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든 플레이어-90화 (90/244)

00090  비장한 최후  =========================================================================

* * *

포탈게이트에 거의 도착했을 때, 수희가 배를 움켜쥐고서 말했다.

" 자, 잠깐만요. "

그 모습에 기회를 잡았다는 듯, '비장한최후'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 어서 다녀오세요. "

유토피아는 가상현실이다. 여기서 음식을 먹는 것이 현실의 몸에 영양소가 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용변을 본다고 해서, 현실의  몸이... 반응을 하긴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분간 캡슐안에  몸을 누이는 것이 굉장히 힘들어지거나 방향제를 세 통 쯤 쓰게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유토피아를 플레이하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로그오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일상다반사였고,  수희는 어렵지 않게 로그오프 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수희가 눈썹과 눈썹사이를 일그러뜨렸다.

" 오빠. 죽여버려. 완전 재수없어. "

" 왜? "

" 그 왜 이번에 내가 노리고 있는 걔 화탑인지 나발인지 걔 있잖아. 완전 재수없어. 대놓고 작업하는데 진짜 토 나올 거 같아. 비위맞춰주느라 죽는 줄 알았어. 심각한 도끼병 환자야. "

" 어떻게 생겼는데? "

" 그거 설명하긴 힘들고 내가 그 사람 뒤에 숨을게. 로브 잡고. "

윤석이 인상을 찡그렸다. 수희의 표정으로 보아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것 같다. 기분이 매우 불쾌해졌다. 그래도 겉으로는 퉁명스레 말했다.

" 네가 말도 안되게 성형을 해대니까 그렇지. "

" 뭐 말이 안 돼! 다 본판이 따라줘야 이뻐지는 거거든! 그런 말 할거면 나 성형이나 좀 시켜주든가! "

" 성형? "

윤석은 순간 고민에 빠져들었다. 동생이 유토피아만큼만 예뻐지면 수희를 데려갈 남자들이 줄을 설지도 모른다. 지금도 물론 이쁘기는 이쁘다만 그래도.

" 뭐야 오빠. 지금 그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모습은? 나 기분 몹시 똥이야. "

" 오빤 네 미래를 위해서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어. 그나저나 얼른 들어가야하지 않냐? 너 똥쟁이라고 소문날라. "

수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로그인하는 시간 중 약 2초 정도를 소비해 윤석의 옆구리를 힘껏 꼬집고선 후다닥 달려가 다시 유토피아에 접속했다.

" 오. 일찍 오셨네요? "

" 그, 그럼요. "

마치 나는 대변따위가 아니라 소변을 봤고, 그래서 시간이 매우 적게 걸렸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태도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그럼 가죠! 하고 해맑게 말했다. 유토피아 내에선 워낙 특출난 미인인지라 이번 파티에 참여한 남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 *

성형이라. 성형이라... 윤석은 킥, 웃었다. 방금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싶다. 유토피아는 가상현실세계고 얼굴을 조금씩 변형하는 게 가능하다. 그 말은 즉 이렇게 바꾸면 어떻게 되고, 저렇게 바꾸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거의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원래 그는 수희를 성형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유토피아 내에서의 모습을 보면 이따금씩 성형을 시켜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수희는 예뻐졌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예쁜데 요목조목 따져보면 2프로 정도씩 부족한 얼굴. 그것만 고쳐주면 주랑에 버금가는 미인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그 증거가 유토피아의 얼굴이다)

막상 당사자는 어떨까 생각을 해봤다.

' 유토피아에서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현실에서 시술을 하는 쪽으로... 전세계를 타겟으로하면...'

자본은 없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겐 자본이 있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10억이 쌓인다. 많이 쌓일 때는 20억씩 쌓인다. 그 자본을 통해.

' 성형외과도... 체인점 비슷하게 만들면... 네임밸류를 가지고서. '

이건 이것대로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만 한다면 모르지만.

' 중국을 재패하면 되지. '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에 체인점을 둔 대형 성형외과사업을 추진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씨익 웃었다. 아이디어 하나 킵이다. 일단 그건 그거고.

' 일단 접속해보실까. '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어떤 놈인지 대충 상상은 된다. 마탑소속이란다. 그러면 유토피아내에선 어느정도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거다. '마도사'라는 직함은 여자를 꼬시는데 직빵이다. 게다가 유토피아는 가상현실이다. 여자를 꼬시기가 훨씬 쉽다. 여자들도 실제 몸이 아니라 가상세계에서의 몸은 그렇게까지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들이 있어서, 유토피아 내에서의 섹스는 굉장히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스킬을 사용하면 NPC와의 섹스는 더더욱 쉬웠고.

어쨌거나.

' 이 새끼... 죽인다. '

그래도 동생을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놈이 있다고 생각하면 열불이 끓어오른다. 윤석이 바로 앞에 정렬한 12명의 군 NPC들을 한번 훑었다. 디지털 군복으로 복장을 통일한 그들은 완전히 각을 잡고서 전방. 상향 15도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모두 알다시피 내겐 판타리아에 심어둔 첩자가 있다. "

수희의 모양새에 대해서 설명했다.

" 그 여자와 더불어 그 여자가 잡고 있는 남자는 살려두기로 한다. "

윤석의 명령에 소총. 스나. 포를 포함한 12명의 NPC는 군화를 땅에 붙이고 예 알겠습니다! 크게 복창했다. 이 곳은 얼스의 비기너시티 중 한 곳. 남쪽 입구다.

" 저, 저거 뭐죠? 유저랑 NPC들이 떼거지로 걸어가는데... "

그냥 NPC가 아니다. 플라티곤 소속. 그러니까 현 얼스의 중심축인 '군인'들이 2열로 맞추어 척!척! 군화소리를 맞추어 절도있게 걸어가고 있었다.

" 글쎄요... 어? 유저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

" 어? 그러네. 유저도 있네요. "

" 저거... 그 그 때 소문의 그 누구야. 그 누구야... 아 뭐더라. 뭐라 하던데... "

" 영웅? "

" 아 맞어.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던데. "

사람들은 이번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NPC를 지휘하며 무캐를 쓸어버린 유저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유치하게 그게 뭐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어쨌든 대세는 '영웅'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안들리는 게 아니었다.

' 영웅? 닝기미... 쪽팔리게... 영웅이 뭐냐 영웅이. '

사람들이 쑥덕대는 것이 기분 나쁜 건 아니었다. 칭호 비슷한 것이 현대에서 처음 생겼다는 것도 물론 좋았다. 그러나 그 이름이 '영웅'이면 좀 그랬다.

사실 판타리아나 중원에서 '호칭'은 꽤 흔했다. 그 쪽 세계는 호칭이라는 것이 익숙한 세계고 '푸른검' 이라든가 '매의 손톱' 이라든가 '비너스' 라든가 '절대신검'이라든가 '권왕'이라든가 하는 호칭들이 이미 널리 퍼진 상태였다. 그러나 현대에서 호칭을 얻은 건 윤석이 처음이다. 그런데 세계적 배경이 '현대'이다보니 아무래도 영웅이란 호칭은 좀 낯간지러웠다.

윤석의 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NPC들의 걸음도 빨라졌고 유저들은 NPC들의 흉흉한 기세에 밀려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평시의 군과는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얼스는 항시 전쟁중인 상태다. 그렇다보니 그 위상이 굉장히 높고 아무도 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얼스에서 군에게 밉보이면 플레이가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그 뒤를 쫓았다.

" 무슨 일이 있긴  있는가본데? "

입구 앞에서 윤석이 말했다.

" 지금부터 유저들의 출입을 금합니다. 이 곳 사냥터는 곧 판캐들이 몰려올 예정입니다. 우리 군은 판캐를 싹쓸이 함으로써 얼스의 위상을 드높일 것입니다. "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아마도 유저들은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것 같아서, 정말로 장군인 척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래도 일종의 연설처럼 되어버렸나보다.

[띠링. 귀속 NPC들의 충성심이 +1 증가합니다]

오. 이런 것도 있었나 싶어 윤석은 씨익 웃었다. 지금. 그러니까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는 이 NPC들이 귀속 NPC로 분류가 된다.

' 충성심 증가라... '

뭔지는 모르겠어도 일단 좋은 것 같다.

" 구카스텐. 고스트필드. "

" 예 알겠습니다. "

명령을 받든, 참모형 NPC 구카스텐이 고스트 필드를 펼쳤다. M/P통이 100만에 이르는 괴물이다. 고스트필드 정도는 아무리 펼쳐도 괜찮을 정도다.

그리고 경고방송이 울렸다.

위이이잉───!!!

사이렌소리와 함께.

[ 공습경보. 공습경보. 판타리아인의 습격이 예견되었는 바, 시민들은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

여태까지는 한 번도 울리지 않던 경고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얼스의 현 준장. 안졸리냐졸려의 힘이다.

사냥터에 나와있던 총잡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 뭔 소리야 이게? "

" 판타리아에서 쳐들어온다고  피하라는데? "

" 근데 방송이 왜 나와? 여태까지 친절하게 알려준 적 없잖아? "

" 모르지. 일단은 튀자. "

모르긴 몰라도 일단 죽으면 곤란하다. 죽으면 7일이나 접속이 제한된다. 준비는 거의 끝났다. 퀘스트의 탈을 쓴 무차별 살육작전 이제 시작이다.

' 무캐. 판캐. 다 뒤졌어. '

길드전 당시 아마 현캐가 많았다면 윤석의 편을 들어줬을 수도 있다. 엄연히 당연한 방법이었고 잘못된 게 전혀 없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나 대세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이 판캐와 무캐인 시점에서 사람들은 현캐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호크는 길드전 출전을 박탈당했었다.

중학교 3학년 강한힘에게 나는 뒤끝 없는 남자다, 라고 말했던 김윤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모두 준비해. 곧 올거다. "

그리고 속마음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수희에게 되도않는 작업을 건다던 놈이 떠올랐다. 이를 바드득 갈았다.

" 변태사랑. 알라뷰다. "

============================ 작품 후기 ============================

나귀족이야 워낙에 재미있는데다 유명한 글이고... 용병이란 글을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더라구요. 진짜 강추입니다. 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

PS: 나귀족,용병 5시간동안 정주행해서 오늘 한 편도 못씀.

PS2: 내일은 큰 댁을, 모레는 스키장. 화요일은 마지막 회식, 목요일은 스키장, 금~토는 여행. 헐... 그럼 글은 언제?

PS3: 어떻게 저렇게 맨날 노냐고요? 저 이제 백수에요.. 데헷.

존경하옵고 사랑하는 독자여러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

자. 그럼 세뱃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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