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3 비장한 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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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지옥은 펼쳐짐과 동시에 사라졌다. 시전자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 너만 스크롤 있니? 메롱이다. 메에에에에-. "
수희는 시체앞에 대고 혀를 내밀면서 시체를 능욕했다.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라고 죽은 시체에 욕했다. 마탑법사들이 대부분 하는 착각이 데미지 강한 마법이 무조건 좋을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물론 사냥시엔 그게 좋다. 전사계열이 몹몰이를 해놓으면 법사가 거기에 광역딜을 먹이는 것. 그걸 수행하는데 있어선 불지옥과 같은 광역딜 마법이 좋다. 하지만 소잡는 칼이 따로 있고 닭 잡는 칼이 따로 있다. 소 잡는 칼로 닭을 못잡는 건 아니지만 불편하다. 각 물건은 각 용도에 맞게 제작되었고 용도에 맞게 사용될 때 가장 편리한 법이다.
' 마탑법사는 진짜 쉬운 것 같아. '
수희는 마도사보다도 오히려 일반 마법사들이 상대하기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마법사의 싸움은 컨트롤 싸움이다. 컨트롤엔 어느 타이밍에 어떤 마법을 쓰느냐도 포함된다. 마탑법사들은 마법의 능력치 자체는 월등하게 좋았으나 그 응용력이 대부분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도 아니면, 응용이나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도록 스킬트리가 설정되어 있던가.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있었다. 데미지가 강한 대신 어떠한 페널티로 인해 효율성이 조금 떨어진다거나 하는.
어쨌든 수희는 간편하고 마력소모도 적으나 발동이 빠른 불화살 스크롤을 뜯어버렸고 불지옥보다 빠르게 발동된 불화살은 비장한최후의 가슴을 꿰뚫어 시체화시켰다.
" 너...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 너 절대로 가만두지 않아! "
시체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겠다. 이 쓰레기같은 사랑아! "
수희는 콧방귀를 꼈다. 이런 욕 한 두번 듣는 거 아니다. 어차피 저쪽은 이쪽의 제대로된 닉네임도 모른다. 또 안다 하더라도 이미 샤무는 마탑의 공적이된 지 오래다. 저런 협박쯤은 별로 무섭지도 않다.
" 오빠 한번 죽어! 두번 죽어! 세번 죽어! 네번 죽어! "
불화살이 다시 한 번 시체를 난도질했다. 원래대로라면 아이템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게 맞다. 샤무는 현재 극비 퀘스트를 진행 중이고 그걸 대외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아이템을 빼앗기 위해 마도사들을 죽인다'라고 소문을 내놓았다. 그리고 소문대로 여태까지 아이템을 강탈해왔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 아마존의...눈물... 이건 도대체... '
지금 당당한 척 하고는 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무려 4억 2천만원에 거래됐던 물건이다. 비록 게임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4억원짜리를 강탈한 셈이다. 솔직히 기쁘다기보다 오히려 무서웠다. 너무 큰 일이 일어나버린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윤석은 씨익 웃었다.
" 봤냐 얘들아. 저게 바로 멍청하지만 나름대로는 쓸만한 내 첩자다. "
대외적으로 윤석은 판타리아에 첩자를 심어놓았다고 했다. 구카스텐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 훌륭합니다.. 상황판단능력. 마법운용능력. 그리고 물품을 빼앗는 치밀함과 시체를 능욕하는 잔인함까지. 아. 또다시 불화살을 발사해 시체를 난도질하고 있습니다.같은 판타리아인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패악무도함과 잔인함을 갖출 수 있다니. 저런 미친계집을 길들여 놓은, 준장님의 위대하신 능력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역시 준장님께서 친히 심어놓은 첩자나부랭이 입니다. "
분명 칭찬은 칭찬인데 윤석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무엇보다 수희는 친동생이다.
" 야. 그래도 그렇게 패악무도한 놈은 아니야. "
" 역시 준장님다우십니다. 저런 잔인하기 그지없는 판타리아계집을 길들여 첩자로 삼으시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
" 인마. 그렇게 패악무도한 계집은 아니라니까 이게. 너 지금 하극상 부리냐? "
" 예? "
윤석은 인상을 찡그렸다. 물론 스스로 멍청한 첩자놈이라고 항상 말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그걸 자기 입으로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건 엄연히 그 느낌이 달랐다.
" 인마. 너. 구카스텐. 참모가 왜 그렇게 멍청하냐? "
구카스텐의 입장에선 억울한 거다. 구카스텐은 프로그램이다. 물론 NPC가 단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대전제'는 모든 행동양식에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저렇게 잔인하고 패악한 판타리아인조차도 길들여 첩자로 사용하는 준장의 위대함'을 강조한 그의 칭찬과 아부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나 문제는 그 첩자가 단순한 첩자가 아니라 피가 섞인 친동생이라는 거다.
구카스텐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군대는 까라면 까는 곳이고 고참이 저게 팥이 아니라 메주라고하면 팥이 아니라 메주가 되는 곳이다.
" 죄송합니다! "
" 죄송하면 인마. 앞으로 계획을 잘 짜봐. 판타리아 놈들. 되는대로 쓸어버릴 거니까. "
" 예 알겠습니다! "
그랬다가 윤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주문을 영창하고 마법을 쏘아대던 모습이 나름 멋있기도 했고 나름 흐뭇하기도 했다. 주문영창. 이를테면 옛날에 만화영화에서 봤던,
황혼보다도 어두운 자여 피의 흐름보다 더 붉은 자여.
시간의 흐름에 묻힌 위대한 너의 이름에 걸고 나 여기에 어둠에 맹세한다.
우리앞에 있는 모든 어리석은 자들에게...
그대와 내가 힘을 합쳐 그 위대한 파멸의 힘을 가져다줄 것을!
거의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만큼 길지는 않았다만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나중에 주문 영창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수희는 여전히 시체를 능욕 중이었다. 그녀의 주문 영창은
" 오빠 타도! 오빠 한번 죽어! 두번 죽어! 세번 죽어! 네번 죽어! "
* * *
수희는 로그오프를 하자마자 윤석에게 달려갔다.
" 오빠. 나 마도사 죽이긴 죽였는데... "
수희의 이야기를 듣고 난 윤석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 그래서? "
" 오빠! 아마존의 눈물이라니까! "
" 그니까 좋다고? "
" 아니... 좋긴 좋은데 그래도 이건 좀... 돌려줘야 되나... "
수희는 조금 고민했다. 그냥 어지간한 아이템이면 이런 고민따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게 4억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 걔 스스로 넘겨줬잖아. 아마 죽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었겠지. 죽지 않기 위해 그걸 넘겨줬다는 건 죽으면 안되는 큰 이유가 있다는 뜻이고. "
윤석은 숨을 한 번 골랐다. 오늘따라 머리가 핑핑 잘 돌아간다. 동생 앞에서 한껏 으스댔다.
" 그 4억짜리 아이템이 죽음보다는 덜 소중하다는 거겠지. "
그런데 중요한 건, 마지막 순간에.
" 걔도 어차피 마지막에 널 죽이려고 했잖아. 아이템은 이미 네 손에 들어갔고. 그 상태에서 널 죽이려고 했다는건 아이템 돌려받을 생각 별로 없다는 거 아냐? 네가 죽는다고 무조건 아마존의 눈물 떨군다는 보장도 없고. "
그냥 이쪽에만 좋은 해석이다. 피해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었다. 어쨌든 수희는 4억원짜리 초고가 아이템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못내 마음에 걸려 했다.
" 겨, 경찰이 잡으러 오면 어떡해? "
" 뭘 잡아? 걔가 직접 준건데. 그리고 그 새끼도 현캐 털러 온 거잖아. 똑같은 놈이 뭘 따져? "
" 그, 그렇긴 한데... 그래도 4억원짜린데... "
" 4억뺐는건 나쁘고 만원 뺐는건 안 나쁘냐? 어차피 그 놈도 똑같은 새끼니까 너 이상한 생각하지마. 정 불안하면 그거 오빠한테 당분간 맡겨놓든가. "
" 오빠를 어떻게 믿어! "
그렇게 말은 해도 수희는 적잖이 안심이 됐다. 그래도 오빠가 옆에 있어서 엄청 다행이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가,
" 하여튼 오빤 별로야. "
라고 괜히 한 번 툴툴 거려 봤다.
" 걱정하지말고 그냥 네가 써. A+급이잖아. 그거 옵션이 뭔데? "
" 옵션은 음... 비밀! "
" 비밀? "
" 응 .비밀이야. "
" 그래라 그럼. "
윤석의 김빠지는 반응에 수희는 오히려 안달이 났다.
" 뭐야 뭐야? 안 궁금해? 사실은 궁금하지? 그렇지? 궁금해서 죽을 거 같지? "
" 안 궁금해. 옷 입어. 나가게. "
" 어디 가게? "
" 거품 욕조보러. "
" 우왓! 레알? "
수희가 벌떡 일어섰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옷 입을게. 수희는 '거품 욕조'라는 단어에 굉장히 고무되었다.
* * *
서울 강남구. 그 중에서도 최고급 빌라들이 즐비한 빌라촌. 그 곳에 상아색 벤츠가 골목 - 사실 일반적인 골목보다는 훨씬 넓었다. 굳이 따지자면 골목과 도로의 중간 쯤 되는 폭-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 오빠... 여긴 뚜껑달린 차가 왜 이렇게 많아? "
" 부자동네니까. "
" 그럼 이제 우리 부자동네에서 사는거야? "
부자 동네가 부자 동네인 이유가 아예 없지만은 않다. 계획부터 잘 되어 만들어진 곳이라 교통도 편하고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학교나 공원등도 마련되어 있는데다가 조용하고 쾌적하며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빌라촌 내에 또 따로이 마련된 경비팀이 있어서 아이들의 안전도 어느정도 보장이 되는 곳이다.어느 것 하나 신경쓰지 않은 게 없다. 괜히 부자동네가 아니다.
" 어. 거품욕조 있는 집으로 하나 뽑았다. "
이제 수희도 윤석이 유토매니아를 설립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윤석이 엄청난 부자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다. 뚜껑이 열리는 차를 산 것 외에는 이렇다할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부른에게 피해보상으로 10억을 물어주었으나 그건 수희 몰래 진행된 일이라 수희는 잘 몰랐다.)
" 오빠. 나 오빠가 엄청 부자라는게 이제 좀 실감이 돼. "
" 좀 오빠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냐? 아니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
수희는, '그러면 얼른 이 오빠를 찬양해라. 음하핫!' 이라고 우쭐대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용돈 좀 필요해? "
수희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필사의 의지로 고개를 저었다.
" 아니. 나 그 때 오빠한테 도움 받은 것도 큰데 뭐... "
" 아. 12억? "
" 음? 무슨 소리야? "
" 아니. 10억이던가. 잘 기억이 안나네. 뭐 12억이나 10억이나 거기서 거기지만. "
김부른에게 보상을 해줬었다. 그런데 12억인지 10억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난다. 애초에 과자값으로 얼마썼는지 천원, 백원단위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윤석은 1억, 2억 정도는 무덤덤했다.
한편 수희는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더이상 말을 했다가는 오빠의 아니꼬운 모습을 더욱 더 많이 보겠다 싶어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그래도 이 잘난척 대마왕아! 직접 입에 담지는 못했다. 조금 아니꼽긴 해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니까. 그리고 고맙기도 무척 고마웠으니까.
" 나도 스스로 뭔가 할 거야.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콜 할테니까 그 때 나 외면하기 있기 없기? "
" 있기. "
수희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 그럴 줄 알았어. "
그래도 어려운 일 생기면 도와줄 걸 안다. 그건 확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오빠한테 무작정 기대는 기생충 같은 동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 근데 우리집은 어디야? "
윤석이 한 곳을 가리켰다.
" 저기. "
수희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 때, 윤석이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듯 아 맞다! 하고 물었다.
" 수희야. 너 마법영창 외울때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냐? 생각보다 멋있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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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너 뒤지라고 욕하는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