다녀도 웬만한 함대 하나는 박살낼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이러한 프리깃을 다수 이끌고 다니는 제독이 바로 이순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순신의 함대에 ‘무적함대’라는 별명을 붙이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이니 결국 해안을 접한 아프리카의 권력자들은 신국에 복속을 청했다. 복속을 청하지 않으면 그나마 쥐고 있던 권력마저 잃게 될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잘 왔다.”

신유성은 이들을 내치지 않았다. 얄밉도록 계산적인 행동이었으나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계산적인 행동에 의해 신국에 복속하는 것이야말로 신유성이 노린 것이었으니까.

“연회를 열도록 하지.”

신유성은 환영하는 의미에서 연회를 열었다.

화려한 연회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신유성이 지속적으로 사들이는 식료품은 종류도 다양했고 양도 많았다.

원한다면 진상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신유성은 그러지 않았다.

‘좋은 돈 놔두고 그냥 달라고 할 순 없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호의라고 포장하지만 결국 원하는 것이 있다.

호의에는 호의로 갚아줘야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조그만 것을 베풀고는 큰 것을 바라는 염치없는 자들이 수두룩한 세상이었다. 그러니 호의를 받기보다는 거래를 하는 편이 신유성에게는 더 편했다.

은행에 쌓여서 처치 곤란한 돈들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그래서 돈을 썼다. 돈을 써도 결국 돌고 돌아 신유성의 호주머니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신유성이 경제 구조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신유성이 구입하는 식료품의 양은 상당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항상 주변 사람과 나눠먹었다. 또한 신유성을 따라다니는 요리사들은 온갖 실험을 하면서 요리를 만들었다.

“자, 먹도록 하지.”

“이 검은 것은 정말 먹어도 되는 겁니까?”

“내가 먼저 먹지.”

검은 국수. 흑면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음식의 이름은 자장면이었다.

젓가락을 들어 비벼낸 자장면은 입으로 흡입되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 1분.

1분이 걸렸을 뿐이었다.

“좋군.”

자장면은 흡입한 증거로 입가에는 시커먼 자장이 묻어 있었다. 신유성은 이를 닦지도 않고 군만두를 집어 먹었다. 그리고는 앞에 수북이 쌓인 탕수육 접시들을 바라보았다.

냄비에서 소스와 함께 볶아진 탕수육과 아무 것도 부어지지 않은 탕수육이 있었다.

“내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지.”

신유성은 한 가운데 수북이 쌓인 탕수육 앞에 섰다. 한 손에는 소스가 가득 든 그릇이 들려있었다.

소스가 부어졌다. 바삭하게 튀겨진 탕수육 위로 소스가 흘렀다. 계속해서 아래로 흐르며 탕수육을 적셨다. 신유성은 그릇을 내려놓고는 설명했다.

“왼쪽에는 전부 한 번에 볶아진 것, 가운데는 방금 내가 양념을 부은 것. 그리고 마지막 오른쪽은 원하는 만큼 양념을 찍어 먹으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먹어도 결국 이 녀석들의 근본은 같다. 탕수육이지.”

사람들은 신유성의 입만 바라보았다.

“신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피부색도, 언어도, 종교도 다르다. 하지만 모두 근본은 같다.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국의 법을 따르면 그대들도 신국 사람이다.”

신유성은 모든 접시에서 하나씩 탕수육을 집었다.

“난 탕수육을 차별하지 않는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출신을 보기보다는 충성을 보시겠다는 말씀이시다!’

복속한 자들은 안도했다. 그리고 후지바야시 켄도 감동한 표정이었다.

“원하는 대로 먹으면 된다.”

이윽고 사람들은 신유성을 따라 자장면을 단숨에 흡입했다. 그리고 군만두를 한 번 먹더니 신유성처럼 각 접시에서 탕수육을 덜어 한 번씩 맛보았다.

식사로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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