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5 남자는 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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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민은 결국 찾아냈다. 이름 김수희.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으며.
" 유토매니아 김윤석사장의 동생입니다. "
빌어먹을. 새로 도착한 캡슐을 또 발로 꽝 차버렸다. 웅민에게 보고하던 남자는 '차라리 날 때리고 그 캡슐을 날 줘. '라고 외치고 싶었다. 30만원이나 되는 고가의 캡슐인데 벌써 네번째 망가뜨렸다. 그가 본 것만 그랬고 아마 더 많을 거라고 짐작 된다. 남자의 보고를 들은 웅민은 순간 벙쪘다. 다른 건 모르겠고 유토매니아 사장의 동생이란다. 이런 빌어먹을.
" 김윤석? 유토매니아의 그 김윤석의 동생이라고? "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어지간한 놈이면 잡아다가 두들겨 패든 집안을 폭삭 망하게 만들든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유토매니아다. 하루에 벌어들이는 현금이 100억에 이르는 괴물기업 유토매니아.
" 씨발... 김윤석의 동생... "
엄지손톱을 와그작와그작 씹었다. 김윤석의 동생이란다. 이쪽에서 원한을 풀겠답시고 잘못 건드렸다간 이쪽이 박살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힘의 지표나 다름없으니까. 그 자본을 무너뜨릴 수 있는 권력과 적당한 명분이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었다.
' 이렇게 된 거... '
지금 김윤석이 무서운건 김윤석이 가지고 있는 자금력이다. 그렇다면.
' 헤집어 주겠어. '
그는 도저히 김수희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김수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캐 있는 곳으로 같이 가서 그 현캐들이 파티를 몰살시켰다. 처음부터 김수희와 김윤석이 짜고서 이런 짓을 벌였다는 얘기가 된다.
' 이 연놈들이... '
단순히 김수희만 족친다고 해결된 문제도 아니고, 또 김수희를 족치려면 김윤석부터 어떻게 해야할 것 같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박살만 날 수도 있다.
" 유토매니아의 날개부터 꺾어버리고. "
30만원짜리 새기계를 다시한 번 꽝! 발로 찼다.
" 김수흰지 뭔지하는 년을 조진다. "
* * *
통합서버.
유토피아측에서 유저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하고 있는, 일종의 서비스 서버다. 이 곳에선 사냥이 불가능하다. 다만, 유저들간의 거래 혹은 장사행위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곳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거래만 가능한 곳이고 아무래도 거래를 위해 서버를 찾는 유저들이 대부분이다보니 대부분 주머니 사정이 좋은 편이다. 그 유저들을 노리는 어쌔신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어쌔신은 세 부류로 갈린다. 한 가지는, 특유의 은신스킬과 빠른 몸놀림, 그리고 몇가지 특화된 스킬을 통한 정보를 취급하는 부류. 또 한가지는 트레이서라고해서 어떤 흔적을 발견하거나 조사를 하는, 주로 의뢰를 맡아 해결하거나 던전의 보물을 취득하는 부류(이들은 다른말로 트레져헌터라고도 불린다) 또 한가지는 유저들을 대상으로하는 '도적'들.
도적들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가장 평판이 안 좋은 부류다. 스킬을 통해 유저들의 아이템을 훔쳐내는 클래스인데 유저들은 그 클래스를 없애버리자고 서명운동까지 벌일 정도였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유토피아 측에서는 아직까지도 '도적'이란 클래스를 유지시키고 있으며.
" 들었어요? 유토매니아 측에서 일부러 어쌔신들 고용해서 현금 탈탈 털어간다던데. "
그 '도적'클래스에 의해 문제가 조금씩 대두되기 시작했다.
" 하긴... 이제 슬슬 유토매니아 자금력도 부족해지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
" 하루에 거래량이 100억 가까이 된다며? 그니까 부족하긴 할 거 같은데... 에이 그래도 설마 유토매니아에서 그렇게해서 코드를 회수하겠어? "
" 설마가 사람잡지.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겠냐는 속담도 있잖아. "
" 애초에 그렇게 많은 코드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수상하고. "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유토매니아에서 어쌔신을 대거 고용하여 코드를 회수해가고 있단다. 그 주장은 조금씩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일단 유토매니아의 코드 거래량이 하루에 100억에 육박하게 됐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루에 100억. 한달로치면 무려 30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교환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유토매니아에서도 이제 슬슬 코드가 부족할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어쌔신의 타겟이 된 건 대부분 유토매니아의 코드교환소에서 나온 유저들이었다. 코드교환소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시 말하자면 '현질'을 감행한 사람들이고 아무래도 돈이 많을 확률이 높다. (유토매니아 최소 거래금액이 10만코드이므로 최소 10만 코드는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두가지 상황에 더해, 어쌔신들의 모습일 얼핏 관측되곤 했는데 뒷모습이 '현캐' 같다는 것도 한 몫 했다.
" 근데 현캐는 쓰레기잖아. 유토매니아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안 되는 거 같은데... "
" 그렇게따지면 유토매니아 자체가 말이 되냐? 하루에 100억을 바꿔준다는건 하루에 100억 코드를 번다는 뜻인데 그 잘나간다는 상인유니온들도 그만큼은 못 벌겠다. 뭔가 있긴 있는거고... 뭐 비밀 어쌔신길드 뭐... 그럴 듯하지 않아? "
소문은 점점 커졌다. 사실 따지고보면 근거따윈 없는 일종의 '음모론'에 불과했지만 상당히 많은 대중들이 그 것에 동조했다.
" 이래서 대중들이 멍청하다는거야. 똑똑한 척, 잘난 척 다 해도 몇가지 그럴듯한 상황에 피해의식 조금, 질투심 쪼금만 버무려주면 병신들이 아주 열심히 날뛰거든. "
웅민은 피식 웃었다.
" 그렇게 멍청한게 대중인데, 그 힘은 어마어마하거든. "
웅민은 자신의 작전이 무척 마음에 드는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납치를 하거나 강간을 하거나. 그건 너무 구시대적 발상이다. 요즘세상에 그런 짓을 했다간, 그것도 유토매니아 사장의 동생에게 그런짓을 했다간 개박살난다.
" 한껏 당황해보라고. "
계획은 이제 갓 시작되었을 뿐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유토매니아의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남사원은 일을 시작한지 어느덧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사장님 사랑해요'라는 러브레터 아닌 러브레터를 몇 번씩이나 보낸 사원이다. 그녀가 인터넷에 올린 사연은 잠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사실 유토매니아에의해 새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많았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다시 실현할 수 있게된 소녀의 이야기. 유토피아내에서 제빵기술을 배워 코드를 벌어들여 그래도 월수익 70만원 정도는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
남사원의 경우는 걷지를 못한다. 평생 휠체어의 신세를 져야하고, 집에만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유토매니아의 캡슐기증사업을 통해 유토매니아와 연을 갖게 됐고 그를 통해 지금은 유토매니아의 텔러로 근무중이다.
그녀는 주랑에게 쭈뼛쭈뼛 걸어가 고개를 푹 숙였다.
" 저... 팀장님... "
" 괜찮아요. 전화 돌려주세요. "
주랑이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주랑의 모습을 보며 남사원은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들어 불만 전화가 속출하고 있다. 정말로 유토매니아의 짓이 아니냐에서부터 시작해서 보상은 어떻게 할거냐는 얘기까지. 심지어 코드교환을 하고 난 다음에 일어난 일이니 유토매니아에서 책임을 져야하지 않냐는 전화도 많이 왔다.
급기야는 책임자를 바꾸라는 전화도 많았는데 덕분에 주랑은 요즘 전화를 굉장히 많이 받고 있다. 그것도 울분에 가득찬 전화를. 누군가 전화로 욕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그게 한 두명이 아니고 수십 수백 수천명쯤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어 다가온다. 잘못한 게 없는데, 네 잘못이니 돈을 물어내라. 라고 말하는 전화다. 저쪽에서는 한 번 말하는 거지만 이 쪽은 그 똑같은 말을 수백번은 들었다.
하지만 주랑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 오빠 일이니까... '
힘을 내기로 했다. 차분하게 성이 난 고객을 달랬다.
" 네네. 고객님께서 무척 기분이 상하신 건 알겠지만... 그건 저희측에서 벌인 일이 절대 아닙니다. 만약 저희측에서 그런 짓을 했다면 200퍼센트 보상을 약속드리겠습니다. "
이 비슷한 말을 벌써 천 번은 한 것 같다. 남사원은 슬쩍 눈을 돌려 주랑을 쳐다봤다. 아무리봐도 주랑은 전혀 상처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생판 모르는 남으로부터 비난어린 말을 계속 듣다보면 아무리 천사라해도 성질이 날 것만 같은데, 주랑은 아니었다. 주랑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으면 수천번이나 똑같은 말을 차분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 진짜... 대단한 분이셔...'
언제나 웃고 언제나 밝고 또 언제나 따뜻했다. 주랑과 말을 하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직장상사치고 마음에 드는 사람 있을 리 없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지만 주랑은 마음에 드는 것을 뛰어넘어 오히려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손님들을 응대하는 것도 그렇고 일에대한 열정도 그렇고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 까지. 어디하나 흠 잡을 데도 없는데다가.
' 어쩜 저렇게 예뻐? '
특히 웃을 때 정말 예뻤다. 여자인 그녀가 봐도 그랬다. 누구라도 빠져들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그건 비단 외양만 그런 게 아니라 내면적인 성숙과 어우러져 더욱 빛났다. 옆에 있으면 괜히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고, 칭찬 한 번 듣고 싶었다. 뭐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휠체어를 열심히 밀어 그저 냉수 한 컵을 떠다가,
" 팀장님... 물 드세요. "
주랑에게 가져다 주었다. 주랑은 빙그레 웃고는 남사원이 전해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콩깍지가 씌인건지 꿀떡꿀떡 넘어가는 목젖마저도 참으로 예쁘신 분이라는 생각이 한 번 들었다.
" 아~. 시원해요. 고마워요 시현씨. "
" 아니에요... 팀장님껜 언제나 신세만 지는 것 같고 또... "
주랑은 언제나처럼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 또 그러네요. 자꾸 그러면 화낸다고 했잖아요. 신세만 진다는 말이 어디있어요? 우리는 한 팀에서 일하는 동료에요. 여러분이 있어서 팀장인 제가 있을 수 있는 거에요. 그니까 자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진짜에요. 진짜 진짜 화낼거에요. "
화낼거라고 말은하지만 남사원은 주랑이 화를 내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 자자. 모두 힘들겠지만 화이팅! 사장님한테 말씀드려서 이번달은 보너스 좀 탈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
주랑의 말에 텔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주랑이라면 분명히 보너스를 타낼 수 있을거다. 사실 텔러들은 그 보너스보다도, 자신을 신경써주는 팀장의 마음이 고마웠다. 유토매니아의 텔러진들은 요즘 오히려 팀웍이 좋아지고 단합되었다.
같은 시각, 주도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토매니아 불매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또 한가지 큰 일로는 국회의원 중 한명인 김공진이 윤석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는 거다.
안 그래도 예쁘게 웃던 주랑이 더욱 예쁘게 웃었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텔러들은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나 차분하고 의지가 될 만큼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팀장이지만 예외인 경우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애인인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을 때였다. 적어도 그 때가 되면 목소리도 10살은 어려지는 것 같고 코맹맹이 소리도 조금 들어갔으며 전화를 받다 몸을 배배 꼬곤 해서, 처음에 텔러들은 그 아이러니함에 입을 쩍 벌리기까지 했었다. 주랑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딱 한 순간. 주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참. 내일이에요. 네. 그래도 국회의원님이랑 만나는 건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요? 네? 뭐라구요? 아이참... 여기 사람들 많단 말이에... 아이 정말... "
주랑의 얼굴이 붉어졌다. 은근슬쩍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알았어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
그리고 최대한 눈치를 살피면서 수화기에 쪽, 키스를 했다. 최대한 작게 한다고 했는데, 텔러들이 키득키득 웃었고 주랑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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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껏 당황해보라고. "
계획은 이제 갓 시작되었을 뿐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짜식아.
ps: 몇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나갈겁니다. 최대한 머리 아프지 않게 가려고하지만 전개속도는 조금 느려질 수 있어요.
" 그럼 연참하든가 ㅅㅂ "