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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67화 (26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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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끝없는 포성.

신을 찾는 절규.

자욱한 연기는 죽은 자들의 영혼처럼 보였다. 로마를 지키는 남자들은 무너졌다. 하지만 이집트 지방군은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더! 더 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포격을 중지한 다음에는 조금 전진. 그리고 다시 포격.

로마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이들은 밀면 미는 대로 힘없이 밀렸다.

병사들은 신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괴로운 표정은 짓지 않았다. 때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으나 얼마 되지 않았다.

군을 통솔하는 자들이 아닌 이상 병사들이 열을 올릴 이유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집트 출신들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슬람을 믿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로마를 함락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성전의 승리가 달린 전투.

더구나 로마를 약탈하면서 얻게 될 것을 생각하면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 해병들이 약탈을 다니며 막대한 부를 손에 넣었다는 소문에 배가 아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다.

군사령관들은 교황을 잡는 자에게 특혜를 약속했다. 교황이 곧 보물이 된 셈이었다.

사냥을 앞둔 짐승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사냥감은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씨발! 다 죽어!”

돌격을 시도했지만 절대 돌파할 수 없었다. 엽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 때문이었다.

포격을 뚫고 적진에 도달해도 사격에 의해 쓰러져야만 했다. 간혹 운 좋은 로마군 병사가 바로 앞까지 도달해도 결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에 의해 막혔다. 그리고 방패병 뒤에서 내질러진 창에 찔리거나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죽어도 뚫을 수 없는 적은 그야말로 절망의 장벽이었다.

벽을 넘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뛰어 넘으려 하기도 하고 돌아가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벽 너머로 갈 수 없다면?

되돌아간다.

되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로마군은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자들을 향해 돌격했다.

“이교도에게 등을 보이다니!”

“니가 돌격해!”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자들만 죽인다면 항복하거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절망에 빠졌던 로마군은 지휘부를 습격했다.

기강이 확실한 군대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투를 앞두고 다급하게 징집한 병력이었다. 제대로 훈련도 되지 않았다. 강제로 징집된 병사들이 사기가 높을 리도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라면 오직 하나, 가족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

하지만 신국의 군대를 죽어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병사들은 결국 전투를 포기했다.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야!’

승리의 희망이 없으니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사라졌다.

삶을 향한 욕망은 아군을 향해 이를 드러내게 만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싸우라고 등에 칼을 내미는 귀족들이었다.

귀족들의 정예병과 로마 남자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멀리서 이를 보던 이집트 지방군은 포격을 멈추고 기다렸다.

승리는 결국 로마 남자들에게 돌아갔다. 귀족들의 정예병이 있었지만 로마의 남자들이 숫자가 더 많았다.

갑작스럽게 퍼진 배신의 파도는 로마군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다.

귀족들은 희망이 없다 생각하고 뒤로 빠졌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귀족들이 빠지며 병력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남겨진 병력의 사기는 더더욱 떨어졌다. 이제부터 할 일이 귀족들이 도망갈 시간을 버는 것 밖에 없었다.

승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냥 귀하신 몸들을 위해 죽어야 할 판이었다.

아무리 정신 교육을 투철하게 받은 정예병이라 할지라도 사기가 떨어지니 전투력이 쭉쭉 떨어졌다.

귀족들이 몸을 빼내니 병사들도 도망치고 싶은 감정이 굴뚝같았다. 그리고 누군가 뒤로 빠지자 정예병들이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망원경으로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던 이집트 지방군의 사령관들은 돌격을 명령했다.

“돌격! 시가전이다! 교황을 잡아라!”

교황을 잡기 위한 돌격이 시작되었다. 교황이외에도 귀족들에게도 현상금은 걸려 있었다.

“가자 이놈들아!”

“돈 벌러 가자!”

신유성은 언제나 충분한 보상을 내걸었다. 방어를 위한 전쟁에서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타국을 침공할 땐 이야기가 다르다. 숭고한 희생정신을 아무리 강요해도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들이나 좀 걸려들면 모를까.

하지만 애송이들은 전쟁터에서 전장의 광기를 접하는 순간 얼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강하고 거친 남자들이 의욕을 가지고 전쟁에 참여하게 해야 했고 그것이 바로 충분한 보상을 내거는 것이었다.

공을 세워 신분 상승을 이루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이 원칙이 깨진다면 침략자의 사기가 높아지는 것은 힘들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신유성은 군대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공을 세우면 더 많은 부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영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후손들을 위해 싸워라!”

“우와아아아아아!”

신국의 전쟁이 끝나면 공을 세울 기회는 확 줄어든다. 전쟁으로 돈을 벌 기회도 줄어든다.

이 사실을 알기에 이집트 지방군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교황청은 어디냐!”

“저기!”

“가자!”

로마 시내로 들어온 이집트 지방군을 막아서는 자는 별로 없었다. 간혹 가다가 앞을 막으려는 자들은 모조리 살해당했다.

교황을 잡기 위해 눈이 뒤집힌 이집트 지방군은 앞을 가로 막으면 무조건 죽였다.

이에 놀란 로마 사람들은 숨기에 바빴다. 숨은 자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를 벗어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이들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젠장! 이 자식들이!”

로마의 귀족 하나가 걸려들자 싸울 것을 명했다.

“쏴!”

무의미한 저항은 금방 끝났다. 권총을 빼든 이집트 지방군은 순식간에 귀족의 병사들을 쓰러트렸다. 칼과 창으로 싸울 일은 없었다.

총으로 조준하고 쏘면 그만이었다.

“사, 살려줘!”

“죽어!”

귀족이 외쳤지만 아랍어를 쓰는 병사들이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표정을 통해 살려달란 뜻을 알아차린 병사도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놈 돈이 될까?”

“마차 안은?”

“여자들! 신분 높은 거 같아!”

“귀족이다!”

“일단 잡고 있어! 우린 먼저 간다!”

“그래!”

병사들은 나중에 이익을 나누기로 전투 전부터 합의한 상황. 도망치려는 귀족의 마차를 수습한 병사들은 놔둔 채 나머지 병사들은 다시 교황청을 향해 달려갔다.

“신이시여!”

교황은 기도했다. 신이 내린 시련이라 생각하며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비명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피하셔야 합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명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안으로 들어선 것은 스위스 용병이었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하지만 이대로는!”

교황은 고개를 내저었다. 로마는 한 번 약탈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로마를 약탈한 것은 카를 5세가 이끄는 신성로마제국군의 일부였다. 그러나 이번에 로마를 약탈하는 것은 이교도들이었다. 그것도 오스만 제국에 고개를 숙였던 이집트 출신들이었다.

카를 5세의 신성로마제국군의 일부가 약탈할 때와는 의미가 달랐다.

이대로 이교도에게 로마를 내주게 된다면 교회의 지배력에 엄청난 타격이 가해질 수 있었다. 귀족들은 그저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넘어 갈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이교도의 신에게 자신들의 신이 패배했다고 믿게 될 테니까.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전투이며 등을 돌릴 수도 없었다.

성전에서 교황이 등을 돌린다면 패배의 책임은 도망친 교황에게 모조리 뒤집어씌울 수도 있었다.

더구나 수많은 성자들은 이교도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런데 교황이 순교하지 않고 도망친다는 것은 교회에 크나큰 오점을 남기는 행동이었다.

“이것이 나의 시련. 나는 시련과 마주할 것이네. 자네들은 이제 가도 좋네.”

“계약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 시련 함께 하겠습니다.”

스위스 용병 대장은 결국 포기하고 교황을 지키기로 했다. 다른 용병들도 불만을 보이지는 않았다.

약속을 지키는 사나이들은 교황을 지키다 죽기로 결심한 상황.

“모두 끝까지 항전하라!”

“우와아아아아아!”

스위스 용병들은 기를 쓰며 저항했다. 총에 맞아도 어떻게 해서든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동료의 시신을 방패삼아 돌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싸우려고 해도 역부족이었다.

숫자에서도, 그리고 무기에서도 신국은 압도적이었다.

더구나 교황을 잡으려는 경쟁이 붙은 상황이라 스위스 용병의 저항에 물러서는 이는 없었다.

“하하하하하! 교황이다!”

“딴 놈들 못 들어오게 막아!”

용병들이 모두 쓰러지자 교황만 홀로 남았다. 그리고 교황이 있던 방의 입구에서는 다른 전투가 일어났다.

맘루크와 오스만 반군 출신들로 이뤄진 두 군벌 세력 간의 전투였다.

교황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교황을 사로잡은 것은 맘루크였다. 이집트는 맘루크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후 이집트 지방군은 이탈리아 반도를 휩쓸며 약탈에 들어갔다. 귀족들을 사로잡고 재산을 약탈했다. 상인들도 약탈당했다.

이런 와중에 신유성은 로마의 교황이 잡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유는 시도해봤나?”

“듣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노예들을 모아놓고 공개처형하도록.”

신유성은 사형을 명했다. 교황과 같은 인물은 회유할 수 있다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유럽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교황이 말을 듣지 않으니 다른 방법을 취하려는 것이었다.

‘회유가 안 되면 패배를 각인시켜야지.’

미녀들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신유성은 몇 가지 명령을 더 하달한 뒤 미녀들의 엉덩이를 때리며 쾌락에 빠져들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신유성의 명령에 의해 로마의 광장에 사람들이 몰렸다. 노예로 잡힌 이탈리아 반도의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온 이들은 곧 끌려나오는 교황을 보고는 절규하고 저주했다.

“사악한 이교도 놈들아! 신께서 네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오오! 신이시여!”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교황이 힘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보아야만 했다. 외면할 수 없었다.

“잘 봐라! 이것이 신의 뜻을 함부로 한 자의 최후다! 신의 이름을 팔고 신의 뜻을 왜곡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자들과 함께한 자의 최후다! 보아라!”

사방에서 외치는 자들의 말은 똑똑히 전해졌다. 수천 명이 외치는 똑같이 외치는 소리였다.

신국에 항복한 것도 모자라 신국의 편에 서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자들이 외치는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배신자들의 외침을 들으며 이탈리아 반도인들은 교황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리고 교황이 지은 죄인지도 모를 죄목을 계속 들어야 했다.

계속 이어지는 말은 단어만 바꿨을 뿐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야욕에 편승한 교황의 잘못을 열거하는 것이었다.

“죄인의 최후를 보라!”

이어서 단두대에 묶인 교황이 눈에 들어왔다. 단두대는 신유성이 친히 설명해 만들라고 명령을 내린 것.

명령과 함께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졌다. 순간 교황의 목이 잘려 바닥을 굴렀다.

“아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혼절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천벌을 받을 것이다!”

“신국의 야만인들이여! 저주한다!”

온갖 저주가 쏟아졌다. 허나 이들의 함성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멈췄다.

빗발이 약해지고 먹구름 사이로 서광이 비쳤다.

“허........”

날씨의 변화에 저주를 퍼붓던 사람들의 입이 하나둘 다물어졌다.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점점 강렬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날씨가 개었다.

“이, 이런 일이!”

마치 교황의 처형이 정당했다고 하늘이 답해주는 것과 같은 광경에 광장에 모여 있던 이들은 절망에 빠졌다.

이후 몇몇 사람들이 로마를 탈출해 이 날의 일을 떠벌렸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점점 신국에 빠져들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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