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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269화 (26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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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

에스파냐 십자군의 패배는 합스부르크의 지배력에 치명타를 안겼다.

“악마 같은 놈들이야! 모두 죽었어!”

“대체 왜 그런 놈들이!”

“이것은 신이 내리신 시련이야! 죽어도 물러서면 안 돼! 우리도 싸우자!”

소문이 퍼졌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소식에 민감해진다.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싸우지 않았던 이들은 싸우겠다고 나섰다. 선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에만 그럴 뿐이었다.

“소문 들었어? 황제가 신을 기만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거라던데?”

“맞아. 교황이 되었던 놈도 사실은 아주 죽일 놈이었다고 하더라고.”

소문은 신유성의 명령에 의해 퍼지는 것이었다. 개신교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지배력을 약화  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신국에 복속하기로 한 귀족들은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그 결과 소문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퍼졌다.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었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갑자기 소문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십자군에 가입할 것 같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이었다. 뒤에서는 도망치거나 신국에 투신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

수천 명의 군대가 전멸 당한 것이 아닌 무려 20만에 달하는 군대가 지독한 패배를 당했다. 전투가 벌어진 곳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소문이었다.

20만.

모두 정규 병사는 아니었지만 20만이라는 숫자가 가져오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국운이 걸린 전투에서 패배한 에스파냐는 무너지고 있었다.

“하하하.”

펠리페 2세의 표정은 하얗게 질렸다. 패배의 충격 이후 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20만 대군이 박살난 것은 펠리페 2세에게도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군대는? 용병을 고용할 수 있나?”

“그게 안 됩니다.”

“왜?”

“신국이.......”

독일 용병인 란츠크네히트와 스위스의 용병들은 고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란츠크네히트는 해체된 지 오래였다. 아니, 해체되었다기보다는 신국에 흡수되었다. 군에 입대하거나 개척을 위한 모험가로 등록해버린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그대로 용병으로 남아서 물류 운송업에 종사했다. 그리고 아주 거친 녀석들만이 전쟁 용병으로 남았고 이들은 모조리 신유성과 계약이 된 상태였다.

스위스 용병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신유성이 직접 고용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사주를 받은 개신교 귀족들이 스위스 용병을 대량으로 고용했다. 개신교의 입장에서도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스위스 용병들은 강했다. 이들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더라도 고용하는 것만으로도 신성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스위스 용병들이 신성 동맹을 위해 싸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전력이 약화되니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유럽에 남은 용병들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모조리 신유성에게 고용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펠리페 2세는 용병을 하나도 고용할 수 없었다.

“십자군 징집은?”

“그게 좀 어렵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펠리페 2세는 십자군에 참가하지 않는 이들을 저주했다.

“이단재판을 연다. 모병에 응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한다.”

말이 모병이지 징병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병에 불응하면 이단으로 처벌하겠다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부작용이 많은 극약 처방이었다. 하지만 빠르게 군대를 다시 만들어 신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남은 방법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재정이.......”

“재정? 메디치 가문의 녀석들을 쥐어짜.”

“그쪽에서 이미 죽는 소리 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거다. 놈들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테니 돈 내놓으라고 해.”

“해보겠습니다.”

에스파냐는 파산 직전이었다. 과거에는 파산하기도 했었다. 전쟁을 많이 하다 보니 재정 적자가 심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돈 많은 메디치 가문에게 힘을 빌려주고 돈을 받았다.

메디치 가문에서는 합스부르크의 힘을 등에 업고 귀족들을 상대로 은행업을 할 수 있었다. 귀족들이 돈을 빌려가 갚지 않을 때 합스부르크 가문의 힘을 이용하면 작위와 영지를 몰수 할 수 있기 때문에 짭짤한 사업이었다.

“돈을 더 달라고요?”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당주는 망설이지 않았다. 대답을 망설일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면 펠리페 2세에게 보고될 테니까.

‘이거 위험한데.’

합스부르크 가문과는 혼인을 통해 혈연으로도 이어졌지만 메디치 가문의 당주는 발을 빼고 싶었다.

20만 대군의 패배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배와 함께 가라앉게 생겼군.’

메디치 가문의 당주는 결심을 했다.

혈연으로 이어졌지만 합스부르크와 선을 긋기로.

“필요하신 돈은 마련하겠습니다. 대신 시간이 좀 걸립니다.”

“알겠습니다.”

이후 당주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메디치 가문을 바라보는 이들은 돈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신국으로 도망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신유성은 멀리서 찾아온 반가운 이를 맞이했다.

“폐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오랜만이다.”

한양에서 매화가 찾아왔다. 다른 여자들도 오고 싶어했지만 한양의 황궁을 비울 수 없었기 때문에 매화만이 찾아온 것이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오느라 수고 많았다.”

정말 기나긴 항해였다. 증기 기관을 이용해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정기 연락선을 타고서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배가 발전했다고는 해도 비행기 타고 하루면 오가는 수준의 문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매화가 온 목적은 간단했다.

“폐하.......”

신유성의 손이 움직이자 옷이 하나둘 떨어졌다. 바르르 떨던 매화는 품에 꼭 안겼다. 신유성이 한양을 떠나고 수년이 흘렀다. 품에 안길 생각을 하니 흥분으로 몸이 떨렸다.

어느새 홀라당 벗겨진 매화는 신유성에게 몸을 맡겼다.

신유성이 움직이고 있으니 순응할 뿐.

어느새 침상에 눕혀진 매화는 온 몸이 신유성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강하게 살을 빨아들이는 입술에 매화는 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하악!”

오랜만이라 더욱 빠르게 흥분했다. 촉촉하게 젖은 동굴에서는 온천수가 흘러나왔다.

신유성은 서둘러 안으로 뛰어들었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요란했다.

신유성은 새로운 느낌으로 날뛰었다. 매일 같이 여자를 바꿔가며 안기 때문에 여자가 부족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매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여자였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 위해 움직였을 때부터 함께했던 매화였다. 처음에는 어린 노비였으나 이제는 성숙한 몸매를 자랑하는 황제의 여인.

오래 떨어져 있다 만나니 반가움에 신유성은 들떴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연인을 만난 것처럼 신유성은 날뛰었다.

“흐으으으으응!”

매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유성의 경우에는 계속 여자를 안아 밤이 외롭지 않았지만 한양에 남겨진 여인들은 입장이 달랐다.

지금도 신유성과 떨어져 지내는 여인들은 밤마다 신유성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모두 하루 빨리 신국이 승리하기를 기원했다.

여인들이 신국의 승리를 원하니 여인들과 이어진 사람들 또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폐하! 폐하!”

“그래! 나 여기 있다!”

찰싹 달라붙는 매화를 안아주며 신유성은 거칠게 허리를 흔들었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매화는 황홀해진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팔과 다리로 신유성의 몸을 감싸고는 신유성의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었다.

“크윽!”

급하게 한 탓일까?

정사는 곧 끝이 났다.

“후우!”

엎어진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신유성을 바라보는 매화의 눈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좀 있다가 한 번 더 하자.”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정사는 며칠 동안 계속 이어졌다.

매화가 도착하자 신유성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여자들의 질서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가장 많이 총애를 받는 이들이 은근히 무리를 이끌었지만 매화가 도착하자 그것이 바뀌었다.

어려서부터 신유성을 모신 여자라는 사실은 미녀들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노비 출신이라고 하지만 출신 따위를 가지고 비웃을 대담한 미녀는 없었다.

미녀들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과 동시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녀로 일을 하던 유럽 귀족가의 여자들도 분주해졌다.

매화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신유성과 하룻밤 함께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신유성과 함께 잔 여자들의 가족들은 하나 같이 영주가 되었다. 영지의 크기에서 차이는 있지만 결국 영주가 되는 데 성공했다.

복속을 신청한 유럽 귀족들은 영주의 자리가 보장되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신유성과 이어지면 더 큰 영지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니까. 그것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이권에 손을 대는 것이 가능했다.

세계에서 최고로 부자인 신유성과 이어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들은 널려있었다.

“오늘부터 미녀 대회를 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매화가 알렉산드리아로 온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주녹정은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 신유성과 함께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녀 대회를 주관할 사람을 한양에서 불러온 것이었다.

‘드디어!’

유럽 귀족가의 여자들은 반색했다. 하지만 매화는 곧바로 선언했다.

“귀족가의 여인은 뽑지 않는다.”

처음부터 대놓고 하는 말에 다들 실망했다.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한 귀족 여성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폐하께서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혼인은 필요하시지 않다. 선발된 미녀들은 오로지 폐하만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매화의 입장에서는 강한 배경을 가진 귀족 여자가 신유성의 곁에 많이 늘어나는 것은 그다지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강한 외척은 분란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황실의 여자들은 현재 주녹정을 중심으로 질서가 잡혀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또 다른 권력자가 등장해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은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조선과 같은 꼴이 될 순 없어.’

외척들이 날뛴 덕분에 조선은 혼란스러워졌다. 신유성이 기회를 잡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주 잘 아는 매화는 외척이 날뛰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했다.

황실이 분열해 힘이 약화되면 의회에 먹히기 때문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유럽의 귀족 여성들은 군말하지 않았다. 실망스럽지만 신유성이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괜히 자신을 받아달라고 떼를 썼다가 불이익을 받을까싶어 조심하는 중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지.”

매화의 주도로 신유성의 침실에 들일 새로운 미녀를 뽑는 일이 진행되었다.

오스트리아, 빈.

합스부르크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빈에는 혼란이 일어났다.

계속해서 진격한 노부나가의 군대가 빈을 포위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있어선 안 됩니다! 서둘러 탈출을!”

“탈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는 허탈하게 웃었다.

“저들은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이것이 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겠나?”

“이것은 시련입니다! 믿음을 버리지 마십시오!”

“믿음이라.......”

루돌프는 고개를 흔들었다. 황제가 되었지만 생각과 같은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것은 지엄한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루돌프는 막강한 권력을 갖지 못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바로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마티아스 때문이었다. 군사적으로 뛰어난 마티아스는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마지막 두 번째 이유, 그것은 바로 신국 때문이었다.

신국으로 인해 신성로마제국의 힘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삼각무역을 통해 제국의 부를 늘리지 못했다. 아니, 늘리기는커녕 줄어들었다. 끊임없는 약탈과 막대한 군비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수렁에 빠트렸다.

신성로마제국의 힘이 약하니 황제의 힘도 약해졌다. 연이은 패배에 귀족들은 합스부르크를 계속 따를 것인지 계산하기에 바빴다.

“나는 남겠다. 마티아스에게 잘해보라고 전해라.”

“폐하!”

“제국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루돌프를 따르던 충신들은 눈물을 머금고 물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마티아스를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빈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노부나가는 쉽게 적을 놔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탈출하던 사람들이 총기병에 의해 모조리 죽거나 사로잡히는 모습을 본 루돌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곧 만나겠지.’

잠시 하늘을 바라본 루돌프는 잔을 들었다. 잔 속에는 고급 와인이 햇살에 반짝였다. 하지만 와인만 잔에 담긴 것은 아니었다.

“쿨럭!”

와인과 함께 극독을 마신 루돌프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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