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히든 클래스는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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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무렵. 김윤석은 한 여자를 사랑했었다. 그땐 그게 사랑인 줄 몰랐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때 했던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윤석보다 나이가 3살 많았다. 25살이었고 회사생활을 했었다. 당시 22살, 제대휴가를 크리스마스에 맞추어 냈었던 김윤석은 여지껏 고이 모은 월급을 그녀를 위해 쓰기로 마음먹었다.
군대에 가기 전부터 그녀는 윤석에게 지극정성이었고, 윤석 역시 그녀에게 지극정성이었다. 누군가는 말하곤 했었다. 회사원이 나이도 어린 군인따위를 만날 리 없다고. 그 여자 어딘가 이상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윤석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를 만날때엔 정말 기뻤다. 군인이라 돈이 없을 때에도 그녀는 부담스러워하지 말라면서, 나중에 아주 나중에 돈 많이많이 벌게 되면 그 때 자기를 위해 조금만 써달라면서 데이트비용도 그녀가 대부분을 부담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편지를 보냈고 못해도 한 달에 한번은 면회를 왔다. 윤석은 그런 그녀를 위해 월급의 대부분을 통장에 모아놓았다. 크리스마스날이 되면 그 동안 기다려줘서 고마웠다고 제대하고 너한테 정말 잘 할거라고 말하면서 반지를 선물해주려고 했다.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20살때부터 무려 2년 넘도록 만나왔던 그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심장이 콩닥거리고 자꾸만 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졌다. 반지를 끼워줬을 때, 즐거워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괜스레 기뻐졌다.
그러나 모두가 즐거운 크리스마스에, 그는 그녀를 잃었다. 빌어먹을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그는 시청 앞 광장에서 부푼 마음으로. 품 안에는 반지를 고이 들고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그녀의 사고소식을 들었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윤석은 그 날 많이 울었다. 제대를 어떻게 했는지도 몰랐다. 다만 기억나는 거라곤 싸늘하게 식은 그녀의 주검 앞에서 엉엉 울다가 아직 체온이 남아있을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던 것 밖에 기억이 안난다.
그랬었다. 그리고 6년동안 그는 여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두려워서였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사랑하는게 너무 무서워서, 두려워서 사랑하는걸 무의식적으로 거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는 28살이 되었다.
* * *
그녀의 집은 서울 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원룸이었다. 여자 혼자서 살기에는 약간 넓어보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순히 넓다, 라기보다는 넓어서 약간 외로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려나. 한 쪽 구석엔 더블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살림살이도 식탁과 장롱, 헹거, 화장대를 제외하곤 별로 없었다. 평소 정리정돈을 깨끗하게 하는건지 집 안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 보일러 틀게요. 금방 따뜻해질 거에요. "
" 아? 그래. 어. "
윤석은 천천히 걸어들어가 식탁 앞 의자에 겉옷을 벗어 놓고서 그 의자에 앉았다. 식탁 위엔 조그마한 액자가 하나 있었는데.
" 어머니셔? "
" 네. "
어느새 그녀도 윤석 옆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의자도 두 개, 침대 위에 베개도 두 개, 실내용 슬리퍼도 두 개다.
" 혹시 여기서 같이 사셨니? "
주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은 아니지만요. "
" 그렇구나. "
" 네. "
" 언제부터 혼자 살았어? "
" 6개월쯤 됐어요. "
" 아직도 힘들어? "
" 엄마랑 26년동안 만들어온 기억을 반년만에 아프지 않도록 갈무리하는 건... 저한텐 너무 힘든 일인가봐요. "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언제나 처럼 생글생글 웃는 미소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6개월간 저런 웃음을 항상 짓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지껏 그걸 알아채지 못했던 것 일지도.
" 웃고 있는데... 엄마 말 듣고 매일 열심히 열심히 웃는데 별로 행복한 기분이 들지 않아요. "
윤석은 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주랑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 울고 싶은데 웃으면 당연히 안 행복하지. 너 바보냐? "
그런가봐요, 바보인가봐요, 하고 주랑이 울먹거렸다. 회사에서와는 완전히 달랐다. 회사에서의 밝고 싹싹한 모습은 없었다. 그런식으로 자기 자신을 감춰왔나보다. 윤석은 괜스레 씁쓸해졌다. 22살 무렵, 사랑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그 감정을 나누었던 여자친구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내고 난 윤석이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이주랑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울고 싶을 땐 울어. "
" 저 정말로... 울어도 되요? "
너 임마. 26살이면 다 컸잖아. 다 큰 애가 울어도 되냐고 묻고 있는거냐 지금. 윤석은 착잡한 눈으로 주랑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울어. "
어쩌면 그녀에게는 형식적인 형태의 허락이라도 필요했던 것일런지도 모른다. 누가 해주건, 허락만 해줬으면 됐을지도. 윤석의 말과 동시에 주랑은 윤석의 가슴팍에 안겨서 펑펑 울었다. 눈물이 윤석의 와이셔츠에 스며들어 축축해졌다. 윤석은 말 없이 그녀의 여린 몸을 껴안고서 등을 다독여주기만 했다.
' 씨발... 이런 상황에서 먹자고 덤벼들면 진짜 나쁜 새끼지. '
그도 남자다. 욕심은 당연히 있다. 이주랑처럼 젊고 예쁜 여자와 집 안에 단 둘이 있으면 당연히 섹스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엄마를 잃고서 6개월간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밝은 척 했던 여자가 이제서야 목 놓아 울고 있다.
' 오늘은... 참자. '
밤이 깊어갔다. 6개월 동안 꾹꾹 눌러담았던 눈물의 양이 굉장히 많았었는지, 이주랑은 몇 시간이나 울었다가 탈진해버린 듯 쓰러지듯 윤석의 품에 안겼다.
끙차. 윤석은 주랑을 들어 침대에 눕히고 그도 그 옆에 누웠다. 여전히 그녀에게선 좋은 향기가 났다.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려 윤석쪽으로 몸을 향하고선 손을 윤석의 가슴에 대고 윤석의 품에 안겨 들었다. 윤석은 그녀의 몸을 감싸 안고서 그녀의 머리에 턱을 댔다. 주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고마...워요. "
" 그래. "
" 선배님. "
" 왜? "
" 저랑... 잘래요? "
" 아니. 퉁퉁 불어터진 눈의 추녀랑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
주랑은 고개를 떨구고 한참이나 조용히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 고마...워요. "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침이 되었을 때, 윤석은 벌떡 일어섰다. 몇 시야! 지금 여긴 어디냐! 잠결에 잠깐이나마 깜짝놀라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주랑은 막 샤워를 마치고 샤워가운으로 몸을 가린 채 욕실에서 걸어나오는 중이었다.
" 아앗? 선배님. 좋은 아침이에요. "
그녀는 생글생글 웃었다. 까치집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윤석이 인상을 찡그리고 주랑을 쳐다보자 주랑이 말했다.
" 선배님 조금 잘생긴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되게 못생겼다. "
" 까분다. "
그녀는 생긋 웃고는 사뿐사뿐 걸어와 윤석의 다리 위에 앉았다. 허리를 꼿꼿에 세우고 앉자 그녀의 가슴이 윤석의 얼굴에 닿았다. 몸을 두르고 있는 타올 덕택에 폭식한 감촉이 들고, 그녀 특유의 향취가 윤석의 코를 간지럽혔다.
" 아침이라도... 할래요? "
그러다가 문득, 엉덩이 사이에서 이상한 감촉을 느낀 그녀는 아흐, 아하, 아하하! 하고 간지러운듯 꺄르르 웃었다.
선배님 자꾸 이게 제 몸을 콕콕 찔러요. 하고 엉덩이 아래로 손을 넣어 잔뜩 부풀어올라 바지 위로 툭 튀어나온 윤석의 물건을 손으로 문질렀다.
" 주랑아. 이런 식으로 밝은 척 안해도 되니까 좀! "
" 저 예쁘지 않아요? "
" 누가 안 예쁘대? "
윤석이 주랑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서 그녀의 몸을 살짝 들어올렸다.
" 아, 아하흐! 간지러워요! "
" 비켜. 출근하게. "
" 같이 가면 되잖아요. 어차피 같은 회사고... "
그렇게 말하는데, 몸에 둘렀던 타올이 흘러내렸다. 꺄악! 주랑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가슴을 팔로 껴안듯 해서 가렸다. 윤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얀 살결의 그 것은 차라리 엉덩이라고 해도 좋았다. 아무리 적게 쳐줘도 D컵.
" 너, 너무 그렇게 보지 마요. 평소엔 축소 속옷 차고 다닌단 말이에요. "
" 아... "
뽕을 넣는 게 아니라, 축소 속옷을 차고 다닌다고. 아니 애초에 축소시키는 속옷이라는 게 있기는 했던거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친 윤석이 천천히 일어섰다.
" 오늘밤에 여기 이 자리 예약 되냐? "
" 객실료 비싸요. "
" 얼만데? "
주랑이 생긋 웃었다.
" 오늘 3번 이상 저보고 웃어주셔야해요. "
" 3번? "
" 그 것보다 더 많이 웃어주셔도 되구요. 선배님이 웃는 거 보고 싶어요. 가짜로 웃는 거 말고... 진짜로 웃는 거요. "
그건 어쩌면 그녀가 그녀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몰랐다. 윤석이 피식 웃었다.
" 노력은... 해볼게. "
" 그렇게 가짜로 웃는 건 포함 안 시킬 거에요. "
" 너나 가짜로 웃지마. "
주랑이 생긋 웃었다.
" 노력은... 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