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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척계광의 진격. 노부나가의 진격. 알렉산드로 슈이스키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유럽 진격에 에스파냐와 신성로마제국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체 신국의 병력은 얼마나 되는 건가?”
“남쪽에서도 왔다며?”
“프랑스는? 프랑스의 군대는!”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이들이었다. 허나, 십자군에는 구멍이 있었다.
‘이렇게 싸우다 죽을 순 없어. 희망이 없어.’
가톨릭 파벌의 귀족들은 대세가 기운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배신은 쉽지 않았다. 배신하려던 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처벌되었고 배신의 낌새를 보이기만 하면 숙청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영지에서 영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많은 영주들이 단체로 덤벼들어 뜯어먹으려고 하면 버틸 수 있는 영주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홀로 오롯이 버틸 수 있는 영주들은 이제 합스부르크 가문과 강하게 얽혀있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순 없어.’
가진 것들이 많은 자들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길을 찾아야 해!’
손에 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배신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목숨을 구걸하며 영혼을 바쳐 믿던 종교를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으로 개종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진실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
‘살아야 해.’
귀족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저택과 아랫사람들.
모두 자신들의 것이었다. 손짓 하나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장기판 위의 말들이었다.
귀족들은 아직 게임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노블. 귀족놀이는 계속 되어야만 했다.
그것이 그들의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귀족으로서 계속 살고자 하는 욕망은 하나의 길을 찾아내었다.
장 칼뱅.
신교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장 칼뱅은 이미 고인이 된 상태였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허나, 그가 뿌린 씨앗은 완벽하지 못했다.
개신교는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에는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었다.
모든 신자들이 독실한 신자였다면 이성적인 토론이 가능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종교 자체를 자신의 파벌로 인식했다.
그리고 개신교는 보수적인 세력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비춰졌다.
때문에 개신교가 퍼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으며 결국 사이는 계속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바로 신국의 위협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을 향해 진격하는 오다 노부나가와 알렉산드로 슈이스키의 군대는 위협적이었다. 에스파냐 해안을 털고 지나간 것도 모자라 남부 프랑스 해안까지 털기 시작한 아프리카 해병들은 전염병과 같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신국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
일부의 군대를 움직인 것만으로도 유럽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배신을 생각하는 귀족들은 개신교와 은밀히 접촉했다.
“과거의 잘못을 회개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으음.”
관용을 베풀어 달라는 몇몇 귀족들의 요청. 속이 뻔히 보이는 요청이었으나 개신교 세력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귀족들의 힘을 받아준다면 개신교는 더욱 빠르게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개신교가 하나 된 세력이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순 있었지만 개신교 세력은 여럿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신국의 황제에게 서한을 보내고 싶소.”
귀족들의 목적은 간단했다.
개신교를 통해 자신들의 뜻을 신국에 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개신교 입장에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우릴 통하는 거죠?”
“합스부르크의 눈을 피해야 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소?”
“으음.”
개신교와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사이는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개신교를 통해 새롭게 귀족들이 뭉치게 되면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신자들이 개신교로 빠져나가면 종교를 통한 지배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앙을 가진 이들은 개혁을 생각했지만 정치를 하는 귀족들은 권력을 추구했다.
새로운 질서를 원하는 귀족들에게 개신교는 하나의 돌파구였다.
때문에 칼뱅을 비롯한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의도와 달리 개신교와 구교와의 사이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비극이 겹치며 계속해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기에 개신교의 많은 이들은 신국에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브리튼과 위그노를 받아들인 것이 개신교 파벌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적대하는 존재였다면 함께 살 생각은 할 수 없다.
항복한다고 해도 차별 받는 현실이라면 귀족들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 없는 상황. 하지만 신국은 달랐다.
영주로 인정해주고 차별하지 않았다. 의회의 의원으로 받아준다는 소문은 유럽에도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도 이길 가망이 없어 보이는 적은 의외로 관대했던 것이다.
항복만 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되니까.
이 때문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흔들리는 중이었다. 합스부르크만 아니었다면 벌써 신국의 품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합스부르크라는 옛 연인은 잔혹했다. 배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은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결국 개신교와 배신을 결심한 귀족들은 손을 잡게 되었다.
한편, 이집트 지방군은 테베레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상륙했다.
“빨리 움직여라!”
“우리가 먼저 가야 한다!”
이집트의 소유권을 놓고 경쟁하는 두 세력의 상륙은 그야말로 번개 같았다.
“저 놈들한테 지면 고향을 빼앗긴다!”
엄청난 선단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다. 인근에는 그 어떤 저항 세력도 없었다. 때문에 상륙하는 동안에도 습격을 전혀 받지 않았다.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가 지중해의 유럽 함대를 모조리 박살내고 다닌 뒤, 아프리카 해병들이 철저하게 약탈했기 때문이었다.
노예는 당연히 돈이 된다.
신유성이 자비로 노예를 싹 쓸어 담아 광산으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신유성의 입장에서도 광산을 개발할 노예가 많은 것은 이득이었다. 어차피 돈을 주고 산 노예들이니 광산에 투입해 이윤을 추구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노예를 잡으면 돈이 되니 아프리카 해병들은 해안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약탈했다. 그리고 이렇게 번 돈으로 무기를 사서 자신들과 적대하는 부족을 짓밟고 영주가 되는 이들도 생겨났다.
부와 명예를 쥘 수 있으니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고 그만큼 약탈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 결과가 바로 해안의 초토화.
로마와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없어 이집트 지방군은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
“가자! 로마로!”
상륙이 끝나자 이집트 지방군들은 빠르게 로마로 향했다.
로마.
로마제국의 시작점. 엄청난 제국으로 성장했었으나 세월과 함께 쇠퇴한 제국의 중심.
교황청이 있는 로마는 이집트 지방군이 상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난리가 났다.
“악마들이 온다! 이것은 시련! 우리가 이겨내야만 한다!”
“성전이다!”
“자네 십자군이 되지 않겠는가?”
십자군 모집이 시작되었다. 병사라고 할 수 없는 이들까지 모조리 동원되었다. 로마의 남자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예외는 없었다.
도망치려는 자들은 모조리 효수되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모조리.
배신자들의 말로를 보게 된 이들은 무기를 들고 명령에 따랐다.
도망쳐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아도 도망칠 수 없었다.
도망쳤다가는 같은 편에 잡혀 죽을 테니까.
로마 방어에 나선 남자들은 가족과 재산을 볼모로 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투 중에 도망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겠다는 마음이 없는 이상 불가능했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전투가 다가오고 있었다.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아프리카 해병들이 약탈을 하고 다닐 때 함정을 파서 단숨에 쓸어버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프리카 해병들은 절대 내륙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로마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피해를 입은 뒤로는 로마를 기피했다.
대규모 병력이 로마에 모여 있었다.
“싸우자! 악독한 이교도들에게 신의 자비를 가르쳐주자!”
“우와아아아아아!”
감동적인 연설은 아니었다. 다만 계기가 필요했다.
대중이 내지르는 함성은 이성을 마비 시켰다.
모두가 하나 된 느낌.
거대한 존재의 일부가 된 느낌에 감정이 고양되었다. 이성이 마비되며 두려움이 사라졌다.
“드디어 로마다.”
“뭘 망설입니까? 갑시다!”
이집트 지방군들. 맘루크와 오스만 제국을 배신했던 반군 출신들. 두 파벌의 의욕은 충만했다.
“교황을 잡는 자가 승자다!”
“고향은 우리의 것!”
“교황을 잡아라!”
두 파벌은 동시에 진격하기 시작했다. 진격을 하자 로마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허나 이집트 지방군에 닿는 것은 없었다.
“포병 준비!”
성능 좋은 대포로 무장한 포병들은 능숙하게 포격 준비를 마쳤다.
“쏴!”
화약이 폭발하며 포탄이 하늘을 날았다. 거듭 개량되는 대포와 화약의 힘으로 신국 대포의 사정거리는 세계 최고였다.
“아아아아악!”
“피해!”
로마를 지키는 자들은 공포에 물들었다.
“어떻게?”
“대체 왜!”
공격이 닿지 않는다. 단체로 함성을 내지르며 끌어올렸던 고양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폭음과 함께 부서지는 벽. 사람들의 비명. 죽음의 그림자.
전의로 가득했던 정신은 공포에 겁탈 당했다.
‘죽을 거야!’
‘이길 수 없어!’
“싸우자! 물러나면 안 된다!”
“가족을 생각해!”
물러나면 유린될 가족을 떠올리며 싸우려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내가 살아야 해!’
이기적인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 법.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이기적으로 변하게 된다.
상당수의 남자들이 도망치려 했다.
뒤에서 자리를 지키던 정예병들이 이들을 잡아 죽이긴 했지만 모두 죽일 순 없었다.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자들도 있었고 뭉쳐서 가로막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도주한 자들도 있었다.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은 항거 불가능한 적과 싸우는 것보다 아군을 죽이도록 만들었다.
“이교도 앞에서 등을 돌리는 자들은 지옥에 갈 것이다!”
협박을 해보지만 통하지 않았다.
‘지옥이라고? 그럼 회개하지 뭐.’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했기에 별 문제가 되질 못했다.
신국의 포격은 계속 이어졌다. 이집트 지방군은 전진하라고 했지만 돌격은 하지 않고 포탄만 주구장창 날려댔다.
후장식 대포이기 때문에 재장전 속도도 무시무시했다. 전장식 대포를 쓰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대포 수천 문으로 돌아가면서 쏴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망자가 늘어나자 도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었다.
조금만 뒤로 물러나면 신국 포격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문제였다.
“이대로 앞에 있으면 다 죽어요! 조금만 뒤로 갑시다!”
“뒤로 물러나는 건 안 된다!”
로마를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로마의 귀족들은 사람들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뒤로 물려봐야 조금씩 전진해오면 말짱 헛수고!’
조금씩 계속 뒤로 밀리다보면 결국 막다른 곳까지 밀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귀족들이었다.
“돌격을 준비하라!”
이럴 때 돌파구는 하나였다. 돌격해 적의 대포를 빼앗는 것.
“뭐라고?”
도주하는 자들이 더 늘어났다.
뒤로 물러나는 것도 아니고 포탄이 돌격을 하라니 기가 막힌 것이었다. 하지만 돌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교도에게 등을 보이는 자! 싸우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깃든 사악함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심판이라고 했지만 결국 죽이겠다는 소리였다.
수많은 로마의 남자들은 이를 악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살기 위해선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신국은 돌파를 허용하지 않았다.
“쏴!”
가까이 다가가자 엽총으로 무장한 이집트 지방군들이 일제히 사격했다.
로마 병력의 돌격은 결국 무의미한 희생을 늘리는 것으로 끝났다.
“포격 중지!”
로마 병력의 돌격이 멈추자 이집트 지방군들은 포병대를 조금씩 전진시켰다. 그리고 썩어 넘치도록 쌓인 포탄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로마는 그렇게 외곽에서부터 망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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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