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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로마에서 벌어진 일은 간단한 것이었다. 날씨를 잘 아는 자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 다음 날씨의 흐름을 예측한 것이었다. 그리고 비가 그칠 것 같은 시간을 이용해 처형을 한 것이었다.
일부러 구질구질한 날을 처형일로 고른 것이었다.
‘이 정도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신유성은 로마에서 있던 일을 보고 받고는 피식 웃었다. 날씨가 계속 구질구질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며 선동하면 그만이었다. 뭐든 선동에 이용하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었다.
처형 후에 비가 멈춘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변화였다. 신유성이 가장 원하던 효과였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야.’
수많은 천재들이 신유성과 함께 하고 있었다. 정복한 땅에서 신유성의 품으로 굴러들어온 인재가 무수했다. 여기에 신국의 교육이 더해져서 더욱 풍부한 지식을 가진 인재들이었다.
더구나 로마를 비롯한 지역에서 농부들과 그 외 날씨를 잘 아는 자들에게서 얻은 자료가 결정적이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료가 필요했다.
로마 인근에 살던 농부들에게서 뽑아낸 정보는 그만큼 훌륭했다. 로마의 날씨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일은 술술 풀리는군.’
교황의 처형은 한 마디로 모험이었다. 일이 잘못 풀릴 경우에는 지독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신유성은 처형하는 명분에 신경 썼다.
교황이 잘못했기 때문에 심판한다는 식이었다.
심판하는 명분은 합스부르크 가문과 손을 잡고 사욕에 눈이 먼 것이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슬쩍 개신교를 띄워주기도 했다.
교황의 처형에 이어 빠르게 소문이 퍼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개신교였다. 특히 프랑스의 위그노들 사이에서는 바람처럼 빠르게 번지는 중이었다. 위그노 입장에서 교황은 죽음은 속 시원한 면이 있었다.
위그노가 학살을 당했을 때 축전을 보낸 것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개신교 세력에 가담하는 귀족들이 늘어났다. 합스부르크가 끝났다는 생각에 진영을 바꾸려는 것이었다. 대놓고 움직임이 있지는 않았지만 신유성은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딸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거 참. 난 생각 없는데.”
“그냥 시녀로 써도 좋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받아줘야겠지. 대신 별궁에는 들이지 말고.”
개신교를 통해 복속을 알려온 귀족들은 하나 같이 여자를 보내왔다. 모두 귀족의 친혈육들이었다.
딸이나 조카 등등 혈연이 있으면 신유성에게 꼭 보냈다. 볼모라며 후계자까지 보낸 이들도 있었다.
“그럼 아들은 어찌할까요?”
“아들? 아들은 임시로 세운 학교에서 공부시키고.”
볼모로 후계자를 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신국에 복속한 것이 합스부르크 가문에 탄로나더라도 후계자만큼은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유성이 영주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잘못 되어 영지가 합스부르크 가문에 점령당하는 일이 벌어져도 훗날 후계자만 무사하다면 영지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신국에 복속을 청하는 이들은 어느 누구도 신국이 합스부르크 가문에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이집트 지방군을 움직여 로마를 점령한 뒤에는 은밀하게 복속을 청하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신국의 막강한 힘을 믿는 귀족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반역을 생각한다면 볼모지만 출세를 생각한다면 투자였다. 백번이라도 혈육을 보내 신국의 황실과 이어지고 싶은 것이 복속을 청하는 귀족들의 심정이었다.
‘이제 시간문제다.’
기다리던 일의 완성은 목전이었다. 합스부르크와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발밑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신유성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외유가 길었다.’
한양에 남았다면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편함에 취했다면 빠르게 정복해나갈 순 없었다. 막대한 거리로 인해 중요한 의사결정이 느려지면 그만큼 시간이 낭비되니까.
전신국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제대로 라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은 이만하지.”
회의를 마친 신유성은 미녀들은 찾아갔다.
‘오늘은 어떤 엉덩이를 두드려볼까?’
휴식은 중요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오스트리아를 향해 진격했다. 앞을 가로 막을 수 있는 군대 따윈 없었다.
‘빠르게 빈을 함락 시킨다.’
로마의 교황을 사로잡은 이집트 지역의 맘루크군 이야기를 들은 노부나가는 더더욱 진격에 열을 올렸다.
‘뒤쳐질 수 없다!’
로마는 상당히 상징적인 도시였다. 그런 도시를 신국에 편입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집트 지방군이 점령했다.
과거의 이집트군이었다면 물론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 신유성의 지원 덕분이었다.
‘놈들도 한 것을 내가 못할 순 없지!’
노부나가의 의욕을 활활 불타올랐다. 체면이 걸려있는 일이었다. 노부나가의 휘하 세력은 오래전부터 신유성과 함께 했었다. 그런 만큼 자부심이 남달랐다. 그런데 합류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역의 군세에 뒤떨어진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노부나가의 부하들은 물론 원정군에 속한 병사들도 모두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자식들아! 빨리 빨리 해라! 느려 터져서 어느 세월에 빈 구경을 하냐!”
“빨리 못해? 그렇게 할 거면 후방으로 빠져!”
병사들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민했다. 군대의 사기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았다. 상대를 완전히 압도할 수 있는 무장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원 그리고 마음껏 약탈할 수 있다는 확고한 목표.
삼박자가 갖춰진 상황에서 병사들의 사기가 낮을 순 없었다.
이기는 전쟁이었다.
진다면 황제인 신유성의 탓으로 절대 돌릴 수가 없었다.
보통 전쟁을 하게 되면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다고 황제를 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신유성은 전혀 무리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무리할 수 없었다.
신국의 경제가 폭발하고 있었고 신유성은 그 경제를 지탱하는 화폐를 찍어내는 장본인이었다. 점령지의 모든 금광과 은광이 신유성의 소유였으니까.
지하자원 이외에도 수많은 사업체와 권리를 가진 신유성이었다. 숨 쉬는 것보다 돈 버는 게 더 쉬운 남자였다.
전쟁에 쓰는 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원정군 하나가 전멸한다고 해도 신국 전체에서 보자면 그렇게 큰 피해도 아니었다. 어마어마하게 커진 신국의 영토 덕분이었다.
수많은 영주들은 원정군이 실패하길 고대했다.
원정군이 실패하면 그 다음에는 자신들의 차례가 올 테니까. 원정군이 전멸해도 절대 신유성을 탓할 위인들이 아니다. 원정군을 이끌게 되면 막대한 지원을 받게 되니까.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겠다는 소리였다.
의회의 의원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전쟁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약 전쟁에서 패배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모두 원정군 사령관과 원정군에 참여한 병사들의 잘못이 될 뿐이었다.
어쨌거나 노부나가의 원정군은 사기가 높았다.
그리고 높은 사기만큼 진격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가로 막는 놈은 모조리 죽인다!”
노부나가의 무시무시한 명령에 반대하는 병사들은 하나도 없었다.
한편, 척계광의 군대는 전투에 들어간 상태였다. 펠리페 2세를 잡기 위해 움직인 원정군은 에스파냐의 군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숫자에서는 에스파냐의 군대가 앞섰다. 하지만 군대의 질을 따지자면 에스파냐가 마냥 유리하다고 볼 순 없었다.
“적이 얼마나 된다고?”
“20만입니다.”
“많이도 모았군.”
“노인과 어린 아이까지 동원했더군요.”
“흠.”
에스파냐는 총력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십자군이라는 명분으로 강제징집을 실시했다.
걸을 수만 있다면 모조리 병사로 동원한 것이었다. 숫자가 많아지는 만큼 식량 수급의 문제가 생기지만 에스파냐 군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신국의 진격을 막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 계속 충성을 바치는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물불 가릴 틈이 없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훗날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 해도 멈출 수 없었다. 귀족들의 입장에선 신국을 막아내지 못하면 모두 끝이었으니까.
죽을 땐 다 함께 죽자는 마음으로 일을 벌이는 것이었다.
“기다릴까요?”
기다리면 무너진다.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대군을 상대할 때 가장 유용한 방법이었다. 군대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숫자가 적은 쪽에서는 전투를 회피하는 편이 더 좋았다. 무시하지 못할 숫자는 식량을 먹어치우는 입의 숫자와 같다. 보급이 원활하다면 소용없는 짓이지만 상대의 보급이 원활하지 않다면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것이 바로 많은 수의 병력이었다.
“적의 보급 상황이 나쁜가?”
“매우 나쁩니다. 그리고 더 나쁘게 할 수도 있죠.”
척계광의 군대는 보급에 어려움이 없었다. 바다를 장악한 신국은 빠르게 대규모의 보급을 해안으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해안에서부터는 대규모의 수송부대가 정기적으로 보급을 한다. 수송 부대는 전원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총기병이 항상 수송부대와 함께 했다.
보급에 문제가 생길 수가 없었다.
반면 에스파냐의 보급 사정은 나날이 어려워졌다. 신국을 상대하기 위해 대규모로 징집을 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병력은 곧 노동력이었다.
노동력이 병력으로 전환되자 농사를 지을 사람들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남자 대신 여자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했지만 빠져나간 노동력의 공백은 컸다.
전쟁이 빨리 끝났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장기화 되자 에스파냐의 식량 생산력은 점점 떨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때에 대규모 병력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식량을 빼앗아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모두 신국을 원망하라며 원망의 화살을 돌렸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다리는 것이 가장 피해를 덜 보는 길이긴 하지.”
척계광도 알고 있었다. 천천히 밀고 들어가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는 척계광이 원하는 형태의 승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로마가 함락된 마당이다. 맘루크 녀석들이 공을 채갈 수도 있다.”
“공격 준비하겠습니다.”
척계광의 부하는 바로 움직였다. 탄약은 충분했다. 지금도 대량으로 수송되어 오는 탄약과 포탄은 1달 내내 써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1달 내내 써대면 총기와 대포가 남아나질 못한다.
‘노인과 어린아이라.’
척계광은 어쩌면 전투가 더욱 쉬워질 거라 예상했다.
다음 날, 척계광의 군대는 에스파냐 십자군을 향해 진격했다.
“온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신국의 군대는 사신처럼 보였다.
“악마들이 온다! 모두 전투 준비!”
에스파냐에서는 신국 사람을 악마에 비유했다. 가장 혐오스럽고 상종하지 못할 존재로 묘사했다. 그래야 적에게 항복하려는 사람들이 적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독실한 신자들은 신국과의 전투에서 등을 돌릴 생각이 없었다. 공포에 떨면서도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믿음이 깊지 않은 이들이 더욱 많았다.
“살 수 있을까?”
누군가 중얼거렸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이들이 대다수였다. 전투를 아예 포기하고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도문을 외우며 무기를 꼭 쥐고 신국의 군대를 노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격이 시작되었다.
“돌격!”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신국의 포격에 에스파냐 십자군은 일제히 돌격을 시작했다. 포탄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은 가장 미련한 짓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신국의 포탄은 떨어지지 않는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봤자 포격에 몽땅 부서질 뿐. 그렇다고 뒤로 조금씩 후퇴한다 해도 답은 없었다.
비가 내리는 것도 소용없었다.
신국의 대포는 비가 내려도 발사가 가능했다. 총도 마찬가지였다. 후장식 화기의 또 다른 장점이다.
“죽어라!”
에스파냐 십자군은 필사적이었다. 이를 본 척계광은 명령을 내렸다.
“신기전.”
간단한 명령에 신기전이 쏘아졌다. 수백 대의 화차에서 신기전이 쏘아졌다. 대포와 총으로도 막을 순 있지만 신기전은 일정 공간을 아예 화살로 채워버린다는 장점이 있었다.
수 만발에 달하는 화살은 십자군의 돌격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화살 지옥에 갇힌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악을 썼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피가 흐르며 시체가 쌓였다.
“돌격! 돌격하라!”
잠시 멈췄던 돌격은 더욱 거세졌다. 돌격하는 이들의 표정은 모두 광기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은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다. 어떤 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시체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죽음이 대지를 가득 채웠다.
냉병기를 쓰는 전투였다면 오래 걸릴 전투였다. 그러나 후장식 대포와 각종 화기로 무장한 신국 군대는 전투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켰다.
전투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까웠다.
밀려오는 적의 무장 상태는 형편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손쉽게 적을 죽인 신국의 군대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에스파냐 소속 귀족은 절규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치고 저주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십자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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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